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을 살 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였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수 5:9)
녹취자 : 김세나
Ⅰ. 본문 해설
약 40년간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설적인 지도자요, 모든 선지자의 비조였던 모세는 이미 죽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모세가 죽고, 그 보다는 못해 보이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염려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시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위대한 사람을 가게 하신 후, 그만큼 위대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여호수아를 인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전에는 기적을 보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었으나, 이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에 순종하면 오히려 기적을 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발을 요단강에 들여 놓았을 때, 요단강이 마르는 역사가 일어났고 법궤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5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 원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자손들이 바로 할례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2021년과 2022년을 가로지르고 흐르는 요단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 아이적 신앙을 버리고, 어른스러운 신앙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요단강을 건너고, 이제껏 가본적 없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Ⅱ. 새로운 삶을 살 때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날을 되풀이하는 삶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 날 잘못 살았다면, 더더욱 우리는 그 삶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고, 지난 날 잘 살았다면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다 더 나은 날을 향하여 살아야 할 것이고, 이전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은 이제는 더 이상 그 삶을 계속 하지 말고, 주님 사랑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던 사람은 이제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더 깊은 사랑을 향하여 나아갈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우리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날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 이스라엘을 사랑하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층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그냥 노예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받게 될 비방에 대해서 염려하며 하나님 앞에 한탄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장(32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이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의 길을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광야에서 죽이려고 하셨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민수기 14장 16절에서는 능력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였다고 하나님을 이방인들이 욕할 것을 염려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실패의 경험이 반복될 때, 우리는 좌절하고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자신만이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른 사람들 앞에 우리가 부끄러운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였고, 그리고 광야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해도해도 안 되는 일들을 경험했고, 자신들은 이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뼈에 깊이 깊이 각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한계라고 믿었고, 하나님의 한계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광야에서 눈을 부릅뜨고 불순종하다가 죽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그들이 모두 받았지만, 그러나 그들은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때가 없습니까? 우리는 수치스러운 때가 없습니까? 반복되는 실패, 좌절, 낙심과 혼란 속에서 ‘이제 나이 많은 나는 더 이상은 안 돼, 여기가 나의 끝이야. 나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나는 여기까지 밖에 안 되나 보다.’ 라고 한탄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 그리고 또 하나 있는데 무수저도 있습니다. 아예 수저 없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다는 것입니까? 그것을 돌아본들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우리 부모가 갑부가 아닌데, 그것이 내 잘못입니까? 내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것이 내 책임입니까? 이미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이고, 던져진 상황입니다. 뒤의 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현재이고, 또한 미래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없이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들이 진짜 해 본적이 있습니까? 정말 그들이 주님을 믿어본 적이 있습니까? 광야에서 멸망한 백성들이 정말 100%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날들이 있습니까? 우리들이 수없이 해 봤다고요? 그러나 하나님 없이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있이 해 본적 있습니까? 하나님 의지하고 온전히 말씀으로 해본 적 있습니까? 내 힘으로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해 본 적있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모든 마음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꿈꾸고 바라던 위대한 일들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신세계를 경험한 일들이 있습니까? 예수 예수 믿은 것은 받은 증거가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 믿은 증거를 가지고 오늘날까지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수많은 고난의 날들을 해치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을 주셨으나,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진짜 행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만나를 먹으면서도, 종살이하면서 먹던 애굽의 고기를 그리워하였고, 파를 그리워하였고, 참외를 그리워하였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불순종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인생은 광야의 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걸어갈 것입니까?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과연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이 도저히 실패밖에 반복할 것이 없고, 좌절밖에 반복할 것이 없는 세상입니까? 그런 점에서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한번이라도 해 본적이 있습니까?
