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심에 감사하라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시 92:1-3)
녹취자: 김인철
I. 본문해설
92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표제에 보면 안식일에 바치는 찬송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읽은 이 성경 본문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권고로 가득차 있습니다. 최선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II. 최선의 찬양으로 감사함
오늘 1절에 보면 우리가 어떤 악기인지 잘 알지 못하는 십현금, 비파, 수금 이러한 여러 악기들이 등장합니다. 각종 악기들을 사용했는데 이 악기들은 각각 음의 높이는 같을지라도 같은 음의 높이를 내도 음의 색깔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여러 악기들이 각각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가락들이 서로 다른 것은 하나님 질서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연세계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도 일반은혜인데 이것도 역시 성령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때에 절기를 베푸시고 그 절기를 따라 과일이 혹은 곡식들이 열매를 맺고 이것들은 인간의 행복에 도움을 주고 어찌 우리의 양식과 우리의 필요한 것 뿐이겠습니까? 성장하고 자라난 그 모든 자체가 아주 신비한 질서에 의해서 이루어 졌고 이 질서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의 질서들이 서로 겹치면서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물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음악적으로 그리고 회화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그림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심려막직한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것들이 하도 여러가닥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질서의 조합이기 때문에 여러개의 악기로 다양한 소리로 함께 어우러지게 하여 울려 퍼지게 할때 하나님의 질서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이 성도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가락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런 자연의 질서 뿐이겠습니까? 한해동안 살아 오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도 수많은 갈등과 시련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질서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셔서 순종하게 하셨고 어그러진 질서를 다시 잡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깨닫는 마음도 주시고 회개하는 심령도 주셔서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하여 하나님 찬송하고 감사하게 하셨으니 이 가락들이 또한 보태어 진다면 더 많은 악기들이 필요하고 더 다양한 색깔의 노래들이 함께 어우려져 울려 퍼진들 하나님의 그 질서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자기의 즐거움이 아닌 음악의 가락 자체에 심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이 세계와 자연 그리고 언약백성들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그 크고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 자비, 긍휼 이런 것들을 찬송하고자 하는 경건한 욕구에서 우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시편에서는 찬양에 아주 공을 드렸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염려했던바와 같이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가락에 빠져들고 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 찬양의 목적인것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즐길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찬양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한 것이고 다시말하면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한 찬양이 아니라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신 자기에게 감사하게 만들어 주신 이미 하나님이 자신에게 알게 하신 가락에 대한 고백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악을 주신 목적이기도 하고 또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음악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찬송하는 것은 흐려진 믿음을 선명하게 만들고 식어졌던 사랑을 다시 솟아 오르게 만들며 잊었던 진리들을 다시 생각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가락이 우리의 마음에 온전히 울려 퍼질때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이 또한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기 좋아 하는 것입니다. 육욕적인 가락에 빠져 불경건하게 심취하는 것이 아닌, 자기 즐거움이 아니라 경건한 욕구를 따라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게 될때 우리의 마음은 한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시인이 이렇게 최선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각종 악기들을 사용하고 그 가락들과 신적인 질서의 아름다움으로 경건하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감사때문이었습니다.
III. 감사의 이유
그러면 도대체 무슨 감사의 이유가 있었길래 이렇게 세밀한 찬양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욕구가 생겨 나게 된 것일까요? 시인은 3절에서 두가지를 말하는데 첫째는 아침에 발견하는 주님의 인자하심이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그런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 자신의 사랑의 성품 때문에 특별히 당신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입니다. 이것을 시인이 아침에 경험했습니다. 저녁떄는 깊은 시름과 염려, 근심 혹은 질병속에 잠들어도 아침에 찬란한 햇살과 함께 눈을 뜰때에는 간밤에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갈등과 고민이 사리지고 새날을 주신것처럼 새마음을 주시곤 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인들이 많이 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며 살건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태양이 떠 오르게 하고 만물을 두루 비추어 생동하게 하시며 또 어제 심어 놓은 식물들을 자라게 하시고 또 그 모든 자연환경들을 철따라 규칙따라 질서롭게 보전하심으로서 우리들이 그 자연에 기대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나도 내가 싫고 나를 이 세상에 두기 싫은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해 주셔서 아침에 다시 새롭게 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에 덧입어 사는 것이 언약백성의 삶이었기 때문에 이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의 이유를 찿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힘입어 매일매일 살고 기도하고 움직이면서도 사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실하심으로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데도 그것이 하나님께 빚지고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그 밤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베푸시니 즉 밤마다 주님이 베푸신 성실하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마음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이 성실은 당신 자신의 성품을 따라서 변함없이 올곧게 한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실하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아무리 열심히 있고 열렬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오늘은 이쪽 방향으로 다음은 저쪽 방향으로 오늘은 이렇게 다음은 또 다른 가치를 따라서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성실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열렬히 사는 사람들도 날마다 배신하면서 열렬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실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마치 끊임없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가 흘러 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계곡의 물은 위로부터 아래로 흘러 마른땅을 적시며 온 산의 생명을 유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심을 온 사람들에게 두루 비추어 그래서 그 선하심의 덕을 입게 만드십니다. 악을 행하며 불순종을 행하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괴로운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게 하시고 그래서 그 길이 안전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다시 하나님께 올바르고 자신에게도 진정으로 행복을 가져다 주는 선한길로 돌이키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변덕스러운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처럼 수시로 자기를 향한 태도를 바꾸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태도를 바꾸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효과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날마다 성실하게 당신 자신이 가지고 계신 성품을 두루 비추어 나타내심으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가까이 할때 주님도 가까이 계시고 우리가 주님을 멀리 떠날 때 주님도 우리를 버리신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심으로서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성실하신 당신을 따라 살도록 언제나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런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떠났으나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일년동안 항상 우리가 주님의 기대에 차게 주님의 마음에 좋은 것만 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붙들어 당신을 의지하며 살게 하셨고 당신께 나아 오는 우리들을 한번도 박대하시거나 혹은 우리를 멸시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용납하심으로 당신의 품이 수 많은 죄인들이 깃들여 쉼을 누렸던 임마누엘의 품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IV. 결 론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한해동안 베풀어 주신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가치 없는 나같은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생각하시고 변함없이 아버지로서 우리를 돌보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성실하신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성실하심과 우리의 성실하지 않음이 대조를 이루어 반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베푸신 은혜를 따라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 주님이 베푸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이 신앙의 길을 걸어 가는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