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기설교 (2012.11.18 주일오전설교) 무엇으로 감사할까 2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레7:13-14) |
I. 본문해설
본문은 화목제의 규례를 적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 구현한 것에 감사하며 올리는 제사였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제사가 나오는데 이것들이 우리에게 혼란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 분류로 되어 있는 제사를 함께 섞어서 흩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목적과 방식에 따라서 분류가 됩니다. 목적을 따른 제사의 분류를 보면 속죄제는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이고 속건제는 거룩한 성물에 대하여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고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사람 속에 구현하는 제사였습니다. 제사 방식을 따른 구분도 존재합니다. 번제는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고 제물을 높이 들어서 올리는 제사는 거제이고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는 요제였습니다. 곡식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는 소제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제사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구분되는 제사들을 함께 섞어서 성경에 흩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II. 화목제의 규례
화목제는 크게 세 가지 제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감사제사와 서원제사 그리고 낙헌제사입니다. 감사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해서 올리는 제사이고 서원제사는 서원과 관련한 제사라면 낙헌제는 의무가 없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서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이 제사들은 개인적으로도 드려졌고 공동체적으로도 드려졌는데 공동체적으로는 절기가 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에 화목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화목제의 특성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함께 엮어 하나님 앞에 화목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자유인 뿐 아니라 노예, 레위인 모두를 포함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 후에 공동체 의식을 나누며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화목제는 희생의 제물과 함께 곡식도 드렸는데 곡식 가루, 구운 무교병, 유교병, 번철에 붙인 것, 솥에 기름을 섞어 삶은 것 그리고 첫 이삭을 볶아 찢은 것 등의 곡물제사도 함께 하나님 앞에 올렸습니다.
III. 감사함으로 드릴 제사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함으로 드릴 제사가 어떤 방식인지를 크게 네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사의 구체적인 규례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생활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주님께 경배를 올리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잊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 절기를 두셔서 이 절기를 가지고 교회가 지키게 하셨습니다. 지킨 절기를 통해서 감사의 정신이 그날 하루 뿐 아니라 365일, 모든 날 동안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배게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지난 한 해 동안 육신을 먹이고 입히고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게 하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물질과 이 세상 자원으로만 공급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영혼이 핍절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셔서 영적인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쓰러지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거기서 아주 엎드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하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A. 유교병을 드림
제일 먼저 성경은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제물과 함께 예물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유교병은 무교병과는 달리 누룩을 넣어서 빚은 떡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이 되고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이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2절에 보면 누룩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거짓된 교훈이며 거기에서 비롯되는 외식이라고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누룩은 전염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외식에 빠뜨리고 거짓된 교훈을 퍼뜨리게 만드는 부정적인 누룩입니다. 이에 비해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 비유를 통해 어떤 여자가 가루 서 말에 넣은 누룩을 묘사하며 이 누룩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이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인데 이것은 복음의 영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화)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돈도 없고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먹을 간식거리도 마땅치 않을 때에 할머니는 종종 저에게 빵을 해주셨습니다. 시장에서 술약을 조그만 병에 사다가 집에 가지고 오셔서 미지근한 물에 개어서 밀가루 반죽할 때 그것을 한 숟가락쯤 넣고 반죽을 합니다. 반죽 덩어리가 주먹 세 개만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에 커다란 양푼에 넣고 뚜껑을 덮어서 이불 밑, 아랫목에 넣어두고 한숨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신기하게 주먹 세 개만 하던 밀가루가 가득 부풀어서 큰 양푼을 가득 채우고 뚜껑을 위로 밀 정도로 부풀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다시 잘 치대어서 좀 가라앉힌 다음에 연탄불 위에 동그란 철판을 놓고 그 위에 두꺼비 집을 놓고 올려놓습니다. 한참 내버려두면 천천히 더운 기운이 올라와서 빵이 익기 시작하는데 아래는 누룽지처럼 노릇노릇하고 딱딱하게 굳어지고 그 위에는 열기에 의해서 빵이 맛있게 구워집니다. 오늘 아침에 이 설교를 다시 보면서 그 빵이 얼마나 먹고 싶은지 군침이 돌았습니다. 