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교 종강예배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1:80)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녹취자: 백지영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특별히 본받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예수님이야 물론 본받지만, 바울을 한때 좋아했는데 결혼을 했더니 아내가 자기는 바울보다 다윗이 훨씬 좋다고,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다윗보다는 오히려 요나단이 더 매력적인 것 같고 바울보다는 바나바가 훨씬 뛰어난 것 같기도 하고 이러면서 여러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도에 성경을 읽다가 우연히 세례요한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실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책도 썼습니다. 지금도 아직 있습니다. ‘청중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설교자’라는 책인데, 그리고 평생 이 사람처럼 살다가 죽으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세례요한을 만나고 한 3년 정도 순교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순교할 게 있겠습니까? 선교지에 나가지 않는 한.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고, 그 후로 세례요한이 제 마음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는 때에 1990 한 4년쯤, 3년도에 교회를 개척하고 아마 4년이나 그때쯤 됐을 때인데 부산에 신학교에 집회를 내려갔다가 성경을 순서대로 누가복음을 읽게 됐습니다. 80절에서 제 시선이 딱 멈췄고 3박4일 동안 80절만 읽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만. 그리고 깨달은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노트북에다가 죽 적었는데 그 학교의 수련회를 끝나고 올라오는데 A4용지 40매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쓴 책이 오늘 여러분들이 한권씩 받아 가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라는 책입니다. 그 책이 1995년도인가 그때쯤 나와서, 년도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개척하고 얼마 안 돼서 그 책이 나왔고, 그 책이 두란노에서 나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이제까지 50번을 이 책을 찍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 내용들을 여기서 다 하자면 시간이 너무 가니까 골자만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고 신약시대 예수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굉장한 능력으로 말씀사역을 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오시는 앞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사역에 있어서 아주 뛰어나게 성공한다고 그러면 그 성공한 것을 우리들은 주목하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 뒤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가를 잘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준비가 없는 성공은 없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똑같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사역으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오실 앞길을 내는 역할을 했지만,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긴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례 요한은 어렸을 때 광야로 보내집니다.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는데, 부모가 살아있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된 나머지 광야로 보냈다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그게 아니라 부모는 일찍 죽었고 이 아이는 아마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광야로 보내졌을 것이고 거기에서 경건한 집단 속에서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선지자가 될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광야에 사는 동안에 그 어린아이가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그리고 어른이 된 다음에 광야에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고 예루살렘에 종교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아이가 자라며” 그랬습니다. 성장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준비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로 뭐냐 하면 육체적으로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점점 자라서 완전히 어른이 된 다음에, 그렇게 육체적으로 성숙한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라 다 자란 성인이니까 육체적으로 더 성장할 일은 없겠지요. 늙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의 정신과 영혼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목회하기 전까지 저는 너무너무 건강했습니다. 목회한 후에도 50대 중반 될 때까지 평생소원이 병원에 한번입원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12년 동안 11번을 입원하고 10번을 수술을 했습니다. 몸무게를 20키로 그램이나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은 늘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살고, 예전에는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력이 다 흐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래서 교역자들도 많이 혼내고 그랬는데, 지금은 약한 사람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건강을 잘 관리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운동을 열심히 하십시오.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빌려서 쓰면 되고, 자기가 잘 컴퓨터를 못하면 컴퓨터 잘 하는 사람 쓰면 됩니다. 그런데 건강은 남의 것을 빌려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뭣도 모르고 아직 젊으신 전도사님들 운동도 안 하고 먹는 것도 소홀하고, 금식을 또 밥 먹듯 하고 했습니다. 우리 때는. 학기 끝나면 그냥 일주일은 무조건 금식입니다. 한 학기 끝나면 기도원에 가서 한 학기를 돌아보면서 영혼의 때를 털어내고 또 성경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겨울에는 한 학기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서 영혼의 때를 털어내고 신년도 목회계획에 복을 주시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추운 기도원에 가서. 그렇게 하면서 건강을 많이 상한 것이지요. 그러지 마시고, 지금 운동 많이 하시고 잘 드시고 건강관리를 잘하십시오. 우리 교회도 여전도사님들 계신데 보면 건강이 안 좋으신 분들은 늘 사역하는 게 걱정이 되고 힘이 듭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건강해서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열렬하게 사역을 하시도록 건강을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과 함께 육체를 위한 준비에는 순결도 들어갑니다. 순결. 그래서 순결하게 살아서 건강하고, 그래서 항상 무엇을 일을 맡겨주시든지 간에 가서 열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때, 그때 교인들도 모이고 또 좋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준비는 뭐냐 하면 인격적 준비입니다. 목회라고 하는 것은 광야에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함께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실력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실력도 속이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격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에 완벽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그러니까 목회하기 전에 하나님 은혜를 많이 받고 끊임없이 예수를 닮아가던 사람들이 목회를 하면 교인들에게 상처를 덜 줍니다. 이해심이 많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은 가는 그런 인격적인 사람이 되어 가야 하는 것이지요.
