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새벽예배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2:16)
녹취자: 한성일
히브리서는 주제 전체가 우리의 죄를 대신 제사드려 주시기 위해서 오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히브리서를 “신약의 레위기다”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한 제사를 드려주시는데, 그 독특성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 자신이 제물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있고 제사장 가운데 딱 한사람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그해의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속죄일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를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린 후에 그 다음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 용납되어지게끔 된 후에, 그다음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물론 제물은 자신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최종적으로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흠이 없는 제사장이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과오를 위해서 대신 제사를 먼저 드려야할 이유가 없었고 두번째는 짐승의 피로 드린 제사는 항상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안되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영원히 단번에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중요한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지 아니하시면 죽으실 수 없었고 죽으실 수가 없으시면 제물이 되실 수가 없었습니다.. 제물로서 죽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가 없었고 그렇다면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우리를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해내실 수가 없었다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 결국은 죽으시기 위함이었는데 그러면 그 죽음을 붙들고 있는 마지막 주관자가 누구냐, 최종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죽음을 주장하지만 실제적으로 죽음이라고 하는 그 카드는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이 죄가운데 태어나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벌대로 인간이 죽는 것이고. 그리고 마귀는 그 죽음이라는 카드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운데 그래서 하나님을 붙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카드를 내밀면서 위협을 하니까 그 다음에는 그 죽음이 두려워서 더욱더 죄의 종노릇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두려운 현실 앞에서 인간들이 죄를 짓고 극단적인 쾌락을 찾아서 살거나 혹 우상 앞에 빌거나 혹은 내일은 종말이 올터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하는 방탐함의 흐름 전부가 다 죽음이라는 카드를 내민 마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귀의 죽음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그 권세를 깨뜨리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게된 것입니다. 왜 죽음의 의미 자체가 예수님을 믿을 때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원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죄로 말미암은 형벌입니다. 신자에게는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무엇이냐하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더 완전히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성화과정의 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뒤에 있는 심판 때문에 두려운 것인데, 신자에게는 죽음 뒤에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완전히 거룩해지는 그 영원한 나라의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 죽음이 무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근데 바로 그 일을 위해서는 예수님이 죽으셔야 했고, 죽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일련의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모습이 천사들을 붙들어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인 우리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뭘 깨닫게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던 우리들,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놀라운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그 일을 잘 깨달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 커다란 나라의 왕의 자녀가 길거리에서 구걸이나 하고 야비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을 만약 우리가 본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아버지가 큰 나라의 제왕인데, 저렇게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잘 몰라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깊이 알게 되고 그러면서 거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참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그런 삶을 저희들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뜻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육적인 이스라엘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기로 작정된 이 세상에 흩어진 모든 하나님 자녀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육체를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일평생동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과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드리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