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는 신앙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 1:30-31)
녹취자: 장미연
아침에 좀 일찍 나와서 신명기를 히브리어 성경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 안 나오는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 있어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려고 화면을 띄웠습니다. 제가 해석해 드릴 테니까 우리말 성경하고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보십시오.
30절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 하록 호레 호레-‘걷는 분이시다 혹은 걸으신다’ 해서 “너희 앞에서 그가 전쟁하실 것이다” 너희를 위해서 무엇무엇처럼 ‘콜- 모든 것처럼’ 관계대명사입니다. ‘아쉐어 아사-그가 행하신 모든 것처럼 너희를 위해 그가 전쟁하실 것이다’ 그래서 여기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 앞에서 행하시는 자다. 너희 앞에서 걸으시는 자다. 너희 면전에서 걸어다니시는 이시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전쟁하실 것이다.” 모든 것처럼 그가 행하신 모든 것처럼 ‘미츠라엠’ 애굽에서 ‘레헤네켐’ “너희 눈들 앞에서 애굽 땅에서 행한 것처럼 모든 것처럼 그렇게 전쟁하실 것이다” 이 뜻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단어가 해석이 빠졌습니다. ‘에티켐’이. 이게 ‘너희와 함께’입니다. ‘오트켐’이 되면 ‘너희를’ 이고 ‘에티켐’이 되면 ‘너희와 함께’입니다. 번역이 빠졌습니다. 그다음에 보시면 “그리고 그 광야에서” 관계대명사입니다. ‘라이타-너희가 본 광야에서’ 그다음에 또 관계대명사가 나옵니다. 부드럽게 해석하기를 “광야에서 너희가 보았다” 이렇게 놓고 그다음에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안았다”라고 나왔는데 이게 ‘들었다’입니다. ‘높였다’ 물건 같은 것을 들어서 높이 제물 같은 것을 받히기 위해서 드는 것입니다. 그거를 ‘안았다’라고 해석했는데 ‘들었다’입니다. 그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높이셨다.” 그렇게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높이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면은 너희 하나님이 높이셨다. 이것도 똑같이 무엇무엇처럼 언제처럼 사람이 자기 아들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들어올리셨다. 그걸 너희들이 광야에서 보았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안았다고 번역을 했는데 원래는 하나님이 드셨다. 사람들이 이제 아이를 들을 때 나는 어떻게 해석을 했냐하면 위험에서 아이들을 건진 것입니다. 광야나 힘든 길을 걸어갈 때 너무 힘들잖아요. 그 아이를 개울을 건너든지 돌이 많다든지 할 때 번쩍 들어서 그 아이를 이렇게 건네주는 겁니다. 그러고는 다시 또 그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그런 그림을 그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레크’입니다. 모든 길. 모든 길에 어떤 길이냐면 ‘아셀’ 관계대명사고 ‘할라템 할라크템-너희가 걸었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이 항상 그렇게 아비가 자식을 번쩍 들어서 높이는 것처럼 너희를 높여 주셨다.’ 그런데 어디까지냐면 ‘아드보켐-너희가 들어오기까지’ 어디까지? 또 ‘아드’가 나오는데 “이 장소에 이르도록 들어올 때까지 하나님이 항상 그렇게 하셨다.”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그 부분이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았도다”라고 나옵니다. ‘다바른이리’입니다. 이 일에 ‘에이네켐- 너희는 안 했다.’ ‘마아니밈- 믿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 여기에 단어가 속으로 인 투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속으로 너희가 현재적으로 믿는 것이 없었다
이 일에 있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금 설명을 하는데 제일 먼저 언급했던 사건이 뭐냐하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내잖아요. 정탐하러 보냈는데 그 사람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그 때 두 사람은 정확하게 보고를 해서 그 땅에 우리가 믿음으로 들어가면 얻을 수 있다고 얘기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좋긴 좋은데 우리는 안된다는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굉장히 진노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그다음에는 또 충동이 일어나가지고 바로 전쟁을 하는 겁니다. 모세가 경고를 했습니다. 가지마라 너희 진다. 너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 그건 아주 미묘한 감정이지요. 회개보다도 후회의 감정입니다. 그리고 막 용기가 솟는 겁니다. 이상한 용기입니다. 그렇게 돌격을해서 사람이 죽고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그 사건을 언급하면서 보고를 받으면서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여기에서 지금 그대로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얼 이야기하려고 하냐하면 기본적으로 던지는게 32절 마지막으로 “너희에게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믿음이 없었느니라.” 재미있는게 분사형태로 나옵니다. “너희가 안 믿었다” 이렇게 나오는게 아니라 “너희가 믿고 있음이 없다” 이렇게 나옵니다. 복잡하게 쓰는 이유가 뭐냐하면 히브리어에서 이 분사는 과거든지 현재든지 구분이 없습니다. 계속 되고 있는 동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 딱 볼 때 홍해를 건널 때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그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반응을 보이는 시점에서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역사하고 있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거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여기서 우리가 던지는게 그럼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이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책 한 권을 쓴들 우리가 만족을 하겠어요? 