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턴십 1
녹취자: 김명진
강성구 목사님부터 발표를 할 것 같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레포트는 여기에 다 끼웠습니까? 없는 것은 제출하지 않은 것입니까?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김동준 목사님)『세계화사회에서 진리의 전달자로서의 신자의 역할』강의와 책을 읽고 느낀 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중 하나인 해체주의가 언어가 갖는 의미의 객관성을 부정한다는 이 부분을 읽고, 기독교 신앙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언어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해체주의 자체가 성경을 공격하고 있고 성경에 대한 권위와 언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기독교의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체주의적인 사고가 개인 QT나 말씀 나눔에도 반영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말씀을 읽는 각각의 사람이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느낌이고, 두 번째는 제가 한국 개신교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복음적인 시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고 한국 기독교 인구가 감소한 데에는 더 큰 원인은 개신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이 시대의 코드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얼마 전에 한 기사를 읽은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한국 개신교 실천 방안 중의 하나를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판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진짜 교회가 개혁되기 위해 세상의 비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변화되어야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속고 있구나.’, 세상의 눈치를 보며 세상의 비판에 설설 기는 이상한 기독교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이것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담임목사님) 거기까지만 하고 다른 사람도 해야 하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제 설교에서 일부 주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 1번입니다.
(여자목사님) 이런 사상은 주일학교 안에도 깊숙이 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주의적인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눈을 맞추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PPT와 보이는 그림을 보고하고, 말씀의 중심이 예수님의 교리보다는 아이들의 성품이나 도덕적인 것들, 가정이나 사회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갈 것인가를 말씀을 가지고 적용하는 것을 보고 제가 배워왔던 것과는 충돌이 되어서 제가 맡으면서부터는 그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담임 목사님께 저의 의중을 말씀을 드리고 강대상을 놓았습니다. 4-5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눈을 맞추면서 PPT를 없앴습니다. 우선은 들으면서 아이들의 영혼이 자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을 맞추면서 3개월째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선생님들이 말씀을 통해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아이들에게까지 영적인 흐름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열 분쯤 되는데 선생님들의 교육도 병행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영적인 눈이 뜨여진다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우리 주일학교 안에, 교회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굉장히 걱정됩니다.
(담임목사님) 여기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십시오.
(목회자) 저는 이 과제를 하면서 저만 어려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대원에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애매한 것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개혁주의와 개혁신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고, 세계화 시대와 사회에서 마치 지금 현재도 일어나고 있지만 구약의 시대에 있었던 바벨탑사건, 노아의 홍수 때의 악한 모습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이 말세의 시대에 말씀 사역자로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개혁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훈련받고 있는 지금 철저하게 사유해야 한다는 구절이 저에게는 철저하게 진리를 위해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에서는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 신자로서 말씀사역자로서 어떻게 준비해야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개혁신앙을 해야 하는지 책에서 찾았는데, 맞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교회 밖에서 개혁교회와 개혁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나 눈에 보이는 전도의 방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담임목사님) 그런 것들은 훨씬 종합적이어야 하는데 개혁주의의 특징은 성경적이고, 하나님 주권, 성경,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복음에 대한 강조, 경건, 비밀, 이런 모든 것들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개혁주의입니다. 