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새벽예배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5-27)
녹취자: 윤은정
성령께서 강림하신 다음에 즉각적으로 제자들은 구약을 해석하기 시작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요엘을 해석한 것과 같이 이번에는 구약 중에서 시편을 해석해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이 이렇게 지금 우리가 들고 다니는 것처럼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휴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부 다 머릿속에서 암기된 상태에서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전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전해주도록 훈련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신학공부를 시키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을 보아라.” 그러면서 신앙에 관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지에 대해서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구약을 해석해 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임하시니까 이렇게 구약을 놀랍게 해석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또 너무 비악해서 생각한 나머지 ‘오늘날에는 체계적으로 학문을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신학을 공부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내고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지금도 성령을 받으면은 모든 것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어저께도 어느 신학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내준 숙제라고 그러고 우리교회를 탐방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묻는 가운데 “신학목회를 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두 번째는 공부를 하십시오. 공부를 짧게는 3년. 최소한은 3년, 아니면은 바람직하기는 7년 정도 건강을 헤칠 정도로 공부를 하다가 나오지 않으면 절대로 목회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비져지냐면은 이 사람들은 교회의 초석을 놓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이.... 그래서 말하자면은 세밀한 것은 후에 점점 생길 요량이었고 이분들을 통해서 ‘기독교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기초를 놓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가르침이 구약성경을 잘못 해석한 토대위에 놓인 종교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약의 해석이라기 보다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희망에 그리는 구약의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그 위에 유대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쌓아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도 바로 그런 유대교 신앙의 토대위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셨지만은 그러나 그 차이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매우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나니까 이제 구약이 참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가 유대교를 통해서 배운 구약의 의미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초들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초위에 바울과 같이 탁월한 학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제 로마서를 비롯해서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함으로서 기독교신앙이 참으로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그 터 위에서 새로운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그것을 해석하고 발전시켜 온 역사였습니다. 끊임없이 ‘성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기준이 되지만, 그리고 이후에 쌓아올린 모든 성경의 대한 신학적인 해석들은 바로 성경의 그 자체가 ‘기독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에 끊임없는 비판을 받으면서 점검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2천년동안 경건하게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서술과 설교와 그리고 성경해석의 노력을 통해서 이제 기독교의 진리가 점점 더 아주 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구체화 돼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모두 다 집어치워버리고 ‘내가 오늘 직접 성경을 대하고 이것으로서 나는 나 나름대로의 기독교를 새롭게 구축한다.’ 그것은 곤란하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런 학문적인 준비도 성령의 은혜와 함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성경 그 자체와, 그 다음에 신학과, 그다음에 성령의 은혜와 이 세가지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오늘 성경을 볼 때 오늘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합한 해석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이것은 전문적으로 성경을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도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그 자체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양식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물론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리를 잘 이해하고 나면은 성경을 읽을 때 깨닫는 바가 훨씬 더 많습니다. 성경이 계시이지만 이 계시를 볼 때에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깨닫게 하십니다. 깨닫게 하는데 이 사람에게 올바른 교리가 수립되어 있으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에 깨닫는 양도 많고, 그 다음에 깨닫는 내용들이 올바르게 깨닫게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자체 뿐 아니라 성경을 잘 해설한 설교를 듣고, 또 성경 속에서 쭉 풀어내온 교리를 듣고 배우고, 이렇게 함으로써 성경자체를 통해서 받는 유익이 증폭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믿는 사람은 경건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늘 신자인 동시에 학생의 자세를 끊임없이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교회를 돌아보면서 성도들이 이 예배당에서 간절히 기도하거나 구역식구들이 모여서 교회 구석구석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아름답고, 또 하나 아름다운 것은 도서관에 앉아서 책 읽는 것입니다. 꺼내서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거기에서 은혜를 받는 그것이 기도생활과 함께 병행될 때에 그때에 성경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자체도 읽고 성경을 해석한 책들도 읽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실제의 삶에서 순종하고 이렇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삶이 아주 힘 있는 삶이 됩니다. 저 자신의 경험을 보더라도 영혼의 깊은 어려움 속에 있을 때에 저를 건져준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 깊이 몸부림 치면서 기도하다보면은 벗어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어서 일어나는데 같은 종류의 분량으로 거룩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신앙적으로 질적으로 충격을 받고 거기에서 벗어나서 일어설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삶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 이야기를 하냐면은 오늘 여기에서도 보면은 이제 베드로가 설교를 하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잖아요? 시편을 인용합니다. 시편이 예전에는 자기가 이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해석을 했는데, 이제 성령이 강림하시고 나니까 그 다음에 구약성경 속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한 성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은 성경이 오신 목적중에 아주 매우 중요한 것 하나입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오신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와서 사람들이 병이 낳게 해주고, 만사형통하게 해주고, 은혜 받아가지고 기분 좋게 해 줄려고 성령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를 증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러면은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면은 그 성령님이 불신자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증거하시겠네요? 물론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시는데 ‘성령님은 혼자 안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셔서 그들과 함께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을 죽 보면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충만함을 죽 받았을 때에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왜? 성령님이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의해서 예수님에 관해 충족하게 증거를 받은 사람들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은 성령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가장 아름다운 사역은 위로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를, 성령님은 위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위로를 주신 방식 자체가 당신 홀로 직접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거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속으로 말미암는 평강을 누리게끔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예전에는 평범하게 스쳤던 성경구절 속에서 다윗이 이처럼 풍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을 해내면서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렇게 바라보고 즐거워했던 분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셨다’ 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활하신 그 이유가 바로 썩지 않음을 당케 하시고 음부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그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연히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죽으신 것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었지만은 그것도 성경에 예고되어 있었고 그리고 죽으신 후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성경에 이미 예고된 것이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셨다.‘ 그게 성경에 풍부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했던 구절들이 성령이 임하시니까 모두 이해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간단합니다. 성령님이 신약과 구약이 약 4-50명의 저자들에 의해서, 약 1500년동안 쓰여진 책이지만, 그러나 그들 각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책 전체가 하나님의 통일된 책이 되도록 만드신 원 저자는 성령님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저작이기 때문에 시대가 다르고 쓰는 사람이 각각 달랐어도 통일성이 있는 저작이 된 것입니다. 그 저자가 오셔서 이제 사도들의 마음에 감화를 주시니까 이제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성경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약을 해석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기록하는 성령의 성경을 쓰시게 하는 감화는 사도들에게 국한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도들이 그 성령의 놀라운 감동을 받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죽으시고 살아난 이것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오래전에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예비된 계획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