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도와 성령
9장 기도와 성령입니다. 핵심은 성령이 함께 할 때 깊고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5절부터 6절, 7절이 나와 있습니다. 속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이 꽤 깁니다.
1번)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기도문의 형식에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즉석에서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평소에 기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외웠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고 예수님이 길게 하시던 그 기도의 패턴을 요약해서 우리에게 정리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하시던 기도였기 때문에 그 기도를 잘 살펴보면 예수님이 당신 머릿속에 그리던 기독교 공동체 그리고 개인이 어떤 교회이고 어떤 개인이어야 하는 것을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당신이 사역하시면서 신자들이 계속 생겨났는데 이 신자들이 미래에 당신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만들어질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준은 영원히 참된 교회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은 평소에 기도하신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그리면서 당신은 그 기도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초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똑같이 신자의 삶이 주기도문을 구현하는 삶을 살 때 그 신자는 예수님이 세우시려고 했던 기독교공동체를 구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점에서 주기도문과 삶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기도에 이르는 쉬운 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번역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거기에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주기도문이야 말로 지상에서 가장 끔찍한 순교자다. 주기도문은 온몸으로 고문당해 왔고 악용되어 왔으니 오직 소수의 신자들만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여 위로와 기쁨을 누렸다.’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루터의 어록 중에서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2번)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구해야할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첫째는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성령 충만이 능력 있는 삶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이 오순절에 강림하시는데 그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고 나니까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면서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열렬하게 그런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세상의 유혹을 거절하며 진리를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은 가장 뚜렷한 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하고 마른 뼈와 같은 영혼들이 살아나게 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 주는 능력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 사람은 지금 사랑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고민만 하는데 이 사람은 다시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까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 충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인데 하나님은 간절히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3번) “떡을 빌리러 온 친구의 비유”를 통해 알게 되는 성령 주심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성령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십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과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에 이런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자기가 잘 아는 친구를 찾아가는데 이미 누워서 자고 있습니다. ‘떡 세 덩이만 나에게 꾸어 달라.’ 가난해서라기보다는 이 사람들에게는 떡이 주식이니까 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떨어졌으니까 밤중에 여행하다가 내 친구가 찾아왔는데 이 사람을 접대해서 먹일 빵이 없으니까 우리로 말하자면 밥 한 그릇을 빌리러 옆집에 갔습니다. 계속해서 깨우면서 꾸어달라고 이야기하니까 11장 8절에서 이렇게 응대합니다. ‘네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 때문에는 이 밤중에 일어나서 그런 수고를 할 수 없다. 그런데 계속 간절하게 청하고 만약에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나를 잠을 못 자게 할 테니까 내가 요구대로 일어나서 줄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주시는 교훈은 그렇게 간절하게,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4번)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지만 대부분 간절히 기도할 때 응답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시키시는 목적은 당신이 모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보고를 하라고 기도를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어그러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고쳐지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마음이 아픈 이유는 아픈 만큼 우리가 잘못 살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할 때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성령을 받게 되었을 때 오직 하나님만이 나에게 이런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모든 좋은 성령의 은혜가 그뿐 아니라 모든 좋은 다른 것들이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깨닫고 나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붙어있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나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계가 아니라 시계는 시계인데 하얀 것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이면 이 회색은 나의 마음 나의 뜻입니다. 