목회자와 기도
녹취자: 백지영, 표명희
저는 사실은 지금 사역의 첫 시작을 신학교 선생으로 했습니다. 88년도에 신학대학교에 신학과 교수로 안양대학교에 부임을 하면서 사역을 시작을 했고, 교수가 되고 나서 7년 후에 안수를 받았습니다. 채플 시간에 축도를 하지 않으니까 당신은 왜 축도를 안 하느냐고 해서 전도사가 무슨 축도를 하느냐고 하였으니, 그 학교에서 전도사인줄 알았으면 채용을 안 했을 텐데 당연히 목사라고 생각을 하고 채용을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그러다가 93년도에 열린교회를 개척을 했고, 그 후에 92년도까지 4년 정도 안양대학교에 있다가 백석대학교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사과정을 총신에서 공부를 하고 그러다가 신학교 교수가 되고, 그 이듬해에 제가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저의 생애적인 변화였습니다. 저는 사실은 원래 구약학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고 학교에서도 구약학을 하라고 푸시를 했습니다. 재미있었고 히브리어도 워낙 좋아했습니다. 구약을 하고, 박사과정도 구약으로 들어가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혼자서 우가리도도 사이로스고든의 600페이지짜리를 독학을 해서 띠고, 투판도 읽고, 바카드어도 공부를 하고, 함무라비법전도 읽는다고 더듬거려보고, 그러면서 지도교수가 강력하게 유학을 권해서 그런 생각도 해 보고 하다가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상세한 이야기야 제가 드릴 수 없지만 주님을 깊이 만났을 때 제 느낌은, “이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언어로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구나!”, 이제까지 내가 배운 모든 신학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일 많이 생각난 사람이 칼빈이었습니다. 제 생애에 가장 영향을 끼친 신학자가 네 명이 있는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아우구스티누스, 존 오웬입니다. 그리고 한 7년 전부터는 17세기의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물론 그 사람들이 여기에 소므로 학파나 망토방 아카데미, 뻬뜨루스 람스, 중세에는 삐에르, 아벨라르 이런 쟁쟁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의 신학이 저의 마지막 자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사실은 칼빈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다기 보다는, 우리 기본적으로 신앙노선이 칼빈주의라고 해서 반발심도 사실은 있었습니다. 어쨌든 “아! 하나님의 영광, 주권, 사랑이 이런 것이었구나.”, 마치 흑백 연필의 소묘로 그린 정원을 보다가 실제로 그 정원에 들어간 것 같은 아주 비비드(vivid)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가! 그 임세(臨歲)에 청교도 문헌들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 거의 똑같이 공감하고 있는 일단의 그룹들인 영국 퓨리탄들 그쪽의 책들을 엄청나게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청교도 책들만 3000권이 넘게 수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의 청교도 중에서 존 오웬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17세기의 사람으로 영국의 크롬웰 혁명과 왕정복고 기간 그 사이를 거쳐서 살았던 풍운아였습니다. 존 오웬의 책이 지금도 영국 반호로브투루스사에서 24권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25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권은 폴 레고메나라고 해서 신학 서론을 라틴어로 작성을 한 것인데 스테판이 번역을 해서 영어로 나옵니다. 그 전집이 26권인데 그 중의 여덟 권은 히브리서 주석입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존 오웬을 다시 한 번 깊이 만나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93년도에 교회를 개척 했습니다. 개척할 때에는, 설교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하면 가소롭지만, 그 당시의 느낌에는 내가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일 동안을 밤새 기도를 하다가 교회를 개척하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때 백석대학교에서는 더블 잡(double job)을 안 갖기로 사인을 하고 들어간 것이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소명하시니까 그리고 그 교회에서 무슨 사례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해서 통장의 적금을 깨뜨려서 지하실 교회를 얻고 저를 제외한 7명이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느낌에 1년 열심히 하면 300명이야 안 모일까 했습니다. 목회가 뭔지 잘 몰랐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너무 바쁘게 부지런히 불려 다니면서 강의도 하고 설교도 하러 돌아다니기도 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죽도록 고생하고 열심히 했는데 교인 50명이 모였고, 그래서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가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도 사람들이 은혜는 크게 받는데 등록은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12월 둘째 주에 저 포함해서 8명이 개척을 했고, 1월 둘째 주 4주 만에 30명이 예배를 드렸으니 300명 모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자기네 교회 안 가고 우리 교회 와서 은혜는 받는데 2가지, 등록하고 십일조는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의 쓴 맛을 보기 시작했고, 2년째 되는 해에 번 아웃(burn out)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나는 희망이 없구나. 낙심해서 아파가지고 집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꼭 성령이 하셨다기 보다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느냐? 내 종 오웬이 있지 않냐, 좀 읽어보아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서재로 가서 존 오웬의 책을 꺼냈는데, 그것이 6권, 7권이었습니다. 그래서 펼쳐서 보는데 17세기 영어니까 요즘 영어하고는 좀 다르고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영어를 워낙 좋아해서 꼼꼼히 읽으니 깨알 같은 책인데 아침에 앉아서 천천히 읽으면 하루에 20페이지 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서 줄을 치면서 읽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여태까지의 신학을 뒤흔들어 놓는 하나의 발견이었습니다.
