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30 새벽말씀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 대,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사도행전 6:1-2)
녹취자 : 이민희
5장에서는 아나니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서 교회가 큰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듯 아나니와와 삽비라가 뭐 그렇게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땅을 팔았는데(자기 것 아닙니까) 땅을 팔면 전부 다 바치겠다는 각서를 쓴 것도 아니고 팔아가지고 반만 낸 것이 뭐 그렇게 잘못입니까. 요즘 같았으면 재산을 팔아서 반만 교회에 바쳐도 칭찬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두 사람이 죽임을 당할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의 큰 심판이 나타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하나님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나타냅니다. 여러 가지 교훈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이 두마음의 무서움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있는 그 곳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마음이 한쪽으로 모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사랑이 모아지는 것, 마음이 모아지는 것 그것을 가지고 사랑합니다. 봉사라는 것도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모아져서 섬기는 것, 그것이 봉사입니다. 순결이 무엇입니까.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모아져서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 앞에서 불결하지 않은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나누어진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불결하고 더러운 마음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없고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보듯 그렇게 커다란 어려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해하려고 하는 사단의 끊임없는 도전과 이 시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끊임없이 계속 됩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신앙이 이 6장에서 나타나는데 이게 무엇이냐면 구제하는 일과 관련시켜서 나타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게 되었고 과부 또한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었고 자식들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자식이 있다고 해도 신앙을 가지면서 자식들과 관계가 끊어져서 돌봄이 끊어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서 말하는 과부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계를 교회에서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구제하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들이 있었는데(종족에 따른 구분이라기보다는 사용하는 말에 따른 구분으로 여겨집니다)- 로마시대 때에 헬라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가 통일하였지만 로마어는 식자들의 언어였고 그 이전의 마케도니아 치하에서 제국공용어를 부지런히 공용어를 보급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어 중에서도 히랍어는 식자들의 언어였고 그것보다 단어수가 적고 평이한 언어를 코이네라고 하는데 그 평이한 말로 어디서든 의사소통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성경이 널리 배포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통일된 희랍어를 사용하는 전통이 로마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과부들 중에는 오랫동안 히브리어를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 암튼 그런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공평한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같은 유대인인데 헬라파 사람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왜 헬라어를 쓰는 과부들은 제대로 구제를 안 해주고 히브리어를 쓰는 과부는 왜 그렇게 구제를 많이 해주느냐며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도를 가지고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입니다.(교회에서 수건하나씩만 나눠줘도 빠진 사람들은 섭섭해하 듯). 그 일에 직분자는 사도밖에 없었으므로 사도들이 거기에 개입해서(그렇다고 해서 사도들이 헬라파, 히브리파 과부들을 차별하지는 않았겠지만 깊이 개입해서 진두지휘했을 것입니다) 직접 공궤하였는데(공궤하다는 식탁을 차려놓고 반찬을 가져다놓고 하는 그런 행동을 의미합니다) 자꾸 헬라파 과부들이 빠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교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졌고 사도들이 여기서 반성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 제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도들이 그 일을 직접 개입해서 직접 행하다보니 자기네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행했지만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게 빠지게 되니까 교회에 금이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옳지 않다. 우리들이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야하는데 우리가 나서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반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세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초대교회 운영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몇 명이 모여서 말씀을 배울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서 사도들이 예를 들면 교회 운영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작았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화)세 명이 길을 가는데 한명이 인도자이면 나만 따라오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걸어가다 길을 잘 못 들어도 서로 이해를 하니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천 명이 걸어갈 때 인도자가 인도하다 길을 잘못 들게 되면 뒤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지도자의 능력에 대한 의심 등)이 나오고 사람들의 마음이 막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누가 잘 못했나요. 사도들이 잘 못했나요 과부들이 잘 못했나요 악을 행한 사람은 없지만 서로가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마음이 되지 못하도록 교회는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한마음을 품고 주님을 섬기기 어려운데 교회가 한마음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성도가 한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섬길 때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모든 성도가 한마음이 되어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시에도 온 교인이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교회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교회는 핍박 속에서 한마음이 되고 시련 속에서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이 다 틀리고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틀린데 그런 다양성을 획일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국론을 통일하자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하면 사회가 획일화가 됩니다. 상상력이 차단됩니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서 나라가 발전합니다. 컴퓨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동안은 인터넷을 무선으로 쓸려면 AP라는 것을 썼는데 위성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한국인이 최초로 발명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혁명을 몰고 왔습니다. 이것은 상상력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만약 컴퓨터를 쓰지 못하게 하고 국가가 통제하고 그러면 그런 기술이 계발되겠습니까.
생각이 달라도 한 마음이 될 수는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마음까지 다르진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 좋아하는 정치인은 달라도 애국심까지 다르진 않습니다. 정치적인 성향은 달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르다는 작은 이유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아주 작은 다름 때문에 달라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까지 파괴시켜버리는 것은 사단의 역사이지 성령의 인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보십시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통일을 이루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커다란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톨의 곡식이 아쉬울 때 통일벼가 발명되었고(한 알의 톨이 무척 커서 수확량이 30%가 넘었습니다) 모두 통일벼를 심자 병충해가 한 번에 일어나 모든 벼를 병들게 했습니다. 품종이 같으니까 같이 번져서 다 병들었고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종류의 벼를 다양하게 심는다고 합니다.
통일을 이루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장점입니다. 그 대신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 중에 그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도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말씀과 기도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공궤하는 일을 떼어내서 집사를 세웠고 집사들이 그 일을 합니다. 사도들이 직접 음식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루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사도들이 몰랐다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더거나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구약에서도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와서 보니 모세가 어마어마한 민족을 거느리고 대 역사를 이룬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앉아있고 사람들은 긴 줄을 서서 한사람씩 모세에게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모세에게 없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모세에게 말하길 ‘왜 그렇게 미련하냐. 그렇게 하면 너도 쓰러지고 백성도 망한다. 그러니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작은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당신은 큰일을 해라‘ 그렇게 해서 조직이 세워진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똑같습니다. 사도들이 교회 돌아가는 일을 전체적으로 챙기지만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일은 집사들을 세워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절약되는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 매달리도록 바꿔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져야할 원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