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영혼으로 사랑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녹취자 : 이재호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크게 세 토막으로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너희가 누구였고 지금 어떻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토막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혼이 빨래도 아니니까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영혼이 깨끗하다고 할 때 그 의미가 ‘우리들이 쓰는 물건이 깨끗하다’는 의미하고는 좀 다릅니다. 옷이 낡고 그래도 깨끗하면 착용할 때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이 깨끗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면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무튼 ‘영혼이 깨끗하다’ 라고 하는 이 말은 영혼이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 그것입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영혼의 삿댄 사랑이 없고 영혼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 사랑이 개인의 사랑이라면 항상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그 사랑의 반대되는 미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미움은 항상 우리에게 마음의 갈등을 가져오고 그것이 없기를 바라고 혹은 폭력을 가져옵니다. 오늘도 뉴스에 들려오는 수많은 살인 사건들과 폭행,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가혹행위들은 결국 사랑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온전히 가득할 때 그 영혼이 깨끗한 영혼입니다. 그런 영혼을 가지고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는 세상에 많은 사연이 있고 고통도 겪고 너무나 사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따져보면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영혼을 그렇게 깨끗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졌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랬습니다. ‘순종하다’라고 하는 말은 ‘휘파코우에이’인데 ‘휘파코우오’에서 나온 것입니다. 듣는 것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잘 진리를 들음으로써 그것이 순종을 가져오고 그 순종이 영혼을 깨끗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지만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신 사람이고 지금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받은 깨끗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 주신 사람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 세탁되었던 사람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순종함으로 깨끗한 영혼이 될 수 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를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랬습니다. 여기서 거짓이라는 것은 꾸며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유투브를 보니까 중국사람들도 한국 사람들한테 화장기술을 배워서 놀랍잖습니까? 어떤 여자가 맨얼굴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시골에서 갓 올라온 처자 같습니다. 얼굴에 흠집도 많고 생긴 모습도 그냥 그랬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변신하는지 화장법으로 보여주는데 화장을 하고 딱 얼굴을 보여주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같이 한국 아이돌 가수들처럼 그렇게 변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꾸민 얼굴입니다. 여기서 ‘거짓없이’라고 하는 것은 ‘속인다’라는 그런 뜻이라기 보다는 ‘꾸미지 않은 것’ ‘사실을 다르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위장하거나 변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신의 성도들에게 쓸 때에 그 중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다양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 다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에 베드로의 평가가 ‘너희들의 현재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이 그렇게 영혼을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에 너희들이 꾸밈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베드로가 보는 성도의 현재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정체성은 현재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꾸밈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꾸밈없이 사랑했는데 저쪽에서는 그 사랑을 이용하거나 혹은 나는 꾸밈없이 사랑했는데 저쪽에서는 거짓으로 나를 대한다고 할지라도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신자의 도리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대하느냐에 관계없이 그렇게 순전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서 사는 성도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런 사랑을 모두 나눌 때 누구도 이 사랑을 이용하거나 이렇게 사랑한 사람의 마음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우리는 꿈꾸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세상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꾸밈없는 순수한 사랑을 함으로써 그 사람들이 그 사랑을 보고 결국은 다시 자신도 깨끗한 영혼이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꾸밈이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 성도의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은혜, 많은 눈물, 많은 말씀의 능력,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꾸밈없이 형제들을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성도의 이 현재,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나니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한 인간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 사랑은 쉬운 줄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한 번 가족을 사랑해 보시겠습니까? 얼마나 힘든가? 하여튼 자식들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자기에게 베푸는 부모의 사랑을 아픔으로 갚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무조건 사랑해줄 뿐인데 끊임없이 거친 말과 반응, 세상의 괴롭고 슬플 때 스트레스 풀 사람이 부모밖에 없어서 그러는지 모르지만은 자식들이 그러잖습니까? 그것을 끝까지 참고 부모들이 사랑하면 언젠가 자녀들이 부모의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들에게 그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 가지고 있는 웅변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나가도 미워한 것도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고, 사랑한 것도 울림으로 남습니다. 이 미움이 울림으로 남으면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비틀어지지만, 사랑이 울림으로 남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그렇게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될 때 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랑이 아니라면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할까 생각해봅시다. 왜 은혜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사랑하면 되지 자기를 사랑하는데 은혜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무슨 은혜가 필요합니까? 먹고 입고 자기 좋은 것 하고 자기 싫은 것 그만두고 살아가면 되지 무슨 은혜가 필요합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미 그렇게 꾸밈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이르렀나니’ 우리 모두에게는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집안 이야기해서 그렇지만은 세상의 쌀쌀맞은 게 우리 딸이었습니다. 아빠가 문자를 보내면 답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빠에 대해서 무지무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느냐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빠한테만 그러냐 그러면 엄마한테도 그럽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잘 있냐, 저녁 때 몇 시에 들어오냐’ 대답도 없습니다. ‘뭐 가지고 싶니?’ 그러고 문자 보내면 금방 답이 옵니다. ‘선물 뭐 사줄까?’ 하면 답이 금방 오는데 일반적인 이야기 ‘너 몇 시에 들어오니? 다음 토요일에 같이 밥 먹을 수 있냐?’ 일체 답이 없습니다. 그러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고는 자주 집에 찾아옵니다. 문자 보내도 금방금방 답장이 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변했니?’ 그랬더니 ‘집을 떠나고 결혼을 하고 보니까, 엄마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그래서 자주자주 옵니다. 진작 그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람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사는 것이 정상인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미래에 어떤 삶을 살라는 것은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사랑에 이르게 하셨는데 맛을 보게 하셨는데 그 다음에 ‘계속 너희에게 이르게 해주마’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의지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셨듯이 또한 형제를 뜨겁게 하려는 그 마음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이 다시 순수하게 우리의 마음에 타오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야’ 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전부다 뜨겁게 사랑하려고 애쓴 사람들입니다. 애쓴 사람들은 그 사랑이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애쓰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랑이 자기가 한 것이라고 내세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 보면 여기 마음 앞에 한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스어다 단어가 나옵니다. ‘카탈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카탈로스’에 와서 ‘카탈라스’라고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물 같은 것으로 씻어내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그냥 마음이 아니라 정결해진 마음입니다. 씻어서 깨끗하게 된 마음입니다.
운동화를 신다가 여기저기 막 묻습니다. 신기 싫습니다. 세탁소에 주면 3~4일만에 깨끗하게 빨아서 봉지에 담아서 옵니다. 아침에 나올 때 그것을 신을 때 기분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것이 ‘카탈라스’ 입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된, 정결하게 된 마음으로, 깨끗이 씻겨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할지니라. 불결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이라면 씻겨진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간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대충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나이에 도달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는 것은 사랑밖에 남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헤어지고 혹은 오래 전에 죽고 우리 곁을 떠났어도 정말 그렇게 순수하게 우리를 사랑해 주던 사람은 우리의 마음 속에 계속 살아있습니다. 아무리 매일 만나고 매일 얼굴을 보아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우리 마음에 죽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죽지만 죽어도 살아도 죽는 방법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죽어도 사는 방법은 나는 죽지만 그러나 내가 이렇게 정결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때 나는 죽어도 그 사람 마음속에 나는 살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아침에 눈을 떠서 혹은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세상 번뇌를 쭉 물리치고 과거에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고 포기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보시기 바랍니다. 높은 산, 큰 파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격에 함께하고 있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남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위로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메마른 삶을 살아도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이고 받았던 적이 있고 그리고 인생은 아직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데 인간의 진정한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일이 바로 그렇게 희망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에게 그런 사랑을 베푸셔서 희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