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1일 교직원예배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마 4:24).
예수님 당시에는 이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질병을 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느낌으로 질병을 대했을 것입니다. 그 예로, 우리나라가 의술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암의 경우 치료율이 35%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65%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암에 걸리면 죽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미국 사람들은 암으로 판정이 되면 이제 내가 건강을 잘 챙겨야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만큼 질병은 치료의 능력과 관계가 되죠. 이 당시에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이 매우 약했기 때문에 질병의 무게가 훨씬 크게 다가왔죠. 그래서 구약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장수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이 여러 번 나오고, 또 신명기 같은 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질병이 해하지 못할 것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죠. 더욱이 여기에 나오는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그리고 중풍병에 걸린 자, 이것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서있는 절망적인 상태의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을 예수님이 고쳐주신 것이죠. 예전에도 있었던 질병이고 예수님 당시에도 있는 질병이지만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 않는 그런 질병을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이 그들을 치료해 주셔서 고쳐주신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실제로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귀신이 들려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사람, 간질이 들려서 이웃에게 모두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중풍에 걸려서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고통을 주어야 하는 의존적인 이런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시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들이 바로 그러한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아무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질병에 들린 사람들을 주님이 당신의 큰 신적인 능력으로 고쳐주셨지만, 오늘날은 질병 중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굳이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아도 의술을 사용해서 고칠 수 있는 병들이 많이 생겨났죠. 그러나 영적으로 보자면 사실 이 귀신들린 자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 간질 들린 사람, 중풍병자처럼 이렇게 곤궁한 가운데 있고 자신의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려운 영혼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의 시대가 예수님의 시대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고칠 수 없어도 이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속되어 있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오늘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영혼을 고치시는 분이시죠. 그래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나 혹은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꼬여서, 그래서 나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주저앉고 싶은 상황의 사람들이라고 할 지라도 주님의 이 치유의 능력을 보면서, 바로 그런 능력의 나라가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서 주님이 우리를 고쳐주시기를 믿고 또 기대해야 하는 것이죠. 또 하나는, 이런 질병이 든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주님이 일일이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내면의 동기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이 비천하고 불쌍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을 통하여 나타나신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아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가 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놓임을 받도록 만들어주신 것이죠. 지금은 바로 그렇게 예수님이 이 병자들을 치료해 주시는 긍휼을 보이신 그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에 의해서도 돌보아지지 않고 버려져 있는 이 절망적인 병자들을 고치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인격을 통해서 육신의 비참함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드러내신 것이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참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그 은혜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행하고 해도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론은 우리의 양심은 주님의 긍휼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바라는 마음…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은사를 주시고 또 능력을 주시고 또 나에게 재능도 주시고 또 나에게 물질을 주시고 또 다른 자원을 많이 주셨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주님을 덜 의지하는 것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들을 통해서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은 부르신 거에요. 우리의 양심은 정말 하나님의 긍휼이어야 해요. 정말 우리의 힘으로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결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가 없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주님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이죠. 영혼을 적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 인간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는, 지성을 비추는 찬란한 계시의 빛,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을 알고 거기서 자신이 녹아 내리는 그 자기 꺽임, 그리고 자기 갱신,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죠. 그래서 종이 상전의 손을 바라고 여종이 주인의 손을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고 바라는 그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믿음으로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백했듯이 우리가 가장 약할 때 주님의 강함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많이 약해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들이 비로소 강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