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새벽예배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아멘 (행 9:19-22)
녹취자: 전인현
안수를 받고 눈이 떠져서 그래서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핍박하고 잡아가려고 했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며칠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사울이 이렇게 회심하고 난 다음 상당기간동안 흐른 후에 복음전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 성경에 보면 즉각적으로 예수님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가 교회에 인정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도로서 활동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이 넘는 기간 동안을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회심과 함께 즉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면 오래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해서 많이 전도 할 것 같습니까? 진짜로 통계를 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이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회심의 은혜를 최근에 경험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억누를 수 없는 사명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각 사람 속에 이런 회심의 은혜든지 혹은 이미 하나님께서 경험하게 하셨던 회심의 은혜가 갱신되는 그런 은혜의 경험이든지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서 이제 계속해서 바뀌어 나갈 때 그때에 새로워 질 때 그때에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강제력을 느끼면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것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고 있을 때 회심의 은혜가 역사하고 있을 때 회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울이 바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제 우리에게 눈길을 끄는 부분이 무엇이냐면 이제 많은 사람들이 사울의 회심을 기이하게 여기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려고 여기에 온 사람이 아니냐! 그리고 그 사람들을 잡아다가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니냐!” 여기 대제사장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사실은 한 해에 그 해에 대제사장은 딱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복수로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한번 대제사장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여전히 대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나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직 현직 모든 대제사장들을 통틀어서 이것이 복수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현직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제 나름대로 종교적인 유대종교의회에 중요한 실권을 가지고 있는 회원으로서 그래서 이제 종교적인 실무들을 처리합니다. 여전히 종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끌고 가려고 (끌고 가면 거기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이 아니냐!”라고 사람들이 얘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제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즉시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그러면서 그것을 증명해서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사도바울이 회심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안 것은 잠깐이었지만 기존에 이미 구약에 대해서 알고 뛰어나니까 예수님을 한번 알게 되어선 그 성경과 역사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논리적인 지식의 체계 속에 찬란한 빛이 들어오면서 그러면서 이제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인식이 확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놀랍게 예수님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잠깐 이렇게 놀라운 신비한 경험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것을 자기 안에 있는 성경지식과 자기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에 비추어 해석을 하게 되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일 수 밖에 없다는 놀라운 믿음의 확신 그리고 지식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용이 있어야 믿음이 성립이 되는 것이지 내용이 없는데 무슨 믿음이 성립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내용은 무엇이냐면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라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지적인 내용에 대한 앎이 없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참된 믿음이 없는 것, 그것이 참된 지식이 없는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경험은 잠깐이었지만 그 경험이 자기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사고와 사고관 가치체계의 성경을 보는 눈 이 모든 것들이 다 완전히 재편되고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변화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엄청난 변화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사울의 그 의식세계 속에 아주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다는 놀라운 신학적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지식들의 체계가 있으니까 로마서 같은 위대한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이 철저하게 유대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논리적으로 그들에게 승부를 해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보여주는데 사울이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고 있었고 두 번째는 무엇이냐면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영적인 은혜의 능력을 그의 말씀 전파에 동반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식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지식이 전달될 때에 그 지식 위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함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서 그래서 이들에게 많은 크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강력한 역사의 변화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굴복시킬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십자가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이 자신의 인생과 신앙의 그리고 성경을 이해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믿음의 내용의 관한 지식 그리고 그것을 믿을 때에 나타나는 성령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경험과 믿음의 내용에 관한 지식과 그 다음에 믿음에 뒤 따르는 성령의 은혜의 역사 이것을 통해서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에 유효한 능력이 나타났을 때 그들을 굴복시키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