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새벽예배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 : 9 - 10)
녹취자 : 김용재
이제 우울한 이야기를 앞에서 쭉 했습니다. 배교 그리고 채소를 심은 밭에 가시와 엉겅퀴가 계속 난다면 농부들이 그 가시와 엉겅퀴를 불살라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우리도 배교하면 그렇게 된다. 그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하고 사도가 안됐던지 그렇지만 너희들 얘기가 아니고 열린 교회얘기가 아니고 닫힌 교회 얘기다 그러듯이 너희 얘기가 아니고 너희들은 그래도 구원에 가깝다. 그러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히브리서의 배경 자체가 다소 후기에 쓰였졌다고 봅니다. 신약의 책들 가운데는. 그래서 제일 먼저 쓰여진게 데살로니가전서가 54년경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보고 제일 늦게 쓰여진게 계시록인데 95년경에 쓰여진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연대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54년보단 훨씬 더 뒤고 95년 보단 일찍 이지만 그 후기에 쓰여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 때에 로마 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그런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배교의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오늘 나온 9절과 10절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너희는 이보다 낫고 구원에 가깝다. 그래서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게 배교와 이런 것에 그렇게 되겠느냐. 그래서 그렇게 완전히 배교가 확정되어서 불사름을 당하게 될 그런 사람들보다 너희가 훨씬 낫다 그러나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경고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구원이 가깝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핍박이 구체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믿음을 배반치 않고 잘 참아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뜻을 구해주신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이것은 아마 주님이 오시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단순한 도움에서 건져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구원의 날이 가깝다. 그래서 그렇게 신앙은 시간을 초월하는 국면이 있습니다. 영원한 진리를 순간에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현재성이라고 말하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아주 먼 미래에 오실 텐데도 우리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곧 주님이 오실 것처럼 그렇게 살게 하는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미래적으로 말입니다. 또 과거적으로는 은혜를 받으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인데 그 십자가 사건이 현재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두 번째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히브리서를 받고 있는 수신자들의 신앙과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의하신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행위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성도를 섬기고 지금도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뭐냐면 신앙에 있어서 자기가 신앙을 가졌다고 확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면 우리들이 늘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런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에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은혜를 맛보면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들이 힘을 공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확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선물이고 또 우리들이 가져야 할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확신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 확신 때문에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하나님 앞에 더 단정하게 살고 주의 도움을 받고 하는 그런 쪽으로 나아가야지 그 확신이라는 것이 확신하기 때문에 넉넉히 죄를 지어도 좋다, 태만하여도 좋다는 쪽으로 기여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확신을 그런 쪽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내가 흔들릴 필요 없이 더욱 주님을 섬기는 자로 살자, 내가 그렇게 구원을 받아서 이 사실이 흔들릴 수 없으니까 이제 내가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이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제 내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쪽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부패한 삶에 우리를 방임하고 그리고 구원받았고 또 확신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삶을 사는 것은 배교하기에 아주 적합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 안에 이런 타락의 가능성 부패의 가능성들이 늘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들이 졸지에 타락해서 비참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늘 그런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겸비한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죄가 우리를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또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이랬을 때 그런 은혜의 상태를 감사는 하지만 이것이 영원히 내게 있어서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은 반드시 넘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항상 내게 주신 은혜의 상태가 감사하지만 이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내 자신을 부인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배교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중요한 대비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가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사람은 편지를 보내고 이 수신자는 그들은 행위가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도들을 섬기고 그리고 지금도 섬기고 있는 중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실 만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똑같은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에배소 교회에서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위해서 아닌 자들을 시험한 것도 알고 쭉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배반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것들이 일단은 너희가 근본부터 하나님을 배반할 사람들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말입니다. 똑같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죄에 의해서 우리가 부패해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를 막기 위해서 애를 써야 되겠지만 그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거룩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배교할까봐 어떻게 하면 배교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전부이고 그리고 그 분이 없다면 내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 분을 단단히 붙들고 그 분과 함께 동행하며 승리하려고 하는 그런 진실한 삶의 추구가 뒤 따를 때에 그 때에 그것이 그를 모든 죄에서 지키고 배교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