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기도를 도우신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눅 22:43-44)
예수님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시고 그러나 내 원대로 말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때 여러분 마지못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가 거기서 읽어야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그 잔을 자신에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지만 즉각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지고 당신이 죽어야지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질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가만있을 테니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을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시며 땀이 피방울처럼 떨어지는 쏟아 붓는 그 기도가 있은 후에 내 주여 뜻대로 라고 고백을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깊은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한 가지 원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원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힘쓰고 애써도 열려하게 불붙지 못하는 기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아무리 힘쓰며 애쓰며 기도하려고 하는데 자기에게 심각한 죄가 있다, 그것 기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 전혀 인정받지 않은 삶이다. 혹은 기도의 그 죄목자체가 하나님의 동의 할 수 없는 기도다. 그럴 경우에는 힘쓰고 애써도 열렬히 하나님 앞에 기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셔서 불붙게 하시는 기도는 모두 태만한 사람들의 기도의 자세위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렬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 부르짖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의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고단하게 직장을 마치고 마음이 갈급해서 교회 와서 기도하고 가야지 하고 집은 오른쪽으로 가야되는데 왼쪽방향으로 차를 타고 장시간 와서 교회 와서 엎드렸습니다. 여러 시간 엎드렸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고 응답은커녕 뭔가 깊은 무게에 눌려서 기도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쓸쓸하게 발걸음을 옮겨놓는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마음의 비참함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겠다. 라고 하는 각오와 의지를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습관적으로 나오는 새벽기도이고 습관적으로 교회에 들르는 기도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에 빠지는 것은 오래 빠져있는 것은 결국 형식 속에서 기도의 내용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 나와서면 본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나와서 이 귀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굻었는데 기도하지 못하다 가면 얼마나 손해이고 얼마나 비참한가? 그럴 수 없다. 문제가 있다면 여기서 문제가 드러나고 해결되어야 할 것이고 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아야 할 것이고 주님께 깨달아야 될 것이 있다면 여기서 기도하는 가운데 알게 되어야 하리라 힘을 잃어버렸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순종하며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도록 이 시간에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잊지 말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B면
다른 모든 은혜의 생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기도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기도시키시는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 하는 것인가? 기도의 경험을 가져본 모든 사람들은 정말 뜨겁고 간절한 기도는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시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부어서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안 될 때가 있고 뜻밖에도 정말 마음을 찢는 것과 같이 간절한 소원과 간구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던 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생활에 관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일생동안을 이 세상에서 살아오셨지만 30년의 인생은 3년을 위한 것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그 3년의 인생은 바로 잠시 후 지게 될 3일 동안의 십자를 지시고 죽음을 당하시는 그 시간을 위해서 30년 혹은 3년을 준비해 오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실 때에 이미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는 십자가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차리시고 또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사건은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를 위해 버림을 받으시는 사건 이였기 때문에 비록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예수님 이셨지만 그러나 분명히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경함해보신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죽음의 그림자가 앞으로 다가오고 있을 때 두려워서가 아니라 분명히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새로운 경험인 것을 아셨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생명이신 분이 죽음을 맞이하시매 있어 기도로 자기를 준비하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유대 광야에서 홀로 기도로 시작하게 하신 것처럼 또한 예수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러 가지기 직전에 하나님과 대면할 그 순간에도 홀로 기도 하게하셨습니다. 여건상으로 홀로 기도하실 이유가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쩌면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마치시매 있어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와 다름없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홀로 기도하게 하셨을까? 하는 신비한 일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 앞에 홀로 세우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일생을 살아오시다가 이제 마지막 자기를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일생을 살아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맞이하시는 방법 이였던 것입니다.
깊은 기도 속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강점은 홀로 서는 일에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홀로 서나 그는 자기 홀로홀로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 있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사랑 속에서 살고 서로를 섬기게 하시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서로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지는 사랑 속에서 살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누구를 의지하며 살기를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할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깊은 기도 속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간적으로는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사랑받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언제나 누구와도 손잡고 설 수 없는 홀로 서는 관계라고 하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였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맺혀있는 오래된 패역과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오래 살던 끝에 우리의 성품 속에 굳어진 부패하고 더러운 그런 잘못된 요소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정결케 되어 지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이 고치시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홀로 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고치시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황과 환경을 핑계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바라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환경에 의해 버림받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인생을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오늘 공생애에 들어서던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잠시 후 다가올 그 끔찍한 십자가의 고난에 대면하기 전에 그분은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그리스도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대면하시면서 십자가 고난을 맞이하는 장면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한 사람들은 이 세상을 향해 강하고 세상을 향해서 강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였기 때문에 풍성한 기도의 세계 속에서 절대 의존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참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산 사람인지 하는 것은 그가 무릎을 꿇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가 어떠한 인생을 살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의 길을 지나던지 그 사람은 무릎을 꿇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존재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 앞에 홀로 세우시는 혹독한 훈련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그 훈련을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수히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사람들 오늘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이렇게 하나님 한분 앞에서 기도로 생애를 시작하시고 기도로 생애를 마감하시고 심지어는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도 아무도 동참하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기도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인생을 