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천국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13:51~52)
녹취자: 김재혁
제가 전도사 생활할 때 내수동교회 박희창 목사님이 항상 이 구절을 읽으실 때마다 “저는 아직까지도 이 구절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시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저도 이 구절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안 것을 생각하면 이제 이 구절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이 구절이 그 유명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는 13장에 거의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들의 관심이 더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온다 그러는데 이게 뭔지 정확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나름대로 근사하게 우리들이 추측을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모세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 이 두 가지를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이렇게 우리들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맨 앞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리고 물으시다가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거기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천국에 관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너무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을 너희가 깨달았느냐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가르침이 새 가르침인데 그런데 이 새 가르침은 당신의 창작품이 아니라 옛 가르침과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세의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완성이 나에 의해 주어지고 있으니 이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너희에게 주는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런 뜻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확실하게 듭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천국과 지식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지식과 천국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너희가 이걸 다 깨닫겠느냐,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이걸 못 깨달으면 사실 너희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진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과 지식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누가 인터넷에다가 내 욕을 아주 잔뜩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설교가 그렇게 길고 알아들을 수 없이 어렵고 하여튼 짜증이 난다고 막 썼습니다. 지금도 가보면은 그 인터넷에 아직까지도 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자기가 열린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그리고 이제 다닌 기간이 뭐 2005년도 20066년도인가 뭐 2년인가 다녔다고. 그래서 제가 며칠 동안을 기도, 그런데 그런 걸 응답을 안 하는 사람인데 이거 너무 짜증이 나서 응답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일수록 글을 쓸 때는 아주 예의 바르게 그리고 감정을 가라앉혀서 써야 됩니다. 그런데 이제 격정적으로 쓰다가 보면 항상 그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천천히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논파했습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진리에 대한 앎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진리에 대한 앎을 우리의 삶의 체계로 삼을 때 반드시 논리가 필요한데 그 논리를 배우지 않고 어떻게 우리들이 사상을 가질 수 있으며 사상이 없는 사람이 정서적으로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지만 어떻게 신념을 가질 수 있겠느냐? 그걸 지금 제가 봐도 정말 잘 썼습니다. 하나 하나 논파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대표적인 사람이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입니다. 그래서 그때도 그랬습니다. “목사님 설교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아주 냉정하게 그 사랑이 많은 목사님이 냉정하게 “천국은 당신이 가기에는 너무 높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지식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들이 양극단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한쪽은 지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그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시를 써 놓은 것을 보겠습니다. “상전이 종에게 너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느냐 하고 야단을 쳤다. 종은 그 낫으로 주인의 목을 베어 죽였다.” 이러한 시입니다. 이렇게 지식을 완전히 멸시하는 그런 풍조도 잘못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호기욕. 뭔가 쓸데없는 것인데도 알아보려고 온통 촉각이 서 있는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John Wesley)가 자기가 인생을 시간을 절약하면서 사는 방법을 9가지 원칙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거기에 나오는 게 쓸데없는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욕을 갖지 말자. 그럼 그거를 알기 위해서 쓸모없는 시간을 많이 소비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제 그런 점에서 이제 이 지식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서기관은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 대개 서기관이 되었습니다. 