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노년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정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시 92:14-15)
녹취자:이경순
동물은 나이가 많이 들수록 추하게 늙어갑니다. 밀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나 호랑이도 더 이상 이빨로 음식을 씹을 수가 없을 때가 되면 안락사를 시키거나 혹은 총으로 쏴서 그 일생을 끝내게 해줍니다. 그런데 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기품이 있고 그리고 잎이 푸르고 수많은 식물들을 자기아래 품으면서 생태계를 만들어갑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편 92편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송하는 노래로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서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 사람들의 노년이 어떤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부하고 빛이 청청하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당시에는 아마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수명이 짧았을 테니까 아마 늙는 것도 훨씬 더 빨랐을 겁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 초등학교 다닐 때 제가 일곱 살 때 우리할아버지 47세에 제가 보는 앞에서 병이 있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할아버지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47세이면 장가안간 열린 교회 청년들도 꽤 있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나이에 대한 감각은 차이가 있고 지금 만 60세라고해도 어디 가서 노인이란 이야기를 들을 수 없고 본인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그렇게 인간으로 보면 노년처럼 보이는데 나무는 전성기를 맞이해서 아주 아름다운 열매를 결실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은퇴라고해서 하나님 앞에 열매 맺는 삶이 끝났다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분이 앞으로도 하나님 앞에 많은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사역의 열매, 섬김의 열매, 인격의 열매, 신앙의 열매 하나님 사랑의 열매를 맺어서 노년이 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번째는 진액이 풍족하다고 했습니다. 진액은 두말할 필요 없이 수액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혼자서 끌어안을 수 없는 아름드리나무는 세 사람이 맞잡아야 올라갈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봄에 귀를 대고 들어보면 물 올라가는 소리가 부지직 부지직 납니다. 그 큰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물을 빨아들이겠습니까, 그게 진액이 되어서 올라간 물이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소통하면서 그러면서 나무가 점점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해석하자면 육체적으로는 우리의 진액이겠지만 영적으로는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 전도사님들이 오히려 세월이 흘러갈수록 주님을 사랑하고 성령 충만한 영적 생명이 마음에 가득해서 누구든 스치듯 만나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줄 수 있고 오히려 힘을 얻게 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 사람이 사역을 잘 했는지 못했는지는 사역의 성과를 보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사는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 하셨으니 내적인 생명력이 마지막 날까지 넘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빛이 청청 하다 그랬습니다. 이것은 바로 철이 되어서 나무 잎사귀가 가득한 모습으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이 잎사귀는 그렇게 한 여름 가을까지 푸름을 자랑하다가 떨어집니다. 떨어질 때는 가련한 것 같지만 가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온 땅을 뒤덮어 부엽토가 되고 거기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움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빛이 청청 하다고 하는 것은 역시 자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젊어서 자기 원하는 모든 것을 하고 또 중년이 되어서 자기 원하는 자리를 얻고 재물도 손에 넣었지만 노년을 외로움과 비참함 속에서 낙심하며 보낸다면 그것은 빛을 잃은 인생입니다. 두 분은 이제것 하나님 사랑하며 사셨으니 노년에도 이 빛이 청청하여 하나님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하는 그 기쁨과 행복이 얼굴과 모든 몸에서 철철 넘쳐흘러 모든 사람들이 볼 때 일생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역해온 사람들의 마지막이 저렇게 복되구나.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과 그에게 불의가 없으심이 선포되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위기를 만나지 않고 어디가든지 소금이아니라 설탕 같은 사람이 되면서 사는 길은 그저 그때그때마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해야합니다. 그래서 여기 가도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저기 가도 박수를 받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포기해야합니다. 정직한 삶은 포기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이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다가 마지막에 고백하는 것이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러한 인생의 노년이 하나님이 얼마나 정직하신 분이신가 올곧으신 분이신가 의로운 자는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불의한자는 불의한자로 판단하심에 있어서 흔들리시는 법이 없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나오는 이 정직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 도덕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정직의 개념하고 다릅니다. 그렇게 따지면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었나요,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직한 사람이었나요 아니었습니다. 그럼 모세는 정직한 사람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정직한 사람이었나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직의 개념이 도덕적으로 잘못 되지 않았다는 개념을 내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우위에 있는 신학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는 사람입니다. 다윗도 떨어졌습니다. 그랬더니 죄를 짓고 부정직하기까지 하고 자기 죄를 덮으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애꿎은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는 정직한 길을 걸어왔던 사람으로 성경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그 허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께 붙어있으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분이 그렇게 주님께만 붙어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가 나의 바위 되심과 히브리어로 쭈로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한 신학적인 단어로 상징합니다.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바위라고 하고 또 그 바위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 하나님이 우리의 피할 바위요 산성이시라는 모든 표현이 바위와 관련된 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것 우리의 사역하는 가운데 매 순간마다 붙들어 주시고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여러분들의 남은 생애도 주님이 붙들어주시고 지켜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라 이 말을 돌려서 했지만 내가 살아서 이렇게 노년까지 나를 지켜주셨으니 내가 살아서 여호와가 정직하심과 그리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구원이 되심 과 그리고 불의가 일체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리라 내가 남은 생을 다하여 그렇게 선포하며 살리라는 뜻입니다.
야리야리하게 생긴 청년 같은 사람이 와서 면접을 보겠다고 시험을 보고 우리 박숙현 전도사님이 14년 6개월쯤 전에 그리고 권사로서 열심히 남의교회에 봉사하고 열심히 강사로 다니는 분을 김준성 목사님이 목숨 걸고 추천하셔서 모셔오다 시피하고 심지어 감리교 총회에서 목사님들이 그 권사님 절대 합격시키지 말라고 막아서고 했는데도 끌고 와서 서로 이야기하고 사역을 하기로 하고 기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때 내가 딱 50세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흐른 것 입니까? 한결같이 두 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고 성도들을 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조병하 시인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앞에 사람들이 의자를 내어놓고 떠난 것처럼 나도 내 의자를 내어놓고 떠나야합니다. 의자는 영원히 사는 집이 아니라 그저 필요해서 앉아있는 자리이고 언젠가 우리 모두다 떠나게 되는데 두 분을 채용 면접할 때 은퇴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교회에서 은퇴시킨 게 아니라 내가 빨리 은퇴할까봐 나 자신이 겁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15년이라는 세월이 바람같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여러분들이 그 15년을 가장 훌륭하게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열린 교회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과 함께 웃고 웃으며 사역하는 것 말고 다른 인생을 택했을 때 이보다 더 보람 있을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게 두 분의 이야기만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도 됩니다. 내 인생에서 결혼하고 나서 최고로 잘한 것 중 하나가 교수를 그만 둔 것이고 열린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 그것을 나는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두 분이 이제것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면서 살았다는 자존감이 마지막에 관에 누워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고 그렇게 일평생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겼던 사람답게 우아하고 품위 있고 열렬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그렇게 사시시를 바라고 하나님이 여러 방법으로 두 분의 노년도 궁핍하지 않도록 넉넉하게 채워주셔서 품위 있는 삶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