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8일 교직원예배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시 119:54).
인생을 사노라면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때도 있지만 확실히 인생이 나그네 길임이 틀림이 없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한 세계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거든요. 우리들이 가야할 본향을 잊어버리고 살면, 우리들이 종종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상실하고 살아가노라면 우리들이이 세상이 나그네길 같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들이 그런 영원에 대한 생각을 품고 살면 확실히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잔치 집에 가서보다는 초상집에 가서 배우는 게 훨씬 많아요. 왜냐하면 죽음은 영원을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세상의 나그네 길은 참 슬픔이 많은 길이에요.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육체에 있는 이 동안에는 이 영혼이 끊임없이 그 나라를 그리워하는 거죠.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나 칼빈이나 이런 사람들은 우리의 육체를 영혼을 가두고 있는 억압. 혹은 감옥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만약에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러면 우리의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영혼이 시간의 무상성에 묶이지 않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만나서 그래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영혼의 원하는 바를 구현해가는 것을 보면서 마치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지성 안에 있는 뜻들이 시간과 공간 안에 실현 될 때 기뻐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아마 그렇게 기뻐하며 살았고 영혼이 우리의 육체 안에 거하기를 오히려 그것이 참 영혼 나름대로의 행복일 수 있었을 거예요. 죄가 들어오고 나서는 모든 형편이 달라지게 된 거예요. 죄가 들어오고 나서 확실히 우리의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 된 거죠. 왜냐하면 그 육체 안에 갇힘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육체 안에 갇혀있다 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육체 안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혼 안에 있는 부패한 본성을 영혼 자체가 육체와의 접촉들 속에서 나타내게끔 되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거에요. 그렇게 하고 살아가게 되니까 인간의 영혼은 참된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것이 육체가 영혼에 대해 억압을 주는 거예요. 그때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자신이 온 그 고향인 영혼을 생각하게 될 때 그때에 단짝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육체도 자신에게 낮설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것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세상의 모든 질서들도 자신에게 낮설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속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던 많은 성도들은 이 세상을 나그네길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길에서 위로가 있다면 노래를 부르는 것이죠. 그래서 이 음악은 인류가 이 세상에 생겨나고 나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도록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붙어있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이 노래에 담는 거예요. 기쁠 때 이 노래를 불러 기쁨을 더하고, 슬플 때 이 노래를 불러 슬픔의 쓴 것을 정화시켜서 그래서 그 슬픔을 오히려 즐기고 그래서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하고, 그리고 힘이 필요할 때는 이 노래를 부르며 힘을 얻는 거죠.
그런데 오늘 이 시인은 자신의 인생의 길이 나그네길 같았는데 거기에 위로가 있었는데 그게 여호와의 율례가 자기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에요. 그러면 이 여호와의 율례가 무어길래 이 시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저는 뭐 그 구별을 그렇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마는 ‘규례와 율례’ 라고 하는 이 두 개의 단어를 설명하면서 어.... 그 차이점을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규례는 제사의 형식과 제도에 관한 상세한 규칙이고 율례는 그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도덕적인 생활을 규율하는 규칙이다.. 이렇게 해석을 했어요. 뭐 아주 기쁘게 동의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본다면 결국 여기에서 나오는 이 율례는 약간의 견해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제사를 지내든 실제의 삶을 살든 이렇게 이렇게 행하면서 살아라 그러고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야. 그렇죠? 명령은 많은 의무를 수반하게 되는 거예요. 의무는 힘든 거야. 그 근무 규칙을 까다롭게 하고 일하는 법칙을 아주 까다롭게 만들어 놓으면 그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죠? 그 이 사람에게 그것이 노래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위로를 얻게 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힘을 얻게 되는 거예요.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사실 그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간섭이에요. 하나님의 간섭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요. 하나님의 간섭을 통해서... 무슨 뜻이에요? 내가 내 맘대로 풀어줘서 그렇게 방종하게 살아요. 꼭 뭐 큰 죄를 짓고 타락하지 않아도 마음을 느슨하게 하고 게을러서 그래서 그냥 마음이 미끄러지는 대로 살아요.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니까 자기는 좋잖아요? 거기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껴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 네 이놈 왜 그렇게 사냐!!’ 한 대 쌔려 치시는 거예요. 정신이 번쩍 나는 거예요. 아! 내가 이렇게 사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간섭하시는 구나. 이걸 통해서 내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계획, 계획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있다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계획 속에 있구나 하는 걸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런 감동적인 고백을 하잖아요. ‘하나님!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우리보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에게 큰 재앙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큰 형벌을 내리실 것처럼 우리를 협박하시면서 까지 우리보고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거기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그 무거운 삶의 의무! 너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살아라고 하는 많은 의무... 이것들이 우리에게는 아주 놀라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시인이 그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라고 말하는 거예요. 얘야! 너 이렇게 살면 안 된다!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이간대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입니까? 그게 고난으로 가득찬 낮설기 짝이없는 이 나그네의 인생길에서 위로가 되는 거예요. 위로가 되는 거예요.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게 신자의 위로에요. 신자가 하나님,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 지식,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기쁨을 얻기 시작하면 그 신자의 영혼은 벌써 망가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이 기쁨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그네와 같은 인생의 길에서 시련과 고난이 많아. 원하지 않는 삶의 질서가 나를 괴롭히고 내가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고, 그리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 마지막에 나에게 고통이 되어서 돌아오고 사면 어디를 돌아보아도 낮설기가 그지없는 땅에 사는 것 같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맙게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의 참된 기쁨이 진리이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나그네와 같은 인생의 길에서 간섭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예요.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사랑해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찮은 사람이에요. 신자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요. 거기에서 계속 솟아나오는 은혜의 샘, 그걸 통해서 고난도 이기고, 슬픔도 이기고, 아주 짧기 그지없는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믿음으로 신앙으로 걸어가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인생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마다, 혹은 저녁마다 대할 때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고,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녹고, 이것이 귀찮은 간섭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간대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하십니까? 내 인생에 간섭하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해 베푸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신앙생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