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전체구역장모임
녹취자: 조경훈
[사회자 남]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은혜 받은 구역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잘 전할 수 있을지 한 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회자 여] 목사님. 오늘 구역장님들 함께하고 계시는데요. 사랑하는 구역장님들께 인사 한번 해 주십시오.
[목사님] 우리가 구역장모임을 본당에서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이렇게 몸은 멀어져 있지만 더욱 우리들이 만나기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마음은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오늘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두 만나니까 반갑습니다. 마음속에서 모두 유튜브로 들어와서 구역장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만나게 돼서 반갑고 남은 시간 좋은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사회자 남] 목사님. 오늘 구역장님들이 목사님께 목양에 관한 질문들과 코로나 상황에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잘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들을 해 주셨는데요. 제가 먼저 첫 번째 질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역장이 영적 침체에 빠져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구역원들에게 그것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나누면 힘을 얻어야 할 구역원들이 오히려 더 침체될까 염려가 되었고, 또 침체된 마음을 꾹꾹 누르고 괜찮은 척 은혜를 나누려고 하면 위선 같아서 더 우울해집니다. 은혜로 영적 침체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겠지만 그 과정 중에 있을 때 구역원과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좋을까요?
[목사님] 제가 부교역자로 있을 때 교사가 한 명 있었는데 약사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지독하게 감기에 걸려서 왔습니다. 아니. 약사도 아파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아니 그러면 전도사님은 영적 침체에 안 걸리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어느 정신과 의사이신 분의 아주 진솔한 고백을 들었습니다. 공황장애로 약을 복용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다 그렇게 연약합니다.
우선 구역장님들이 영적 침체에 빠졌다고 해서 너무 심하게 자책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것은 오래 머물러있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자신이 영적 침체에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 구역원들에게 이런 분위기가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이 드실 것입니다. 그 때 마귀는 우리의 귀에다 대고 속삭입니다. 야! 네 주제에 무슨 구역장이야! 빨리 그만 둬! 빨리! 때는 이 때야 빨리 그만 둬! 그럽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합니다. 야! 지금 남 돌볼 여유가 어디 있냐? 너나 우선 좀 추스르고 봐라. 일단 좀 쉬면서 생각하자.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있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자체가 이미 큰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거세게 흘러가는 시내 한복판에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의 경우에도 영적인 침체가 올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 심방을 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저와 똑같은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을 심방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펴놓고 그 사람을 가르치다 보면 그 사람도 눈물이 나고 나도 눈물이 납니다. 그 사람은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몰랐겠지만 저는 압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통해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견디십시오. 버티십시오. 비바람이 부는 날도 있고 맑게 햇빛 나는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앞서 간 거목 같아 보이는 교역자들이 다 그런 밤을 지났습니다. 과정이라고 생각하시고 잘 견디시면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래도 교역자님들이 계시고 팀장님들도 계시지 않습니까? sos를 청하십시오.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진솔하게 구역원들에게 내가 이런 문제로 너무 힘든데 내가 너무 약하니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달라고 하면 오히려 구역원들이 구역장을 의지하던 마음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서 더 열렬하게 기도해 주시고 여러분들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자 여] 목사님. 두 번째 질문은 코로나 블루가 지속되는 시기. 이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두려움이 신자에게도 엄습해 오는데 사랑의 다른 이면인 이 두려움을 대하는 신자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목사님] 두려움의 감정이라는 것은 반드시 나쁜 감정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아마 사랑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불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기 때문에 평생 그 아이가 불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두려움의 감정 다음에 오는 정동이 어떤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두려워하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두려움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계속 두려워하며 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아사밤에서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만 제 인생에 있어서 제일 무서운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과 무서워하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생각 없이 산다면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두려워하며 산다면 자유가 없을 것이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두려운 감정이 올 때 신앙적인 반응은 그 두려움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때가 있지 않습니까? 두려움이 없었던 때가 한 번도 없습니다. 야곱의 경우도 결국은 두려움이 하나님을 찾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도 역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고 난관을 만났을 때 두려움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피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도망치고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우리 염려에 관하여 배울 때 배운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나는 바래. 나는 기도할거야.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일어나라고 해라. 나는 주님과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담대한 믿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주님께 쏟아 놓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남] 목사님. 정말 실제적인 조언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세 번째 질문인데요 온라인 예배가 지속되는 가운데 구역원 중에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주일예배 시간에 다른 교회 유튜브 방송을 통해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겠는데 구역원에게 어떻게 조언을 하고 지도를 하면 좋을지 목사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목사님] 댓글 창에 조호민님이 제 말을 거꾸로 해석해서 올리셨는데요. 생각 없이 사는 것,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그랬는데 그게 아니고 두려워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의 요지는 우리 교회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에 장소적으로 가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니까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자기네 교회를 켰는데 자기 교회 목사님이 나와서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방송설비도 안 좋아서 자꾸 지지지직 하면서 꺼지고 목사님 설교 옆에 인기 있는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가 뜨는데 이렇게 보니까 몇 만 명에서 심지어 몇 십 만 명이 조회한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클릭을 하고 이동을 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코로나 나기 전에 참석했던 인원보다 갑절의 인원이 주일예배에 접속을 한다고 합니다. 또 작은 중형교회는 오히려 접속하는 인원이 평소 나오는 인원보다 절반 정도밖에 접속을 안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양극화 현상이 교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사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만 생겨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으로 이해가 잘 안되던 어렵던 설교가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쏙쏙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이 교회 출석하지만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없는 교회생활을 한다면 불행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실제적인 제안을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일단 어느 교회에 출석하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그 교회의 교인임을 입증하는 것처럼 온라인도 반드시 자기가 소속된 교회에 예배를 드려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그래도 말씀을 더 듣고 싶으면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이 어렵다고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어렵다는 말이 초등학교 1학년이 4학년 문제를 푸는 것 같은 그런 것 같은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증거를 대 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와서 정말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권사님과 집사님들 심지어 장로님들 가운데 첫 번째 예배에 나와서 은혜를 받고 회심하신 분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제가 곰곰이 조사를 해 봤더니 이것이 지식의 수준에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결에 차이입니다.