우리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예리한 논리가 있으면 은혜가 없고, 은혜가 있으면 논리가 없는 그런 것만 배워왔습니다. 아까 말씀하신대로 칼빈의 신학을 하는 사람은 선교가 없고 선교를 하는 사람은 신학이 없다고 하는, 그런데 예리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붙은 지성, 이 두 개를 그대로 공존하고 있는 모델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 깊이 깨뜨려지면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일이었는데, 그 후로부터 계속 탐구해서 오웬의 저작을 히브리서 빼 놓고 거의 전작을 독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청교도 서적으로 돌아가 보니까 청교도 서적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존 오웬은 청교도들 중에서도 거의 탑 클라스 다섯 명 정도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었으니, 옛날에는 은혜를 많이 받았던 청교도 서적들이 너무 뻔 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대학생 수필을 읽다가 초등학생이 쓴 글짓기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커다란 일대 전환이었는데, 목회를 하면서 지적인 여정이 목회의 여정과 함께 지속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전에도 공부는 계속했습니다만 그때 무엇을 공부해야 되는가 하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하나를 파면 끝까지 들어가는 성격인지라 그래서 그 존오웬의 신학 어려운 책,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우리 교회에 오리지널 잉글리쉬 하나가 등록을 했는데 이 친구가 계속 헤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가끔 해 주다가 책을 주면서 존 오웬을 읽어 보라고, 너희 조상인데 네가 고민하는 것이 다 나왔다고, 우리로 말하자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준 격이겠지요, 그런데 이 친구가 못 읽겠다고 그래서 어브리지 에디션(abridge edition)으로 읽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나에게는 커다란 빛이었고 그 다음서부터 존 오웬의 신학을 계속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와 은혜의 지배’라든지 이런 책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청교도를 보면서 이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칼빈 이야기도 다시 읽기 시작하고,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쭉 읽으면서 신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공부 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시간이 첫째 없고 두 번째는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아무에게도 얽매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 제가 두 권의 책을 드리고 가는데, 앞에 있는 파란 책 두꺼운 책은 마태복음 5장 14절부터 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그 한 구절을 읽고 만들었습니다. 칼빈이 성경으로 돌아갔다고 말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칼빈이 혼자 스스로 성경과 사도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사도와 성경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 이 책이 진술하고 있는 내용들이,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습니다만, 이것이 칼빈이 그리고 있었던 목회요, 신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소위 이야기하는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의 우주적 성격,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 사상의 우주적 지평들을 함께 가지고 그 다음에 신학을 해 나간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였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목회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합니다. 고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목적이 있기 때문이고, 목적대로 잘 되 가고 있다면 고민을 하지 않을 텐데 목적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갈등을 느끼고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하면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궁리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과연 성공적인 목회를 한다, 목회를 잘 한다고 할 때 그 궁극적인 그림이 무엇이냐에 대한 신학적인 파운데이션이 너무 약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이 너무나 신학적이 아니고 현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 교인들이 그 목사를 존경한다, 교회가 말을 잘 듣는다, 교회가 목회자가 무엇을 하자고 하는 대로 잘 따라서 한다, 그리고 헌금들을 많이 해서 재정적인 여유가 있다, 교인들이 굉장히 엑티브 해서 잘 움직여준다, 그러면 일단 성공했다고 평가를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현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목회는 그런 식으로 현상적으로만 이야기를 해서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무슨 문제가 나오느냐, 신학적인 파운데이션이 매우 약한 가운데 목회 활동들이 매우 주관적으로 그 다음에 확고한 목표가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드린 이 작은 책은 원래 영어로 작성을 했고, 2012년도 9월 미국 동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개강 수련회에서 제가 전달한 내용인데, 사실은 본질적인 사명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거기서 파운데이션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화) 제가 이런 비유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션을 받았는데, 북쪽으로 계속 걸어라가는 미션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만든 배 중 제일 큰 배는 일본에서 만든 배인데 약 67만 톤짜리 배입니다. 그 정도의 벌크 선은 선수(船首)에서 선미(船尾)까지의 길이가 400미터가 넘습니다. 정확하게 축구장이 3개 반 정도 들어갈 넓이입니다. 