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새벽예배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의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사 25:23-27)
녹취자: 이새봄
이제 이렇게 해서 사도 바울이 결국은 아그립바 왕의 심문을 받게 됩니다. 아마 이제 베스도는 그 전에 있던 벨릭스라는 사람의 후임으로 온 사람인데, 가이사라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인 것 같고 아마 이 아그립바 왕은 보다 큰, 말하자면 영토를 다스리는 그런 왕이었던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우리들이 몇가지 볼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 하면, 유대인들의 집요한 완고함입니다. 이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제 어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끊임없이 예수를 믿는 사도 바울을 고소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청원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고소를 가리키는 것인데, 얼마나 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집요하게 자기들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이 예수를 전하는 바울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이르른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마음의 완고함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완고해지게 되면 못할 것이 없는, 그런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매우 완고해져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사도 바울을 계속해서 집요하게 살의를 품고 고소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완고하게 갖기만 하면, 마음의 완고함을 가지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유대인들이 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맞서게 되고 진리에 도전하게 되고 옳지 않은 태도를 계속해서 고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고 이 모든 일이 진리에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유대인들이나 사도바울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하나님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은 죽이려고 하고 한 사람은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여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신앙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아집이요 집착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신앙은 신령한 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의 권력을 동원해서 감옥에 집어넣고 죽이고 이러는 방식으로 진리를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고소하고 마지막에는 죽일 생각까지 하느냐 말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또 하나 보여주는 것은 이제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인데, 그가 지금 오늘 이렇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무슨 악행이나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무슨 악행이 있는가 보려고 했지만 고소를 하니까 뭐가 악행이 있나 조사를 해봤더니, 그런 것은 없고 순수하게 자기들의 종교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나 하면, 사도바울이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올바른 뜻과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고소자들이 고소를 받을 만한 잘못된 행동이나 불법적인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외칠 뿐만 아니라 그 삶이 얼마나 도덕적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받는 핍박이 모두 복음 때문이 아닙니다. 복음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행실로써 복음을 전하면 안 그럴 텐데, 올바른 행실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사람이 복음의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올바르지 않은 행실에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이 그 복음의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죄 많은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고 또 복음이 그 진리를 통해서 이 죄 많은 인간들에게 무엇을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를 자기 자신이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복음이 주는 도덕적인 열매들을 보여줄 수 있을 때 그들이 전하는 그 복음이 참으로 능력 있는 복음이 되고 그리고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는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이 모든 사람들을 승복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굴복하지 않는 대로,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굴복하지 않는 대로, 그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순수한 복음의 증거, 거기에 따르는 빗댄 행동을 통해서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자기 서신 속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부끄러울 것이 없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 되기를 힘쓰라고, 그렇게 부끄러움이 없는 이라는 말을 사용을 하면서 그러면서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단순히 드러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 의해서도 어떠한 송사도 받지 않는 그런 지극히 자유로운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힘들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의 모든 방면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제 사도바울의 원대한 꿈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이냐 하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하는 꿈입니다. 로마에까지 가서 황제에게 이미 여기에서도 말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뒤편에 보면 쭉 자기 간증을 이야기 하는데 이 훌륭한 복음전파의 기회입니다. 이 똑같은 일을 그 황제와 로마의 그 지위 높은 사람들이 있는 거기에 가서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자기는 죽어도 좋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이 복음을 들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싶다 하는 강력한 희망을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런 기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냐 하면, 당시 이 로마는 말하자면 학문과 철학의,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물론 상업은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이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철학이나 이런 인생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 이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그런 모든 인간의 사상과 철학의 완성이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사상에서 풀지 못하는 많은 난제들을 풀어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일 작정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런 복음의 위대한 역사를 본 바울이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이렇게 로마에서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기는 그 고난을 받고 없어져도 예수의 복음은 증거되고 전파되어서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아주 절대절명의 소명감을,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히랍어 성경에 보면 좋은 때든지 혹은 없는 때든지 이렇게 나옵니다. 좋은 때든지 혹은 없는 때든지 간에 자신의 모습으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고 거기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 그런 헌신을 우리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고 모든 것들이 충분하다고 해서 우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바로 이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데에 있다고 믿으면서 걸어가는 신앙의 길. 이것이 결국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들을 존재하게 하시는 이유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신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