얼마나 많은 내용을 성경이 믿음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들이 하나 깊이 마음을 쿵 하고 울리고 지나가는 대목은 뭐냐하면 믿음이 무엇이냐? 라고 물을 때 우리가 여기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은 기억하는 것이다. 그 기억은 현재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입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세가 이중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어차피 가나안땅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들 들어오라고 미분양 아파트처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거기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는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정탐꾼들이 노예로서 살다가 우루루루 나와가지고 그다음에 가나안땅을 들어가서 거길 정탐을 하러 갔을 때 그 광경은 이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명의 배꼽입니다. 전 세계 지구상에서 당시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던 곳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핵심부였고 그 핵심부에 있었던 곳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신 이유가 뭘까? 그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문명을 일궜는데 그 문명이 정말 하나님 슬프시게 하는 문명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이 문명의 발전을 생각나게 만드는 대목 아닙니까? 문명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는데 사람들이 마음이 선하면 이 문명을 아주 아름답게 사용할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명을 잘못 사용하면서 사람들에게 문명이 없었더라면 요만큼 밖에 확대되지 않았을 악이 이만큼 확대되고 요정도 밖에 안될 악을 엄청나게 증진시키는 일을 문명의 기술이 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 화가 나면 주먹으로 때리는 것밖에 못합니다. 핵폭탄을 쏘는 겁니다. 그 문명이 그런식으로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정탐꾼이 봤을 때 그 광경은 발단한 축성술과 이미 그 당시에 일찍이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고 살던 이 사람들의 발달한 심지어 문자까지. 지금 다 발굴되고 있거든요. 발전한 물자까지 다 쓰고 있는 그런 광경을 보았을 때에 그 사람들의 그 공포심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을 보면서 사람들이 마음이 떨어졌다고 나옵니다. 낙담한 것입니다. 쿵 하고 떨어지는 겁니다. 인간이 낙담하고 나면은 그다음에 현실에 대한 절망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이 생깁니다.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도 하늘을 원망합니다. 내 팔자, 내 운명. 이런거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마음의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매우매우 슬퍼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앙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이 사람들이 신앙이 없었던 이유는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오기 위해서 두 가지와 싸워야 했습니다. 안 놓아주는 바로. 따라 갈리 없는 이스라엘. 이 둘과 싸운 것입니다. 그게 지도자의 운명입니다. 이스라엘은 설득해야하고 바로를 설득해야하는데 설득될 리가 없지요. 그걸 여기에서 라헴. 전쟁으로 묘사 한 것입니다. 진행된 과정을 보면 진짜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소명을 주셔서 보내신 다음에 피, 개구리, 이, 파리, 독종부터 시작해서 10대 재앙이 내리는데 그 완강함에 저항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안 보내줄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기적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주님에 대한 무지무지한 두려움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이 큰 믿음이 생기고 그다음에 바로 하고는 거의 전쟁의 상태로 들어가서 결국은 거길 초토화시킨 다음에 그 사람들이 주는 금붙이와 은붙이 많은 식량들을 얻어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 정탐꾼의 보고가 있었던 그걸 들으면서 새까많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라는 것이 신기합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데 심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기도도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원망하는 마음이나 생기고 좌절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교회와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뭐냐하면 생각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아, 그때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셨구나.’ 그거를 생각나게 해주시는 겁니다. 우리들이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보면은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큰일을 행해주시면서 우릴 여기까지 데려오신 것입니다. 회상해보면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기적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게 뭐냐하면 여기서 하나님이 애굽에서 기적을 행하시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것도 도와준게 없습니다. 뭘 도와주겠어요? 