칼빈의 사역을 보면 그가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지만 국가의 산업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사역이 굉장히 폭이 넓었습니다. 출판, 예술, 문화, 정치, 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식견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특성들을 그 속에서 구현해나가는 것이 개혁주의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주의가 활짝 꽃 핀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영향을 미친 것이 경건주의입니다. 청교도적 전통을 가진 경건주의였기 때문에 개혁주의보다는 내로우하게 신앙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 후에 미국의 북장로교회에서 해밀턴 선교사나 이런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개혁주의가 소개 되었지만, 그리고 1907년의 부흥운동이 우리의 성향을 개혁주의보다는 뜨거운 경건주의 쪽으로 많이 가도록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조선신학교는 훨씬 폭을 넓혀서 일본의 우에노 신학교를 통해서 들어온 자유주의적인 신학을 많이 했지만 보수적인 신학교에서는 웨스트민스터나 프린스턴 신학을 계승하면서 개혁주의를 해나갔는데 문화에 대한 강조가 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와 공부하면서 여러분은 그런 것에 대해 우리의 신학이나 학문의 폭이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바타 보여 준 것이 이 시리즈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문화를 즐기면서 파리가 꿀통에 붙어서 꿀이 맛있어서 꿀을 빨아먹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문화를 즐기고 있는데 그것은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문화를 냉철하게 비판적으로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것과 거부해야 하는 것, 그런 것을 구분해서 후자에 속한 것을 우리가 영향을 끼쳐 바꿔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일반은총의 영역이 하나님의 법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특별은총의 번영을 촉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려서 초등학교 때 유행가를 따라 부르면 팝송 따라 가고 샹숑 따라 갑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니나노나 뽕짝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동요에 심취하면 중학교에 가서 가곡을 좋아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클래식을 좋아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오페라를 좋아합니다. 완전히 다른 정신 구조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화는 깊이 젖어 듭니다. 나는 그래서 영화나 예술을 자주 접하려고 합니다. 영화는 대개 개인적으로 조조에 혼자 가서 봅니다. 교인들도 만나지 않고 객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주 밤에 가던지 집중적으로 좋습니다. 어떤 때는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숙제하듯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 영화가 왔는가,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한 참 날렸던 별 그대나 수상한 그녀 같은 것은 정교한 코드가 그 안에 깔려 있어서 엄청난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코드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을 수용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수용할 수 없는지, 그런 코드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구조가 어떤 것인지 등을 아는 것입니다. 강신주의 철학특강이나 다산당, 감성 같은 것들은, 그 사람은 철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길거리 사업 같은 것을 하고,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저 속에는 도대체 저기에는 어떤 것이 있기에 교회에서는 냉담하던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회심을 하고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되는가, 이런 식으로 사유하면서 서양의 철학사라든지 사상의 변천사라든지 이런 것을 모르면 안 읽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일평생 철학을 부전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지적인 근력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 저는 강의와 이 책을 읽고 세계적인 역사와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만큼까지 교회에 파급적인 효과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목사님이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문화, 정치에 대해서 알고만 있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역사나 정치, 경제적인 부분도 구체적으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책이었고, 두 번째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계속 변증만 해야 하고 믿지 않는 성도들이 늘어가는 세대가운데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막막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 외에는 인간의 진리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 없다는 면에서 공감했고 희망적이었던 것에서 감사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후기 근대주의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서 교회가 하고 있는데 제 스스로가 성도들이나 아이들에게 위로나 힘을 주는 격려 사역을 하지 않았나 하는 점에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사님이 문화에 대해서는 말씀해주셨는데 정치, 경제에 대해서는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계획을 하고 계시고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담임목사님) 대통령 시켜 줄 것입니까? 