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하는 리더십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녹취자 : 황인준
웅장한 기독교의 교리를 4장까지 말한 후에 5장에서부터 인생의 도리에 대해서 구체적인 삶에 관해 교훈을 합니다. 그 구조가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나 똑같습니다. 결국 무엇을 보여 주냐면 골로새서 같은 경우는 우주론에 대해 그리고 그 우주에서 그리스도의 위치가 무엇인가 하는 사도 바울이 쓴 모든 저작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수준 높은 작품입니다. 그것을 말한 후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살려고 믿은 것이지 죽으려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도 찬양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죽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결국 웅장한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보는 지평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똑같은 바다를 보더라도 바닥에서 바다를 보는 것과 2층 베란다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과 7층 혹은 10층, 20층 꼭대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각각 다는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을 그냥 세상 속에 부대끼면서 보느냐 아니면 더 높은 위치에서 우리의 인생을 보느냐에 따라서 각각 달라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계획인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재창조 하실 때에도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재창조하셔서 교회를 이루게 하셨고 마지막에 그 재창조가 마무리될 때에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머리가 되셔서 그래서 당신 자신이 이 온 세계를 우주를 통치하시게 됩니다. 교회는 그 목표로 가는 한 과정입니다. 그런 인생의 관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이냐?’ 그 사랑은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한 가지만 얘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생애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앞에 부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자기를 받치신 봉헌을 가리키고 뒤에 있는 것이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 받쳐진 것이라고 적절하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버리신 희생은 곧 하나님의 희생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멸시와 욕을 당하였을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이 당하시는 멸시와 욕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하나님이 하시고 싶었던 것은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 예수님이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면서 제일 먼저 가져야 될 것이 바로 이러한 자세입니다. ‘희생으로 섬겨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희생은 사람을 보고서는 희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희생하지 않는 사람들이 남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굴복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희생은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교인들에게 너무 존경을 받으려는 목회자가 되는 동기도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7년 정도 흘렀을 때 그 사실을 불현듯 느꼈습니다.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자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탐심인가 말입니다. 학생들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과이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를 갔더니 그 교회 목회자가 그러한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같은 시대에 이러한 목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옛날에 내가 하던 생각이구나!’ 그런 생각은 모두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희생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그 희생이 바로 하나님 사랑의 동기가 된 희생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희생을 우리의 섬김 속에서 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신은 리더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직원 여러분들도 리더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반드시 희생을 요구합니다. 희생이 없는 리더십은 거짓말이고 허위입니다. 누가 희생하지 않는 리더를 따르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이기적인 리더를 따르겠습니까? 희생적인 리더를 따르겠습니까? 가는 길이 아무리 올바르고 목표가 아무리 훌륭해도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그것을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따라오는 사람들이 그를 따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원래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그 조직의 목표에 대해 리더가 가장 가슴이 불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게 가슴이 불탈 때 그 조직은 창의적으로 움직이고 모든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리더를 통해서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잃은 사람들이 리더의 한마디로 용기를 얻고 갈 길을 모르던 사람이 리더의 한 마디로 혼란스러웠던 것이 정돈이 되고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신 원리입니다. 만약 자신은 전혀 리더가 될 마음이 없고 바닥에서 살다 죽고 싶다면 희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가를 받고 네가 해야 하는 의무나 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얍삽하고 빠르게 자기의 이익이나 챙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목회자인 여러분들은 앞으로 교회를 가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헌신에 있어서 모든 성도들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남을 위해 일하는데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소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실히 소명이 아닙니다. 소명은 희생하는데서 보람을 느끼게 되어있고 남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을 잘살게 하는데서 만족을 느끼게 되는 마음이 소명의 증거입니다.
