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교직원예배 (녹취상태bad)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녹취자: 이재현
우리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입을 통해서 발화되고 그것은 구강의 크기를 조절하고 혀의 위치를 이동하면서 성대를 떨리게 해서 다양한 소리들을 내고 의미들을 전달합니다. 그러니 소리를 내는데 있어서는 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거기서 나오는 공기의 힘으로 그 모든 발화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우리의 말의 뿌리는 우리의 육체의 장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말의 뿌리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마음의 흐르는 바에 따라서 말을 내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말의 연속성을 보면 누구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고, 그리고 반복되는 그 말은 결국은 행동을 산출하고, 행동들의 반복은 습관을 형성하고 습관들이 지속될 때에 그것이 버릇이 되고 인격이 됩니다, 그것이 결국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죠, 마음이 포악한 사람은 언어가 과격하고 마음이 유순하고 온유한 사람은 말도 부드럽고 온유합니다. 이처럼 말의 00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은 입술에 덕이 있다고 했는데, 이 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입술의 어떤 말들을 내는데 그것이 덕이 있다 무슨 뜻입니까. 무조건 좋다 라고 하는 뜻만은 아닙니다. 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선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것을 덕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입술에서 말이 흘러 나와서 그 말이 자신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서 선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그 입술의 말이 나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죠. 그것은 반드시 인간아 너는 왜 이따구로 사니 그리고 너 계속 그렇게 살면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겠어 라는 위협이나 협박을 통해서 그 사람이 올바른 선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만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덕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의 힘이 있어서 그 자체가 사람을 복종시키는 방법으로 억압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예를 들자면 길거리 가는 사람들을 권력으로 모두 줄을 세워서 쐐기를 줍게 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입술의 덕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깊이 승복시켜서 처음 들을 때는 그것이 아닌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그 인격이 가지고 있는 힘에 굴복해서 그래서 선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 이게 덕입니다. 그것이 바로 입술의 덕이에요.
우리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봅시다. 그 분의 손에는 칼 한자루 들려 있지 않았고 손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동전이 들리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즉,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것 가운데 아무 것도 그 분의 손에 들려 있지 않았죠, 때로는 사람들이 그 분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감화를 받고 아멘 하면 순종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은 뭐 저따구로 우리에게 가르치나라고 예수님께 반감을 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들의 마음은 감복되고 그리고 감화되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인데 이게 바로 덕의 힘이에요.
그러니까 그 덕은 정신의 커다란 힘이죠, 이런 것들이 입술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이 잠언의 문맥에서 보면은 악인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그런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힘 있는 말이에요. 그 힘 있는 말이라는 것이 결국은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거죠,
오늘 새벽에도 설교를 했었는데요, 의인의 올바른 삶은 단 한 마디도 그 의인이 악인을 정죄하지 않아도 악인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죄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강한 힘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굴복할 수 없이 뻗쳐 나가는 덕의 힘이에요,
우리는 이른 아침서부터 밤까지 수많은 말들을 쏟아놓습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쓸모있는 말을 해서 그 말의 발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그 말의 유용성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절제 없이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을 쏟아놓는 것은 마치 배설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입술의 아주 덕이 있다하고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되었냐 하면은 임금까지도 친구가 된거죠. 여기에서 지혜자가 상정하고 있는 주체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높은 고관대상을 이야기 하지 않고 일반적인 인간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인간이 입술에 강한 덕이 있으니까 임금도 친구가 되는 거죠. 임금은 감히 그 앞에 나아가서 머리를 숙이면 고개도 들 수 없는 그런 상대에요. 그래서 중국의 역사에 보면은 황제가 있는데 이렇게 우리 나라에서 보는 것처럼 임금이 대청마루에 서서 00 옷을 입혀 놓고 통촉하옵소서 어쩌구저쩌구 대화할 수 있는게 아니라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황제의 말을 전달해 주던 역사가 있었다고 해요, 지위에 따라서 백미터까지 황제앞에 설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구십미터까지 설 수 있는 사람으로 나뉘어서 있었다고 해요, 이게 뭐냐면 0000000 창을 던지거나 표창을 던지거나 피할 수 없는 사람들, 가까이 너무 먼 당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것이 임금과 황제의 위치인데 그와 친구가 되는 것이죠, 그 얘기가 뭐냐하면 아주 놀라운 친밀함이 이루어져요, 그 친밀함이 왜 이루어지냐하면 돈이나 칼 술 무기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입술의 도구로 이루어져요. 그런 것이 바로 삶의 원리에요, 그래서 만약에 어떤 사람의 입술에서 아주 아름다운 말이 나와요, 인생에 있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심오한 지혜가 있는 말들이 나오는데도 그에게 끌리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인간이 쓰레기죠,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이 지혜자의 표현에 의하면 열렬하게 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되요,
지혜자가 이런 말을 했죠, 가서 개미에게 배우라, 개미에게로도 가서 지혜를 배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운 말로 사람에게 감화를 끼칠 때 그 때 그 감화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의 마음 속에 덕의 큰 힘을 깨닫게 할 때 거기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인생을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요, 그래서 친구로 사귀거나 사람들과 교제할 때 진리에 끌리고 덕에 끌리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여야 하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00000 마지막으로 그러면 임금이 친구가 되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입술에 덕이 있고 막 끌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럴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데 그러면 그것은 결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이것은 마음의 정결을 사용할 때에서 비롯된다.