경제나 정치문제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는 말이 많습니다. 어제도 한겨레신문에서 무엇을 다루었냐하면 일본제국주의가 패망을 하고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킨 다음에 새로운 제국주의를 시작했다. 무역을 통해 외화를 수출하지 않으면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나라들에 접근을 하고 싼값으로 후려치고, 싼값으로 생산을 해야 하니까 수산물을 채취하거나 농산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어마어마하게 혹사를 시켜야 단가를 맞출 수 있으니까 제 3세계 국가들의 경제를 초토화 시킨다고 나왔습니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까? 하는데 책 몇 권을 읽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식을 습득해야합니다. 그래서 신문읽기가 중요합니다. 신문을 읽을 때 조중동만 읽으면 안되고 균형을 맞춰서 보수적인 신문, 진보주의적인 것, 중간적인 신문을 같이 읽고 방송 뉴스도 비판적인 뉴스도 골고루 들어야 합니다. 롤랑드 보통이라는 사람이 뉴스사용설명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뉴스를 그대로 마음을 열고 들으면 바보 멍텅구리가 되는 것입니다. 노엄 촘스키가 강조하는 것처럼 행간을 읽어도 그 속에서 비판적으로 사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자본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래의 신학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는 초대교회 교부들과, 교부들의 신학을 재발견하게 했던 종교개혁, 종교개혁을 계승했던 17세기 개혁파 전통주의, 그리고 현대의 개혁주의를 공부하면 우리의 노선이 무엇인지 들어오는데 사회와의 관계에서 교회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교회가 이렇게 변질되었는가를 보려면 르네상스에서부터 철저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르네상스, 르네상스와 기독교 인문주의의 관계, 르네상스가 의미하는 바, 기독교 인문주의, 인문주의에서 종교개혁,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17세기 변화되는 세계관의 도전, 데카르트의 출현, 스피노자의 출현, 데카르트, 데카르트 이후의 칸트, 주할 마크,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단추가 13세기에 있었던 스콜라 철학의 붕괴부터 시작됩니다. 유럽의 지성사의 얼개를 이해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하나하나 내려가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것은 여러분들의 역량의 문제겠지만 정신사들이 머릿속에 무엇을 보든지 정신 속에 꿰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신앙에 있어서 극단적인 감정주의로 나가는 것, 보수주의라고 해서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않는 개혁주의라고 하여 교인이 20명 모이고 3000명 모여도 상관하지 않고 나는 내 갈길 간다고 하는 것, 개혁주의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그러한 스펙트럼 중에서 어느 하나 자기에게 필 꽂히는 것 하나를 잡고 나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이해하면서 잡고 있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만을 교조주의로 따르는 것은 다릅니다. 개별적으로 개혁신학을 충실하게 살아갔던 사람을 공부했던 것도 중요하고 포괄적으로 묶어내고 역사 신학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데일즈 웨일즈를 잘 지냅니다.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데 그분도 저 좋아하시고 저도 좋아합니다. 우리교회에 올해 모셔 오려고 했는데 무릎 두 개를 다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보스턴에 가면 꼭 만납니다. 데일즈 웨일즈의 저서를 기본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 분은 17세기 개혁파 전통주의나 고색 창연한 개혁주의에 대해서는 전공은 아니지만 개혁주의 신학을 탄탄히 가지고 그렇게 미국사회와 세계를 연구하면서 교회와 세상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흘러왔는지를 엮어내는 그런 분이 개혁주의 신학계에 있다는 것이 무한한 긍지입니다. 학생들에게 그 교수님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 교수님이 보석이고 여태까지 그렇게 귀한 분이 없습니다.” 마큰 놀이나 이런 사람들은 넓은 의미에서 성경말씀이지. 이 분은 그런 영역 쪽을 철저히 신봉하면서 마큰 놀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요새 나오는 세계 기독교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런 대가들이 엮어내는 역사서술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그런데 잘 읽혀지지 않습니다. 워낙 책이 두껍기도 하고 읽으면 내용도 재미없고, 세속 역사를 모르고도 교회 개혁사를 읽으면 되게 재미없습니다. 방대한 양의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에 12세기 르네상스의 역사를 읽어봐도 다섯 페이지 넘기기가 힘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니까 지금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 저는 목사님의 강의와 책을 읽으면서 목사님의 후기근대주의에 대한 통찰에 긍정했습니다.