실제로 갖다 주면 우유도 많이 안 넣고 특별한 것도 넣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맛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 빵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이것이 누룩의 역할입니다. 누룩은 이처럼 작은 양으로 커다란 대상에 침투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서 이루어 가시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육신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먹여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한다면 여러분이 주님 앞에 올려야 할 가장 시급한 헌신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변화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절망과 인생의 벼랑 끝에 있고 아무런 목적 없이 힘겹게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목적을 가르쳐 주어 그들도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가장 탁월한 방법인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10개 교구, 정확하게 말하면 17개 교구의 지역심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가는 곳마다 ‘무위도식 하지 말라고 설교에 말씀하셨는데.’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양심을 가지고 있으니 무위도식한 사람들에게는 크게 찔림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무위도식하는 삶이란 자신은 복음의 영향력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룩이 질이 좋고 순수하면 많은 가루도 단번에 부풀에 할 수 있지만 누룩이 상하거나 누룩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할 때에는 아무리 누룩을 집어넣어도 가루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무위도식하며 살아간다면 여러분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웃들이 염려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기는 받았으나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한 누룩이 된 여러분의 심령의 상태, 신앙의 상태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선한 복음의 영향력을 교회와 이웃에 끼치며 사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당위적인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화목제에서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에 유교병을 올리도록 분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누룩처럼 복음의 영향력을 여러분의 사회와 가정, 교회에 끼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B. 하나씩 거제로 드림
두 번째는 하나씩 거제로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라고 말합니다. 거제는 그 예물을 높이 들어 하나님 앞의 제단 위에 올려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짐승의 고기만 이런 제사를 올린 것이 아닙니다. 민수기 15장에 보면 빚은 떡을 하나님 앞에 거제로 들어올리기도 하였고 레위기 7장에는 하나님께 바친 제물의 넓적다리를 높이 들어 아버지께 올려 드렸습니다. 이렇게 제물을 올리되 한꺼번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높이 드는 것은 이 제물 하나 하나가 하나님께 구별된 것 가운데서 더욱 구별되어 주님께만 바쳐진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모든 제사가 하나님께 올려지지 않은 것이 없지만 거제를 통하여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사물들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에는 깊은 복음적인 뜻이 예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개별적인 삶이 하나님 앞에 헌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벼랑 끝에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다시 한 번 은혜를 주실 때에 우리는 감격합니다. ‘인생을 주님께 드립니다. 나의 평생에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내 인생은 예수님께 이미 바쳐진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 중 상당 부분은 진실한 고백일 것이고 적어도 그 기도를 올리는 순간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며 다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총체적인 헌신의 고백은 매일 살아가는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삶 속에 녹아들어 실제 행실 속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 굴복하여 ‘우리의 인생 전체를 주님 앞에 드립니다.’라는 최고의 헌신과 순수한 하나님을 향한 바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정신이 핏줄처럼 우리 삶의 행동 하나하나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하나의 작은 섬김 뿐 아니라 사업을 하면서 내가 만나는 불신자와 신자들, 교회에서 마주치는 새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이웃과의 교제 하나 하나 속에서 ‘하나님께 내 인생을 다 드렸습니다.’라는 헌신의 고백이 녹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삶 하나 하나가 구별되어서 하나님 한 분께 바쳐지는 이러한 헌신이 실제 생활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개별적인 순종의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 고백은 연애 감정 같은 그런 신앙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닙니다. 어느 한 순간 정이 동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속의 자비로운 덕(德)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情)이어야 그것이 진정한 인(仁)에 뿌리박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헤세드에 뿌리박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주님 앞에 이런 저런 고백을 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이런 저런 헌신을 약속해도 정작 어려움이 물러가고 하나님과의 약속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 앞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스럽게 사는 것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신실한 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살며 한 생활, 한 실천, 하나의 행동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제사가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씩 거제를 드림으로써 화목제를 올리게 하셨던 이유인 것입니다.