이 서기관이 하는 일은 굉장히 방대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냥 뭐 성경 베껴 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 원래 서기관은 왕명을 출납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보관하고, 심지어 군인들을 징집하고 공증을 서고, 그다음에 성전의 창고를 관리하고 성경을 그렇게 그런 방대한 사법적인 업무를 왕궁에서 담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쫄닥 망했잖습니까?. 망하고 나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돼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게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서기관이 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능이 이제 그런 거 다 할 수 할 게 없으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율법 성경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필사하는 일, 양피지 같은 데다가 베낍니다. 그런데 그게 보통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양피지를 진짜 양을 잡아서 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소를 잡아서 많이 썼습니다. 소가 면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한 번 정도 잘못 쓰면 고치면 되지만, 이게 세 번 네 번 잘못 쓰게 되면 그냥 가죽이 구멍이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소 한 마리에서 두 개밖에 안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가족을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뱃가죽 같은 부드러운 가죽만 쓸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쓰고, 쓰다가 보니까 그다음에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대부분 바리새파 사람들이었고 이 사람들이 산헤드린 공의회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어서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해석을 하다가 보니까 자기 학파에 따라서 새로운 전승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승이 성경보다도 더 중요하게 취급이 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냐?” 그다음에 “사람의 유전이 중요하냐?” 할 때 그 사람의 유전이 이 서기관들이 만들어낸 그런 구체적인 삶의 조항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천국을 말씀하시면서, 그 천국이, 성경 한번 보시겠습니다. 제가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그냥 서기관이 아닙니다. 이게 뭐냐 하면 천국의 서기관인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임하게 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백성이 된 서기관은 집주인과 같다. 집주인이 무엇입니까? 자기 집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아 창고에 뭐가 있는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종들을 보내면 헤매도 주인은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창고에 가서 옛것과 새것을 자유롭게 꺼내오면서 필요한 사람들이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거를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적용을. 제일 먼저 이것을 이제 우리는 개인에게 적용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목회자로서 또 성도로서 또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회의 지체로서 천국과 관련지어서 어떤 지식을 가져야 되는가 하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몇 년 전에 아펠도른 신학교(Theological University of Apeldoorn) 총장인 헤르만 셀더하위스(Herman Johan Selderhuis) 교수가 와서, 그분이 마르틴 부처 (Martin Bucer)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스승이 바로 도서를 나한테 일평생 본 걸 넘겨주신 스파이크 교수님이 그 총장님의 스승입니다. 그런데 마르틴 부처의, 그는 사실은 칼빈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스트라스부르의 목회자였는데 그분이 그 한 이야기를 그 강의를 통해 들려줄 때 우리 모두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선지자직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말씀에 봉사하는 직위인데 이것은 목회자에게만 고유한 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나눠져야 할 봉사의 직분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거는 뭐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카톨릭의 치하에서 생각해보면 개신교의 아주 놀라운 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제들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카톨릭이 따라올 수 없는, 숙명만을 강조하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풍성, 물론 그 속에서 성경 해석이 자유로워지니까 오류도 생겨나고 분파도 생겨나고 하는 문제들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풍성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누구든지 지체들을 만나서 말씀을 배울 수 있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면 이것은 놀라운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냐 하면 새것과 옛것을 자유롭게 꺼내서 나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데 이바지하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보람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결국은 착한 행실을 하는 것도 결국 그게 착한 일 하려고 마음을 먹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는 삶의 체계 때문에 그 사람이 입게 되는 혜택입니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고 막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상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 선행이고 그걸 말로 표현한 것이 가르침입니다. 