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새벽예배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1-3)
녹취자: 전인현
이제 그 치열했던 믿음의 삶을 살았던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거기서 이끌어낸 결단을 하고 예수를 추구해야 할 일들에 대한 담화가 끝나고 여기서 일반적인 삶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제 형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무엇인가 절실하게 추구하고 그 하나님 앞에 절실하게 추구하고 외골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항상 독선이 있기 쉽습니다. 그리고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거칠기 쉬운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무엇인가 하나 확신을 가지고 그길로 달려갈 때에는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태도에 의해서 자신이 가는 길이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약간은 피해기대적인 두려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을 그렇게 거칠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인격적 미성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오히려 매우 확신 있게 자기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온유하고 부드러웠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와 같은 사람입니다. 비난 받을 때 온유함이 지면에 승하였던 사람 모세 말입니다. 그리고 모세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러한 모본을 잘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야 그렇지 않지만 모세나 바울이나 모두 뛰어난 사람의 경우에는 결국 이러한 것들이 인격적인 부드러움들이 성화에 달려있는 문제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죽기까지 무릎 쓰고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할 그런 치열한 삶을 예시한 후에 일반적인 삶에 있어서 아주 평범한 신앙의 원리들을 향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형제를 사랑하라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을 자신은 그렇게 치열한 각오를 가지고 결단하며 의의 길로 달려가도 형제들을 향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이 성화되어서 자기와 같이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추구하고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과 같이 신앙의 길을 걷는 이가 하면 미성숙한 사람이 있고 연약한 사람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 많은 사람들 미성숙하고 연약한 여러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상태, 그들의 신앙의 정도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라는 이유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한다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형제사랑은 토대 그 자체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모두 함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이 사상에 뿌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고 하는 그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에 뿌리를 갖고 있는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자녀를 삼으십니까? 성숙하고 그리고 훌륭한 사람 그렇다고 해서 못나고 미성숙한 사람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얻은 모든 사람들을 잘 낫든지 못 낫든지 간에 당신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자격 유무가 아니라 주님이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들을 자녀 삼으셨다는 것 때문에 주님이 용납하는 모든 사람들을 나도 형제로 사랑한다 라는 신앙의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또 하나 여기에 보니까 형제에 대해선 그렇게 우리들이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는데 형제사랑 말고 나그네를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나그네들이 많았고 나그네들이 조금 특별했습니다. 왜냐하면 멀리 여행하는 사람들 거기에서 비롯되는 나그네 그리고 요즘으로 말하자면 행려자라고 그럴까요? 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적당한 구제책이 넉넉지 않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아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천사일줄 누가 아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독려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롯과 같은 사람이 그렇게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한편으로는 형제를 넓게 사랑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그 나그네 그 행려자들을 길손들을 그들의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습니다. 안으로는 자신의 형제들을 넓게 사랑하고 밖으로는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구원받은 자신에게 미친 그 은혜가 너무 고맙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섞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도록 주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형제사랑과 또 한편으로는 이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 사람들 신앙이 갖지 않고 종교가 달라도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그들을 대접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을 가진 그게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처럼 그렇게 생사 간에 각오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사도가 얘기하기를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을 얘기하는데 옥에 갇힌 자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은 자를 생각하라 갇힌자 옥에 있는 자 그리고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사도바울은 학대하는 자 그 사람을 옥에 가둔 자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을 향해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선동을 하는 대신에 결과적으로 학대받고 감옥에 갇혔던 사람 그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감옥에 갇혔든 억울하게 갇혔든 혹 그들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학대를 받든 그렇지 않고 사회적 무순에 의해서 박해를 받든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렇게 학대받는 사람들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오늘 사도가 이야기 하는 바는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자유하게 다니면서도 옥에 갇힌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파하고 자신은 편안하게 살면서도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아파하고 그런 것이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면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그런 모든 아픔들을 자기가 느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셨던 방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삶을 그대로 흉내낼 수 없고 그 수준까지 우리가 흉내낼 수 있다고 믿지도 않지만 그러나 그 정신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부패한 옛 사람의 정욕에서 벗어나서 새 사람을 입고 살아가는 그 성화의 가정 거기에서 나타는 모습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에 한 없이 감사하고 너무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거기에 받은 그 힘을 가지고 우리들이 이렇게 아프도록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 자기 사랑입니다.
동물들의 자기 사랑은 단순히 자신의 생명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이지만 인간의 자기 사랑은 보다 높은 의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고 자신의 행복을 온 우주의 중심 가치로 삼으려고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당신을 먼저 믿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백성들을 일으킵니다. 당신이 부어주시는 은혜에서는 한없이 기뻐하지만 그렇게 남들이 받지 못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고통하는 이 세상에서 많이 끌어안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그러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그런 삶이고 우리의 의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