나일 강물이 피가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뭘 도와줬겠어요? 이렇게 이렇게 너희는 이렇게 피하라. 이렇게 피하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이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전쟁하셨다.”. 말씀하십니다. 함께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한게 없는데 그런데 결국 여기서 뭘 보여주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와 맞서서 하나님이 큰 능력을 행하실때에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걸 ‘이트켐’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침에 보면서 쿵 하고 마음에 다가왔던게 뭐냐하면 하나님이 싸우시는데 우리는 할 일이 없다. 그런데 사실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면서 잠잠히 바라보는 것 자체가 우리가 주님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기 직전에 와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잖아요. 갈 곳이 없어서 우리를 이제 여기에 빠뜨려 죽이냐 그럴 때 모세가 “너희는 이제 잠잠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봐라.” 그거를 믿는 마음으로 잠잠히 하나님을 기대하며 있는 것 자체가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이 보고를 받을 때는 그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걸 분사 복수로 표현하면서 ‘에이켐’이라고 얘기해서 아주 강한 일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이런 표현 쓸 때에 쓰는 그 단어입니다. 그게 1도 없었다 이 얘기입니다.
그럼 실제로 뭘 막 애굽에서 이 사람들이 뭘 했냐? 예를 들어 하나님이 불벼락을 떨어지게 할 때 자기도 숯을 피워다가 갔다가 같이 던졌느냐?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위대한 일을 기대하면서 그러면서 그것을 잠잠하게 바라면서 그 기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 자체가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내년에 우리가 교회를 목양을 하잖아요. 사역을 하고 목양을 합니다. 내가 계획을 다 세우고 내가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고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 그런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 지난 한 해를 보면은 코로나라는 위중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다 행하셨습니다. 놀라운 일들을 정말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고 이 상황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영적인 세력들과 싸우시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소와 싸우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충만한 기대의 마음으로 주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 자체가 그 전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양이든지 사역이든지 망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 묻지도 않고 돌격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마라 하나님이 너희와 절대 안하신다. 그랬는데 막 눈물을 흘리면서 돌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조금 아까 보여줬던 믿음 없음을 한 번 믿음 있는 걸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트켐의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면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지 아니다 하지말라 하는데 과거를 속죄한다는 듯이 우루루루 몰려가서 떼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주님께로부터 뭘 받은 것도 아니고 상황이 벌어지니까 땜질하듯이 자기 나름대로 세워가지고 돌격을 하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해야되겠다는 혈기는 있지만 이 안에서 이것을 주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를 여기로 이끌고 가신다는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사역을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큰 문제이지만 사고는 안칩니다. 근데 뭐를 서둘러서 혼자 안 하든걸 해보겠다고 왕창 뭘 거는 사람들이 우지직하고 뭔가를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둘다 좋은게 아닙니다. 또 하나는 어려운 일이 있는데 손 놓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잡혀있고 주님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은 반드시 이루고야마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주님을 의뢰하는 마음으로 꽉 차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전쟁같은 역사를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면서 믿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현재적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애굽에서 전쟁을 하셨다. 너희와 함께 전쟁을 하셨다. 말씀하십니다. 그게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 목회자들에게 얘기한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기도원에 가겠으면 한 3박 4일 정도 가라 얘기했습니다. 가서 조용히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이 나에게 무얼 행하라고 하시는가?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1년 동안에 무슨 일을 행하실까? 