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소원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겔 1:1-3)
녹취자: 박나리
에스겔은 다니엘과 친구들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때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사람이 제사장 집안의 사람이었는데,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제사장과 선지자의 임무는 확연히 다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다스리신 세 가지 기반이 있었는데, 왕, 선지자,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탄원하며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전통과 백성들의 사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관심사가 당연히 하나님께 있었지만, 백성들의 편에 많이 섰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나아오는 사람입니다. 전통과 관습, 사람들의 처지와 같은 것보다는 하나님이 무엇을 전하려고 하실까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종종 갈등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진짜 참된 제사장이란 선지자와 갈등을 일으킬 수 없고, 참된 선지자란 제사장과 갈등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발 강 가에 사로잡힌 때’라고 했으니 아마도 추측하건데, 하루 종일 바벨론에 끌려가서 야유회를 했을 리는 없고 고된 노동으로 일과를 보냈습니다. 바벨론에서는 대규모의 토목 공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당연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저녁이 되면 고향 생각이 너무 납니다. 그래서 강가에서 고향을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 다른 곳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워하면 노래도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 가운데 있었는데, 그때 선지자가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선지자로서 가장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미래에 대한 예견 계시를 알려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최고의 계시를 받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특별하게 교회론에 관한 계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런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으니 다른 어떤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들 보다 너무 힘든 시기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개척할 때는 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보려는 마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잘살게 되고 사람들의 생각이 세속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사명을 받았으니까 그런 하나님이 매우 특별히 은혜를 주셨어야만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매우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지만 우리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상서롭고 매우 특별한 것입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려보였다고 했는데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모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원래 히브리어에는 ‘하브좀’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전에 성경에서는 ‘이상’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환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제도 아닌 그런 제3의 무엇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환상, 실제로 이루어질 위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회자로서 준비되어야 할 때 첫 번째는 하늘이 열리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의 절실한 조건입니다.
선지자로서 세워짐에 있어서 너무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넘어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찬란한 빛으로 나타나신 것은 하늘이 열린 사건이었습니다. 육체에 매여 있고 유대교에 매여 있던 사도바울의 지성을 찢고 하나님의 신령한 뜻과 계시를 보여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첫 번째 제목이 ‘하나님, 나에게도 하늘을 열어주십시오’ 입니다. ‘에스겔에게 하늘을 열어 당신의 이상을 보여주신 하나님, 나에게도 신령한 세계를 열어주셔서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보고 와서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서 사용 받아야 합니다. 첫 번째가 하늘이 열리는 경험, 그래서 하나님의 이상을 보고 거기에서 마음에 뜨거운 사랑이 불타게 됩니다. 그렇게 하늘이 열리고, 주님의 이상을 보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의 말씀이 특별히 임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전할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그냥 임한 것이 아니라, 특별히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용만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임하는 방식이 매우 특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특별히 반향을 일으키는 말씀이 있겠습니까. 그런가보다 하며 성경이 이렇게 되어있구나 하며 우리가 이해합니다. 그것은 특별히 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눈물이 쏟아지고 회개가 나오고 그 말씀에 자신의 영혼이 불붙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지 않으면 특별한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냥 다 너나 나나 비슷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받았던 사람,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이 매우 특별하게 깨어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눈물로 전할 수 있습니다.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눈물로 고하노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특별히 눈물로 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도할 제목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특별히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입니다. 말씀에 나의 영혼이 온전히 사로잡혀서 그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절실하게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몸부림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설교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삶과 마음을 모아 모든 인격까지 담아서 설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설교 듣는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설교자로서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주일학교 학생들, 중고등학생들이기 때문에 나를 안 쳐다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이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교인들에게 설교를 해도 안 쳐다봅니다. 전도사 때 쳐다보던 사람은 목사가 되어도 쳐다봅니다. 아이들한테 사정을 해서라도 자기를 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거기에서 하나님 말씀의 도전이 있고, 아이들이 그 말씀을 통해서 변화됩니다.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정말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짧고 단순해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 나면 ‘오늘 설교는 우리보고 기도하라는 거구나, 간절히 기도하라는 거구나,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하면서 살라는 거구나’와 같이 한 가지가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질 수 있도록 설교해야 합니다. 길지 않고 짧게, 그러면서 감동을 주고 더듬지 말고 유창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때 설교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애들이 예배를 무시하게 됩니다. 