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2일 교직원예배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 이니라”(잠 21:24).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거든요. 그런 모든 관계를 초월해서 우리의 삶 전체를 내려다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요. 그래서 사람이 보기에는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많아 보이는 사람인데도 하나님께 특별히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해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속에서 잘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고 돌봐주시고 이렇게 이끌어 주십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죠. 그래서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도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또 조금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를 선하게 대우해 주시도록 하나님이 돌봐주시고 이렇게 해서 정말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많은 사람인데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훼파해서 보호해주십니다.
그런 사실을 100% 우리들이 인정하면서 그렇지만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고 보호해주시지만 그 사랑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르게 처신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삶이 굉장히 힘들고 고달파지는 것이죠. 물론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보호해주시지만 여기저기 부딪히는 상처들을 하나님 앞에 갖고 나가면 주님이 어루만져주시고 그렇게 고난 속에서 연단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란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볼 때에 제일먼저 무엇을 보실까요? 여호와는 무엇을 보시느니라? 그렇죠!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먼저 볼까요? 그렇게 생각한 적이 별로 없지요?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했느냐하면 ‘사람은 외모로 취하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성경구절을 해석을 잘못해서 ‘그냥 겉모습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막봐도 상관없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시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것은 바보에요. 왜냐하면 자기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신령한 하나님과 같은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별로 없다고요. 중심의 아름다움을 하나님은 직접 보시고 아시지만 나를 비롯한 우리 모든 인간은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삶과 겉모습을 통해서 그 내면세계를 보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보심은 초시간적인 보심이기 때문에 한 번에 내재적인 인간의 마음과 외출적인 삶이 한 번에 보이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사람의 마음이 한 번에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겉모습도 중요한 것이에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겠지만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사람들 있잖아요? 바보입니다. 그는 정말 바보에요.
옛날에 무엇이라 했느냐하면 남자를 딱 볼 때 신언서판이라고 했어요. 제일 먼저 키를 보고, 얼굴을 보고, 그다음에 글씨 쓰는 것을 보고 그다음에 그 사람을 판다하는 것이에요. 거기서 신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꺽다리처럼 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의 풍격을 얘기하는 것이에요. 수염도 안 깎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야! 옷 좀 신경 써라’ ‘뭐 어때 편하면 제일이지.’ 그렇게 살아봐요.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대접을 못 받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말 자기 자신을 가꾸어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어야 해요. 나는 책이 오늘은 안 나왔지만 제일 싫은 것이 사모들이 사모티를 내고 다니는 것이 있죠. 정말 싫어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에게도 ‘그 좀 교육 좀 잘 시켜라 사모가 되었으면 제발 궁기 부리지 말고 머리라도 좀 반듯하게 하고 구루무라도 찍어 바르고 밥을 덜먹더라도 화장품 좀 사서 발라서 사람들이 딱 볼 때에 빈티나지 않게 하라’고 해요. 어휴! 화장도 안하고 머리도 폭탄 맞은 것처럼 부스스하고 그렇게 해 놓고 옷은 꼬질꼬질한 것을 입고 그리고 먹는 것은 그냥 아낌없이 먹고 말이죠. 사모들이 그래서 되겠느냐고요. 사모들에게 이런 얘기하니까 좀 그런데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죠. 품위 있게 그래서 냉수를 마시고도 이빨을 쑤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 볼 때는 그 빈티 나게 보이지 않게 말이죠. 나는 밖에 나가서 교회 빚이 얼마입니까? 자꾸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대답을 안 해요. 왜 그런 것들을 얘기를 하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집요하게 물어봐요. 그래서 네가 알게 무어냐? 그랬어요. 갚아 줄 것도 아니고 절반 갚아준다고 하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갚아 줄래요? 뭐를 알고 싶으냐? 이것이죠. 너나 잘 하세요. 