혹시 여러분 나다니엘 호든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책을 보셨습니까? 거기 보면, 어린아이가 한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는데 큰 바위가 사람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인자하고 아름답습니다. 전설이 내려오기를 이 동네에는 저런 훌륭한 사람이 태어날 거다, 그래서 그게 누굴까 너무 궁금해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리고 데려왔는데 돈을 많이 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전투에서 이긴 장군을 데려와서 이 사람이 이 동네 사람인데 저 큰 바위의 얼굴하고 닮지 않았냐고 그런데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고 이 소년은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보면서 저 사람이 큰 바위 얼굴하고 똑같이 생겼다고, 그 사람은 그냥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사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큰 바위 얼굴을 보면서 자랐더니 모르는 사이에 큰 바위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닮게 하시려고 고난도 주십니다. 고난이 아니면 닦여질 수 없습니다. 산에서 바위를 떠내고 나면 바 위덩어리에 불과하고, 요즘은 모르겠는데 한 20년 전에 1톤에 20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고 그랬는데, 그 바위를 깨뜨려서 조각을 만들면 그 가격은 얼마일지 예술가의 손에 달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 앞에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져 갈 때 그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더 닮아가고, 예수님을 닮아 가면 닮아갈수록 우리는 진짜 명품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고난을 주십니다.
지금은 너무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가난했습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등록금은 45만 원인데 한 달에 교회에서 주는 생활비는 7만 원이었습니다. 계산적으로 육칠이 사십이 해도 등록금이 안 됩니다. 아르바이트? 주의 종의 길을 가면서 그런 것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또 직장도 다니고 있었고 그러다가 그만뒀지만. 어쨌든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많은 연단을 주십니다. 학부는 저는 야간 신학교를 다녔고 총신신대원 MDV를 들어갔는데, 얼마나 가난한지 영양실조로 두 번인가 세 번을 쓰러졌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쓰러지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건장한 청년이, 청년은 아니지만 그때 건장한 나이에 제대로 못 먹으니까 영양실조가 온 것입니다. 지금도 신학교 다니는 학생들 보면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선배들은 훨씬 더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찬양)
시시때때로 주만 봅니다.
그래서 많은 눈물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역이라고 시작을 했는데, 교회도 조그만데 일은 어떻게 많은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교회 난로 여섯 개에 불을 때고 그리고 4시 반에 있는 새벽기도를 기다려야 됩니다. 단 하루도 예외 없습니다. 제대로 안 해 놓는 적도 없었지만 제대로 안 해 놓은 날은 목사님한테 불벼락이 떨어집니다. 심장병까지 얻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지금도 저는 전화벨 울리는 게 그렇게 싫습니다.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거기서 들려오던 담임목사의 그 화내는 목소리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가 돼서 지금도 전화 벨소리, 고전적인 전화 벨소리 ‘따르릉’하는 것 너무 듣기 싫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연단 속에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울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왜 전도사님은 기도만 하면 울어요? 어디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매일매일 안 좋은 일이 생깁니다. 매일매일 안 좋은 일인데, 하나님이 그 안 좋은 일을 사용하셔서 매일매일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괴로워서 울다가 시간이 지나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너무나 커서 눈물 흘리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간절한 소원이 예수를 닮는 것이었습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주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하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야간 신학교 다니고 직장을 다니는데 새벽기도를 동네 교회를 나갔습니다. 사역하는 교회는 너무 거리가 머니까. 가면 3분의 2는 하여튼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고, 내가 이렇게 약하고 이렇게 모자랍니다. 울고 나면 하나님이 항상 위로를 주셨습니다. 항상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간 것이 신학교 교수가 되고 목회를 한 다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고난이 오거나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때마다 그때 기억을 더듬으면서 하나님 앞에 참는 법을 배우곤 했습니다. 이 고난만 받는다고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이제 그 고난을 소화해 내면서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하면서 인격적으로 그렇게 다듬어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지성적 준비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성경과 학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육체적인 준비가 건강과 순결이라면, 인격적 준비는 성품과 생활에 관한 것이고, 그 다음에 지성적 준비는 성경과 학문에 관한 것입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성경, 학문.
