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의 영혼을 강하게 하심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시 138:3)
녹취자: 김경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는 것은 선물이라고 지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는 것이 큰 선물인지를 말씀을 드림으로써 여러분들에게 기도 제목이 있는 것을 감사하게 하고 기도로 그 제목을 돌파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감격을 계속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합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 정도가 덜하고 어떤 사람은 그 차이가 너무 커서 구원의 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차이일 뿐입니다. 물론 오늘 이런 설교를 할 때 ‘목사님 저는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감격이 내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와서 예배 시간에, 기도 시간에, 섬기는 시간에, 성경을 읽는 시간에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안 그러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그래도 그것이 약해지는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조차도 살 소망이 끊어진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었고 구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 모세도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비는 때가 있었으니 욥도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의 제목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 환난, 위기라고 쓰고 읽을 때는 기도의 제목이라고 읽습니다. 아멘! 왜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밖에 믿는 것이 없으니까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시련이고 환난이고 고통이고 절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상황을 주시는 이유는 이제 너 자신을 믿지 말고 이제 너는 나만을 의지하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도 제목이 선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입니까?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기도 제목은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우리 자신이 몸부림치면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던 때는 문제가 없던 사람이 그렇게 기도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문제 때문에 그것을 기도 제목으로 삼아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신앙이 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에게 너무나 괴로운 기도 제목으로 삼아서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신 분이었고, 애통해하는 분이었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분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지 않는 세상을 보면서 가난한 심령이 되셨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보며 애통해하는 심정이 되셨으며, 허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통곡하셨고, 불의한 사람들 때문에 그 불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르신 분이 되신 것입니다. 어차피 이 기도 제목은 기도 제목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에 사로잡혀있을 때는 자기 기도 제목이 기도 제목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면 온 세상이 사람들이 고통받는 기도 제목이 기도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1900년대 전반부에 무디가 한창 활동할 때였습니다. 무디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이 모여서 기도 시간에 세계지도를 펼쳐놓았습니다. 기도 시간에 어느 한 지점을 찍고 온 신학생들과 교수들이 매달려서 자기들은 가보지도 못한 곳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면서 이곳에 하나님이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시도록 매달렸습니다. 놀랍게 그들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지도의 선을 따라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복음을 모르고 미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픈 마음이 기도 제목이 되었더니 그것이 온 전교생이 모여서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이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채플실에서 모여드리는 기도 그 자리에 펼쳐놓은 세계지도의 손가락을 따라서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없으면 기도 제목이라는 그 자체가 고통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러면 이 고통과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때 내 마음과 정신이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웅덩이가 아주 야트막해서 한 키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고개만 들면 보이는 것이 다 하늘입니다. 그런데 한 20m 되는 웅덩이 빠지면 입구가 아무리 넓어도 하늘은 동전만 하게 보이고 온통 굴속밖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깊은 시련에 빠지면 빠질수록 인간은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희망의 크기가 작아집니다. 그런데 땅을 보는 사람에게는 깊은 절망밖에 없지만 동전만 하게 보이는 저 하늘 꼭대기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희망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웅덩이에 있으나 밖의 세계가 있고 그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것이고 문제는 나를 누가 구원해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오늘 말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언제? 간구하는 그 날에 응답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일어난 문제를 이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원망하고 한숨만 쉬고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갈가리 찢겨서 망가지고 인간성은 피폐해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문제에 짓눌려 있는 사람치고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이것은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웃는 사람이 웃는 사람을 만나게 되지 자기가 불행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서 사람들에게 독한 말로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고 어쩌다가 만나주면 인생의 무거운 시련을 덤터기를 쓰듯이 다 쏟아 놓고 그 마음의 오물을 다 토해놓는데 누가 그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입니다. 절망의 말을 쏟아 놓으면 마지막에 돌아오는 것은 절망의 메아리밖에 없습니다. 먼 산을 향해 욕을 하면 돌아오는 메아리는 욕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하나님 앞에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좋으신 하나님이 이제껏 나를 사랑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아들을 주시기까지 나를 아끼셨으니 반드시 이 기도의 제목도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하나님 앞에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나는 오직 주를 의지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무릎을 꿇을 때 그때 하나님 앞에 간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쓸데없는 관심사를 모두 끊어야 합니다. 항상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일반적인 어려움이 있고 특별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어려움은 일반적인 기도로 해결이 됩니다. 특별한 어려움은 우리를 완전히 발가벗겨 하나님 앞에 세우시려고 하는 인생의 드문 위기는 우리 자신을 다 던져야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 앞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오늘 피 종진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한때 한국교회를 이끄신 부흥사셨습니다. 이제 연세가 많으신데 탄식하시면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후임 목사를 정했답니다. 목사가 내가 이제 담임목사가 되면 놀 시간이 없으니까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야겠다고 떠났답니다.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우리 때는 목회지가 정해지면 금식하러 기도원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시대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목사가 되면 놀 시간이 없으니까 놀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까?’라며 탄식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특별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때 하나님은 일반적인 기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특별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그때는 온 마음을 다해서 쓸데없는 것을 모두 끊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면서 오로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바로 믿음입니다. 왜 하나님이 응답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오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항상 생각이 짧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왜? 최선을 다해서 기도했고 온 마음을 바쳐서 기도했고 나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때로는 금방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찬송하게 됩니다.
