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4)
녹취자: 남궁지선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때 교회의 상황이 참 안 좋았습니다.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우선 세속주의가 들어왔습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였고 국제적인 마켓이 설 정도로 그리스 시대부터 이미 아주 유명한 무역항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던 때에 생생한 복음에 대한 감동은 사라지고 세속주의가 들어왔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이 자꾸 찢어졌다는 것인데 교리 문제보다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주 분열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도덕적인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매우 화나고 한편으로는 매우 걱정하는 가운데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개인적인 문제마저 있었습니다. 바울이 사도냐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사도바울의 메시지 전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움직임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사도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너희를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너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너희 때문에’ 혹은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일어난 많은 좋은 일들을 생각하면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말은 쉬워 보이지만 여러분 중의 누군가가 여러분을 매우 섭섭하게 하고 화나게 했는데 그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는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보통의 평정심이 아니면 힘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감사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당장 회초리를 들어야 마땅한 상황이었는데 그는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 이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이 고린도 교회 교인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습니다. 그 내용들이 뒤에 나오는데 지식과 많은 은사를 주신 것,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해주신 것 등에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고 해서 감사를 많이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는 결국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태도입니다. 그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사랑과 아주 유사해서 해석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제가 고린도전서 13장을 공부하면서 크게 깨달았던 것 중 하나가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였습니다. 나는 그냥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은 선한 것을 찾는 거구나, 선한 것을 추구하는 거구나, 나쁜 생각을 안 하는 거구나’ 이렇게만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분을 그렇게 힘주어 설교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깊이 연구를 하고 보니까 본문의 의미가 이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는 진실로 사랑하면 사랑받는 대상에 대해서 어떤 것을 해석 할 때에도 나쁜 방향으로 해석을 안 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적으로 한 사람이 어떤 사람에 대해 미련이 남아있지 않으면 그냥 막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 배짱 내키는 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인간하고 관계를 끊어도 난 상관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애착이 남아있으면 자꾸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난 너 싫어. 물론 네가 착하지만.” 착하지만이라는 그 마지막 구절을 붙들고 관계의 희망을 가져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나쁜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건 하나님 사랑에 완벽하게 적용이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나쁜 일일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실제로 그에게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병이 나고 사고가 나고 사업이 어려워지고 막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나쁘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나쁘다는 것은 절대적인 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아, 이건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새로운 은혜를 부어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나쁜 방향으로 해석을 안 합니다. 감사는 바로 그런 사랑의 성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하면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시지만, 또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여건에서도 당신을 의지하도록 훈련시키시지만, 사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보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살면 사실은 기도하지 않은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그런 깊은 사랑의 교통 속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의 증거들에 대한 간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감사도 다른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에 의해서 사랑이 자가발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희가 형제 사랑하기를 그치지 말며’라고 말합니다. 마치 우리 자신이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주체 삼아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가 많이 감사하고 나면 그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결국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고 막 힘들게 느껴지고 그럴 때 마다 조용히 그 힘든 것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훈련을 하는 것이 더 먼저입니다. 내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 가?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하나씩 하나씩 헤아려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할 게 많은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되면 우리 속에 있는 많은 탐욕을 내려놓게 됩니다. 