그런 것은 알리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품격 있게 가꾸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회가 나왔으니까 내가 얘기할게요. 우리 여직원들 가끔 보면 유니폼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거든요. 말 나왔으니까 얘기해야지! 잘되었다. 얘기 좀 해야겠어요. 하여간 되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아니 속에다가 지정된 블라우스를 주었는데 왜 어디서 잠옷 같은 것을 입고 그 위에다가 유니폼을 입고 다녀요? 그리고는 말이지 까만 옷을 입고 와서 까만 스타킹을 신고 그 다음에 그 위에다가 누런 유니폼을 입고 말이지요. 그렇게 다니는 것은 잘 들어보세요. 교회 최고 책임자인 나에게는 그 ‘이까짓 직장’ 하는 태도로 보인다는 것이죠. (나는 이렇게 막 해도 괜찮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죠. 굉장히 불쾌합니다. 표현은 안하지만……. 대단히 실례고 무례라는 것이죠. 조직을 깔본다는 것이 배어있는 것이에요. 그 속에는……. 규율이 그래도,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도 나는 이 직장을 막본다는 태도들이 섞여있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한번 SK텔레콤, LG같은 이런 유수한 기업의 직원들을 보세요. 어림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정복 쫙 입고 거기에 사감 같은 사람하나가 전부다 검사해요. 하루 종일 입어도 흐트러짐이 없어요. 그 대신 최고의 옷을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 호텔에서 음식매장의 서빙 하는 자매들 있잖아요. 서빙 하는 자매말고 팀장이 있어가지고 그 까만 슈트 입고 다니면서 ‘이렇게 이렇게 해!’그러면서 고객이 불만이 있으면 ‘무슨 일입니까?’ 하면서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자매들! 그 슈트가 한 벌에 사백만원짜리에요. 삼백만원에서 사백만원짜리에요. 그렇게 최고의 옷을 해서 입혀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보통 직접 물어봤어요. 호텔에 가서……. 호텔에서 그 여직원들이 가운 입고 다니는 것이요. 보통 백십만 원정도 한답니다. 유니폼이……. 티 하나 없이 입고 다녀요. 만약에 누가 그 복장을 이상하게 변형해서 입었다 하면 그냥 잘립니다. 서비스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내가 유니폼에 대해서 공부 많이 했어요. 물어 보기도하고……. 엄청 비싼 거예요.
그런 것들은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깎아내리는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보면 오늘 성경에 보면 뭐라 했냐하면 무례하고 교만한 자의 이야기가 나와요. 두 개가 통하는 것이죠. 무례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할 약속 그리고 공통 선,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일정한 선의 규율을 따라서 사는 것을 가리켜 예의라고 합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무례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 사이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이에요. 사람들이 자기보다 훨씬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예의를 잘 갖추면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우를 받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돼먹지 않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을 무시를 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잘 들으세요. 그런 사람이라면 예의를 갖추어서 행동하지 않으면 보복합니다. 다시 할게요. 들어보세요. 내가 예의를 갖추어서 행동했는데 저 사람이 나의 공손한 태도를 보면서 나를 무시할 정도의 인격의 사람이라면 내가 예의를 안 갖추고 행동하면 저 사람은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무슨 뜻인지 아세요? 그러면 그 돼먹지 않은 사람한테 예의 바르지 못한 태도를 보임으로 말미암아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어서 다툼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똥물을 뒤집어쓰는 것이거든요. (예화: 내가 전도사생활 할 때인데 거기에 강도사가 한 사람 있었어요. 우리 후배인데……. 조금 성깔이 있지요……. 똑같지…….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바뀌면서 운전기사를 하나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담임목사님에게 얼마나 김밥을 싸고 충성을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전도사가 버스를 운전하라고 -대형버스운전면허인 사람이에요-했어요. 그런데 이 전도사가 고등부 강도사였는데 애들을 데리고 어디를 가야되었는데 봉고를 운전해야 되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기사한테 가서 ‘집사님 우리 봉고 좀 운전해 주시겠어요?’ 하니까 ‘나는 버스 운전하라고 여기에 파송된 사람이지 봉고 운전하는 기사가 아닙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랬으면……. 인간이 그 정도로 돼먹지 않았으면 ‘아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그랬으면 끝났잖아요? ‘아니 성도들이 돈을 줘서 운전기사를 하면 뭐든지 운전을 하라면 해야지 당신이 뭐 잘났다고 버스만 하려고 하느냐?’ 그러니까 대뜸 ‘뭐 이 새끼야!’ ‘어 너 이제 뭐라고 했어? 지금 당신 교역자한테 욕하는 거야?’ ‘그래 이 자식아’ 그러면서 한주먹을 날린 것이에요. 그런데 강도사가 ‘이 새끼가’ 그러면서 한주먹을 또 날린 것이에요. 교회 앞에서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피터지게 싸운 거예요. 누가 이익을 얻었을까요?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어요. 말려서……. 뭐 외투 좀 찢어지고 끝났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니까 결국은 겸손하게 해도 그 겸손을 이용할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겸손하지 않게 행동하면 그렇게 보복을 당하는 것이에요. 그 때는 똥물을 뒤집어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겸손하게 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말이에요. 