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배웠는지 생각하라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녹취자: 임지연
구원의 선물 다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커다란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스승입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은 사뭇 달라집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이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인생의 말년에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들이 많을 거다 그리고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죽어도 목회자인 너의 길에는 변함없이 시련과 그리고 역경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두 가지를 잊지 말아라. 첫째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생각하거라.’ 그래서 그리스 성경에 보면, 이게 분사로 나옵니다. 그래서 직역을 하면 그것들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나옵니다. 항상 자기에게 자기가 그것들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계속 생각하면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그 가르침은 선생님이 독자적으로 준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노니. 그 선생님을 만나서 성경을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누구였을까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지만 나를 통해서 기독교의 교훈을 배우게 되었으니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고 이렇게 행동하라 그것입니다.
저는 부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지도 못했고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 탁월하게 잘 적응해서 우등생 소리도 별로 못 들었습니다. 늘 저에게는 이 세상이 항상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중량을 가진 세계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그래도 죽지 않고 버티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그 하나님의 은혜가 선생님들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아사밤’에서 내가 썼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 지금 성함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참 불효막심합니다. 선생님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얼굴은 또렷합니다. 지금 계산해 보니까, 살아계시면 한 95세쯤 되셨으니까. 아마 안 계실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신학교 야간 신학교에서 신학대학원에서 그리고 다 졸업한 뒤에는 책 속에서 그런 선생님들을 만난 것이 나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견고하게 붙들고 살도록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교육자 면접 볼 때는 항상 스승이 누구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스승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유통기한에 표시가 되지 않은 상표도 붙지 않은 그런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음식과 같다고 저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사실 훌륭한 사람이 된 사람은 말할 수 없이 너무 많이 있지만 오늘 역사 속에서 한 사람만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과학이나 예술 역사 가운데 천재폭발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이상하게 이게 규칙적으로 천재들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어느 시대에 폭발하듯이 천재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런 게 예술가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같은 데에서 불과 한 80년 어간에 28명 30명 가까운 세계적인 천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음악가의 시대는 훨씬 그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학자들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를 살았던 인물 중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3~4세기 경에 일어난 일이고 그 때 기라성 같은 천재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이제 바로 히에로니무스라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제롬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이탈리아의 북부 쪽에 있는 달마시안이라고 하는 출신의 귀족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달마시안 강아지 뭐 점박이 101마리 개 쏟아져 나오는 동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서 아주 똑똑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로 유학을 갑니다. 그래서 유학을 가서 거기서 당대 최고의 학자를 만납니다. 그 사람이 이단 중의 하나였던 도나투스였습니다. 도나투스는 이제 로마의 도나투스라고 부르는 도나투스가 역사상 몇 사람이 있어서 로마의 도나투스라고 불리는데 이 사람이 이제 당대 최고의 문법 학자였습니다. 그 사람의 쓴 라틴어 문법에 관한 책 대문법학, 소문법학이라는 두 권의 책이 있는데, 중세 시대의 학자들에게는 표준 교과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밑에서 직접 사사했습니다. 보통 특권이 아닙니다. 그리고 젊어서 로마에서 승승장구해서 그래서 아주 젊은 나이에 트리어라고 하는 곳으로 갑니다. 집정관이니까 뭐 아주 높은 관리 관리로 젊은 나이에 임명을 받아서 가게 됩니다. 집정관이 되어서 트리어로 갔는데 트리어라는 도시에서 관리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 만남이 중요하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돈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만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만남이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마침 트리어에 누가 와 있었냐 하면 니케아 공회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아타나시우스가 와 있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을 세우긴 했는데 지배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또 같은 주교들이라도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서 5번인가를 귀양을 가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자였는데 결국 절반쯤 귀향 가는 처지에서 트리어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를 만나서 히에로니무스가 성경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 당대 최고의 학자인 데다가 안토니우스를 흠모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었으니까 훌륭하게 성경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깊이 성경을 받아들이면서 말하자면 신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아타나시우스가 트리아에서 한 스승을 소개시켜줍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고 벌써 앞세대에 살았던 사람인데 기독교역사에 오리겐이라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의 책을 읽어 보라고 소개시켜줍니다. 계속 오리겐을 읽고 또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갑바도기아 3인, 대 바실리우스, 그다음에 앤디사의 그레고리우스 두 사람은 형제입니다.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바젤과 함께 아테네에서 유학을 할 때 거의 천재적인 학문의 능력을 보였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둘이 만났다는 역사가들도 있고 어디에서는 그것은 가능성이 희박하고 아마 책을 통해서 만났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쨌든지 간에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우스의 사상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학에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결국은 관직을 다 버리고 기독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똑똑한 젊은 시절 로마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에 아이들과 함께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했습니다. 