솔직히 우리가 비정상적인 사랑과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원하는 게 많아서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이지 사실 그것들 대부분은 육신에 속한 것들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내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 제가 설교했지만 남하고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나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서 살고 신앙이 시키는 대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상실감을 느끼거나 미래에 대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주 단순하게 당신에게 순종하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미래를 그 사람이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갚아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십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8년 전의 일입니다. 방배동에서 여기 평촌으로 이사를 왔는데, 사실은 2002년 4월 30일에 이사를 왔는데 일 년 전에 오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지어야 되는데, 원래 있던 공장을 헐어버리고 여기에 교회를 지을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궁리를 하고 헌금을 해도 그 돈이 생기지 않는 겁니다. 대출을 받을 데도 없고 금리를 25%를 준다고 해도 주는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1년이 늦어졌습니다. (교회가 이사를 갈 예정에 있으니 성도들도 미리 이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나니 그래도 명색이 강남 서초구에 살던 사람들인데 교회가 이리로 이사한다고 하니까 아무생각 없이 평촌으로 이사 와서 집을 산겁니다. 그때 여기 집값이 얼마나 쌌는지 방배동에서 방 두 개짜리 전세를 빼면 여기 와서 24평 새 아파트를 살 수 있었습니다. 대신 그때의 우리 생각에는 여기는 동네로 쳐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전의 교회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있었습니다. 거기는 집은 후져도 부자 동네에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여기 평촌이 눈에나 차겠습니까? 게다가 그때 여기는 허허벌판이고 다 공장천지였고, 길 건너편에는 대림아파트가 유일한 아파트였습니다. 정말 황량한 벌판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여기도 이사한다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온 겁니다. 약 50 가정이 왔습니다. 그래서 셔틀버스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교역자를 보내서 새벽기도를 인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교회 가까이 살면서 새벽기도를 나갈 마음으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6000만원 정도면 24평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약 5억 쯤 되니 다들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제 은행 대출 광고가 왔는데 33평은 월 9천만원, 24평은 5억 천만원 쯤 떴습니다. (그 모든 것을 미리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좋은 결과를 주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긴 시각도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면서 단순하게 순종하며 사는 삶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놀랍게 길을 열어주십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진 가장 커다란 결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없고, 두 번째는 거기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일이 하찮기 때문이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여기가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환경의 변화를 꾀합니다. 그런데 그 만족이 어디까지 가겠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니까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렇게 일을 하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얼마나 길게 일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는 저도 공무원이었지만 선보러 가면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무원이라고 하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이 공무원이라고 하면 최고의 혼처라고 합니다. 왜 입니까? 오래 다닐 수 있으까 그렇다고 합니다. 다른 직장은 다녀봐야 45세만 되면 압박을 받고 50세만 되면 다 나가야 하는데 공무원은 대략 61세, 교육공무원인 교수들은 65세까지 일을 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좋은 것입니다. 매일매일 자기가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며 일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감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좋은 것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지금은 이런 상황이지만 옛날에 얼마나 큰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바꾸자 다시 교회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감사하세요. 저는 엊그제도 청년부의 한 순을 심방했는데, 순의 30%가 암환자입니다. 투병을 하고 있거나 이제 시작이 되었거나 아니면 완치 중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게다가 자기는 비주얼 자체에 건강이 묻어났었는데 어느 날 암에 덜컥 걸리고 나니까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제까지 붙들고 살았던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투병을 하면서 속초에 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 며칠 전에 강원대 일대에 불이나면서 속초에 있는 자기 아파트 앞에까지 불길이 번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사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끌려가서 앞마당을 쓸며 사람들에게 노예취급을 당했을 때 자기의 앞날을 위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가는 길을 몰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섭리를 믿는 신앙이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를 섬겼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확실한 원리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충성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힘이 감사에서 나오다는 사실입니다. 목숨을 버리기까지 살았던 사람도 한번 마음이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에게 주신 많은 재능과 은사와 같은 것들은 애국심을 잃어버린 군인의 손에 들려진 무기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말고 주님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경마장에 가면은 경마 할 때에 경주마의 눈 양쪽에 가림막을 치고 옆에 있는 말을 못 보게 만듭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의 가림막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부르심을 기억하며 계속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들을 위해서 가끔 기도합니다. 기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사람의 이름 석 자와 얼굴을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그는 정말 남이 알아줄 때나 안 알아줄 때나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애썼던 사람이었습니다. 나 같이 사랑이 없는 사람도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렇게 함께 주님을 섬겼던 그들을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보실 때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보면서 일생동안 심지어 그의 후손에게도 갚아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