B. 수치를 벗기심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운명처럼 여겼던 그 수치를 벗어버리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5장 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하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치를 벗기셨습니다.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완료형 시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미 과거에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치가 무엇이었습니까? 왜 그들이 애굽 땅에서 그토록 설움을 당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젊은이가 있어서입니까? 아이들이 없어서입니까? 백성들의 숫자가 작아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땅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남의 땅에 빌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고, 그래서 노예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 하나를 바라보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 요셉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그리워하고 바라보며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바로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본 예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평안히 살게 되는 것처럼 신약의 사람들이 결국 그리스도 예수의 품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으며 살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땅이 약속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평화와 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는 한 괴로움과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시련과 역경도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과 전쟁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땅은 척박한 땅이었고, 떠날 곳이었기 때문에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남의 나라 땅을 지나가도 거기는 그냥 지나가는 길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길을 가기까지는 그들은 ‘나그네’라 일컬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들어감으로 드디어 평화와 안식이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이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평화롭지 않은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쉼이 없이 사는데,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평안하게 살고,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어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가난한 자리에서 부자를 만들어 주시거나 혹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갑자기 놀랍게 형통하게 해 준 경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공통적으로 안 받은 사람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와 안식이었습니다.
저는 예수 믿기 전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신은 없다고 생각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신이 없음을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어리석은 신으로 돌이켜 서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제 마음 속에 어떤 평화도 없었습니다. 그 많은 문학과 역사, 철학을 헤매어 보았지만 어디에서도 평화와 안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품으로 돌아오던 회심의 그날, 저는 비로소 예수의 품에서 참 평화와 안식을 찾았습니다. 21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평화와 안식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평화롭게 산 사람들 만이 평화롭게 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주심으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하셨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주심으로 이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지난 한 해가 여러분들에게 평화와 안식이 없는 한해였다면,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땅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평화와 안식을 누리지 못했지만, 여러분들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품 안에 들어온 사람이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고, 이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가나안의 복락 속에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그냥 수많은 곡식들과 열매들을 저절로 따 먹으며 많은 부를 누리며 부요하게 산다는 그 뜻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일찍이 문명이 발달하고 이 세계의 문명의 배꼽과 같은 그 곳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주 혁혁한 나라들을 제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나그네와 같고 거지 때와 같은 그들을 그 아름다운 땅으로 들여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거기에서 무엇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거기로 들여보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땅이 거저 받은 은혜였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삶으로써, 모든 민족들이 참 행복이 이스라엘 속에 있구나, 어쩌면 저 백성들은 저렇게 경건하고 거룩한가, 우리도 저 백성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로 그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거기는 텅 빈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막강한 나라와 민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고,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이스라엘 백성이 이길 수 없는 정복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놀라운 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기적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믿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전쟁의 기적이 일어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힘으로 가나안을 정복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나안을 정복했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수치를 모두 벗겨 버리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가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땅은 신약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것을 누리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보낸 것처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떠났습니까? 왜 여러분들은 똑같이 안 믿는 사람처럼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래도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기쁨을 얻지만, 여러분들은 그것 때문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하나님 때문에도 기뻐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러한 삶을 삽니까? 결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지만 그 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수치는 계속 되어 왔습니다. 이제 몰랐으니 우리가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알았으니 이제는 그 길에서 돌이켜 서야 합니다.
신앙의 회색 지대는 없습니다. 그리고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가르쳐 온 모든 인류 역사의 길들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길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그 분 안에서 안식과 통치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쉬운 길이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며 주님께 거역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이 믿음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기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그 분 안에서 참된 평화와 안식을 되찾아야 합니다. 찢어진 우리의 정신들을 다시 모으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지난 날들은 다 한 해에 흘러가면서 함께 떠내려 보내고, 이제는 나의 삶 구석구석이 묻어 있는 수치를 씻어버릴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내 자신이 나 자신을 믿지 않고, 오히려 나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낙인찍는 이 일들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전에 내가 실해했으니 앞으로도 실패하게 될 것이고, 지난 한 해가 내가 힘들고 어려웠으니 내년 한해도 똑같은 한해가 되리라고 우울한 전망을 미리 할 필요는 없습니다.