그 평평한 갑판 위에서 어떤 사람이 북쪽으로 가라는 미션을 받고 나침반을 보고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습니다. 450미터쯤 되니까 어마어마한 넓이인데 계속 가면서 스스로 나는 미션에 충실하게 북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보니까 배 자체가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들이 자칫 잘못하면 주관주의에 빠져서 동기가 순수하고 우리의 의도가 순수하다는 이유 때문에 잘 하고 있다고 믿지만, 배 표면에서 계속 북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므로 우리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을지라도 배 자체가 남쪽으로 내려간다면 계속 북쪽으로 걸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속 북쪽으로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배 자체가 남쪽으로 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목회를 함에 있어서 신학의 중요성들이 여기서 대두가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 사시니까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사실은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의 현대 철학들은 프랑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철학 이런 것들이 사실은 불란서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지금 현재 데카르트와 칸트 이후로부터 18세기부터 인류 역사의 지각변동이라고 할 만한 엄청난 사유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 사유의 전환은 배경을 보자면 르네상스로 넘어가고, 더 뒤로 가면 13세기 중세 시대의 말기의 그 유명한 유명론과 실제로 관념론 논쟁으로 역사를 더듬어 올라갑니다.
그 엄청난 변화라고 하는 것은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전에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신이, 하나님이 가운데 계시고 모든 패러다임들이 도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인간도 이 하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계속 도는 것이고 하나님이 궁극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 기준이 있었던 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빠지고 인간이 들어가고 신조차도 이 패러다임 속의 하나로 강강술래 하듯이 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궁극적인 주체가 인간이고, 인간은 이성에 의해서 이것을 판단 내린다고 보는 것이 르네상스의 정신인 것입니다.
곁가지로 가는 것 같지만, 르네상스 운동이 유럽 쪽에서는 예술을 중심으로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도시가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던 플로렌스, 지금 피렌체입니다. 피렌체의 역사를 보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쟁쟁한 사람들을 비롯해서 보카치오, 단테 이런 사람들이 활동하던 무대였습니다.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영적인 인물들, 하나님, 마리아, 천사 이런 것들이 그림의 중앙에 오고 나머지 인간들은 흐릿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에 들어오면서부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 천사, 이런 것들은 사라지고 사람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 그림을 그리면서 프랑스 왕의 정부(情婦)의 얼굴을 거기다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포커스 자체를 사람으로 맞추어서 사람을 아주 정교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되는 것은 지오토라는 사람에 의해서 원근법이 도입이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평평하게 그렸던 것에 이제는 원근이 그려지게 되는데 이것이 아주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원근이 있다고 하는 것은 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니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다윗상을 보면 성경이 그리고 있는 다윗이 아니라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블레셋을 거꾸러뜨렸던 인물로서 하나님의 신성한 목적에 이바지하는 인간으로서의 다윗이 아니라, 그냥 물맷돌을 들고 있는 그 모습 자체가 너무 수려하고 아름다운 균형 잡힌 그 인간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거의 금기시 되었던 인간을 그려내고 조각해 내고 하는 것들에 온통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후원을 메디치가가 하게 되고 플라톤의 아카데미를 재건을 해서 플로렌스에서 정기적인 학회를 열 정도로 열정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관점 자체가 인간으로 대대적인 이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모더니즘과 중세를 가르는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이 르네상스가 학구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이 인문주의 운동인데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됩니다. 모든 공통적인 종교의 기반을 제거해 버리는 극단적인 인문주의와 그것을 인정하는 기독교적인 인문주의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독교적인 인문주의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사상적인 기틀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사람들의 중요한 고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실제를 어떻게 이 세계와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전에 했던 많은 고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이 고민이 인류 역사에 계속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소크라테스가 계속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했던 그 마지막 목적 자체가 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의 목적하고 아주 유사한 것입니다. 그것인즉,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예전에 이 세계가 물이냐, 흙이냐, 공기냐, 불이냐, 원자냐 이런 것을 가지고 따진 것들이 자연주의자였다면, 그것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그것을 묻는 것이 철학의 진지한 고민이었던 것처럼 사실은 초창기 맨 처음에 기독교가 시작되었을 때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아주 중요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돌아볼 때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시대 때 그 어마어마한 로마의 영토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받은 것은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였습니다. 몇 장인지 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고린도서에 보면, ‘만물의 끄트머리에 우리를 두셨으며’라는 구절이 개정개역 성경에 나옵니다. 그것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오전에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믿다 걸린 사람들에게 칼을 주고, 칼을 든 사람 검투사하고 싸우게 합니다. 