나의 맡은 부서를 위해서 나의 사역을 위해서 무얼 행하실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이 행하실 놀랍고 위대한 일들에 대해서 역사하는 믿음을 갖고 그걸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전쟁같이 당신의 일을 이루어가실 때 너희와 함께 여호와가 전쟁하셨다. 이렇게 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어냐라는 대답에 대해서 첫째는 기억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메시지들이 있는데 하나만 더 끝내겠습니다. 두 번째가 친밀성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 성경이 틀린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3살, 4살. 어저께도 최현정을 만났는데 4살인데 둘이 쌍둥이가 귀엽다고 했는데 뒤뚱뒤뚱하고 걸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개가 왕왕거리고 덤벼들어옵니다. 아니면 개울을 건너야 합니다. 그럴 때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번쩍 드는 겁니다. 드는 이유는 뭐냐하면 땅의 위험에서 아이가 땅의 위험에 해를 받지 않도록 번쩍 드는 겁니다. 그 아이를 멱살 잡듯이 번쩍 들어서 이러고 들고 보따리처럼 갈 엄마, 아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연히 들어서 이렇게 품어주는 거지요. 그게 사실은 원래 그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지나고 나서 계속 회고하는게 뭐냐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업어 나르사” 이렇게 표현합니다. 업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게 주석가들에 의하면 나는 사실 본 적은 없습니다. 많은 새들이 자기 새끼를 이렇게 발톱으로 집는다고 합니다. 단단하게 집어서 나는데 독수리만 예외적으로 이렇게 된 날개 위에 새끼를 얹는다고 합니다. 새끼는 펄럭거려도 움직이지 않는 어깨 들어가는 이 부분 등하고 연결되는 부분을 다리로 이렇게 움켜지고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의미냐하면 밑에서 사냥꾼들이 화살로 쏩니다. 근데 새끼가 안보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발톱으로 안고 가면 어미를 못 맞혀도 새끼만 맞혀서 떨어뜨릴 수 있는데 어미를 관통하지 않는 한 어깨뒤에 숨어있는 새끼를 맞힐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렇게 처치할 대적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보호와 인도의 상징으로 업어 나르사라는 표현을 썼다고 이렇게 대개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여기에서 너희를 번쩍 드셨다라고 할 때 들어서 당신의 품에 안아서 위험한 시간을 이렇게 지나는 겁니다. 우리 너무나 잘 아는 고전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의 시에 보면 자기 인생을 다 살고 하늘로 올라가보니까 발자국이 다 이렇게 네 개씩 나 있는 겁니다. 하나님 발자국 두 개, 자기 발자국 두 개. 작은 발자국 큰 발자국. 그런데 진짜 어려웠던 때를 보니까 거기엔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본거지요. 천사에게 물어봤겠지요. 저기엔 왜 제가 알고보니까 힘든 구간이었는데 저기는 내가 혼자 저렇게 걸어온거냐고 그랬더니 그 어려운 때는 하나님이 너를 번쩍 안으셔서 품에 품고 걸으셨기 때문에 네 발자국은 없는가다. 저게 네 발자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자국이다. 천사가 이야기를 하더래요. 누가 지어냈겠지요. 그런데 믿음이라는건 돌아보면은 다 힘들게 그당시엔 나 혼자 애쓰고 힘쓴다고 생각을 했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나를 업어서 나르셨다라고하는 번쩍 들어서 나를 안으셔서 나르셨다라고하는 그것이 가슴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친밀함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엄마의 품에 뜨겁게 안기는 적은 없잖아요. 대게 동네에서 얻어맞든지 아니면 사고를 당했든지 그럴 때에 달려와서 엄마의 품으로 피하는거 아닙니까? 우리의 신앙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아주 많이 느꼈던 그 시기는 모두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고난 그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품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번쩍 안으셔서 당신의 품에 품으시는 것을 우리가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 같은 사람은 참 설교자와 거짓 설교자는 고난을 기준으로 설명했습니다. 고난받는 설교자는 참 설교자일 가능성이 많고 고난 안 받으면 참 설교자일 수 없다.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를 하는 겁니다.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요새 우리 집사람은 옛날 목사님들 간증에 푹 빠졌어요. 계속 듣는데 저는 그 이야기를 사실은 목사님한테 직접 들었습니다. 수영로 교회의 정필도 목사님인데 그분이 굉장히 집안이 어려웠었는데 공부를 잘하셨어요. 서울대 나오셨습니다. 군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장교로 가잖아요. 특별히 열심있는 사람은 가끔 만나지만은 사실 군대 가는 심정으로 온 사람들 아니에요. 그런데 군목교회를 갔는데 사람이 안 오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원래 안 모이는 데라고. 그때 공군에 근무하셨다라구요. 주일날이 됐는데도 사람이 거의 안 모이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저를 여기 군목으로 보내셨는데 군인을 안보내시면 내가 어떻게 군목입니까? 하나님이 놀라운 지혜를 주시더라는 겁니다. 큰 보온병에다가 커피를 따뜻하게 끓이고 간식하고 가지고 그거를 들고 공군은 대게 근무하는 데가 미사일부대 이런데니까 다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북악스카이웨이 거기에도 공군들이 근무합니다. 그거를 밤새도록 다니면서 초소를 이동해서 다니면서 찾아다니는 겁니다. 그 겨울에 보초 설 때 덜덜 떨 때 따끈따끈한 커피가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거를 매일 도는 겁니다. 그러고 진심으로 기도해주는 겁니다. 거기에 있는 군인들이 몇 달을 계속 하다보니까 거의 다 만날거 아니에요. 감동인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청년들이 와서 예수를 믿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큰 부흥을 보는 겁니다.