그러니 잘잘한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을 계산하고 거기에 밝지만 절대 손해 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그 수준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살다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서 부대끼면 살다가 죽습니다. 통 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따라서 자신이 먼저 맨 앞서서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자고 할 때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호소력 있게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희생하자라고 말할 때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양심이 증거하는데 그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할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 그 자체가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린 것이라는 것을 당신이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되게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의 몸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 자체가 희생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그 희생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도록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지극히 높여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주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말만 많고 희생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희생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고 함께 일하는 모든 동역 자들이 그를 볼 때마다 언제든지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 저 지도자는 나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때에 충성할 마음이 생겨나고 그런 리더와 함께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작은 일에 의로운 자는 충성스러운 자는 큰일에도 충성스럽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일에도 불의합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어떤 계획이 있든지 ‘내가 먼저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에 지체들에게 제시하는 목표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먼저 불타오르게 되고 그 마음으로 기도할 때 눈물이 쏟아지게 되고 마음이 실리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될 때에 비전도 제시받고 용기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희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모두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의 모든 사역에 적용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남 보기에 자기 잇속이나 챙기는 이기주의자 혹은 개인주의자,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 나를 일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 일 이외에는 어떠한 인간성의 따뜻함도 느낄 수 없는 사람, 인간으로서 나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나를 시키려고만 하는 사람, 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얼굴도 마주볼 사이가 아닌 것처럼 여러분들이 비춰지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나 리더가 되게 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로 일하는 모든 사람 중에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있고 사람이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엔 자기가 자기를 세우는 것도 포함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삯꾼과 참 목자가 구별이 되지 않듯이 똑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와 자시가 스스로 세워진 지도자가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이 올 때 그리고 희생을 요하는 순간이 올 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서 사도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시비를 건 고린도교인들에게 사도가 대답했습니다. “나의 사도된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나보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냐? 예수님이 직접 기름 부어 세우셨냐?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과 함께 일했냐?”고 물으면서 “스스로 사도가 된 자이지 예수가 세운 사도는 아니다!”라고 시비를 걸지만 “난 사도가 맞소! 그 증거가 있소! 그것이 바로 참음이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도로 세우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희생하고 참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었습니다. 그 후 이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이적과 기사를 행한 것보다 유능한 것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이 보내신 표가 있는데 그게 바로 ‘참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부서를 기도하는 부서로 만들고 싶습니까? 그럼 여러분들이 기도하시면 됩니다. 기도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지체들이 기도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는 부서를 만들고 싶습니까? 여러분들이 전도해 오십시오. 그 자체가 이미 웅장한 메시지가 됩니다. 성결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먼저 경건하게 살아보십시오. 그 모습을 보면서 모든 지체들이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사역의 길은 끊임없는 희생의 길입니다. 충성된 사람들은 그날에 피 묻은 전투복을 벗고 새마포옷을 입을 것이오, 게을렀던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니 그것이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리고 말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희생하기 위해 태어났다. 존귀와 영광은 주님이 홀로 받으시고 멸시, 천대는 십자가는 내가 지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성도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나는 저주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오히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시고 사랑하셔서 그에게 당신을 더 많이 보여 주셔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가슴에 명심하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지 먼저 희생하는 사람, 먼저 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6.25 때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몇 명의 장군들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김성은 장군과 백선엽 장군이었습니다. 김성은 장군은 29살에 소장이 되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까지도 역임했었습니다. 그리고 백선엽 대장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다부동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내가 후퇴하면 너희는 나를 쏴라! 나를 따르라!” 그게 바로 리더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꺼이 자신을 바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목표를 제시할 때 누가 감동을 받겠습니까? 희생하십시오. 모든 권위가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래전 나온 책입니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를 보면 섀클턴이 극지를 여행하면서 조난을 당하게 됩니다. 1,800㎞ 바다를 해치고 가서 구조를 요청해야 되는데 가진 것이라고는 돛대와 작은 배 컴퍼스 그리고 자, 몇 가지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을 남겨두고 자기와 함께 대원들을 데리고 구조요청을 떠날 때 거기에 남아있으면 문제를 일으킬만한 말썽꾸러기들을 모두 데리고 배에 탑니다. 남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6개월 후 1,800㎞ 떨어진 곳에 가서 구조 요청을 하고 전 대원이 목숨을 건지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리더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항상 권한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신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리더가 아닌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도 느낄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함께 사역하고 헤어지고 나면 아무개라는 이름이 어떤 인상으로 남을 것인가? 속 좁고 이기적이고 편한 것만 찾고 힘든 건 모두 남에게 미루고 개인주의적인 그런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우리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 그리고 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