맨 처음 회개할 때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러다가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나를 포기하고 버리게 되고 깨뜨려지게 되면서 이것이 이렇게 이동해서 예전에는 이만큼의 간격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요만큼의 간격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가까이 가게된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가 그 기도가 마음에서 우러나 기도이며 믿음이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없이는 그렇게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5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성령 주심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구하는 것은 입으로 구합니다. 찾는 것은 눈으로 찾습니다. 두드리는 것은 손으로 두드립니다. 왜 우리의 신체의 각 부분을 사용하셔서 이렇게 입체적으로 말씀하실까? 이것은 성령을 구할 때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격적인 삶으로 성령 주심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입술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이렇게 해서 결국은 우리의 사지백체를 다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찾는 삶이 되도록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일인데 어느 집안에서 미국비자가 달린 여권을 잃어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권도 없이 살았습니다. 저도 여권을 만든 것이 교수가 된 다음에 만들 정도로 그렇게 무심했으니까 그 당시 1960년대에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늘이 낸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거기에 미국비자까지 붙어있으니까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을 들어가야 하는데 다시 발급받으면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잃어버린 본인한데 들은 것이 아니라 고물상 주인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결국은 어디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쓰레기더미에 같이 묻혀서 나갔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식모가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 모르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했느냐하면 그곳을 담당하는 넝마주의 하는 사람들의 두목을 찾아서 여기서 걷어 들인 쓰레기가 어디로 갔느냐? 난지도로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난지도가 쓰레기장이 아니라 골프장이 되었는데 그러면 당신들이 이것을 찾을 수 있느냐고 하니까 못 찾을 수도 있지만 찾을 수도 있다고 그러더랍니다.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 하니까 쓰레기를 버리는 구역이 있답니다. 막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기는 성동구, 여기는 성북구, 이렇게 버리고 가는 구획이 있는데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 거기에서 넝마를 줍는 사람이 있는데 양은 같은 것을 줍는데 그 사람들을 연결해서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얼마를 걸었는지는 모르는데 그 당시로 넝마주의들이 깜짝 놀랄만한 액수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찾았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망태기를 지고 다닌 사람 수십 명이 모여서 집게를 가지고 하나하나 자기가 가지고 갈 것을 담으면서 찾는데 딱 찾은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하루 종일 노동해봐야 받는 것이 오만원이라고 치면 지금은 훨씬 더 받겠지만 예를 들어 십만 원을 받는다고 치고 여권을 찾아주면 천만 원을 주겠다고 그랬을 때 그 사람들의 눈빛이 어떻겠습니까? 거기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찾아서 나누어 가질 수도 있지만 찾는 사람이 가장 큰 상금을 받을 것인데 찾으면 찾고 못 찾으면 못 찾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남이 찾기 전에 그것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불을 켰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딱 찾았습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그랬는데 설명을 들어보니까 구획별로 쓰레기를 버리고 쓰레기를 그 사람들이 찾아냈습니다. 놀랍습니다. 그때에 어떻게 했느냐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제가 안 그럴 것인데 그 당시 제가 가지고 있었던 첫 번째 여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딘가 가야하는데 그것을 잃어버렸는데 흘린 것이 아니라 방배동에 있었던 제 방에 책 어느 갈피에 넣어두었는데 너무 잘 보관한 것입니다.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구청에 갔을 텐데 어쨌든 그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3일 동안 자나 깨나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것이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을 찾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번) 성령 충만하기 원하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러니까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이러면서 성령 충만을 구하면 응답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제가 전도사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애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닌데 상당수 다수의 학생들이 100명이나 60명 정도는 수련회에 목숨을 겁니다. 60일 전부터 기도하고 수련회에 임박해서는 시키지는 않는데 시키는 것은 돌아가면서 릴레이 금식기도는 시키는데 풀로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달라고 매달리고 그 학생들이었는데 하나님이 놀라우신 것이 은혜를 부어주시는데 은혜가 커브를 틀면서 지나갑니다. 앞에 사람은 은혜를 받고, 그 뒤에 사람은 못 받고, 그 옆에 사람은 은혜를 받고, 그 뒤에 사람이 은혜를 받고 이렇게 하면서 그것이 모두 기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을 가려낸다고 100프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사모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자신을 보면서 구역 원들이 삶의 진창에 빠져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것도 해야 합니다. 그것도 너무 중요합니다.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번 목숨을 걸고 성령의 충만함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보라고 이야기하고 나도 돕겠다고 하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근본적인 해결을 보라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근심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인격적인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 성령님은 생각하시고, 말씀하시고, 판단하시고, 정서를 느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기뻐하기도 하시고, 슬퍼하기도 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그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