그래서 성경을 신학교 다니는 시절에 꾸준히 읽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신학교 졸업하기 전에 성경을 백독하라 그러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만 읽으면 되는 게 아니라 학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지요. 백독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성경을 꾸준히 읽어서 성경에 익숙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친숙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만 읽으면 신학교 다닐 때 4년하고 3년 하면 일곱 번을 읽을 수 있고, 열심을 내서 1년에 두 번 정도는 읽는다고 하면 7년 동안 14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열심을 내면, 세 번씩 읽는다면 아마 21번 정도 읽을 수 있겠지요. 그렇게 하면서 목회하면서 성경에 친숙한 사람이 되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좋은 스터디 바이블을 옆에다 펴놓고, ESV 같은 그런 좋은 바이블을 놓고, 성경을 보면서 의문 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찾아가면서 성경 어디를 물어봐도 이해할 수 있게끔 그렇게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학문을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하는데, 학문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뉘는데, 성경을 해부를 해서 성경 주변의 학문이 있고, 그 다음에 그 학문 주변의 학문이 있습니다. 그 주변의 학문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 과학, 이런 것입니다. 그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면 신학의 여러 과목들이 있는데, 크게 분류를 하면 성경 신학, 그 다음에 조직신학, 그 다음에 교회 역사 그러니까 역사신학, 실천신학, 이렇게 네 개의 큰 부류로 나눠집니다.
우선 성경 신학은 구약성경신학과 신약성경신학이 있습니다. 성경 자체 안에서 구원의 계시가 어떻게 여러 가지 빛깔을 가지고 발전해 오는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쉬운 책만 보면 안 됩니다. 교수님들이 추천해주는 아주 정평이 있고 많은 사람이 보는 정통신학을 다루고 있는 책들 중에서 성경 신학책을 선택해서 좀 어려워도 하나하나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혹은 자기 스스로 공부하면서 그러면서 좀 어려워도 그 책을 이해하려고 읽어나가야 됩니다. 성경 신학에 관한 책들. 그러면 아주 다양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두 번째가 조직신학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성경 전체에 흐르는 뼈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뼈대가 없으면 아무데나 담는 대로 모양이 되겠지요. 뼈대가 없으면 낙지나 문어 같은 것들은 접시에 담으면 넓적하게 되고, 컵에 담으면 길쭉하게 되고, 동그란 유리병에 담으면 동그란 모습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이것이지요. 성경적으로 뼈대가 분명하게 서있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성경, 종교, 계시, (이렇게) 성경을 다루는 서론부터 마지막에 하나님, 인간, 예수 그리스도, 타락, 구원, 교회, 종말에 이르는 이 조직신학의 주제들을 충실하게 배워가야 됩니다. 그것도 정통적인 개혁신학에 서있는 라인의 책들을 읽어가야 됩니다. 그런 책들이 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아도 읽으려고 애를 쓰면서 전문가로서의 자격들을 쌓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신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신이 철학이나 다른 일반학문에서 뭐가 부족한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학문들을 공부해가면서라도 하나씩 하나씩 공부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을 공부하면 성경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도 딱 펼치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죽 얘기할 수 있는 지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사도 시대부터 시작해서 속사도교부들 시대, 그 다음에 초대교부 시대, 어거스틴을 정점으로 꺾어지는 중세교부의 시대, 그리고 중세가 끝나고 나서 그 다음에 르네상스시대, 그 때에 마르틴 루터나 종교개혁가들의 시대, 그리고 종교개혁가 이후의 개혁파정통주의 시대,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의 신학자들, 그리고 근대의 신학자들, 현대의 신학자들, 이렇게 모든 것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책을 차례대로 읽고 여유가 생기면 그다음 책들을 읽고 이렇게 하면서, 저쪽 속사도교부들의 시대로부터 어떻게 역사 속에 기독교 신앙이 해석되고 흘러 왔는가 하는 것을 반드시 공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그 다음에 다양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교파들이 있는데 어느 부분까지 관용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으며 어느 부분까지는 받아들여 줄 수 없는지에 대한 분별력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천지 같은 것들에 교역자들이 오히려 빠져 가지고 교인들을 데리고 신천지로 가고 막 이러는 교회들이 우리 주위에서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모두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생겨나는 커다란 폐해입니다. 그렇게 교회사를 공부하고, 또 교회사들 속에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좋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인물들에 대한 공부를 죽 하면서 그러면서 그 인물들로부터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의 분야가 실천신학입니다. 선교, 교육, 상담, 교회행정, 교회정치, 이런 것들이 소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책들 읽어가면서 소양을 쌓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문학, 역사학, 철학, 사회, 또 가끔 영화도 보면서, 비판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왜 사람들은 왜 저런 ‘헤어질 결심’ 같은 영화에 열광을 할까? 왜 사람들은 아바타2 같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엄청난 기대를 하며 기다릴까?” 이런 것들을 자기가 독특하게 해석해 나갈 때 이제 그 사람들에게 적실성 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하면서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고 공부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성을 위해서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공부한 것을 모두 성경으로 돌아오게,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을 설교할 때 어떻게 그 학문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을 풍성하게 설교할 수 있겠는가? 