그 두 개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이웃을 위해 봉사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것 그게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의 임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을 바리새인처럼 샅샅이 알고 있는 그것만을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그걸 실제로 옛것과 새것을 자유롭게 꺼내서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데 이바지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제가 강조할 때 걱정하는 건 호기욕의 지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진짜 진리에 관한 지식들의 집중하면서 우리들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회적으로 접근하는 걸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클로비스(Clovis)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클로비스는 누구냐 하면 메로빙거(Merovingian) 왕가의 유력한 왕이었습니다. 역사의 무대가 어떻게 됐냐 하면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의 이동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그런데 게르만족은 왜 이동했냐 하면 흉노족이, 훈족이 쳐들어와서 그래서 결국은 밀려나고 그 밀려난 게르만족이 로마를 멸망시킵니다. 뭐 복잡한 이야기가 있는데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훈족이 흉노족입니다. 흉노족의 모태가 유력한 연구자들에 의하면 단군 조선의 후예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게 단군 조선이 활동했던, 그 단군 고조선이 망하고 나서 그 후손이 퍼져서 활동했던 그 무대를 역사적인 증거를 유라시아 대륙에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나라는 망했는데 그 민족은 퍼져서 문화를 계속 전파하고 결국 흉노적의 모태가 되고 훈족이 되어서 그게 이제 말하자면 게르만족을 무너뜨리고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로마는 썩을 대로 썩어 있었고 이미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향락을 누리고 결국은 더 이상 정복을 안 하니까 돈이 안 들어와서 게르만 용병들을 썼는데 월급을 못 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제 이렇게 월급 못 받고 죽을 바야 우리가 가서 한번 싸우고라도 죽자 하고 쳐들어갔더니 다 도망가 버리고 로마가 점령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소위 프랑크 왕국이라는 것이 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 클로비스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클로비스 왕의 부인이 아주 신실한, 게르만족들이 역사적으로 게르만족들이 로마를 함락시켰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그 게르만족들이 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서로마 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클로비스가 이제 아주 중요한 전투를 앞뒀는데 콘스탄틴(Constantine) 대제하고 똑같은 그런 꿈을 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하고 똑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다 하고 거기서 승리하면서 클로비스가 이제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정복을 열심히 정복을 하면서 정복하는 곳마다 가서 “내가 너에게 선택지를 주겠다. 예수를 믿을래 아니면 여기서 죽을래”’ 이렇게 선택지를 주면 이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다 예수 믿는다는 그런 식으로 해서 나라를 프랑크 왕국을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판도로 통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통일할 수 있는 기반으로 놓고, 그 사람 당사자는 뛰어났지만 후손들은 별로였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왕보다 똑똑한 재상이 태어나게 됩니다. 칼 마르텔(Karl Martell)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들인 피핀(Pippin)에 와서 아예 그냥 반란을 일으켜 버리고 메로빙거(Merovingian) 왕가를 접수해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생기게 된 것이 카롤링거(Carolinger) 왕가입니다. 그 피핀이 세워지고 그 피피의 후손 아들인가 어떤 자료에는 아들이라 나오고 손자로 나오고 그러는데 손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카롤(Carolus) 대제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 이름을 따서 이제 카롤링거, 여러분들이 이렇게 세계사 시간에 배운 샤를마뉴 대제, 카를루스 등등 다 같은 이름이에요. 그 사람이 등장을 하면서 결국은 이제 그 제국을 다 통일하고 서로마 제국을, 무너진 서로마 제국을 다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800년입니다. 연도도 외우기가 좋습니다. 800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제 로마 교황이 아무 세력도 없지만 남아 있었는데 롬바르드(Lombards)가 쳐들어오니까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피핀이 가서 싹 쓸어버리고. 거기를 직접 다스릴 수가 없어서 “교황님이 챙기십시오” 그러고 돌아옵니다. 카롤 대제 때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가서 다시 정복하고 그 다음에 교황에게 줍니다. 교황이 동쪽에 교황이 있지만 서로마에도 당신 이외에 황제를 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해서 이제 이 사람이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런데 이 사람이 소위 얘기하는 카롤링거 왕조의 문예 부흥 시대 이룹니다. 이것이 이후의 세계사에서 물줄기를 바꿔놓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양 사상의 유산이 대부분 카롤링거 왕조에서 만들어졌다고 그래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은 르네상스처럼 대중적인 르네상스가 아니라, 상류층들의 한 1% 정도의 문예 부흥이었습니다. 너무 재밌는 것은 뭐냐 하면 위대한 왕이었고 그 어마어마한 제국을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롬바르디아(Lombardia)부터 시작해서 저 위에 스페인 있는 데까지 다 통일했지만, 그런데 문맹이었습니다. 