그런데 그 칼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칼하고 상관이 없는 사람도 있어서 단번에 죽기도 하였지만, 개중에는 군인들도 예수를 믿었고 심지어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중에서도 신앙고백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중에 점심 때가 되면 군중들이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그러면 기독교인들의 칼을 다 빼앗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전 게임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검투사이며 칼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은 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싸움에 되겠습니까? 단 칼에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짐승에게 물려 찢어 죽이는 끔찍한 박해를 받은 종교가 기독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기독교를 그렇게 지독하게 박해했을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 답인즉, 기독교는 무서운 종교였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판단은 굉장히 정확했으며, 기독교 선교의 본질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로마는 처음부터 많은 영토에 다양한 종교와 문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지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페르시아나 이런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종교관용정책이었습니다. 곧 두 가지만 잘 따르면 자유를 누리게 해 주는 것이었으니, 세금을 정확하게 납부하고 황제 숭배주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황제만 섬기라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그것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까 목사님께서 한국교회처럼 열정이 있는 교회가 없다고 하셨는데 저도 동의를 합니다. 그리고 외국에 가서 외국의 학자들이나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항상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한국에 자주 오실 테니까 아시겠습니다만, 지금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구원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심하게 이야기하면 과연 한국 교회가 인간을 구원이 필요로 한 존재라고 보는가?, 그런데 구원이 필요 없다고 본다면 기독교의 근본을 뒤흔드는 발상이므로 구원의 의미를 재해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30년 동안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로 중생과 회심에 대한 설교가 거의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회개하라는 설교를 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히브리어로는 ‘슈브’, ‘돌아간다’는 것이고, 희랍어로는 ‘메타노이아’, ‘다시 한 번 생각한다’는 것이니, 원래 생각하던 것이 있어야 다시 생각할 것이 있다는 이치인 것입니다. 말씀인즉, 자기가 확고하게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선 시점이 있어야지만 그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후에도 기독교 삶에 있어서 계속 회개하라는 메시지 자체가 사실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그래서 테루툴리아누스 같은 사람은 ‘나는 회개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돌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들이 완벽하게 사라지면서 소위 일반은총에서 이야기하는 도덕과 성경이 이야기하는 거룩함의 열매로서의 경외의 도덕이 차별이 없이 뒤섞이는 19세기의 오류가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시스 쉐퍼 같은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 분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기독교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가 없으면 그것으로서 충분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만약 그것 하나뿐이었다면 로마가 그렇게 기독교를 박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가 무엇이냐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시대 때 맨 처음에 사도들이 있고, 사도들 후에 속사도교부들이 있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2세기에 로마의 핍박이 교묘해지면서 사상적 박해가 일어나게 되고 그래서 변증가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때에 이미 기독교는 한 사람이 크리스챤이 된다고 하는 의미는 성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그 당시에 이미 성서가, 사도들의 서신들이 다 읽히고 있었으므로, 세계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지나간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산다는 그 위에 덧붙여서 성경을 유일한 나의 인생의 법칙으로 알고 그 성경의 사상을 내가 떠맡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관에 대한 수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훨씬 통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리겐이나 이레네우스나 테루툴리아누스나 키푸리아누스나 히폴리투스나 이런 사람들의 글들을 보면 우주적입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를 좁은 의미로 본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언아더 웨이 오브 리빙’(another way of living),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택한다는 것이며, 그 다른 방식의 삶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를 이렇게 아주 좁은 의미로 본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another way of living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택한다. 그런데 그 다른 방식의 삶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것이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다보면 무슨 문제가 나오냐 하면 그리스도인이 일단 됐다하면 기독교적인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그 사상의 핵심들이 오히려 그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책 중에 하나가 나는 로마서라기보다는 에베소서하고 골로새서라고 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모마의 옥에 갇혔을 때 65에서 67년 그사이에 쓴 것인데 이때는 사도바울이 순교하기 2, 3년 전이였기 때문에 굉장히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성숙된 가운데 전개한 것인데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엄청난 우주적인 서신입니다. 