(담임목사님) 후기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근대주의라고도 하고 탈근대라고도 하는데 역사서술과 관련해서 이야기 할 때는 후기 근대주의라고 하고 사상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는 탈근대주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목회자) 이전에 매클라스가 통찰한 탈근대주의는 이것을 논리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지나친 모순성을 보는데 모순성 속에서 이사람들이 영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고 느꼈고 랑그와 빠롤을 그런 구조를 없애려고 노력하지만 자신도 빠롤을 통해서 랑그를 전달하는 형태로 책을 쓰기 때문에 지나친 모순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탈근대주의가 주는 사상적인 매력, 하나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잊어버린다는 사사기적 관점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제가 가진 질문은 후기 근대주의에 대한 목사님의 해답과 비슷한 구조가 개혁파 정통주의 학자들의 사상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학문과 결합되어지는 경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푸치우스, 야메시우스 같은 사람은 경건과 동시에 신학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데 그 상황과 지금의 상황도 매우 유사한 것 같고, 화란의 개신교가 매우 무너져 있는 현재의 상황에 이런 푸치우스와 같은 개혁파 경건주의의 활동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왜 그때 당시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요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담임목사님) 개혁파 전통주의가 있었는데 근대주의의 출현을 극복하지 못했느냐는 이야기 입니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내가 화란을 방문했는데 한 사람은 학자였고 한 사람은 선교사역에 오랫동안 종사하신 오픈도어 선교회의 총재였습니다. 162개국을 갖다 오신 분이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한 사람은 선교전문가에게서, 한 사람은 학자에게서 받았습니다. 화란의 기독교가 어마어마하게 번성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와해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김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계몽주의 때문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AI가 판치고 돌아다녀서 결국은 포유류 동물에게도 감염될 수 있는데 현재의 많은 사람에게는 면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면역력을 상실하게 되면 증표가 나타나는데 대상포진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대상포진 같은 경우 굉장히 위험하다는 증후입니다. 대상포진 같은 경우는 패혈증을 가지기 쉽습니다. 병원에 가면 링거를 맡고 반창고 붙이면서 오늘 샤워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은 과장이 아니라, 보통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코털 세 개를 뽑았는데 죽었습니다. 코털 세 개를 뽑았는데 코털이 빠진 모공 사이로 세균이 침투해서 피 전체를 썩히는데 그것을 패혈증이라고 하는데 48시간이면 완전히 피가 바이러스에 감염됩니다. 긴급조치를 하려면 피를 다 빼야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 연설을 하다가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우니까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치료를 받고 죽은 것입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보니 패혈증인데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한 것입니다. 패혈증이 무서운 것입니다. 눈이나 이런 맛있는데 먼저 먹고 48시간 안에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코털하나 뽑아서 죽고, 어떤 사람은 면도하다가 베었는데 그것 때문에 죽고, 어떤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까딱까딱하다 뒤로 넘어졌는데 죽고,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저항, 그것이 살아있는 영적 생활입니다.
예전에는 두 개가 단단하게 연결 되어서 학문과 경건이 일치가 되었기 때문에 사상적으로 말도 되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오면 신앙으로 딱 꺾고 올곧게 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학자들마다 그게 다릅니다. 내가 먼저 질문을 했습니다. 앳나이트먼트 없는 시대가 있었습니까? 언제나 예수를 믿거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시대에 뒤진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았고 계몽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지 그렇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1세기에도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을 먹었습니다. 헬라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이성 없이 기적이나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서로 욕을 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신앙을 가진 사람을 미몽의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늘 있었던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꼬기또 에르고숨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어거스틴이 이야기 한 것이고, 그 앞에 사람들이 이야기 한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도 인식론과 전통론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종합해서 ‘인식하는 내가 모든 존재의 중심이다’는 인간 중심성을 내세웠습니다. 거기에서 과학이나 이런 것들의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보는 파란 색이 새가 보면 보라색입니다. 우리가 이런 조건에서 보니까 사물이 원근법에 의해서 보이는 것이지 뭐가 원래의 모습이냐는 것은 존재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인식의 문제가 결합되어있기 때문에 인식에 걸쳐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데카르트 식으로 극단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타고르와 아인슈타인의 대화는 유명합니다. “내가 있는 이 세계가 중심이고 내가 옳다.” “당신이 지구는 지구 밖에 있는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커다란 사상이 오고가는 대화입니다. 그것을 극단화하면 성경과 중대한 충돌을 일으킵니다. 성경이 인식하는 자가 중심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인식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강조는 성경 속에 많이 나옵니다. “알라, 여호와를 알라. 지식을 기억하라”는 것들은 신앙에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런 각도에서 본다면 어떻게 그런 사상이 변화되었는가는 결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경건과 학문이 일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프린스턴이 무너진 것도 그런 것 때문입니다. 푸치우스 같은 경우 신학을 가르치면서 경건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익함이다. 라고 했습니다.