“100년 밖에 못 사는 사람이 천 년의 근심을 지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끊임없이 바라기 때문에 현실이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할 때, 그 간격이 결국 염려와 근심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품 안에서 안식을 얻은 사람은 바로 이 차이를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도저히 내가 원하는 만큼 될 수 없으니, 그러므로 “나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나는 힘이 없사오니 나를 붙들고 나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어린아이같이 내가 주님의 품으로 피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당신께 기대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품을 벌리시고, 우리의 인생이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분의 품을 파고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그리고 실패를 운명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치를 굴려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순전한 마음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던 때가 바로 이 때였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연애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쳐졌고, 자신들이 누릴 그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이전에 조상들은 그랬기 때문에 낙심하며 주저앉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를 불러 왔고, 광야 생활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믿음의 세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늘 애굽의 수치를, 즉 애굽에서 겪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운명처럼 따라다니던 그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셨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길갈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길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길갈’ 전체를 한 단어로 봅니다. 이 경우에는 수레바퀴라는 뜻이 됩니다. 수레바퀴가 언덕 위에서 굴리면 굴러가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수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떼어 내어 영원히 굴러가버리게 하셨다고 하는 의미로 그곳 지명을 ‘길갈’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해석은 이 ‘길갈’이라는 단어가 원래 ‘겔’이라는 단어와 ‘갈’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복합명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겔’은 ‘똥’이라는 단어이고, ‘갈’은 ‘굴러가다.’라는 단어의 축약형이 됩니다. 그래서 직역을 한다면 ‘똥 굴림’입니다. 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주 더럽고 불결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상 붙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수치를 이스라엘에게서 떼어 내어, 굴러 버려서 다시는 이스라엘에게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누가 했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것은 수단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떠나게 하였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오래된 수치는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살아도 도저히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졌던 실패는 무엇입니까? 일어서면 쓰러지고, 쓰러져서 일어나면 다시 쓰러지고 하였던 그 지점이 어디였습니까? 그것이 가난 이었습니까? 아니면 질병이었습니까? 아니면 무능이었습니까? 아니면 죄였습니까? 아니면 불순종이었습니까? 여태까지는 여러분들이 그것을 따라다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분을 온전히 바라보십시오. 실패했던 지난날들의 여러분을 보지 마시고, 거기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묶지 마십시오. 오히려 마음의 눈을 들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애굽의 모든 수치를 굴러 버린 길갈이 되게 하십시오. 오늘 이 날이 바로 길갈이 되게 하십시오. 모든 수치의 더러운 똥들을 모두 굴려 버리고, 운명과 같았던 모든 지난날이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이라고 하는 어떠한 좌절과 실패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홀로 시작하면, 여러분의 삶은 과거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과거에 혼자 살아서 늘 실패했던 것이라면 오늘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예수와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새해를 시작함으로 여러분들의 오늘이 길갈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싸우러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는 애굽에게 짓밟히고 광야에서 고생하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이방 민족에게 살육을 당하는 그런 민족들이 아니다, 그런 백성들이 아니다. 이제 나의 그 진노의 때는 끝났고, 너희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나 여호와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가 믿음으로 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아가는 그 길에 나는 너희와 함께 할 것이고, 이제껏 너희들이 보지 못하였던 새로운 은혜의 역사를 너희에게 펼쳐 보낼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고 길갈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 앞에 놓여 있는 새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해가 바뀌었기 때문에 저절로 좋은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미신적인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싸운 만큼 땅을 빼앗을 수 있고, 그리고 전쟁한 만큼 그 땅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여러분들이 믿음이 없고, 불순종과 좌절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흑수저 타령이나 하면서 옛날 생각이나 하면서 낙심하고 좌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땅을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미 있었으나 평화를 누리지도 못하였고, 안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므로 여러분들은 혼란스러운 존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자아들이 여러분들 속에 찢겨서 서로 싸움질 하느라고 도무지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평안이 없이 애쓰고 고생하였는데도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쓰지 않고 아꼈는데 전대는 뚫어졌고, 주님을 위하여 시간을 내는 대신 자기 자신을 위하여 힘쓰고 애썼는데 아무리 갈고 아무리 파도 가시와 엉겅퀴밖에 없었다면 우리는 이제 그러한 삶을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실험을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그 삶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길갈의 축복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제껏 모든 실패로 여러분들의 앞날을 제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좌절스러웠던 지난날들의 경험 때문에 미래의 희망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고, 성령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희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여러분들의 옛 자아가 여러분들 자신을 과거의 실패에 묶어 놓는 것입니다. 과거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실패했습니다. 반역했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간음했습니다. 그리고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온 백성들이 모세를 죽이고자 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의 역사를 앞둔 이 가나안 정복의 첫 발을 내딛게 만드셨습니다.