그런 훈련을 끊임없이 쌓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다룰 수 있어야 되겠지요.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주변에 있는 사람하고 자기를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기록이 22시간 동안 책상에서 안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에세이를 쓰는데, 책상 밑에는 오강을 갖다놓고 위에는 물 하나, 빵 한 덩어리 그리고 스물두 시간을 썼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록은, 똑같이 오강과 빵, 물을 갖다놓고 히브리어 성경을 17시간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노력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지만, 여러분들은 좋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늦게 시작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서 그것을 만회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을 쓰시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쓰시지는 않으십니다. 열심히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사랑하면서 시종일관 학문에 열심을 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성적인 준비이고, 그 다음에 네 번째가 되는데 정서적인 준비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사랑과 열정입니다. 보면 교역자들이 열정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병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취미에 빠져도 사람이 열정적이 되는데 사역을 하는데 열정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뭘 해도 안 됩니다. 진짜 백화점에 가도 누군가 열심히 물건을 파는 사람의 손에 이끌리게 되고, 횟집이 죽 있어도 열렬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집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게 마련입니다. 결국, 목회에 들어섰는데 열정이 없다는 것은 주님을 깊이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사무치게 되면, 그러면 열렬하게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렬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엾은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랑과 열정의 중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또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깨달을 때, 그때에 하나님 앞에 깊이 깨뜨려지면서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을 매일 유지하며 사는 삶, 그것이 신앙에서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들 신학교 들어올 때 누가 가라고 해서 왔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감동시켜서, 그래서 내가 다른 일은 소용없고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거저 받았으니 이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서 그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십자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그것을 유지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 펑펑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가 목회에 성공할지는 모르겠는데 진실한 종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 못하면 한번,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두 번째는 그런 죄인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만 할 수 있다면 절대로 목회에서 미끄러지지 아니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눈물의 종이 되십시오. 눈물의 종. 그래서 우리 전도사님들 보면 누가 목회 잘하는 순서냐, 많이 눈물 흘리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순서로 목회를 잘 합니다. 그래서 눈물이 있는 신앙생활, 목회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런 열정을 가지고 열렬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그래서 저렇게 설교하다가는 쓰러져서 죽겠다 할 정도로 열렬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그런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야간 신학교가 저기 청파동에 서울역 있는데 있었습니다. 밤에 10시 10분에 수업이 끝납니다. 끝나고 나면 11시까지 기도하고 마지막 전철을 탑니다. 그리고 거기서 전도를 했습니다. 얻어맞을 뻔도 하고 끌려 나갈 뻔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 4년 내내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도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는가? 그래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열정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그 영혼을 돕기 위해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열렬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목회하면 바로 그게 생기냐? 안 생깁니다. 그래서 틀림없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확실하게 주님을 만나고 평신도가 된 사람, 그 중에서 아주 열렬하게 교사 생활을 했던 사람, 그 중에서 신학교 들어간 사람, 그 사람을 교육전도사 시키면 틀림없습니다. 교육전도사 시절에 눈물로 사역하던 사람은 부목사 시키면 틀림없고, 그렇게 눈물로 목회하던 사람을 담임목사 시키면 잘합니다. 지금도 날라리 같은 사람 많지만 진실한 종도 정말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정말 아름다운 영혼으로 섬기는 사람들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사랑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영적인 준비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자랐는데 자랐다고 해서 저절로 사역을 하게 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3장에 보면 뭐라고 나왔느냐면, 3장 한번 보십시오. 