(찬양)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놀랍습니다. 지하실에서 교인이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고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를 하도 길게 하니까 산소가 부족해서 교인들이 몇 사람이 기절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행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을 기절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를 옮겨야 합니다. 언덕에 보니까 제일은행이 들어있는 괜찮은 빌딩이 있고 그 정도면 우리 교인들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를 계약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날 저녁에 교회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한잠도 안 잤습니다. 그렇게 기도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께 확신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한 300평 되는 그것을 계약하려고 마음을 먹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시원한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새벽기도에 교인들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교인들은 갔습니다. 더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쳤고 배가 고파서 기도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교회가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없이 차를 몰고 당연히 이쪽 골목으로나 와야 하는 데 반대 골목으로 차를 몰고 정신없이 나간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가 ‘내가 미쳤나 왜 이 길로 가고 있지?’ 하면서 골목을 나오는데 저 앞에 근사한 교회당이 서 있는데 ‘월세, 전세 놓습니다.’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하면서 급히 교회 집사님에게 전화해서 복덕방에서 써 붙였을 텐데 써 붙인 데가 전화하면 500만 원 내지 1,000만 원이 복비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수소문해서 집주인을 찾았습니다. 전화했더니 그 교회가 건설업자에게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이 우리가 아는 것은 어리석을 수 있기 때문에 상상치 못했던 것을 보여주셔서 이루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침 8시에 그 빌딩을 보았는데 세수도 못 하고 돌아다니다가 밤 8시에 제직회를 해서 그곳으로 가도록 통과시킨 것입니다. 거기에 가서 200명 교인이 1,000명이 되어서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저 언덕 위에 있는 은행이 있는 빌딩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안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안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서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응답입니다. 그러니까 간절한 기도는 응답이 안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대로 응답해주시거나 바꿔서 응답해주시거나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때에 응답을 터트려주셔서 우리에게 더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까 우리가 문제가 생겨도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제껏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간구하고 내 마음을 모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응답해주실 것을 믿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용기를 가지십시오. 어떤 어려운 문제가 내 앞에 생겨도 나는 기도할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나에게 응답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좋은 것일 것이다. 아멘.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응답해주시는 것은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경만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하나님이 우리 내면의 세계를 고쳐 주십니다. 그것이 뭣이냐 하면 하나님이 영혼에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의 힘이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하겠는데…. 기도해야 하는데….’ 정신 속에서 계속 맴돕니다. 설교를 들으면 가슴에 찔립니다.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해야 하는데….’ 그런데 실천이 안 됩니다. 그것이 왜 그렇습니까? 영혼의 힘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기를 가졌는데 힘을 써서 그 아이를 배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는 안 나옵니다. 그래서 온 힘을 주어서 아이를 밖으로 쏟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면 산고라고 합니다. 그렇게 쏟아낼 힘이 없기 때문에 ‘할 텐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멈추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하는데…. 하는데….’ 삶으로는 불순종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받아야 하는데….’ 영혼은 병들어갑니다. ‘사명인데 섬겨야 하는데…. 섬겨야 하는데….’ 불충한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러는 동안에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면 영혼의 힘이 생기고 죄를 따라가면 영혼의 힘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울증 증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힘이 떨어지면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주일날 교회에 나올 힘도 없는 것입니다. 기도할 힘도 없고 성경을 펼칠 힘도 없습니다. 모든 일에 그렇게 힘이 없느냐 하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육체대로 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그 간절한 기도의 제목 때문에 부르짖는 동안에 하나님이 영혼의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영혼의 더러운 찌꺼기들을 쏟아내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은 우리 건강에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비결이 있다고 하는데 하루에 한 번씩 땀을 흠뻑 흘리고, 하루에 한 번씩 배꼽이 떨어질 정도로 깔깔거리게 웃고 데굴데굴 구르고, 하루에 한 번씩 통곡하면서 울면 건강에 최고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실험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고단하게 농사하고 운동을 막 하는 사람들의 땀을 받아서 분석을 해보고 사우나에 가서 슬슬 배를 문지르면서 흘리는 땀을 비교해 보았더니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은 거의 맹물에 가깝고,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은 온갖 중금속과 노폐물이 쏟아져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면 하나님이 내 영혼의 힘을 앗아가던 내 안에 있는 사악한 것들, 거짓된 욕심과 헛된 세상 욕망의 찌꺼기들을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밖으로 쏟아내 버리는 것입니다. 남편이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냥 남편을 보내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 아닙니까? 그러면서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온 비지땀을 쏟으면서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통곡하며 웁니다. 그 아내의 마음에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불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남편이 죽었을 때 병풍 뒤에서 웃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동안에 그런 영혼의 힘을 앗아가는 모든 찌꺼기들이 영적인 중금속과 정신적인 노폐물들을 간절한 기도 속에서 다 쏟아 내버리는 것입니다. 순수한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이 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능력을 받은 사람이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 능력보다 더 뛰어난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내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 품에 있습니다. 아멘. 그런 마음이 듭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쏟아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간구입니다. 그런데 간절히 매달리지를 않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땀은 흘리는데 운동해서 흘리고 몸부림치면서 땀을 흘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우나에 누워서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빠져나옵니다.