어떤 교인이 열린 신문에 간증글을 썼는데 이런 내용을 마지막에 썼습니다. 열린교회 오기 전에도 저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열린교회 온 후에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열린교회에 오기 전에는 트로트 교인이었고 열린교회에 와서는 클래식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백퍼센트 동의가 되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클래식을 너무 좋아한다면 둘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그 쪽으로 마음에 결이 생겼다면 트로트가 가슴에 와 닿지를 않고 트로트에 거의 푹 빠진 사람들은 베토벤의 클래식이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것이고 말러의 교향굑 같은 것은 더더욱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해되든 안 되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주일예배는 드리십시오. 그것은 열린교회 교인으로서 의무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더 잘 이해하시고 싶으시면 구역장과 교역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해서 설교를 깊이 듣고 설교를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23편이나 시험을 이기는 길, 혹은 기도에 관한 시리즈들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집중해서 듣게 되면 이해가 훨씬 빨라지고 한 두 편을 그렇게 듣고 나면 다른 설교들이 어느 순간에 확 하고 열리면서 눈이 떠지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구역장님들이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 어떨까요?
[사회자 여] 네. 감사합니다. 목사님. 영상이 하나 준비돼 있습니다. 준비된 영상에 이어서 아사밤에 대한 질문을 이어서 드리겠습니다. 책의 제목이 왜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아사밤을 몇 번 읽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목사님] 아사밤 12번 읽었습니다. 13번째 읽고 있고 그 사이에 다른 책을 급히 쓰고 있어서 잠시 멈추긴 했는데 12번 읽었습니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이 제목은 제 책을 숙독한 출판사에서 제안해 준 제목이었습니다. 저는 불 꺼진 밤이 무섭지 않다. 라고 제안했는데 김영사에 편집회의를 해서 너무 임팩트가 적다고 그렇게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지은 제목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좋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인가? 해설을 하자면 사람이라는 것은 한자에 보면 사람 둘 이 기대면서 사람 인자가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제가 배웠는데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랑하는 것인데 자기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사랑할 힘이 속에서 없을 때 인생의 절망과 비극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수 십 만 명에게 사랑을 받아도 자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뜨겁게 사랑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 때문에라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받는 힘의 위대함보다는 사랑하는 힘의 위대함이 더 큰 것입니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다 고갈된 상태, 미우라 아야코의 표현에 의하면 인생의 빙점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밤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날 수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한번 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설명이 잘 된 것 같습니다.
[사회자 남] 감사합니다. 목사님. 저희가 아사밤에 대해 궁금해서 질문들을 몇 가지 준비했는데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죽은 것은 추워서가 아니라 어두움을 물리칠 불빛이 없어서였다면 그 어두움을 물리칠 적극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목사님]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이었는지 들어간 그 해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제가 10월생이었기 때문에 만약에 후자가 맞으면 8살일 것이고 전자가 맞으면 7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태어나서 처음 읽은 동화책이 성냥팔이 소녀였습니다. 지금도 그림책 생각이 나는데 회색 줄이 나있는 목도리를 두르고 덜덜 떨면서 밤길에 성냥개비를 피다가 죽어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히 추워서 죽었고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파도치는 인생의 밤을 지나면서 그것이 제 마음속에 재해석이 되었습니다. 그 성냥팔이 소녀가 밤새도록 성냥불을 켠 것이 자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너무 외로운 마음에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결국은 우리의 진정한 절망은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외로움 속에서 어떤 빛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자기 자신의 존재는 근거를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의 해석입니다.