그런 말이 있어요. XX는 XX를 들어가야 되는데 왕이 불렀어요. 그래도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는 거예요. 어리석은 사람은 ‘내 이놈 문을 열어라 왕이 부르셨느니라.’ 이러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그 문지기한테 겸손하게 행해서 통과를 하는 거예요. 우리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다 지난 일이지만 그 방송시설을 만져주던 업자가 있었어요. 그분도 좀 특이한 분이에요. 어느 날 오더니 방송 음이 별로 안 좋다고 자기가 좀 만져주겠다고 해서 무료로 만져서 그래서 어쨌든 소리가 좀 나아졌어요. 어느 날은 내가 불렀어요. 그때는 미디어 팀도 없고 그럴 때니까 소리가 영 앞에 교인들이 안 들린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와서 한 시간 동안 쭉 나하고 돌아보더니 백삼십만 원정도 들어야겠습니다. 그래요! 알았다고 그러고 ‘지금은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수요예배를 드렸어요. 요한복음 15장 설교 할 때인데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펑펑 울고 나서 예배 끝나는데 현관에서 악수를 하는데 그 사람이 붙들더니 ‘목사님 내일 아침에 와서 돈 안 받고 제가 공사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특이한 인간이었는데……. 나는 뭐 방송을 자세히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친구가 만지면 어쨌든 뭐 뭘 어찌했는지는 모르지만 소리가 잘 들린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 그러면 그 친구한테 여기를 부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사람들하고 자꾸 부딪히는 거예요. 집사들하고도 부딪히고, 방송실 팀하고도 부딪히고 그러는 거예요. 이유는 간단한 거예요. 김남준목사님이 나를 인정을 해주었는데 니들이 무엇이냐 이거에요. 그런데 전부다 사람들이……. 그 사람 해주면 어떻겠느냐 했더니 전부다 ‘아니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 사람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다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도 여태까지 잘 했는데……. 한 번 정도 하게 하면 어떻겠느냐?’ ‘그렇게 하게해달라고 애원하고 정 안되면 자기가 와서 물건사주면 일당 받고라도 하겠다는데……. 해주면 안 될까?’ ‘ 하지 맙시다. 하지 맙시다.’ 다 그러는 거예요. 결국은 못썼어요. 후에 나한테 연락이 왔어요. ‘목사님 정말 섭섭합니다.’ 내가 뭐라 그랬겠어요? ‘내가 섭섭하다’ 왜 그렇게 우리 직원들하고 부딪히고 집사들하고 부딪히느냐? 사람이 겸손해야지! 딱 눈치를 보면 모르겠느냐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람은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야 되요. 겸손하게, 겸손하게 여기에 보면 무례하게 행동하게 하는 그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교만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교만. 교만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마음속에 있는 어떤 마음의 질, 마음 내면에 있는 태도, 그런 것들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결국은 바깥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거라는 것이죠. 그래서 정말 겸손하게……. 제일 상스러운 사람이 음식점에 가서 종업원들한테 막 대하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은 예의바르지 못한 사람들이죠.
오늘 성경은 이렇게 예의바르게 행하지 못하는 원인이 교만 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무엇이죠? 이 세상에 자기가 사람들 속에서 섞여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에는 자기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질서보다도 큰 질서가 있고 그리고 그 질서 속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착하고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고 자신도 그렇게 함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많은 교훈가운데 중요한 교훈이 겸손이었어요. 예수님 당신 자신이 겸손의 모본을 보여주신 것이죠.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겸손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꽉 차있고 은혜 아래 살 때에는 하나님께 대해서 소심한 사람이 되잖아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이러한 생각이 항상 내 마음속에서 들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과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우리의 삶의 태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바뀌게 되는 것이죠. 은혜 받은 사람들은 아주 빠르게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바뀌어가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제도 밤중에 세미나를 끝마쳤는데 어느 자매가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그러면서 잊어버렸어요. 뭐라고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저 누구누구에요.’ ‘음 그러냐!’ ‘그런데 목사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제가 우리 아버지 참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설교를 들으면서 아버지하고 많이 새롭게 하게 되어서 정말 감사해요.’ 그게 은혜를 받고 나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태도를 자꾸 바꾸는 것이죠.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 몰라요. 십년씩 이십년씩 안 바뀌던 태도들이 바뀌는 것이에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에요. 분수를 아는 것이거든요. 그게 결국은.