글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정설인지 설인지 나도 모르지만, 사인(sign)이 그때 생겨났다고 합니다. 왕이 자기 이름을 못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 부족의 상징이라 해놓고 소대가리를 하나 이렇게 그려놓는 것, 그것이 유행이 돼서 다음에는 문자를 알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그림 같은 것을 쓰는 것이 사인의 유래가 됐다 그럽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지 어쨌는지 그 사료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떤 그런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왕이 되었고 탁월한 지도자였고 부하들도 엄청 용맹했습니다. 이제 다 기독교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작용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죽을래 믿을래 그러고 했으니까 처음이야 다 칼에 굴복해서 다 예수 믿는다고 했는데, 이게 이제 뭐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세금도 안 내겠다고 그러고 특히 작센(Sachsen)주 같은 데서는 이제 반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 하니까, 부하들이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하니, 왕이 “어떻게 해결하려 할래?” 하니, “내가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하는데 자기 민족인데 쓸어버리기만 하면 어떡하겠습니까? 그것은 해결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맡길 사람이 없는 쉽게 얘기하면 그 넓은 제국을 정복했는데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를 일본이 점령했을 때 친일파하고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대 때에 일했던 사람들을 다 불러들여서 최고위급은 안 맡기고 그 아래에 실질적인 모든 일들을 그 사람들이 다 자기가 멸망시킨 사람들을 등용해서 다 관리로 채용해서 그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가 돼서 나라를 움직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롤대제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국을 이렇게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을 제대로 교육시킬까 생각을 하던 차에 이탈리아의 어느 종교회의를 가게 됩니다. 거기 갔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토론들이 진행됩니다. 그중 어떤 한 사람이 나오더니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데 “성경의 그 말씀은 사실은 히브리어는 이렇게 돼 있고 그리스어로는 이렇게 돼 있는데 이렇게 쓰는 건데 이게 원래 뜻은 이렇고 원래 뜻은 이렇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이런 쪽으로 결론이 나야 마땅합니다.”라고 달변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거기서 그리스 문자도 칠판에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보고 아주 감탄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누구냐? 저런 사람에게 우리나라의 교육을 맡겨야 되겠구나.” 그 사람이 알키노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영국 출신이었습니다. 영국 요크셔 지방 출신인데 그 사람이 어떻게 유식한 사람이 됐냐 하면 베네딕토(Benedict) 수도회라고 아십니까? 나중에 기회 있으면 한 번 얘기해 드릴 텐데 우리나라 분도 출판사의 분도라는 말이 이것이 베네딕토입니다.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베네딕토 수도사들에 의해서 영국이 선교가 됩니다. 선교를 갔는데 그 사람들은 굉장히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너갔는데 거기서 만든 아주 훌륭한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학생이었습니다. 탁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이 이제 이쪽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그 사람을 눈여겨보고 그 사람에게 이 서로마 제국의 교육 정책을 맡겨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런데 이 사람하고 대화를 해야 되는데 글을 못 읽습니다. 이건 너무 창피해서 자기가 문맹자라는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왕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이제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글을 터득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알키누스를 초청합니다. 그리고 이제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이 나라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이야기하면서 이 나라를 계몽할 수 있는 교육의 책임자가 돼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알키누스가, 당연히 사제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을 하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헌신을 하기 위해서 현장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실망을 하고 좌절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왕에게 와서 “왕이여, 큰일 났습니다. 왕께서는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하는데 책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넓은 그 왕국 전체에 있는 책이 요크셔 지방에 있는 도서관 한 개의 책의 분량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뭐가 문제냐, 지금부터 하면 되지 않냐” 하니, “이제 지난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랬더니 “알았다. 그러면 시작하자” 그러니까 “왕이여, 지금부터 소와 양을 키우셔야 합니다. 많이 키우셔야 합니다.” 왕이 “아니 왜 도서관을 만들자고 그러는데 무슨 양과 소를 키우라 그러냐?” 그것은 그 당시에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양피지하고 파피루스였습니다. 