몇 년이나 됐을까요. 교회를 개척하고나서 얼마 안됐을 때 였으니까 한 십 한 오륙년 정도 됐을까요. 생전 안나가다가 동창들이 반창회 한다고 해서 십칠년 동안 한 세 번 나갔나 생각하면 나갔을 꺼에요. 나갔더니 팔레스 호텔에서 했어요. 그래서 커피를 마셨나 아마 그랬을 겁니다. 아니야. 아침을 먹었나 아침을 먹은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커피를 마셨을리는 없고 아침을 먹었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많이 안모이고 한 이십명 나왔었어요. 돌아가면서 인생을 사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실 때에요, 그 때는 저는 주목할만한게 없었을 때였지만은, 설교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에 동창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전설적인 인물이었어요, 강남에서 신년 사경회 때인가 교회를 개척했는데 어쨌든 몇 년 만에 한 오백명이 됐었어요. 그래서 어찌됐던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되게 이야기가 끌렸나봐요, 그래서 그래서. 이 사람이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가 이제 거기서 어디로 옮겨서 밥을 먹을 예정이었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야 오늘 내가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오늘 딴데 가지 말고 이 호텔에 뷔페에 올라가서 먹자 했어요. 그래서 올라가서 뷔페에서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도 그러잖아요, 저 사람이 많이 0000 겠다 그랬는데 마음이 아주 깊이 끌려서 아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가 하면 보기에 아름다워서 저 사람이 무엇이 있을까 해서 갔는데 별로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면서 마음에 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지혜 하나가 필요해, 그게 뭐냐면 말이에요 말. 말을 잘해서 굉장히 세계적인 인물인데도 한번 만났는데 다시 그렇게 만나면 만나겠지만 다시 찾아가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별 뛰어나지 않은 사람인데도 만나면 자꾸 끌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어디에서 나오냐면 언어에서 나오는 거에요,
우리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그 분은 칼 한 자루 창 한 자루 없고, 주먹에 동전 몇 푼 가지신 적도 없었지만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었어요, 그 정복한 것이 땅을 정복한 것이죠, 그래서 스펄젼 목사는 마태복음 오장에 나오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라고 한거죠, 예수님이 그 진리와 온화한 성품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친 것을 가르쳐서 그렇게 구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힘들이 어디에서 나오냐하면 마음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세, 거기서부터 나오는거죠,
그러니까 마음에서 정결하다는 말이 히브리어 말로 “00000000” 인데 “000000”는 제의에 관련된 언어에요, 00000 그래서 아 재물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깨끗함을 지닌 것, 이게 정결이에요. 그러면 그 정결의 개념은 무엇이죠, 이런거죠, 왜 하나님 앞에 그 재물을 드릴 때 발굽이 갈라진 짐승, 통굽으로 된 짐승, 비늘이 있고 없는 것, 이런 등등의 많은 것들이 율법에서 어떤건 먹어도 되고 어떤건 제사 드려도 되고 어떤건 안되고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뭐야, 뭐 여러 가지 사생학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사실 표준적인 구약에서의 학설은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이 까다롭게 하시기 위해서 만들었다 이거에요, 왜 까다롭게 만들었냐, 까다롭게 함으로써 그걸 지키는가를 보면서 당신을 향한 경외심을 판단하는 거에요,
(예화)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은 친구들끼리 밥 먹을 때 국을 쏟은 것은 큰 잘못이 아니에요, 그런데 임금 앞에서 국을 쏟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건 왜, 지위가 높고 존망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주의 깊게 하지 않은 것이 큰 허물이 되는거죠, 그러면 지고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얼마나 더 죄의 깊음이 더하겠어요, 그러니까 그게 경외의 표현이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정결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마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 그게 결과로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만한 마음이 된 상태를 가르키는 것. 그게 이제 신약에 가서는 “0000000”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뭐를 씻어내는 거야, 그래서 깨끗이 씻어, 그래서 우리의 더러운 것들을 이제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씻으시는 것으로 정결해 지는거야, 그런 마음의 정결을 끊임없이 사모하고 그렇게 온전히 되고자 하는 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이 마음 속에 지혜가 쌓이고 쌓인 이 지혜가 입술을 통해서 흘러 나오게 되는 거죠, 거기에서 수많은 지혜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다음에 영향을 미쳐서 그들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의 선함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경외.
오늘날은 우리가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일에 있어서 너무 소란스럽고 외형적인, 그래서 이런 저런 행사를 하고 아니면 이런저런 행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행위로써 사람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고 함으로써 이웃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존재와 삶으로써 덕을 가리키는 삶을 살아야 돼, 그래야 그것이 정말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축복이 은혜가 되는 것인데, 그것이 이웃을 의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여질 만한 정결함이 되도록 애를 쓰는 가운데 그런 지혜와 서서히 축적되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