접어시던 예수그리스도의 이 고난 받으시는 모습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기도하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로운 사람들로 버려두시지 않는 다는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외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보다 깊은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홀로 골방에서 만나려고 하는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 결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고 충분하고 열렬한 기도의 영속에 살 때에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거절감을 경험하는 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때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거절 감을 경험하게 되고 시시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기도에 침묵하시므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침묵하시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실 때에 우리는 문득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것 같고 그리고 대답이 없는 하나님 앞에 홀로 무릎을 꿇고 있는 다고 하는 것은 살을 예이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경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기도 속에서 누렸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미숙한 상
태에서 아직 정결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서서 외로워지는 아픔을 경험하는 그 경지를 모두 통과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두운 밤 후에 밝은 새벽이 오고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평화의 밝은 햇살아래 서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홀로서는 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죽어도 변화지 않습니다, 그 성품 그 기질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자기의 그러한 성품이나 변하지 않는 자신 버리지 못한 죄악의 길로 인해서 쓰라린 마음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린다고 할지라고 그것이 그 사람의 패역을 고쳐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질이나 우리의 성질 우리의 잘못된 성품 그리고 굽어진 우리의 자아상 그리고 우리들이 이제껏 우리들이 발을 담그고 살아온 잘못된 죄악 된 생활에 속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흐느끼는 눈물이나 아니면 울부짖는 한두 번의 기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뒤집어지는 회개를 통해서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전환점이 마련되었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것들이 고쳐지기 위해서는 깊은 은혜의 속에 깊이 잠겨야 되요 얼마동안 오래 동안 일주일 한 달 아니 한번 아니 오래도록 잠겨야 되요 그런데 그렇게 깊은 은혜 속에 오래도록 잠겨서 이 패역에 뼈가 죄악의 독소들 그 잘못된 것들이 빠져나가야 되는데 뭐 열렬하게 기도하면은 어느새 냉랭해지고 이제 회개하고 바른길로 들어섰나하면 어느새 맛이 변해버리고 말이지 그런 식의 삶을 사니까 인생을 다 살고 나도 뭔가 자기 인j생이 상당히 종교적 이였는데도 예수 믿어나 안 믿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런 삶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기 자신이 미워서 스스로 자기를 보며 연민에 빠지고 괴로워하지만 그러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에요 신앙의 세계는 감상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는 홀로 주님 앞에 섰습니다. 무릎을 꿇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잠들어 있는 그 외로운 겟세마네동산에서 하나님 한분을 대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처음 경험하시는 일이 아니라 익숙해진 일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계셨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 한분을 대면하는 것이 그분에게는 훨씬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는 비결 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지금 인생의 때는 어떻습니까?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이렇게 위기를 맞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주님의 손 붙들려서 인도해 와서 이제껏 까지는 일상적인 기도와 일상적인 은혜생활로 버텨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이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이 모두 다 쏟아져서 드러나고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이 정성껏 깊이깊이 감추어 두었던 그래서 자기가 잠시 잊어버렸던 그런 끔찍한 패역과 그리고 망가진 자아들이 뚜껑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그런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때가 바로 여러분이 홀로 하나님 앞에 시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것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겟세마네동산에서 다가오는 십자가를 홀로 준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그런 겟세마네동산과 같은 곳으로 불러내어서 여러분들이 의지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소망을 끊게 하시고 하나님 한분 앞에서 여러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 홀로선 예수그리스도께서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선 것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분의 기도의 자세는 어떤 것 이였는가? 힘쓰고 애쓴 기도였다고 오늘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가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정말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 본 사람들 열렬한 기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고 단순하지만 경험하지 못하고 개념 속에 있는 그러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논쟁은 항상 우리들을 골치 아프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천사가 예수님의 기도를 도와주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먼저 영적으로 십자가를 미리 경험하시고 승리하신 것에 대한 그 영광은 예수님이 받으셔야 합니까?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던 천사가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천사를 보내주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까? 모두 다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동산에 오르셔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고 당신이 무엇을 위해 부름 받으셨는지를 의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그 끔직한 십자가의 고난 생명이신 그분이 죽음에 복종해야 하는 전에도 일어난 일이 없고 앞으로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그런 일들을 단 한번 경험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이일을 위하여 왔으니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마음으로 자기를 모두 쏟아 붓는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로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에게 있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였을 뿐만 아니라 정신을 모으는 기도였을 뿐만 아니라 육체에 강력한 힘에 부하가 걸리는 그러한 기도였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은혜를 부으실 때 우리의 그 내면의 세계가 하나로 모두 응집되고 응집된 그것이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한기도의 제목을 향해서 울컥울컥 쏟아 부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물같이 쏟는 기도라고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런 기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는 언제나 육체의 힘을 소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도가 얼마나 커다란 육체의 노동인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힘쓰며 애쓰며 기도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힘쓰고 애써 두 번이나 반복되는 말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쏟아 부으며 기도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기를 쏟아 붓는 기도를 하려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그리스도를 도우셨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그야말로 땀이 피방울처럼 떨어지는 가운데 자신이 이 세상에 잡히시기 전까지 마지막 공생애를 마감하시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힘써서 애써서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힘쓰고 애써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잡하게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인가 내가 기도할것인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모본을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제목 하나하나가 이루어져도 좋고 안 이루어지면 그만이고 하는 이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우리는 결코 힘쓰고 애써서 기도할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 내주의 뜻대로 행하 시옵소서 라는 찬송이 자기의 육체의 모든 힘을 쏟아 붓고 그리고 진짜 땀과 피를 쏟으며 기도한 사람들이 그 찬송을 부르는 의미의 고백과 기도하지 않고 내주의 뜻대로 찬송 부르는 그 사람의 그 고백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은 아무렇게 돼도 좋다는 뜻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부르는 그 찬송은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믿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러나 최종적인 결정에 있어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라고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태만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미루는 것과 그리고 또 분투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살면서 최종적인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 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