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 12:28-29)
녹취자: 조은경
여기에서 진동치 못할 나라와 그리고 진동하는 나라로 두 나라가 함께 이야기가 됩니다. 진동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진동하고 뒤집히는 그런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이 세상에 견고하게 서 있는 것 같은 나라를 전부 흔들어놓으시고 그래서 파멸하실 때 모두 부서질 나라들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서 있는 그 화려하고 엄청난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며 진동하는 나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문명의 유적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화려하고 엄청난 문명을 자랑한 나라들이 폐망하고 모두 부서지고 그 역사적인 유산의 찌꺼기만 남고 나머진 땅으로 다 묻혀서 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위에 새로운 나라가 서고 다시 그 위에 파멸이 오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나라가 서고, 그래서 새로운 나라가 서게 되면 이미 사라져 가버린 나라를 기억하지도 않는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세상의 문명의 역사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이제 마지막 때에 흔들어 놓으실 이 위대한 심판에서는 그런 흔적조차 남길 수 없이 하나님을 비웃고 왕성했던 이 세상의 나라들이 모두 심판을 받아서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의 영광은 때로는 너무 가득하고 찬란해서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그 나라 흔들리지 않는 그 나라의 전망을 흐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든든히 서있는 나라들을 주님이 흔들어 놓으실 때에 그때에는 이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나라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화) 외국을 이렇게 여행을 해보면 이 잘 사는 나라들의 사람들 속에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비록 자신을 가진 것이 없어서 공항에서 빗자루나 들고 쓸어도 자기네 나라가 강하고 큰 나라라고 하는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반대로 힘이 없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어디가든지 멸시를 당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자긍심도 떨어집니다. 이 세상은 참 그렇습니다. 잘 살고 나라가 강해도 변함없이 겸손하고 친절한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 나라의 백성들이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진동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을 때에 그 자부심과 그 나라가 내 나라라고 하는 데서 오는 이 뿌듯함과 이런 것들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진동하는 나라가 아니라 진동치 못할 나라를 물려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래서 그 나라를 함께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가 내리는 결론은 그런 나라를 받았으니까 우리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 그것이 이 믿음의 장 11장부터 12장까지 이어 내려오는 담화의 결론입니다. 그런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으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강한 나라를, 그게 저절로 강해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섬기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까 이제 그 나라의 강함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거니와 우리는 정말 기쁨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고 사랑하고 이러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리도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무것도 섬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정말 헛된 삶입니다. 태어나서 하나님도 안 섬기고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고 그렇게 사는 인생이 그게 얼마나 헛된 인생입니까? 자기가 그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태어났고 자기가 이 땅에 있는 나라에는 잠시 속하지만 결국은 돌아가야 할 나라인데 자기 나라와 그리고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렇게 일생을 살다가 간다라고 하는 것은 개인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할지라고 너무나 하찮은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있는데 그 방식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이 두려움이 하나님의 엄위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이 경건함은 하나님께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방종함으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 분의 엄위를 의식하고 그래서 그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이 경건한 떨림을 간직한 채 그렇게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그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면서 더 온전함을 추구해가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그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냐면 ‘은혜를 받자..’ 그래야 우리들이 그 경건함과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섬기고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물려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것이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자는 겁니다.
이 편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이 편지를 읽었을 것입니다. 사도가 왜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의 장이라고 되어있긴 하지만은 주님을 위해서 피 흘리며 죽어갔던 그 많은 사람들, 그 처절하게 주님을 위해서 도륙당하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리고 유리하기도 하고. 그 많은 핍박받은 사람들을 기록했습니까? 왜 12장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권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들을 통해서 이 사도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이 ‘이 11장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당한 시험과 같이 불같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이 이긴다. 그리고 하나님을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배교하지 말아라.’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은혜를 받자. 그래서 진동치 못할 나라의 백성답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그렇게 권고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가 필요했다고 할 것 같으면 오늘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은혜가 필요하겠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어제 받은 은혜로도 충분하지 않고 작년에 받은 은혜로도 더더욱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하나님에게는 아침마다 새롭고 새벽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그 은혜가 우리의 영혼 속에 끊임없이 주입되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주심이 없이는 우리가 이전에 주를 위해서 피 뿌리고 죽어갈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오늘은 우리들이 미끄러져서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신자의 삶은 끊임없는 고난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고 그리고 영혼의 싫증을 털어버리면서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그 자체가 얼마나 많은 노고를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누구도 그런 수고와 그런 많은 어려움들을 이제 다 벗어버렸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은혜는 어제 살기에 충분했고 오늘은 맛보지 못한 새로운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마당에 앉아있으면 참 좋습니다. 아침마다 이렇게 보면 어제와는 다르게 나무가 작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은 그런 손을 내밀면서 잎이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병원에서 환자 진찰할 때 쓰는 청진기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귀에다 꼽고 나무에다 이렇게 대보면 ‘쭈르륵 쭈르륵 쭈르륵’ 그런 소리가 납니다. 무슨 소리인지 아십니까? 물 올라가는 소리입니다. 그게 사람 귀에 들릴 정도를 큰 소리를 내면서 그 물이 빨려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파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어제의 끌어올렸던 물로는 어제의 이파리를 터뜨리고 오늘은 또 오늘 물을 끌어올려서 새로운 이파리를 터트리고 어제 돋았던 잎사귀들을 성숙시키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하루가 다르게 그렇게 나무가 줄기, 가지, 이파리를 뻗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는 어제의 은혜로 살았고 오늘은 오늘 주실 그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단 한시도 ‘이제는 모든 것이 충분하고 나는 믿을 만하고 내 영혼의 상태는 안전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고달픕니다. 그게 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 때문에 힘을 얻어서 분투하며 살고, 내일은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러면서 괴로움과 슬픔이 많은 이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다시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피곤하고 처절한 싸움을 싸우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완전한 안식 속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진동치 않는 나라는 그런 삶을 살다가 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께 순종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