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새벽예배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시11:1-4)
녹취자: 이새봄
시인은 시련이 오거나 환란이 왔을 때 자신이 여호와께 피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악인이 이르기를 “너는 네 산으로 도망가라”. 이 “네 산으로 도망가라”. 새들이 아마도 그 무엇인가 자기를 해치는 사냥꾼이나 아니면 이런 공격을 받을 때에 숲으로 들어가면 가장 유리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공중에 낮게 날아다니면 화살의 표적이 되겠지만은, 뒤에서 화살이 나오지요? 그러나 숲속으로 들어가서 나무사이로 날아다니면 자기 몸을 숨길수도 있고 화살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환란과 시련을 만나게 되면은, 이런 식으로 그 환란과 시련을 만나게 되면 마치 숲 속의 숨은 새가 사냥꾼의 활을, 화살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시련을 만나고 고난을 만나게 되면은 이처럼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그 시련과 고난을 피하고 숨을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여러 가지 경험으로 미뤄볼 때 이런 시련과 고난, 도전을 만났을 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다, 주님께 피하는 것이다, 주님께 피하는 이것이야말로 그 모든 악인의 공격, 악인의 간악함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인생의 시련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신자의 가장 커다란 신앙의 유익, 신자가 갖는 신앙의 가장 커다란 특권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공격을 받을 때에 악한사람들은 그 공격 때문에 상대방을 또 공격하고 미움 때문에 상대방을 또 미워하고 고통 때문에 상대방을 또 괴롭게 하고, 이렇게 복수심으로 불타서 살지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악인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질서가 흔들리며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로 삼는다, 그렇게 해서 믿음으로 이기고 신앙으로 극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제 이 악인이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을 하는지 마치 새를 잡는 사냥꾼이 그 활을 손에 들고 시위에 화살을 먹임과 같이 그렇게 해서 온 맘을 기울여서 그 새에게 화살을 날려서 새를 떨어뜨리고자 온맘을 기울이는 것처럼, 악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그렇게 화살을 먹인다는 것입니다. 새가 날아가는 새가 사냥꾼이 자기를 향하여 화살을 시위에 먹일 때에 그에겐 무슨 방패나 창, 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악인의 공격을 보면서 그 공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피할 생각을 하게 되는 이것이 고난을 당하는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는데, 이제 그 언약백성들도 똑같이 악인들이 그렇게 화살을 시위에 먹임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못할 때에도 항상 두려움이 있고 항상 그 선이 있어서 넘지 못하고 혹시 넘은 경우에는 마음속에서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는 전 세계역사를 보면서 그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게 됩니다.
이 전쟁의 역사는 무기를 계량해 온 역사입니다. 인간이 상상을 뛰어넘는 무기들을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서 그래서 그 무기들을 실전에서 사용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볼 때에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그 경계를 넘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라면, 효과적으로 사람을 많이 죽이고 살해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게 최대한도록 노력을 해서 어마어마한 그 무기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엄청난 무기들을 만들어서 그래서 전쟁에 활용을 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미친 기운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냅니다. 그것이 바로 무기의 역사입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백성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근데 이젠 마지막 세 번째로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데 보좌는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 통치하시는 방식이 무엇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과 그리고 시련에 귀를 기울이시며 그들을 통촉하시는 것입니다. 통촉하신다, 라는 말이 원래는 불을 밝혀서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의 울부짖는 소리와 고통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그들이 왜 그렇게 흐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지를 하나님이 통촉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촉하시는 건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렇게 통촉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깊이 내려다보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큰 은혜로써 그 백성들을 다스리시고 그 백성들을 향해서 당신의 주권을 펼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악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악인을 통촉하시는 것은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를 통촉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시인이 이속에서 위로를 얻은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깊이 통촉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을 도와주십니다. 도움을 입고 나면 그 다음에 시인의 마음속에는 다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하는 그 진실하고 간절한 소원들이 마음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됩니다. 그 은혜와 도움을 늘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관계,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