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하고 좋은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좋은 환경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십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믿음의 사람 ‘요셉’입니다.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함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많은 위기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며 살았고, 하나님은 이러한 그의 삶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나쁜 일들이 일어났으나 하나님은 그 나쁜 일들을 좋은 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는 그에게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II. 하나님을 믿음
A. 하나님의 선하심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제일 먼저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시련과 그리고 배반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신뢰했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신을 당하고 고통의 구렁텅이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주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곱씹으며 인생을 낭비하는 대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따라 살기를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불편한 환경, 내 맘 대로 되지 않는 삶의 상황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재어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으며 사는 사람들인지를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어서 우리가 그렇지 않은 사람임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불신앙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을 향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의 섭리
그러면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였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선하심, 곧 무엇을 신뢰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드러난 뜻이 있고,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펼쳐놓고 있는 성경은 드러난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두 드러나게 해주셨으니 이제 그것을 보고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뜻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공간이 바뀌면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은 조금씩, 조금씩 드러납니다. 마치 두루마리에 편지가 쓰여 있으나 펼쳐진 것만큼만 보이고 마지막에 모두 펼쳐졌을 때 편지 전체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해와 달과 열한별이 절하는 하나님의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6-7) 이 꿈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요셉만 느꼈을 뿐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인치듯이 다시 한 번 꾸게 하셔서 요셉의 아버지의 마음에 새겨지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 37:9) 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나이가 어린 요셉은 이 꿈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더욱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이 이 꿈을 실현하실 지는 더욱 몰랐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명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매우 높일 것이고, 그 높아진 자신 앞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들이 모두 절하게 될 정도로 자기를 높이실 것이라는 것, 그것만은 어린 마음에도 확실히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형들에 의해 팔려 애굽의 노예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계시적인 비전과는 전혀 다른 펼침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형들에 의해 팔려가 노예가 되고, 노예가 되어 주인의 집에서 그는 살았습니다. 아마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곳에서 요셉은 이중으로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각별히 받았던 요셉은 형들에게 입혀주지 않던 채색옷까지 입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애굽의 노예로 내동댕이치듯이 버려졌습니다.
(예화)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데리고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여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기 원숭이 그저 새끼 강아지만한 작은 원숭이였습니다. 쓰러진 엄마를 붙들고 일어나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울부짖고 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 원숭이는 죽음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고, 아마 엄마가 일부러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털이 하얀 이 원숭이 새끼는 그 엄마를 흔들다가 온 몸이 엄마의 피로 불게 물들기까지 엄마를 부르며 애타게 그 옆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마음에서 울컥하는 눈물이 솟았습니다. 그런 미물조차도 그렇게 엄마 하나를 의지하고 그렇게 살다가 엄마가 죽었을 때 그렇게 슬프게 울고, 그 시체 곁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보다 뛰어난 지성을 가진 인간은 그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떼어놓고 버림을 받았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평면적으로 읽는 성경에서의 느낌보다는 훨씬 절절하게 그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죄를 짓겠느냐고 보디발의 아내가 잡는 겉옷을 뿌리치며 튀어나가 신앙의 정절을 지킨 댓가는 죄수들이 갇힌 감옥에 수감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서 모든 죄수들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역경 속을 지나면서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장남의 이름을 지었을 때 그는 애굽에서의 자신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를 그 마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창세기 41장 51절에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창 41:51) 즉, 애굽에서의 그 긴 세월과 그리고 형들로부터 버림받은 모든 지나온 삶들은 찬송하고 싶은 제목이 아니라 망각하고 싶은 기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애굽에서의 그의 고난이 얼마나 힘에 넘치는 시련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뜻을 이루실 줄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사노라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좋은 때나 나쁜 때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고 보면 그때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이루어주시지 않았던 것들이 후에는 찬송의 제목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는 그렇게 가슴 아프도록 힘들었던 시간들이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 시련이 있지 아니하였더라면 도달할 수 없는 현재의 복된 상태를 도달한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어떤 삶의 상황에서도 깊이 신뢰하고 그 분을 믿으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하나님의 그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성취할 것을 깊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부모의 집에서 내동댕이쳐지듯이 이렇게 먼 남의 나라 땅에 노예로 팔려왔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자기와 함께 하셔서 당신이 자기에게 보여주신 그 뜻을 성취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Ⅲ. 