인생은 진지한 것입니다. 장난하며, 농담처럼 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이미 과거에 모두 맛본 경험을 우리의 삶 속에서 재현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루하루 아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희망을 품은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내가 희망을 품고, 절망에 처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그리고 나의 인생의 본보기를 통하여 인생의 실패를 경험했던 수많은 사람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하게 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운명같이 여러분들을 따랐던 오래된 수치가 무엇입니까? 이제는 그것과 결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의 인생을 갉아 먹었고, 여러분들의 인생을 부끄럽게 하였고, 여러분들의 인생에 모든 수치, 그리고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아무 이득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다운 영광과 신자로서의 존귀함을 모두 앗아갔습니다. 그래서 세상 자녀처럼 마음껏 세상의 쾌락을 즐기지도 못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으로 참 평화를 완전히 누리지도 못했으니 예수를 잘못 믿으면 안 믿은 사람보다도 사실상 더 불행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믿음으로 살라고 채찍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채찍질이 우리에게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되고,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치를 모두 굴려 버리고 예수의 빛나는 생명을 나타내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새해를 정복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할례를 받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이방종교에도) 유사한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할례는 언약 맺음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명하신 때가 얼마나 절묘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언제였습니까? 광야의 백성들이 모두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도 죽고, 가나안 정복을 앞둔 그 때에 하나님이 할례를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하였으니, 이 할례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과 구별된 것이었습니다.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얘들아, 광야에서 고생 많이 했지? 이제 이 요단강을 건너봐라. 내가 저들을 무너뜨리고 먼저 가서 앞서 행하여 무찌르리니 너희는 짖지 않은 포도원에서 포도를 따고 짖지 않은 집에서 살며 심지 않은 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부와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 나는 너희들을 세상 사람과 똑같이 만들려고 가나안 땅을 준 것이 아니다. 너희는 세상과 구별 되거라. 매일매일 그 몸의 할례의 표를 보며 너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돈을 주셔도 돈을 잘 쓰는 것까지 하나님이 보장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지만, 솔로몬은 그 지혜를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큰 고난과 왕국의 패망을 가져오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세상과 구별되는 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바쳐졌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바쳐질 수 없습니다. 연말연시 외식하기 참 어렵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가면 이미 예약이 찼습니다. 앉으려고 하면 거기는 이미 예약하셨습니다. 배타적으로 오직 그 사람에게만 바쳐진 것입니다. 바로 할례를 받은 그 표는 “너는 오직 하나님께만 바쳐진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할례받은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할례 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거룩함이 없으면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많은 재화를 누리고 지휘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거룩함이 없으면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성도 만드신 뜻을 이 세상에서 비추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낮고 재물이 부족한 것이 수치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은 것이 수치입니다. 거룩함이 없기에 신앙이 없기에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새해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바로 그 땅을 정복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요단강처럼 2021년과 2022년 사이를 가로지르고 흐르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 마음으로는 기껏 해야 옛날 삶 밖에 살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삶은 삶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피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으려 하던 여러분들의 모든 교만한 삶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마음의 가죽을 찢어야 합니다. 피가 흘러야 합니다. 옛날 살을 벗겨내고 새 마음으로 돌아감으로 새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적용과 결론
우리의 수치는 운명이 아닙니다. 과거에 우리들이 끊임없이 실패했어도 앞으로도 실패한다는 보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과거는 우리를 끊임없이 사로잡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쇠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예와 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리고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 사람이 아니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린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이제껏 받지 못했던 모든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더러운 수치를 굴려 버리고 하나님 앞에 새 삶을 사는 여러분들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