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인턴십 개강예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5-16)
녹취자: 이경순
우리 옛말에 ‘괄목상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마주대한다는 뜻이고 ‘괄목’이라는 것은 부빌 ‘괄’ 자에 눈 ‘목’ 자입니다. 눈을 부비면서 상대방을 본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상대방이 자기가 예전에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좋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손으로 눈을 부벼서 다시 사람을 보게 된다. 라는 뜻이고 거기에서 괄목한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어떤 사람들이 목회사역을 잘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같은 사역자로서 그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또 우리도 저렇게 하나님 앞에 쓰여 졌으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한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잘 쓰임을 받고 남들이 볼 때 그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요긴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스러운 훈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잘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달란트가 특별하다 하나님이 특별한 재능을 주셨다 은사를 주셨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람에겐 이런 은사를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은사를 주셨는지 안주셨는지는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봐야지 아는 것이지 사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도 글을 많이 쓰니까 글 쓰는데 탁월한 달란트를 하나님께 받았다 그러는데 제가 생각해도 열심히 써왔습니다. 지금도 어떤 주제만 정해지면 이삼일이면 한권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절대로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게 이런 글을 쓰는 은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일을 위해 헌신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이일에 대해서 깊은 소명을 느끼고 하려고 하다 보니까 긴 세월이 흐르면서 아 나에게 그런 재능을 하나님이 주셨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달란트들을 자신들이 시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파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은사를 많이 주신 것 같지만 사실 충성스럽게 그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은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참 많은 어려움 속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이 격려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때에 사도바울은 이 편지 속에서 디모데에게 예전에 성경에는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하였는데 오늘 여기에 보니까 성숙함이라고 번역에 되었는데 원문에 근접한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성숙하라는 이야기 인가 그것이 바로 그 앞에 13절에 나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있는 것,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그러면서 15절에 다시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나타내 보여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도는 디모데에게 있는,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 이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16절에 자신의 삶을 살피라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자 그러면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전심전력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지식입니다. 모든 목회사역의 가장 큰 문제는 지식이 없는데서 문제가 발생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총신을 나오고 많은 사역자들을 만났는데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의 수준과 상관없이 아주 사람들이 천박한 사람들이 있고 학문에 있어서 좀 깊이가 업고 모자라도 워낙 진실하고 신실하게 목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에도 남양주 쪽에 가서 제가 집회를 했는데 제가 가르친 제자인데 벌써 다 50이 넘어서 60을 바라보는 사람인데 정말 칭찬받으면서 목회를 잘하십니다. 지방 신학교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정말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공부를 안정적으로 신학공부를 잘 한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수준도 높고 목회도 안정적으로 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일도 덜 합니다. 안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그 비율이 낮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결국은 무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숙함을 나타내 보여야할 첫 번째 영역이 지식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남편과 신학적인 대화가 가능하도록 남편의 목회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인 판단을 내려서 아니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가 이것 싫어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차근차근 신학 공부하고 책들을 읽으면서 그러면서 여러분이 그런 판단력을 길러 가야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이렇게 영적으로 도전을 받는 책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게 해주는 학식들을 꾸준히 넓혀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에서 어마어마한 공부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4년의 공부가 천권정도의 책의 분량이라고 본다면 신학대학원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몇 백 권의 책만 읽으면 신학대학원 졸업한 학생들 못지않은 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헌신해야 됩니다. 그리고 남편들은 목회사역을 하게 되면 반환점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도 오늘도 공부를 가르쳤는데 열심히 공부를 하기위해서 애쓰던 사람들이 딱 어느 지점에서 꺾이게 되냐면 부목사가 되고 전임사역자가 되었을 때 그 때 교구 사역을 하고 하면서 너무 바쁘고 월요일 날 쉴 때는 너무 쉬고 싶으니까 공부의 끈을 탁하고 놓게 됩니다. 