바꾸시는 하나님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일어난 많은 나쁜 일들을 좋은 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평탄한 길을 걸어 살아간 모든 사람에게 없는 큰 자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9장에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일어난 많은 나쁜 일은 그때에는 나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살았더니 그 나쁜 일들은 좋은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미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경솔하게 자만한 마음으로 자신을 자랑한 잘못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노예로 팔려갈 정도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향해 요셉은 선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 일을 하자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요청했더라면 요셉은 지혜로운 종으로, 충성된 하인으로 마나님의 분부를 받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실했던 요셉에게 보인 보디발의 아내의 반응은 배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한때 연정을 품었던 그 남자에게 모든 누명을 뒤집어 띄우고 증오에 찬 고발로 그를 감옥에 던져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디에서도 그가 시험에 들었다거나 혹은 불평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전능하시고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계시적인 비전이 이루어질 날을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해석해 주어 황제 앞에 반역자에서 복직하게 되게 해준 그 사람은 요셉의 공로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번민하기까지 그의 마음에는 요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요셉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고 요셉이 용모를 단정히 하고 바로 앞에 나타날 때에 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창 41:46) 그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해결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예전까지는 요셉이 바로 앞에 총리가 될 때 그의 나이가 30세였고 그리고 그의 나이는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하던 때와 같았다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애굽 지역에서 요셉 시대에 많은 발굴물들이 출토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문서를 보니까 요셉 당시 남자 나이 30세는 공직을 담당할 수 있는 법적 최소 연령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규칙을 따라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기 위해 정해 놓으시고, 그리고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 일들 하나하나를 인과 관계로 이으셔서 결국 마지막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에게 모든 나쁜 일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라는 영광스러운 직책으로 데려가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였던 것입니다. 요셉도 해와 달과 열한별이 절하는 그 꿈이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애굽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나라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해를 초월해서 하나님은 자로 잰 듯이 그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요셉과 요셉의 가족은 물론 야곱의 가족과 모든 만민까지 구원하는 역할을 요셉에게 주셨습니다. 구원사에 있어서 요셉의 위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한 가족에 혹은 씨족에 머물렀을 이스라엘 자손들을 지극히 번성하게 하여 한 가족을, 한 민족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이 되게 한 그 전환점에 바로 요셉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에 가장 큰 보험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가장 큰 보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는 긴 시간을 살아왔고, 헤아릴 수 없이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난 많은 나쁜 일들을 좋은 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세상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이 그렇게 악을 바꾸어 선으로 만드신 것들을 기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주셨던 큰 비전을 믿음으로 꼭 붙들지도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감사해야 할 많은 조건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힘들어 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날들은 그래서 우울함과 어두움, 좌절, 절망, 실망, 이런 것들에 삼켜져 버립니다. 이것은 바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바꾸시는지 모든 방법과 과정까지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깊이 신뢰합니다.
(찬양)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믿음으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바꾸시는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원망과 미움, 상처와 눈물 대신 감사와 기쁨, 희망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IV. 적용과 결론
아무리 분에 넘치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어도 믿음이 없이는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한 자루의 흙을 주며 여기에서 쇠를 찾아보라 하였습니다. 그는 그 자루를 확 쏟아 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쇠를 찾기 시작했으나 쇠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손으로 흙을 하나하나 만지며 혹시라도 쇠가 있을까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커다란 말굽자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굽자석을 흙속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니 쇳가루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모두 떼어놓고 다시 한 번 움직이니 또 그만큼의 쇳가루가 붙었습니다. 몇 번 하고 나니 그의 손에는 한웅큼이나 되는 쇠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쇳가루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감사할 조건이라면 말굽자석은 믿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섭리에 대한 신실성에 대한 믿음이 바로 수많은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빠 보이는 그 일을 하나님이 바꾸시면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선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감사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까지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힘든 일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를 깨닫고, 생사 간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이 우리 하나님 밖에 없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모든 일 년 동안의 삶을 여러분들이 아무리 돌아보아도 감사의 조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믿음으로 여러분들의 1년 동안의 낱알과 같은 하루하루 일어난 씨앗과 같은 한 알, 한 알의 순간들을 휘저어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알 때나 모를 때나 그리고 내가 깨달을 때에나 못 깨달을 때나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셔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더라도 우리는 결국 생사 간에 우리가 붙들고 의지해야 할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꽃길만 걸었다면 아마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다시 생겼거나 혹은 그 이상의 분별없는 욕망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꽃길을 걸을 때 자만하던 마음을 가시밭길을 걸으며 주님 앞에 기도하게 하셨고, 평탄한 길을 걸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던 사람들을 때로는 절벽을 오르게 하시면서 이 길이 자신의 힘으로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찬양)
괴로운 날이나 기쁠 때나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섭리를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지나온 모든 길은 감사할 것밖에 없고, 앞으로 걸어갈 모든 길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풍요로운 감사의 계절에 주님이 주신 은혜, 믿음이 없어서 이제 것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은혜를 발견하고 우리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