존 오웬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죄를 생각해보라. 모든 예배를 견뎠고 모든 기도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성경 읽는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모든 지식과 논리를 피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운명으로 여기고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빨래가 있습니다. 흔들면 물이 없습니다. 물이 안 떨어집니다. 그런데 짜면 물이 쏟아집니다. 이 물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찌기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건성으로 하는 기도는 그냥 흔드는 것입니다.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피의 펌프질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짜내면 더 쏟아집니다. 그런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하십니다.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셔서 어떤 두려움도 없게 하십니다. 그래서 능히 나의 기도로 이것을 돌파할 수 있다고 하는 확신하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그런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야겠다는 뜻을 세우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매달릴 때 하나님이 우리의 힘으로 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의 마음을 사용하셔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동은 우리가 걸지만 일단 시동이 걸리면 이 엔진은 자기 스스로 큰 폭발력을 내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간구할 때 영혼의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 일어나는 효과가 무엇이냐 하면 나를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강하다는 것은 힘과 관련이 됩니다. 힘에 꺾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함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수시로 우리의 마음이 연약해서 갈대처럼 출렁거리며 흔들립니다. 마음에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정함이 없다고 합니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으면 믿음으로 살고 싶고 세상에 나가서 이야기를 들으면 믿음을 떠나고 싶은 이런 마음으로 갈팡질팡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이 확정된 사람의 마음에 도움을 주십니다.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리라.’ 하는 확정된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26살 때 새벽기도에 가서 동네교회에 가서 기도하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됩니다. 너무 마음이 상하고 눈물이 나는데 아주 무지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12월 초였던 것 같은데 무지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다 보니까 목사님도 사라지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고 남의 교회였는데 콘크리트바닥이고 부실한 교회였습니다. 유리가 없어서 비닐을 압정으로 붙인 교회였습니다. 눈을 반쯤 뜨고 예배당을 보는데 너무 서럽습니다. 왜 이렇게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이 안 들어주실까? 그리고 혹시 내가 저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불쌍해서라도 도와주시지 않을까? 누구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서 콘크리트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엎드려서 얼굴을 바닥에 댔는데 내장까지 금방 얼어 오는 것 같은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그 추운데 난방은 1도 없고 이미 시간은 오래되었는데 땅바닥에 엎드렸으니 찬 기운이 치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 생기느냐 하면 내가 동상에 걸려서 다리를 끊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일어나나 보라 하는 오기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해주실 때까지 나는 여기서 동상이 걸려도 안 일어나겠습니다. 하며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원래 나는 소리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진짜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추운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성령을 깊이 체험하고 그날 제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하나님인가를 체험하고 은사를 경험하고 성령에 붙잡혀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이 생애적으로 깨닫게 만들어 주신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가슴에 칼로 아로새겨지듯이 새겨진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간절히 매달리는 사람을 강하게 해주신다. 강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강하게 하시고, 견고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을 굳게 세워주시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싶어 하는 사람을 확정시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가슴 깊이 새겨진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 힘으로 하는 것 같지만 않습니다. 하나님이 간절하게 하셔야지만 우리가 피를 토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스스로 내버린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모래성을 쌓듯이 모으면서 ‘하나님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는 너무 약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강한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매달릴 때 우리의 마음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우리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할 때마다 심장을 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 기도 제목 속으로 자신의 마음이 녹아들어 가면서 짜지는 것입니다. 짜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던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고 그것이 빠져나간 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만드셔서 웬만한 것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심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가 두려우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우리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은 나에게 응답하시는데 내가 설령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변장 된 것이고 내가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놀라운 일을 나에게 주실 것이다. 아멘.’ 하는 믿음이 이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하셔서 우리의 기도하는 그 손에 모든 상황을 붙여주셔서 내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놀라운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신자가 세상을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약한 영혼에 힘을 주시고 연약했던 여러분들을 강하게 만들어서 어떠한 세상도 여러분들을 굴복시킬 수 없는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