그럴 때 지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사모님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지적인 성숙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별적인 사역입니다. 설교나 이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 혹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전인적으로 다루면서 어떤 믿음이 온전한 믿음인지 어떤 삶이 온전한 삶인지를 인격적인 교통을 통해서 그에게 가르쳐 주고 지도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 있어서 진보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때야 되겠습니까? 지식만가지고는 안되고 사람을 따뜻하게 사랑하는 인격적인 성숙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격이 조잡하고 전혀 동의가 안 되는 사람에게 여러분 상담을 받으러 가겠습니까? 늘 마음속에 미워하고 욕하던 목사님에게 여러분의 진로를 상담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정의 복잡한 일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의논을 하겠습니까? 어떠하던지 존경하고 인격적으로 통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하고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격적인 성숙을 이루어서 사람들에게 이미 터득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잘 권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하였습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애들 빨래나 밥이나 해주면 되지 일체에 교회에 얼굴을 비치지 마라 그게 제가 어렸을 때 목사님에게 배운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어는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아내가 자기 남편의 거의 대리자가 되어서 그렇게 목회를 하는 것도 있는데 그것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가정에서의 입각점과 함께 교회에서 남편의 사역을 도와서 함께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모가 주일예배 때 설교를 하고 목사님 없으면 대신 교회를 지휘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힘닿는 대로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식의 빛을 나누어 줘서 그래서 잘 가르쳐서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지식과 사랑에 있어서 진보를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어 속담에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우리가 또 하나 성숙함을 이루어야 할 분야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학생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세계적인 학자인데 책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 학교를 갔는데 강의는 너무 실망스럽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책을 읽는 것이 낫지 너무 지루하고 논리도 없다고 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이처럼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도 아주 진보를 이루어서 그래서 가르침을 받고 나면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았던 성경이 활짝 열리면서 삶의 지혜와 말씀에 대한 지식들이 가슴에 박힌 못처럼 그렇게 다가오게 되는 그런 성숙함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16절에 보면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리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구원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성화의 구원을 특별히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타이르고 가르치면서 그러면서 진실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품을 갖추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교역자로 있을 때에는 위에 선배들도 있고 담임목사님도 있고 이리저리 눈치를 봅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면 그것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 지나고 나면 자기가 담임목사가 되고 사모가 되어서 갑니다. 그리고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여러분을 사랑하면서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가십시오, 그렇게 할 사람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가끔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이미 벌써 목자와 양과 관계에서 이탈한 관계에서 불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자기가 스승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한분 앞에서 말씀의 지식의 빛을 받으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고쳐가고 다듬어 간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훈련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지위가 바뀐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네 번째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분투하는 삶에 있어서 성숙함을 이루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야박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우리 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객관적인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믿음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순수한지를 잴 수 있는 측정하는 계측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서 매일 매일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고 또 하나님 앞에 잘 하고 있는 것들은 격려를 받고 혹은 책망을 받고 이렇게 하면서 자신들이 온전해 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성경에 보니까 그 모든 일을 전심전력하여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 앞에 능력을 늘 달라고 기도하고 은사를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 심리 속에는 어떤 것들이 깔려있냐면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면 어려운 일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재능을 주시면 잘 못하는 일들도 고생하지 않고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경에 있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사명이 큰 사람들은 은혜를 많이 주시지만 고난도 아주 많습니다. 