예배 속에서 주님을 만난 애들은 예배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전할 말씀에 자신이 먼저 은혜를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로 들어와서 입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자신 속으로 들어와서 말씀이 역사해서 자기의 피와 살이 되어서 그 다음에 쏟아져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한 은혜의 말씀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예배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설교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설교를 통해서든지, 성경 읽기를 통해서든지, 경건 서적을 통해서든지, 자신의 양심에게 말씀하시든지 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고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교역자의 설교는 울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 말씀에 저 설교자가 은혜를 받았을 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 허공 속에 흩어져 있는 것인가, 모두 압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이 특별히 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위대한 설교자에게는 모두 영적인 체험이 있습니다. 첫 번째 체험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깊이 떨리고 거기에서 자기가 진짜로 체화해야 합니다. E.M.바운즈의 숨길 수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 체화된 사람입니다.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된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기도가 나오고 가르침이 나옵니다. E.M.바운즈의 책들이 심오한 신학적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굉장히 보수적인 가르침이 있고 자유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뼛속 깊이 복음을 체험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사람입니다. 놀랍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 체화되게 은혜를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는 자기가 밀밭에 가서 밀을 추수해서 절구에 넣고 찧어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을 다시 빻는 자기 깨어짐 속에서 가루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눈물을 흘려서 반죽을 합니다. 그것을 성령의 화로에 집어넣어 굽습니다. 그렇게 잘 익은 빵을 화로에서 꺼내서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떼어 입에 넣어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 밭에서 말씀을 거두고 자기 깨어짐으로 빻아서 기도의 눈물로 반죽을 하고 성령의 화덕에 굽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이고 설교입니다. 포스트잇에 써서 올라가면 안 됩니다. 설교라는 것이 한 30년쯤 목회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받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말씀이 특별히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두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게 임해 말씀에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매 주일마다 은혜의 감격이 목회자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말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영적 침체를 겪을 때마다 내가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예배입니다. 내가 설교하자니, 내가 예배를 인도하자니, 나에게 예배의 감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 예배의 감격이 나를 붙들어줬습니다. 그렇게 예배 속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선지자로 부름 받았던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성령이 특별히 역사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 지금처럼 내주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하시고 자기의 일을 끝내시고는 다시 떠나가시는 성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셔서 선지자들이 되게 하셨고, 그래서 어려운 모든 상황을 담대히 이기고 살게 만들어주셨고, 열렬히 여호와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끔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성령님이 가장 순결하게 만들어주고 사랑하게 만들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커다란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 번째로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권능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영혼의 가슴을 찌르고 교사들의 마음을 찌르게 하여, 그 말씀의 능력이 어린 영혼의 가슴을 회심하게 만들고, 회심한 영혼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게 해야 합니다.
E.M.바운즈의 글을 읽어보면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말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 성령의 능력이 없는데, 그것은 결국 기도의 결핍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을 눈물 흘리게 만들려면 먼저 자신이 마음속에서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성령이 큰 힘으로 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욕심을 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셔서 영혼에게 감화를 끼치고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저들의 심령을 꿰뚫어 사단의 권세들을 깨뜨리시고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큰 은혜가 나타나게 간절히 빌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눈물로 매달려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어제 설교한 내용과 만납니다. 싫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는 것이 기분이 나쁩니까. 성령의 권능을 받기 싫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소원은 아닙니다. 소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원이면 연애하는 사람이 너무 성공하고 싶은 마음, 사형선고 받은 사람이 너무 살고 싶은 마음, 자기 명운을 걸로 사업에 투자한 사람이 이제 망하면 내 인생은 없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소원입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아는 내용이 아니라, 이것을 하나님의 큰 은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런 기도제목을 놓고 목숨을 걸고 기도합니다. ‘내가 하늘을 열어서 하나님의 이상을 내가 보여주시지 않으면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특별히 임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내가 무엇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까. 주님의 권능이 나에게 임하지 않으신다면 내가 어떻게 저 완악한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진짜 탄식과 눈물이 나오게 매달릴 때, 그것을 가리켜서 소원이라고 합니다. 그 소원을 기도로 바라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통곡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갈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될 것을 꿈꾸며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수천 명의 한 명 정도 받을까 말까 하는데 나에게 그런 것이 이루어지겠냐고 포기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 누군가에게 하실 수 있었던 일은 지금 내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어떤 소원을 가지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해야 할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자기 자신이 준비해야 됩니다. 큰 꿈을 가지고 ‘내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기뻐하신다. 내가 여기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복음의 영광을 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간절한 하나님 앞에 바라야 할 기도 제목 세 가지를 알려드렸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말씀이 특별히 임하도록, 성령의 권능을 나에게 주셔서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금식하며 매달리며 기도할 때, 그 사역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설교하면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그 마음으로 전도하면 누가 하나님께로 안 돌아오겠습니까. 그 마음을 가지고 열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뜨겁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