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새벽예배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 45-46)
녹취자: 김용재
계속해서 그렇게 회심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가 소유와 재산을 다 팔아서 필요를 따라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공산주의의 시원이 기독교다 라고 보고 공산주의의 기독교적인 원형의 모습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실은 좀 다릅니다. 관점자체가 여기 보면 재산과 소유를 팔았다고 했는데 그 판 것은 자기의 것을 판 것이고 나누어 준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장난 같지만 이 은혜 받은 기독교의 모습은 자기소유를 팔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에서 평등을 이룬 것 이지만 공산주의의 관점은 자기의 희생 그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는 사상보다는 관점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희생해서 자신들이 유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안 되고 그리고 사실은 동반해서 서로 가난해지는 그런 상황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라고 하는 자체는 이 생산 형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함께 생산을 해서 그래서 함께 갚는 그런 주의를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줄 수 있었던 그 근원자체가 무엇이냐면 인간의 자기를 위하고자 하는데서 오는 욕심을 버린 데서 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을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그것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이 세상에 한계를 깨닫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 법한 그런 특징이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기를 위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을 내버려 둔 채 생산형태를 바꾸든 경제구조를 바꾸든 뭘 하든지 간에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치열한 경쟁과 인간의 수많은 갈등 속에서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서로 빼앗고 소유하려고 하는 인간의 어떤 고통과 불행의 궁극적인 원인과 모습들을 결국은 종식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수 가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그리고 함께 있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오는데 첫째는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유는 팔아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함께 생활하기를 즐거워했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초대공동체의 뚜렷한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은혜를 받은 공동체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알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모아지는 것도 힘이 드는데 하물며 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그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붙어있는 한 마음이 되어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고 생활하는 그것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한 마음이 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정말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것이거니와 그 위에 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공동체가 함께 같은 기도의 제목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놀라운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위해서 교회가 힘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바로 그렇게 한 마음을 품고 그리고 모이기를 힘쓴 그런 교회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함께 있을 때나 흩어져 있을 때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의 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교회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을 함께 모이게 하시고 함께 모인 그들에게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아무리 우리 인터넷 같은 것들이 발달해서 집에서 모두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써 함께 모여야 할 교회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약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런 것들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교회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찬양하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참으로 교회다운 모습을 유지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나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을 뭘 의미하냐면 이 시대에 문맥에서 보면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형제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함께 떡을 떼고 함께 성찬을 하고 함께 육신의 유익을 위해서 밥을 먹고 하는 이것이 아주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요 한 식구라는 것들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 지방에서 문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 솥에다 밥을 먹는 퍼포먼스들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얼마 전에 전주에서 놋으로 두들겨서 그릇을 만들어서 삼천 명의 비빔밥을 한꺼번에 했다고 합니다. 비빔밥 할 때 참기름을 치지 않습니까. 참기름을 두 박스를 넣었다고 합니다. 삼천 명을 비빔밥을 할 때 사실 그것이 장난이겠습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삼천 명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만들어 주는 업체가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또 어느 한 마을에서는 일만 명이 밥을 해먹을 수 있게 솥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저도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것이 이천 명 정도 먹을 수 있는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그런 솥이나 10주년 기념으로 말입니다. 한 번 그렇게 퍼포먼스를 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한곳에다 밥을 비비던지 한 솥에다가 밥을 하던지 어떻게 하던지 간에 그렇게 해서 온 교회가 함께 나누면 참 인상 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걱정이 있겠습니다. 한 번 쓰고 그 그릇을 어디다 보관을 하냐는 것입니다. 어쨌든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리고 실제로 식사를 나눔으로써 우리가 한 가족이자 식구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봉사위원회 보고서 딴 데 좀 아껴 쓰더라도 점심은 맛있게 하라고 합니다. 교인들이 주일날 와서 한 끼 먹는데 생선이라도 튀겨놓고 해서 예배 끝나고 나서 줄을 서면 점심식사에 기대감이 가게 하지 너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한 가족이구나 한 식구구나 그리고 우리가 지금은 이 땅에서 이렇게 먹지만 여기에 함께 있는 모든 영적인 가족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에 간 후에는 우리가 이렇게 교제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가슴에 새기면서 식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데 그 때에 느꼈던 이 모든 주님의 제자들의 마음이 뭐냐면 기쁨으로 가득한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사실 신령한 기쁨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느끼는 놀라운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이 교회 안에서 모든 지체들의 관계 속에 베어 들어가서 그 기쁨이 영적인 기쁨일 뿐만 아니라 함께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는 그런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온전히 기쁨으로 스며들어서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충만한 것과 육적으로 이런 은혜의 기쁨이 충만해서 평온한 상태가 된 것 이것이 후에 고난과 핍박을 이기면서 신앙을 파수하는데 아주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체들이 함께 모여서 떡을 떼고 교제함으로써 그 핍박의 날에 서로를 권면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하나님 앞에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기쁨으로 인해서 흐트러진 마음이 아니라 순전한 마음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놀라운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 통해서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자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순전한 신자가 되면 교회가 이런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