그런 엄청난 우주적인 전망을 가지고 가르치던 사도의 가르침들이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세계관속에서 고민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나면 황제숭배 자체가 얼마나 죄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로마정부의 그런 식의 작태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에 그 당시에 말하자면 민중을 통합하는 수단으로서 우리가 옛날에 단군사상 같은 것을 강조했듯이 다신교를 강조했습니다. 다시 그리스시대로 회기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도 종교하나로 사함들을 묶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과 당시에 있었던 로마의 끔찍한 문화 이런 것들을 이 기독교사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것과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이 로마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그래서 씨를 말리지 않으면 제국에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그 그리스도인이 0.1%도 안 되던 소수이던 시절에 간파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를 말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오늘날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의미가 무엇이냐 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받는 교훈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당장 우리에게 닥친 사역의 소망 들이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회는 교인들이 좀 더 많이 와서 헌금이 많이 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을 거고 늙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와서 활기찼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을 거고 선교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교회는 젊은이들 중에서 선교사 후보생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라는 여러 가지 소원들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데 건물이 비좁은 교회는 제대로 된 건물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는 여러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것은 다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적인 것이고 궁극적으로 만들어 갈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들이 고민 하게 만듭니다. 존 오웬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를 믿으라하시고 구원을 얻은 다음에는 이제 구원을 얻었으니 너는 프리하다 잘됐다 이제는 너희는 자유다. 그리고 방종하게 두시지 않고 예수 믿은 다음부터 하나님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으로서 이 사람을 신자다운 신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의 목회와 모든 선교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 네 가지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그것을 우리위에 사역이 계승하는 것이고, 신자에게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으로서 두 가지를 이루는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함에 있어서 온전케 하는 것. 이건 부인, 이건 빙의입니다. 이 두 가지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물의 본성은 본질의 관계적인 표현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사물의 본성은 본질과 똑같은데 본질은 유리다 .라고 할 때 이 유리가 딱딱한 것과 부딪칠 때에는 깨지는 게 유리의 본성입니다. 본성은 관계적인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본성이라는 말을 쓸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슨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던져보거나 불에 녹여보거나 깨드려 보지 않고는 이게 무슨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이렇게 놓고는 우리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부인과 빙의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를 무얼 만들기 위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true christian 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christian 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 어디냐 ? 표준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럼 도달할 사람이 있냐? 없습니다. 도달할 수도 없는 목표를 우리들이 왜 가냐? 허셀 포드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예화) 하인에게 밤중에 주인이 배를 타면서 북두칠성을 보면서 계속 노를 저어라. 그러면 우리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랬더니 하인이 계속 노를 저어가다가 주인은 잠들었습니다. 한참 후에 깨웠습니다. 주인님 북두칠성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주인이 북두칠성을 향해 노를 저으라고 할 때는 배가 바다위에 떠서 날라서 칠백만 광년이나 떨어져있는 북두칠성에 안착하라는 애기가 아닙니다. 그것을 보고 가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항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라고 하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무슨 질문을 제시할 수 있냐하면 아니 믿고 구원 받았으면 되지 왜 그렇게 불가능한 목표를 찾아가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느냐? 그것에 대해서 존 오웬의 대답이 뭐냐 하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사람이 안 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만들어진 물건이 각자의 목적을 갖고 있듯이 인간도 하나님이 목적을 갖고 만드셨고 이 인간은 이 세계에 만들어진 모든 사물들의 목적을 이해하고 통합해서 하나님이 이 세계 전체를 창조하고 자기를 창조하신 목적을 삶속에서 창조적인 행위 속에서 구현해가는 것이 인간의 이상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문제가 안 되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이미 참된 인간성들이 상실된 것입니다. 