이렇게 나옵니다. 2절에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을 때 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한 성령의 능력으로 준비돼야 되는데, 그게 하나님이 한 번에 주신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이 지나면서 마지막에 화룡점정 하는 것처럼, 이제 용을 그려놓았는데 마지막에 눈동자를 찍으니까 용이 되어서 날아갔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마지막으로 주의 종으로 인 쳐주시는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깊은 은혜의 체험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성령 충만함을 받고, 광야에서 외쳤는데도 사람들이 나와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려고 애쓰고, 그리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나의 신분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을 하고 하나님이 저를 또 특별히 교수로 부르셨습니다. 만 서른두 살에 교수가 됐습니다. 전임교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살아오다가 개척의 소명을 주셔서 개척을 했습니다. 7명이 교회 지하실에서, 두 번 교회가 문 닫고 간 장소에서 개척을 해서 내년이 꼭 30년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별의별 일들이 다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약할 때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잘못할 때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은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인도해 주셔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쉬지 않은 것이 공부하는 것과 그 다음에 설교하는 것과 그 다음에 기도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멈추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분명히 말하는데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한 것이 저의 목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는 시련이 있습니다. 연단이 있습니다. 그렇게 연단 하면서 우리를 다루시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으로 녹여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듯이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지금도 목회만 생각하면 너무 겸손해집니다. 성공했다? 말할 수 없고, 그리고 지금 내가 잘 해왔다? 말할 수 없고, 또 그랬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잘 할 것이다? 말할 수 없습니다. 매순간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살아가게 되고 그러다가 보니까 교회 개척 한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30대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30년의 세월이 금방 지나갑니다.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에 갔는데, 베이징에 교회가 있었는데 오천 명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담임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중국인이지요. 옆에 통역이 얘기해 준 것입니다. 이분이 젊은 나이에 신학교를 가서 목회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게 이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종교탄압도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졸지에 목회하다가 끌려가서 15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강제노동교화소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고된 일을 하면서 징역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15년 동안 가족들하고 한 번도 연락을 못하게 했습니다. 15년 만에 만기 출소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와서 집에 와 보니까 집안이 썰렁하고 마당이 휑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동네 사람이 와서 얼굴을 알아보고 교인들이 얘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끌려간 후 교회는 문을 닫았고, 당신 큰아들은 공산당원이 됐고, 공산주의자가 됐고, 둘째 아들은 마약중독자가 됐고, 그 아들을 보면서 당신 아내는 화병으로 죽었다, 그래서 여기 지금 아무도 없다, 그 광경을 보면서 너무 슬퍼서 땅바닥에 엎드렸답니다. 그리고 통곡하며 우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찬양)
요한의 아들 시온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
통곡하며 우는데 예수님이 물으시는 것입니다. “얘야, 이래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이 통곡하다가 대답했답니다. “예, 주님 제가 이래도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그게 목양의 정신입니다. 다 사라집니다. 명성? 명성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유명한 것도 지나가고 마지막에는, 그저께인가 김선도 목사님 돌아가셨습니다. 큰 별들이 다 돌아가셨습니다. 옥한음 목사님, 그 다음에 정필두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마지막에 죽을 때도 우리가 간직하고 가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던 깨끗한 영혼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학장님 동생 김인환 총장님 하고 저하고 너무 친했습니다. 정말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여행도 많이 하고 사역도 많이 하고. 암에 걸려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형님 목사님한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기도를 부탁하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마지막 그 찬송을 부르고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이름 없는 신학교지만, 저도 이름 없는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대학도 아니었습니다. 겨우 학력 인정을 받는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총신도 못 들어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숨 거둘 때까지 예수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 이 우리 인생의 도리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믿음으로 순결을 잃지 않는 신앙생활, 목회 생활 해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