그러면 똑같이 결국은 우리가 사람들을 막 대하고 사람들에게 예의가 없이 행동해서 관계를 파괴하고 하는 것들이 결국은 무엇이에요. 개념 없다고 하는데……. 개념 없다고 하는 것을 파고 들어가면 사랑 없음과 지혜 없음이에요. 사랑과 지혜 이 두 가지에요. 그런데 사실은 지혜가 좀 부족해도 사랑이 많으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요. 놀라워요.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자꾸 지혜를 주셔요. 사랑이 많으면 대개 이 무례함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오느냐하면 완고한 자기고집과 자기중심주의적인 자기 본위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 본위의 삶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 언제든지 자기를 포기하고 버릴 수가 있어요. 그러면 이 무례함이 꺾입니다. 지혜가 좀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아주 주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겸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위하게 되고 이러면서 사실은 예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죠.
저는 솔직히 그 초등학교도 못나온 시골노인네 같은 분들, 평생을 시장바닥에서 막 살아온 분들 말이죠. 이런 분들인데도 은혜를 많이 받으니까 언행이 그렇게 교양이 있어지고 외모까지 변하는 것을 보았어요. 사랑은 지혜를 불러들이는 또 다른 통로에요. 주님을 많이 사랑하면 겸손해지고 그리고 사람들 앞에 예의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거기에다가 지혜까지 더 겸비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대개 지혜가 없는 사람이 사랑도 없습니다. 많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혜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정말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나는 교역자들에게 언제나 이야기하죠. 깊은 기도의 세계, 성령 충만한 설교의 세계, 현란한 사역의 기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탁월한 비전, 이런 것 이전에 젠틀맨이 되어야 해요. 신사가 되어야 해요.
옛날에 제가 학교에 같이 있었던 목사님 한분이 계세요. 그분도 참 온유하신 분이신데 말해야 될 때에는 정말 거침없이 말하시는 분이었는데 호텔에서 노회의 임원들의 모임이 있어서 갔대요. 그런데 갑자기 대화하다가 옆에 있는 목사가 이 티슈를 꺼내더니 거기다가 프림을 잔뜩 따르더래요. 저것을 싸가지고 가려나? 갑자기 그 프림을 자기 구두위에다가 붓더니 막 문지르더라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아 목사님 몰라서 그렇지 이 가죽에는 프림이 최고입니다. 이렇게 한번 쫙 닦으면 몇 달 동안 물기도 안 먹고 튼튼합니다. 그러니 거기에 쏟아진 프림가루가 카펫 위에 다 쏟아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인상을 쓰고 그러는데 이 목사님이 ’목사가 그렇게 무례해서 되겠습니까? 여기 주의 종들이 모여 앉아서 하나님의 일을 의논하고 여기는 깨끗이 차려진 호텔인데 당신이 여기다가 커피 타먹으라고 주신 프림을 목사라는 사람이 구두위에다가 뿌리면서 그것을 냅킨으로 밥 먹고 입 닦으라는 냅킨으로 그것을 문지르고 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목사를 무엇으로 보겠습니까? 그러면서 대놓고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연세도 있으니까 야단을 치실 수가 있었겠죠. 그런데 무례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정말 무례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꾸 사람들이 피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무례한 삶을 살면 스스로 자꾸 고립 되요. 돈이 많고 권력을 소유하게 되면 그나마 김밥이라도 싸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것마저 없으면 외톨박이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이렇게 대해봐도 예의바른 사람은 다시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생각이 나요. 거만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은 만나야 될 필연성이 없는 한 피하고 싶은 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사람들 앞에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예의바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위해서는 우리들이 은혜의 물에 깊이 잠겨서 예수겸손의 정신을 마음에 새긴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