이것을 복원해가는 방식이 바로 구원을 통해서 중생을 통해서 회심을 통해서 성화를 통해서 회복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으면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그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간은 누구냐? 단지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목사님 일을 돕고 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이 창조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실현해가는 주체로서의 인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인간은 천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위대한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의 어떤 존엄과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져야 된다. 라고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을 하나의 유용주의 적인, 효용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인간을 보는 것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악을 행하고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고 이 세상에서는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 지위, 영광, 소유 이런 것들에 의해서 그 사람이 각각 다르게 대접을 받지만 그래서 때로는 가진 것 없고 무식하면 무시되지만 그러나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그 사람의 존엄함과 위대함이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견해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적인 사랑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말씀을 맺자면 그러면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지금 이야기되어진 이 내용들을 토대로 우리가 어떻게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 사역을 해야 할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우리의 모든 사상과 선교적인 삶 목회의 포괄성을 이야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이제 예수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쪽에서 예수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납니다.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가 나스코라고 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태어나다 입니다. 그래서 나스키멘토는 이탈리아어로 탄생입니다. 리니까 재탄생입니다. 뭐가 재탄생하는 것이냐? 인간에 관한 관점이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관한 관점이 뭐냐 ? 인간을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보는 그 관점이 리 나스키멘토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재탄생은 부활입니다. 그럼 언제 그게 있었느냐? 인데 그것은 르네상스 사람들은 고전 그리스시대에서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에 가서 그리스역사를 발자취를 밟아보면 이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히 인정하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이라는 절대기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이 인간의 존엄과 위대성을 말하는 것이 마지막이 결국은 어떻게 됐는가를 우리들이 역사 속에서 보지만 허무하다는 것을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희망적인 관점을 어느 정도 유보하고 그 역사를 보면 인류역사 이래 사실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었던 시기가 그 시기가 아니었겠느냐 하는 향수를 갖게 됩니다. 알다시피 여러분들은 그리스시대에는 로마시대처럼 노예를 혹독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주인이라도 자기노예를 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시어도스의 작품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예화)노예에게 가서 밭을 갈라고 아침서부터 잔소리를 했는데 이친구가 말을 안 들어서 할 수 없이 내가 밭 갈러 나간다. 이런 정도의 자유를 노예들이 누립니다. 그 사람들이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저녁때에는 원형 극장에 모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스시대의 비극들을 공연을 봅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저녁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그때 노을이 죽 지면서 거기에서 연극이 상연되는데 어쿼스틱 시스템으로 정확하게 설계를 해서 만 팔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극장입니다 거기서 연기자가 노래를 부르면 똑같은 시간에 음이 도달해서 기가 막히게 들리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박수쳐보면 알 수 있는 지금도 설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속에서 무얼 배우냐 하면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 그걸 배우게 됩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기반이 없는 것. 확고한 기반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제 보편성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뭘 하고자 하는 얘기냐 하면 처음에 기독교가 알려질 때에 이렇게 희망을 고백하고 그다음에 사상의 체계를 받아들이고 그 사상을 가지고 이 온 우주 속에서 인간의 지위를 구현하면서 사는 것, 남들도 그렇게 구현하게 해주는 것. 그러면서 아까 르네상스 때 예술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입니다만 신적인 것 그리고 하늘에 속한 것이 떠오르고 인간은 아주 희미하게 그립니다. 그런데 인간이 중요하게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나서 화란으로 이 종교개혁이 뻗어나갑니다. 박해 받던 모든 여기 프랑스에 있던 사람들도 많이 이주를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종교개혁 지지자들이 보호를 받습니다. 근데 거기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램브란트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때 뭐가 나오기 시작하느냐 하면 저런 자연에 대한 그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현상이었습니다. 