모든 은혜의 경험 뒤에는 내 맘대로 안 되는 절벽과 같은 상황이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시구나. 이렇게 친밀하신 하나님이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이 어려움 속에서 번쩍 드셔서 당신의 품에 안으셨구나 라는걸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보면서 우리 모습 같지 않습니까? 우리 옛날에 주님 깊이 만났고 우리는 솔직히 애굽의 10대 재앙같은 기적을 보지 못했지만 절대 그것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여기 있는거 아니에요?
지금도 물론 간사들이 신앙이 예쁘지만 옛날에 20대들로 교회 간사들이 꽉 차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기 2002년도부터 와서 이렇게. 어쩜 그렇게 신앙생활들을 한결 같이 예쁘게 하는지 몰라요. 가끔 자기네들끼리는 투닥거리고 좀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저녁 때 되면 교회가서 다 회개하고 눈 물흘리고 기도하고 신앙생활 잘해라. 예배에 빠지지마라. 그런 얘기 할게 없었어요. 너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대우도 별로 해주지 않는데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주님의 사역을 하는 거지요 그런 자체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 섬기며 의지하며 사는 삶은 전쟁이지 꽃길을 걷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항상 전쟁과 같은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싸워주신 거지요. 우리는 한게 없지만은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 기대합니다. 그러고 제가 주님밖에 바랄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자체를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전쟁에 참여해서 함께 전투를 한 걸로 그렇게 인정을 해주시는 겁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훌륭하게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이 지금 그 믿음이 너무너무 필요한 시점인데 이제 막 가나안땅을 보고와서 포도를 꿸채로 들고 왔다고 하잖아요. 과장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지금도 이스라엘 에스골이라는 골짜기에서는 포도송이 하나가 4kg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름진 땅에서 어마어마한 작물이 나오는데 도저히 그 작물은 탐이 났지만 그 사람들과 싸워서 이길 힘이 없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모세도 이야기하는게 아니 안 믿은게 뭘 보고 안 믿는거냐하면 나중에 광야생활하면서 불순종하는게 나오잖아요. 밤이면 불기둥아래에서 범죄하고 낮에는 구름기둥 아래에서 안믿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데도 안믿어요. 결국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보여주시는 것 같아도 살아서 숨 쉬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이고 기적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기서 불기둥이 치솟아도 거기서 이를 갈고 원망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그게 그 불길아래서 우상숭배하고 범죄하고 그런일들이 일어나잖아요. 결국은 보이는 표징이 문제가 아니라 이 마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화합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나 교인들도 이렇게 보면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때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정리도 너무 잘되어있고 그리고 열렬합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도 아닙니다. 잠깐 사이에 마음이 흔들리면서 변질하는 겁니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겠지요. 그래서 결국은 뭐냐하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느 한순간에 없는 겁니다. 옛날에 그렇게 많이 역사했는데 이제 없는 겁니다. 마지막에 내리는게 뭐냐하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기억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현재적으로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품에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을 확신하면서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눈에 띄는 현저한 위대한 일을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는 사람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여호와의 전쟁에 함께 하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의 전쟁을 승리하게끔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