뭐 나쁜 짓이라는 게 아마도 홍등가를 드나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오리겐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지 간에 둘 다 신학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 정욕에 너무 시달렸습니다. 히에로니무스 초상화에 보면 항상 공부하는 그림이 나오거나 수도하는 그림이 나옵니다. 수도하는 그림이 나올 때는 항상 웃통을 벗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수많은 상처가 있고 옆에는 돌멩이가 있습니다. 정욕적인 생각이 들면 그것을로 자기 가슴을 찧어서 피투성이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정욕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 그러면서 ‘이렇게 정신 상태가 흔들리는 것은 결국 내가 뭔가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히브리어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음이 산란하면 공부할 결심을 하십시오. 그래서 당대 최고의 랍비를 찾아가서 히브리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랍비가 열심히 가르쳐 줬는데 빨아들이는 학습 능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단기간에 그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마스터 해서 히브리어 성경을 줄줄 읽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희랍어는 원래 잘했고 이 사람이 히브리어를 깊이 습득하면서 나중에 소위 이야기하는 셉티어진트라는 성경이 그리스, 히브리어, 희랍어 성경이었더라면 히브리어를 못해서 하는 사람이 적어서 셉티어진트를 2~3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었는데 이미 3~4세기에 와서는 그리스어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을 하게 됩니다. 교황까지 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데 다 떨쳐버리고 예루살렘에 와서 작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18년 동안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불가타 성경입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그것을 혼자서 18년 동안 어떻게 다 번역할 수 있었겠느냐 그전에 이미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도움을 받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전에 있었던 소위 이야기하는 베투스라티나 라틴어로 되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선교사들이 필요에 따라 쪽복음처럼 번역을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솔직히 이야기해서 히브리어도 잘 모르고 그리스어도 잘 못하고 거기에다가 라틴어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번역을 해서 아주 조잡하기 짝이 없는 책이 되었고 바로 어거스틴이 카르타고에서 깊은 회의에 빠지면서 다시 신흥으로 돌아오려고 호르텐시우스를 읽은 후에 성경으로 돌아갔을 때 읽은 성경이 그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문체도 조잡하고 내용도 앞뒤가 안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버리고 기독교의 회의를 느끼게 됐고 그것이 마니교도가 되는 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종류의 조잡한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리에 대해서 토론을 해도 원래 성경이 뭐라고 되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주 소수의 학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성경을 18년 동안에 거의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가 홀로 그리스어 성경과 히브리어 아람어로 된 구약 성경과 그리스어 성경이 결국 다 완성을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가 뭐냐면 그렇게 나왔는데 후에 희랍어 사본들을 다 모아서 희랍어 성경을 완성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18세기 경이었나 정도인데 지금 정확하게 연도가 안 나는데 만들려고 했는데, 계시록 부분이 발견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부분이 발견이 안 돼서 그래도 책은 완성을 하고 싶었습니다. 할 수 없이 불가타 성경을 놓고 학자들이 거꾸로 그리스 성경이 있으면 사본이 있으면 아마 이렇게 기록했을 거다 그러고 작문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헬라어 성경이 텍스투스리셉투스라는 최초의 공인본입니다. 놀라운 것은 후에 사본이 발견됐는데 글자 몇 개 다르고 똑같았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어 사본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히에로니무스의 번역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보여주고, 두 번째는 그 번역을 보고 그리스어로 번역한 학자들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라스무스에 의해서 완성이 된 텍스투스리셉투스입니다. 그러니까 종교 개혁 시대니까 16세기입니다. 그때 완성합니다. 에라스무스가 그것을 완성을 합니다. 결국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 번역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냐 하면, 이 세상에 자기 혼자 성경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일들은 자칭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별들이 있는 곳에서 별들이 폭발하고 별들이 죽은 곳에서 새별이 생겨나는 것처럼 똑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을 탁월하게 이해하는 사람들도 그런 것들을 깨달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스승들과의 관계 속에서 위대한 학자이며 하나님을 사랑했던 히에로니무스가 없었더라면 기독교의 통일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깨졌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이 위대한 학자도 홀로 선 게 아니라, 아타나시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오리겐, 이런 사람들, 심지어 도나투스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시대를 바꿔 놓는 위대한 성경을 번역한 학자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시 오늘날의 시대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여러분들의 멘토는 누구인가, 신학에 있어서, 성경에 있어서, 내 삶에 있어서, 여러분들의 멘토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며 성경의 가르침과 그다음에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가르침 사이를 단단히 묶으면서 자랄 때 묘목과 같았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거목이 되어서 또 누군가에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고유성을 유지해 오면서 살아온 배경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꼭 살아 있어서만 하는 일은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 그가 남겨놓은 책을 통해서 수많은 제자들이 길러지면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의 교회라는 벌판을 숲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누구로부터 배웠는지를 생각하고 여러분들의 삶에 포커스를 하나님께 맞추고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전심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교역자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통일된 사상을 갖지 않으며 여러분들의 설교는 별로 가치가 없어집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부지런히 공부를 하면서 히에로니무스가 그렸던 것처럼 위대한 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기독교 전체에서 말하는 인생관이 무엇이고, 세계관이 무엇인가 통일된 시각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이 역사와 하나님과 교회와 역사와 사람을 교회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가르치고 그 가르침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성경과 일치해서 거기에서 폭발하듯이 변화가 일어나고 그래서 사람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서가는 그런 사상가들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렬히 기도하면서 이렇게 기독교의 역사에 한 장을 써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