[사회자 여] 지금 댓글이 굉장히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윤정란 구역장님께서 오늘 서점을 갔는데 책이 절판이었습니다. 매진됐다는 말씀이신거죠? 인기가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것 같습니다.
[사회자 남] 정민나 구역장님이 제가 전달한 이웃은 책 제목만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꼭 그 분이 많은 은혜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김진미 구역장님은 어제 받아서 밤늦게 읽고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그 고뇌와 사랑에 눈물이 났습니다.
[사회자 여] 신현자 구역장님께서 그런 밤을 지나는 올케 언니가 생각이 나서 추가 구매하려고 합니다. 30일이 너무 기대가 됩니다. 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사회자 남] 끝으로 박성자 구역장님이 기쁜 날 슬픈 날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게 참 감사하다고 올려주셨습니다.
[사회자 여] 30일에 아사밤 북콘서트 열리잖아요? 아사밤 북콘서트의 취지가 무엇이고 구역장들은 어떻게 섬겨야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 북콘서트가 원래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책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책을 쓰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지만 최근에 쓴 책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남은 고난 그리고 염려에 관하여 이후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고 특히 저의 어린 시절의 저와 만나는 장면에서 저 자신에게는 치유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마 여태까지 김남준 목사가 쓰던 문체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두 분이 한 번 즉석에서 여쭤보겠습니다. 류요한 목사님은 어떠했습니까?
[사회자 남]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때 목사님의 책이 맞나? 싶어서 의아했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깊이 몰입이 되어서 책 속에 젖어들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쓰던 문체와 어떻게 달랐습니까?
[사회자 남] 친근함이 있었고요. 어려운 부분도 좀 있었고요. 책을 통해서 다른 문체를 통해서 만나게 되니까 많이 친절함도 느꼈고 인간미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목사님] 집사님은 어떻셨습니까?
[사회자 여] 저는 지금 읽고 있는데요. 저도 다른 많은 책들도 참 좋지만 이 책은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주변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 고민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책을 안 읽을까? 였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영상입니다. 너무나 영상에 많이 빠져서 지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톨스토이의 죄와 벌 이라고 하면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 들어가서 8분짜리 영상을 보고나서 자기는 읽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sns를 안 하는 것을 아실 것인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1년 동안 현대 소설과 sns에 올라오는 글들을 한 번 면밀하게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2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글이 복문이 없습니다. 수식어구가 많은 만연체의 문체를 현대인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감성적인 글입니다. 저는 작가로서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야기꾼으로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초창기의 저의 책인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등등의 책들이 전부다 narrative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달하는 형태였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굉장히 많이 끌었습니다. 제가 오죽했으면 1997년도 1998년도에는 기독교 서적에서 1위부터 10위까지 중에서 1위에서 5위까지 거의 절반이 저의 책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책을 안 읽는 것일까? 했는데 하나 발견한 것이 제가 1기가 지나고 존 오웬의 목사님을 만나고 제가 법학적인 글쓰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탄탄한 논리의 구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글쓰기고 그게 지금 오늘날 설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글을 좋아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은 책을 넘길 때마다 재미없으면 안 읽고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열고 감동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림 같은 글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글을 쓰자. 그렇다고 이전의 글쓰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고 그것은 그것대로 강력한 유익이 있고 이것은 이것대로 감성을 터치하면서 진리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을 쓰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장르가 뭡니까? 질문을 합니다. 사실은 오늘도 나왔는데 산문이에요? 시에요? 수필이에요? 셋 다 아닙니다. 산문도 아니고 운문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닙니다. 그러면 뭐겠습니까? 모든 장르의 그물을 빠져나온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장르에 메이지 않는 글을 쓰고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구어체도 많이 사용하고 격한 표현도 쓰면서 현대인의 감성에 호소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기독교출판사가 아닌 김영사를 선택한 것도 일부러 택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훨씬 더 가가가고 이 다음에는 한걸음 더 뛰어서 완전 불신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원래 톨스토이의 책을 읽고 기독교에 귀의하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런 문학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힘이 각도는 다르지만 직설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접근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터치하면서 복음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로서 생각합니다. 최근 10년 동안에 낸 책 중에서 이렇게 가슴이 떨린 적이 없었습니다. 한 15년 이래로는 이렇게 가슴이 뛰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나가고 있는 중이냐고요? 잘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남] 감사합니다. 끝으로 아사밤 책과 관련해서 구역장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참여하면 되는 것인지 영상을 보고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남] 끝으로 구역장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나누어주시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목사님]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고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과 인생론를 읽으면서 기독교신앙을 갖기로 결심을 했는데 저의 책이 불신자들에게 더 멀리 에세이스트로 뻗어나가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서 기독교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이 책이 사용되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2탄 3탄 4탄 책들도 일반 시장에서 애독이 되서 선교의 장이 열리도록 꼭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