근데 아주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어떤 관점이 변한 것이냐 하면 처음에 신, 천사, 마리아 이런 것에서 인간으로 이동했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는 어떻게 됐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가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가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하게 여겼던 이 물질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가 자기 지위를 되찾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을 그려냄으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성사와 미사 그리고 마리아의 그림 그다음에 천사들의 그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풀포기 하나 돌덩이 하나 속에도 신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찼다라고 하는 걸 그려냅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모든 자연의 사물들을 다루는 학문 속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다음에 그런 영향아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우주적 세계관에 관해서 눈뜨면서 칼빈이 그것들을 계승한 것입니다. 칼빈은 간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굉장한 사람입니다. 오늘 지금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신학자들을 25년 가까이 공부해오면서 칼빈을 읽으면서 새롭게 느끼는 게 뭐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읽은 칼빈은 상당히 어커며데이티 돼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칼빈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교파와 생각에 맞는 부분을 따내서 재구성하는 칼빈의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 언 어커머데이티드가 아니라 칼빈 인 컨텍스트가 아니라 칼빈은 칼빈인데 내가 원하는 칼빈의 그림만을 파편처럼 모아서 칼빈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이 특정 교파의 교주가 되는 것처럼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우주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두 가지로 제가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칼빈이 첫 번째 세상에 등장하게 된 데뷔작이 뭐냐 하면 키케로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이었습니다.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키케로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을 써서 발표할 정도였으니까 그 사람은 당시 인문주의에 대해서 깊이 눈떴고 프랑스 파리 골래지에서 공부했을 때 오를래앙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을 때 고전과 신법률 사상을 같이 공부했고 거기에서 공부했던 꼴라돔이라든지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던 레따뿔이라 던지 이런 사람들이 모두 프라스 인문주의자들 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엄청난 인문주적인 소양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기독교강론은 절제되게 썼습니다. 절대 기독교 강론이 칼빈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때 캐톨릭의 핍박이 종교개혁이후에 이태리에 피비린내 나게 벌어지고 있을 때 거기에서 탈출한 가문이 있었는데 버미글리라는 가문입니다. 그 가문에 3대에 피터마터 버미글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위스에 칼빈이 이었고 이 사람에게 여러 통의 편지가 오고 갑니다. 그 사람을 여섯 번이나 제네바에 자기 후임으로 부릅니다. 이 사람은 박식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였습니다. 그 사람의 작품이 아직도 있는데 굉장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칼빈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선 적인 사람이 아이라 아주 복합적인 인문주의의 소양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우주적인 세계관을 자신의 선교로 본 것입니다. 여기 전공자가 있으니까 말 못하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칼빈이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선교에 대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동형제단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 그래서 루터의 문학에도 잘 안 나온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조사한 건 아니지만 근데 칼빈에게는 예외적으로 그런 것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관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거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되어야할 그런 우주적 사상으로서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첫째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것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선 오늘날 설교자체가 탈신학적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내용이 설교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 가서 사상이 없으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착하게 살아라. 하는 윤리적 티칭밖에 없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은 윤리적인 티칭도 가서 설교한번 한다고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구조자체가 이미 벌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힘든 사회가 되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사상이 있는 목회를 하기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신학 자체를 열심히 공부해서 묵직한 책들을 읽으면서 사실은 설교 속에서 묵직한 사상을 실어낼 수 있도록 해야 되고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신학 교회신학 성서신학 역사신학 이런 것들을 공부해나가고 그다음에는 인문학 철학 사회학 그 다음에는 주변의 학문들과 자연과학까지 공부해가면서 모든 학문들이 통합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이것에 대해서 우리들이 눈을 떠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세계가 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가 하나님 앞에 인간을 창조한 보람을 느끼실 수 있도록 이바지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5세기 때 사람 피코델라 밀란도라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르네상스시대 때에 이태리 사람인데 아주 유명한 연설을 남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쳐보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 데 오라치오 디그니따떼 호미니스 이 사람이 귀족 출신인데 26살 때 세계 모든 학문을 다 통달합니다. 