(김의현 목사님) 저는 참석만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래도 하십시오. 우리 교역자들은 강의할 정도로 익히고 있습니다. (김의현 목사님) 저는 이 책이 우리가 공과하고 있는 거룩한 부흥에 나오고 있는 내용과 일치되고 있는 책입니다. 그것을 추적해 보면 양연식 목사님이 김남준 목사님의 설교체계에 대해서 논문을 쓰셨는데 순서들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사상이 발달해 나간다는 것이 하나씩 더해나가면서 덧입히고 보완해가면서 세워져 가는 것이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처음에는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연결되어 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 논문을 보면서 조금 요약했습니다. 전체를 다 읽지는 않고 저는 인턴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여러 책들을 보면서 어떻게 목회자로서 준비해야하는지를 생각했고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통합의 부분들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는 부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 여러분 김용옥 씨 강의가 왜 인기를 끄는지 아십니까? 그 분은 강의를 듣고 나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김용옥 씨가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그러면 김용옥 씨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묻는 것은 “니들이 한 게 뭐있냐?” 철학의 사명은 사람을 바르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만 이야기 했지 삶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빨려 들어가고 대중화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원래 그런 역할은 신학이 했던 것입니다. 김용옥 씨 책을 읽어볼까요? 하긴 성경을 읽을 시간도 없는데, 그러면 되지 않았습니다. 잘 만큼 자고 먹을 만큼 먹고 쉴 만큼 쉬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5시간 이상 자면 회개해야 합니다. 운동을 많이 해서 강철 같은 체력을 가져서 하루 이틀 잠을 자지 않아도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절망적일만큼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뻥이나 치고 구라나 치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권위만 내세우니까 권위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진실해질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 공부한다고 해서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 못하는 사람이 진실해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철학사나 이런 것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고 기본적인 인간적인 담론이나 그리스의 배경이라든지, 동양철학에서 이런 것들을 거의 모르지 않습니까? 신학이 쌓이지 않고 쌓여도 깔때기 통에 흘러나온 것처럼 아주 작은 부분들을 가지고 그것을 극대화시켜 하는데 그러다 보니 현실적응성이 없는 것입니다. 신학 지식은 신학 지식이고 교회에 들어가면 경영이 다 되는 것처럼 회사하듯이 교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문제입니다.
(목회자 질문) 저는 세미나와 책을 접하면서 십대 후반과 이십대에 초반에 기웃거렸던 까뮈의 이방인, 마르셀 뒤샹의 생각 등, 존재와 목적, 개념에 대한 해체 같은 것이 생각이 났었는데 처음에는 물가에 다가간 아이에게 너는 자유롭다, 너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존중을 가장한 무책임한 소리로 들리면서 소설속의 인물처럼 항상 소외되었고, 사회는 부조리했고 존재를 기능으로 전락시켜서 최종적으로는 독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철학사적으로는 보면 과거의 소피스트시대와 유사한 부분도 있고, 성경적으로는 사사시대와 유사하게 보는데 이 둘의 귀결이 결국은 절대적인 진리와 체제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원주의를 비집고 절대적 진리로 귀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의 정신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자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복음 앞에서 회복되어야 할 가족 공동체에게 교회가 어떻게 다가가야 하고, 진리의 전달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삶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가야하는 것을 의미 합니까? 강단에서 정치적인 소견이나 사회적인 문제들을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요? 만약 삶으로써 복음을 연결 지어 제시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합니까?