제가 기독교 역사상 존경하는 스승들이 여럿 있지만 그분들은 모두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호위호식하고 모두들 자기를 왕처럼 떠받들어주는 그런 목회와 신학을 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말 고난을 친구처럼 여기면서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조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시지만 진짜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통해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전심전력하여 그랬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너 자신을 그 일들에 던져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모든 힘을 기울여서 그래서 그 일을 하도록 이루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비디오도 없고 장난감도 없습니다. 애들이 늘 즐겨 가지고 놀던 것은 돋보기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쓰다가 버린 돋보기 이런 것들을 가지고 놉니다. 그러면 그 추운 겨울인데도 마루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서 먹지에다 집중시켜서 쪼이면 놀랍게 먹지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집중의 놀라운 힘입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교사라고 할지라도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가르침이란 흔들리는 유리컵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놀라운 교육의 진보, 깨달음의 진보, 이런 것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너무 소수입니다. 온 마음을 당해서 정말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지 두 번 태어나고 두 번 죽지는 않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세컨드 찬스라는 것은 없습니다.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한번 딱 살고 죽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전도사가 된 것이 1983년도 이었습니다. 그러면서 33년이란 세월이 지나갔고 열린 교회를 개척 한 것은 약 22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그런데 정말 잠깐입니다. 너무 너무 잠깐입니다. 열린 교회 개척예배 드릴 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잠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결국은 목회를 지금도 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하겠지만 얼마나 훈련받고 성숙 해졌는가 거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똑같이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뒹굴 거리고 엄마한테 욕먹던 철없는 녀석들이 군대에 가서 어떤 녀석은 총 한방 제대로 쏘지 못하는 그런 군인 같지도 않은 군인이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9천 미터 꼭대기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고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비행을 하다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고 그리고 한명이 적진에 침투하면 수백명의군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갖춘 군인이 되기도 합니다. 차이는 지독한 훈련입니다. 미국의 네이비씰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백 명이 입대하면 40명이 수료한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자부심이 그렇게 강합니다. 우리 아들도 특전사를 나왔는데 항상 자신의 군대생활에 대해서 긍지가 충만합니다. 자신들이 전쟁에 나면 북한에 투입이 되는데 자신들이 한명이 평양에 떨어지면 팔백 명이 군대가 쫒아 다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남다른 삶을 살고 싶으면 남다른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철저하게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12년 13년 부목사 생활하다가 담임목사로 간 형제가 있습니다. 장년만 한 500여명 모이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갔으니까 교회규모는 한 700명 정도 되는 곳에 갔는데 얼마나 층층시하에 일이 많겠습니까? 힘들지 않느냐고 하니까 목사님 열린 교회에서 12년 13년 정말 훈련을 받았더니 교회에 가서 만나는 모든 상황 중에서 안 겪은 것이 없습니다. 다 새로울 것이 없는 예전에 교회에서 다 겪어본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잘 해내고 있습니다. 만약에 훈련 받지 않으면 얼마나 죽도록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새로운 임지로 가서 삼년을 못 견디고 사표내고 나오거나 쫓겨나는 교역자가 그렇게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의 이야기를 쓰면서 로마가 한참 강성했을 때 군인들이 탁월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로마의 패망은 군대가 약해지면 서 결국은 로마가 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역사관을 이야기 하면서 요세피니 엔티피니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을 합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었고 전쟁은 피 흘리는 훈련 이였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살 때 그렇게 세계 최강의 로마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학생이 그런 말을 합니다. 한 시간 공부를 더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여자들은 뭘 조금 더 하면 공부를 더 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일 년을 더 피를 흘리고 눈물을 쏟고 고난을 받으면 그 만큼 목회는 나중에 덜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생을 해도 보람이 있는 고생이 있고 무지 속에서 아무 보람도 없이 당하는 그런 애매한 고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열매가 없이 고생을 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잘 될 사람들은 그 목회에 임하는 자세나 이런 것들이 다릅니다, 정말 다릅니다. 여러분에게는 안보이지만 우리에게는 보입니다. 다릅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부목사님들 혹은 부교역자들이 한 30여명 있는데 항상 떠나보낼 때 내가 물어봅니다. 저 목사님이 개척하러 나가는데 몇 명쯤 앞으로 교인들이 모이고 어떤 목회를 할 것 같은지 한번 생각해봐라 그리고 우리한번 일 년이나 이년 뒤에 누구 말이 맞는가 보자 합니다. 거의 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에 있고 미래는 현재를 통해서 짐작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연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까지 살았던 삶을 생각하면서 10주 동안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여기에서 가르쳐 주겠습니까? 한주에 한권씩 책을 읽어도 열권밖에 안 됩니다. 얼마나 바뀌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10주 동안에 도전을 받으면서 이 길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여러분을 괄목상대하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