C. 제사장들에게로 돌림
세 번째로는 이렇게 올려진 제물을 태워서 없애버리지 않고 제사장들에게 돌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에게로 돌릴 지니라” 거제로 올린 모든 제물은 제사장들에게 드려졌고 제사장들은 그것으로 유익을 누리고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제사장이 오늘날 목회자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근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씻게 하셔서 우리 모두가 제사장의 중보의 도움 없이 찢어진 휘장을 지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제사장 없이 나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거제의 제물이 제사장들에게 돌려진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게 된 모든 번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올린 우리의 헌신들이 이웃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속에 누려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모든 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되 특별히 믿음의 가정에게 더욱 그리하여야 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그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들은 거제로 주님 앞에 올려 드려야 하고 올려 드려진 그것을 이웃과 사랑하는 지체들이 충분히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와 돌봄, 베풂의 목적입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 순창에 있는 임마누엘 교회를 내려갔습니다. 목사님이 개척할 교회를 지은 후 사택을 지을 수 없어서 10m 짜리 평상을 짜서 텐트를 치고 살면서 조금씩 철판도 붙이고 확장을 하셨는데 기초가 없으니까 태풍 볼라벤이 오면서 한 번에 모두 다 뜯겨져 날아가 버렸습니다. 막막해서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놀랍게도 커다란 평화를 주시더랍니다.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교회로부터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맘때면 크고 작은 일들로 많은 교회에서 도움을 청해옵니다. 일일이 전화해서 어느 교회는 도와주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형편에 따라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도움을 드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는 동안, 우리 모두의 마음이 움직였고 우리가 그 사택을 복구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을 해 주셔서 목표한 것보다도 한 400만 원 정도의 돈이 더 모아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택을 복구할 수 있는 비용을 모두 보내 드렸고 그 덕분에 불과 한 한 달 만에 모두 복구하여 예쁜 사택을 지어놓고 우리를 거기에 불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난한 교회에서 목사님도 울고 사모님도 울고 건축 경과를 보고하던 안수집사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열린 교회를 기억하지 말고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기억하라고 하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놀라운 은혜 때문에 장로님들을 비롯해 집사님들이 가서 건축을 직접 도와주기도 하고 여러모로 애쓰면서 물질뿐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그곳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온 지체들 18명이 함께 내려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이웃과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과 동역자들과 함께 누리며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을 이웃과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누리며 살아야 할 소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는 지난해에도 알뜰하게 살림을 하느라고 애를 썼고 커다란 대가 없이 한 해 살림살이를 정직하게 해 왔습니다. 교인들은 12% 늘었지만 헌금은 그렇게 많이 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물질로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몇 해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 마을에서 일어난 간증을 들었던 것을 회상합니다. 작지 않은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성도들이 열심히 헌신을 해서 1년 살림살이를 했는데 예상보다 헌금이 적게 나와서 20만 불, 우리로 말하면 약 2억 4천만 원 정도의 교회 재정이 적자가 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이 어느 주일에 교회의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광고하면서 ‘자원하는 분들이 헌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 했을 때 바로 그날 두 사람의 성도가 와서 ‘우리 둘이 모두 10만 불 씩, 20만 불을 내서 교회 적자를 메우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한 번에 교회 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에 익숙해진 미국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가 그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교회가 진정으로 어려울 때 자신에게 주신 재물 중 상당한 부분을 하나님께 바칠 마음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시달렸고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했습니다. 하나님이 풍족하게 주신 것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여러분이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제로 올려진 모든 좋은 것들은 사랑하는 지체들과 이웃과 더불어 나누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면 더 많이 헌신해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할 것이고 여러분이 진리의 빛을 받았다면 그 진리의 빛도 나누어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학교는 교사가 부족해서 난리입니다. 말씀을 많이 깨달은 사람들은 무지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과 함께 교제하고 섬기며 진리의 빛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동일하게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끼리 은혜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진리의 빛을 주신 것은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라고 주신 것이지 조명 가게에 등 하나를 더 달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누어 줄 때도 적선하듯이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는 없는 자의 앞에 무릎을 꿇어 발을 씻기는 마음으로 나누어 주어야 하고 진리의 빛을 받은 사람은 무지한 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섬겨서 그들도 온전한 지식의 빛을 누리며 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거제로 올려 드리고 내려온 다음에는 이 모든 것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웃과 사랑하는 지체들이 함께 유익을 누리며 아버지 앞에 즐거워하는 공동체의 삶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구속의 은혜를 주시고 모든 좋은 것을 주셔서 누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 올려진 거제의 제물로 모든 사람들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고 섬기고 나누며 베푸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D. 희생제물과 함께 드림
마지막으로 감사의 제물은 희생제물과 함께 드려졌습니다. 레위기 3장에 의하면 흠 없는 수소나 암소, 숫양이나 암양, 염소 등을 희생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 의하면 짐승들이 죽어간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가리키는 예표였습니다. 모든 짐승들이 피 흘림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거룩한 주님의 임재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찢어진 휘장을 지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약의 생활의 거룩한 예표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를 누리고 말씀들을 기쁘게 받을 때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드리는 작은 섬김과 경배의 찬송과 기도까지도 주님께 올려질 때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중보의 능력에 덧입은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휘장처럼 찢어져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에베소서 2장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IV.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몸을 찢고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확신야 합니다. 하나님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믿음으로 살고 신앙으로 살아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아름다운 화목의 제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려 사는 것이 감사절에 올려야 할 최고의 제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