(담임목사님) 해체주의가 반드시 나쁜 일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를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이런 사상들에 기독교적으로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사상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속에 있는 개인의 신격화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지만 기독교가 언제나 전체주의적인 폭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전체주의적인 폭력성이 성경에 의해서 지지되는 진리의 힘에 기반한 것이었을 때보다는 인간의 권력적인 구조가 폭력성을 산출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가진 진리성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온유하게 만들었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면서 진리의 힘을 꿋꿋하게 지키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폭력성들이 그런 것들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단자에 대한 처벌이라든지 사형, 그런 과정에서 실제적으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이 엄격한 개혁주의자이지만 자기의 글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어떻게 예배의 형식이 자기와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을 잡아다가 찔러죽이고 불에 태워 죽이고 할 수 있느냐. 그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쟁을 해도 영적으로 전쟁을 해서 꺾어야지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처벌하는 것이, 그것이 정말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냐고 비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많은 비판적인 것들을 우리가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에 대한 한 영혼의 소중함에 대해 굉장히 많이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의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해체주의나 계몽주의가 가르쳐주는 것은 인간의 중심성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고귀함, 존엄, 이런 것은 무엇에 의해서도 침탈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해서 굉장한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피코델란 미란돌라라는 14세기 메디치시대 사상가입니다. 이 사람은 그 사람이 쓴 유명한 책 가운데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인터넷을 찾아보면 구입할 수 있고 친절하게 번역도 되었고 책도 얇습니다. 계몽주의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그 한 편의 연설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피코델란은 귀족인데 공부하기 위해서 일평생 혼자 삽니다. 26살에는 유럽의 사상과 동양의 사상, 불교의 사상, 힌두교의 사상까지 모두 망라하고 세계의 철학자들이 모두 모여서 자기와 함께 기독교 신학자까지 초청해서 삶의 주제에 대해 대토론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철학자였습니다. 캐톨릭에서는 무서워서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성사가 되지 않았지만 정말 살아있는 연설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중요한 구절을 하나 소개하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담아, 나는 너를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로 창조했다. 네 인생이 앞으로 될 것을 내가 미리 결정하고 정해 놓고 그런 것 없다. 너 자신의 고귀한 이성과 자유를 가지고 너는 네 갈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나의 뜻을 너는 이해하고 그 뜻을 이 땅에 실현하면서 사는 것이다.”라고 쭉 연설을 합니다. 굉장히 힘찹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람이 사보나롤라에게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핀치가 꺾입니다. 계몽주의를 공부한 사람은 이 사람을 변절자로 봅니다. 그런데 결국은 중세교회 시대에 짓밟혔던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기본적인 사명, 위로 하나님을 알고 아래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야하는 신성한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계몽주의의 계몽주의도 두 갈래로 나뉘어져서 극단적 계몽주의는 신의 존재와 이제껏 있었던 신앙의 존재를 모든 철학적인 구조와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깡그리 부인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그런 사상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화나 예술, 문학작품을 보면서 목회에 도움이 됩니다.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원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점은 일단은 귀를 기울여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설명이 아주 유용한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대안이 될 때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일정이 있어서 한 시간만 하겠습니다. 원래는 한 번은 주고 한 번은 사는 것이 우리의 룰인데 은혜의 시대니까 주겠습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한 권을 읽고 오십시오. 제일 좋은 것은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 것입니다. 학기 중이니까 어려운줄 압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난 시간에 숙제를 제대로 한 사람은 혼자서 20권을 읽어도 소화할 수 없는 양을 혼자서 소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교 공부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 20권을 쌓아놓고 공부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공부해도 마지막까지 종합해서 써먹을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 책을 영어로 썼는데 화란의 스페이커르 교수님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 학생이 목사님 신학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김 목사가 썼던데 거기에 다 나와. 신학은 신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을 종합해서 엮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학문의 이해가 없으면 신학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집까지 줄테니까 가서 읽어보고 감동이 되면 여러분이 가르치고 있는 청년들이나 교사들에게 공부를 시키십시오. 가르쳐주고 나면 여러분을 보는 눈빛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주하지는 마십시오. 들통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