그리고 철학자 대회를 열 생각을 합니다. 근데 방해를 해서 못합니다. 이 사람이 유명한 연설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신이 인간을 왜 창조했을까? 그게 뭐냐 하면 인간에게 신은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보냐하면 기독교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넣는 사상의 대 전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너의 인생에 어떤 건 이렇게 되고 저런 건 저렇게 되라고 미리 정해놓은 것은 없다. 네가 스스로 너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너에게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 그렇게 보면 인간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는 인간이 하나님께 백지위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형식상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인간이 모든 결정권을 쥐게 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거기서 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을 얘기하면서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하나는 신 앞에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 문제이니 끊임없이 신 앞에 자기영혼을 정화할 것이며 두 번째는 신이 창조한 세계에 자신의 노동을 보탬으로써 이 세계가 더 아름다운 세계가 되도록 이바지 할 사명이 있다. 이 두 가지 입니다. 이것을 사실은 종교개혁자들이 그대로 계승을 합니다. 근데 맥락과 해석은 밀란돌라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계승을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세계 속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살아야하고 목회자는 심리자로서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든 학문과 자연 속에서 목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소위 유목적 사유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학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철학이 있습니다. 법학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이 있습니다. 예술이 있습니다. 각자 다 자기 영역이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이것을 가로지르며 여행하며 삽니다. 그래서 존 일바크라는 신학자가 자기의 책속에서 신국론을 얘기하면서 그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는 유목적 문화의 나라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모든 학문과 이 세계에 영역 속에 있다는 것을 찾아내면서 그것들을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이것들을 모두 함께 조직적으로 엮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조적인 행위로서 이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데 보태는 사람들로 길러내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선교, 목회 모든 사역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데 마지막으로 두 번째는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게 제가 여기 얘기하는 본질로 돌아가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이렇게 포괄적인 세계관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교회를 작동해보면 교인들이 이렇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인식은 있는데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마치 좋은 무기도 주고 돈도 많이 주고 다해서 군인들을 길렀는데 문제가 뭐냐 하면 이 군인이 국가를 위해 살다가 죽어야겠다는 애국심과 충성심이 없는 것입니다.
(예화) 아프카니스탄 사태가 일어났을 때 들은 얘긴데 전투하는 데에 군중목사가 따라갔답니다. 한 병사가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러니까 달려가서 붙들고 어떻게 하냐? 그러는데 이미 벌써 살아 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피가 흐르는데 아프지 않냐? 너는 반드시 살 수 있다. 희망을 버리지 마라. 그랬더니 말을 못하니까 피를 찍어서 군복에다 글씨를 썼답니다. 그러더니 피델리스 생빼, 그게 뭐냐하면 항상 충성 그러고 죽더랍니다. 그건 뭐냐면 이건 무기로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세계관을 갖고 있고 그것에 의해 설득됐으면 뭐합니까? 내가 피 흘리고 싸우기 싫은데 .. 나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가기 싫은데....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이 보편성과 함께 우리의 특수성 그것이 뭐냐 하면 진짜 복음으로서 승부를 해서 사람들이 진실하게 회개하고 주님 영접하고 그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에 깊이 도전을 받음으로서 이 생명 하나를 예수 위해 살겠다. 라고 하는 개별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실은 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사상을 주입시켜서 이 사람을 바꾸기는 힘듭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우리들이 진짜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의 고전적이 선포들 회개와 천국 그다음에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 십자가의 사랑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원색적인 복음으로 선포를 해서 그래서 이 합리주의적인 사람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변화가 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것을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되 복음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어서 그래서 그 복음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그래서 눈을 뜬 다음에는 우주적이 세계관을 가지고 자기의 삶에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