그런데 파피루스가 생산되는 지역은 이슬람이 다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도 문명이 굉장히 발달했기 때문에 미친 듯이 자료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만들어내는 파피루스의 양이 아예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을 내려 우리가 쓰기도 모자라니까 이걸 절대 아무리 비싼 값이라도 해외에 반출하는 자는 처형한다 그러니까 이제 쓸 수 있는 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또 이게 파피루스 같은 것들이 많이 자라는 게 대부분 이쪽 이집트와 이쪽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없이 이제 양피지를 쓰는데 이게 소 한 마리를 잡으면 두루마리 두 개 나온다고 합니다. 양은 더 조금이었습니다. 여기 이런 데 막 상처도 나고 하니까 이 부분을 배 부분을 잘라서 이제 양피지로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책 한 권 쓰려면 소 한 백오십 마리를 잡아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책 한 권의 물량이 그러니까 막 수없이 소리를 키면서 납품을 받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필사들을 동원해서 이제 옛날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 학문에 관한 자료들을 이제 막 수많은 필경사를 동원해서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잘 못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전문적으로 평생 훈련을 받아야 되는데 급히 충원을 하다 보니까 이게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죽을 자꾸 망치는 거예요. 그래서 요크셔에서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집단적으로 훈련을 시켜서 베낍니다. 집중적으로 그것을 뺏긴 기간이 20년이라 합니다, 20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베끼기 시작하면서 수집할 수 있는 수많은 문헌들을 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학교를 이제 궁정 학교와 수도원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원마다 학교를 만들고 궁정에도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궁정에 있는 학교는 게르만족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용감하기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철학이나 이런 것에 대한 사색하기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궁정 학교를 만들어놔서 하는 게 그저 칼싸움 연습이나 하고, 예의범절을 갖추는 그런 거나 훈련하고 하는 정도지, 전혀 학교로서의 역할을 못하던 그런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제 학교를 만들어서 문법, 그 다음에 논리학, 수사학이라는 삼학을 가리키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이제 사학과 음악 수학 천문학 이런 것들을 가리키기 시작하면서 이제 잃어버렸던 로마 문명의 토대들을 다시 놓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런 것들이 수도원을 통해서 그리고 왕정 학교를 통해서 그러다가 개인 학교까지 생겨나면서 로마에 찬란한 문화가 꽃피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이야기를 하냐면 말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자산이 무엇인가 하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지금 유럽 밀라노에 가면 지금도 성전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400년째 수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계속 수리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때 지어진 지금으로 따지면 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지은 예배당들이 전부 다 뭐가 되고 있습니까? 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수입이 되니까 그 나라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 예배하려고 지은 건물이잖습니까. 그런데 다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 하면 건물이라고 하는 거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영국에 가보면 딱합니다. 존 오웬(John Owen) 목사님이, 그 오바디아 세즈윅(Obadiah Sedgwick) 후임이 존 오웬 목사님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이 목회하던 그 교회당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서서 이천 명 정도가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좌석이 없었습니다. 다 모두 서서 예배드렸습니다. 지금은 여러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 서서 그 두 시간씩 이상 되는 설교를 듣는 것이 의무였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형태로 되는 예배당에서. 그런데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교회는 이제 폐기되는구나. 왜냐하면 돌이 여기 돌담이 여기저기 무너져 있고 막 풀이 길처럼 자라나 있습니다. 그런데 한참 기다리니까 저 멀리서 오는 신사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자기 자기가 이 교회 담임 목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거 아니 담임 목사라도 와서 낫으로 좀 풀이라도 자르지 어떻게 이렇게 공동묘지처럼 하고 이렇게 있나 그러는데 그게 실상입니다. 수리도 못해 돈이 없어서,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될 것은, 이 새것과 옛것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 교회를 통해서 새것과 옛것이 나오면서 그러면서 이 성도들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는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이 일을 위해서 너무 중요한 사명을 맡은 것입니다. 목회자이기 이전에 진리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 하고 싶은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한 사람들이 되자. 그리고 교회가 그런 보고를 잔뜩 가지고 있는 보고가 될 때 그게 책만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책은 수단일 뿐이고 그게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 마음의 창고에서 새것과 옛것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의 천국을 심어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꿈꿔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