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GBS 질의응답(교역자 스터디)
녹취자 :이경순
우선 첫 번째는 ‘레카피탈라치오’의 교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의 교리, 이것에 대해서 먼저 개괄적인 뜻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우리 집사람이 공과공부를 하다가 나한테 질문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머리되심이라고 그랬는데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안 되신 적이 있었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 질문부터 시작을 해서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의문을 제기 합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다.” 그러면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의 몸이겠네요.” “그러면 교회도 그리스도 몸이라고 하면 도대체 교회와 이 세상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우리 인간이 그리스도 몸의 지체라고 성경은 부르고 있는데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닌 모든 만물도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몸의 일부가 아닌가?”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애니미즘’(animism) 비슷하지 아닌가?” “인간과 자연 모든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리스도가 머리로 하는 거기에 몸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다양한 질문들을 한다고 그럽니다.
우선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고 하는 이 구도 자체가 사실은 ‘레카피탈라치오’의 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들이 창조, 타락, 구속, 완성 이렇게 이야기 할 때 처음에는 이것이 철저하게 기독론 중심적인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들이 어떤 이해를 갖냐 하면 그리스도는 구속과만 관련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과공부 하면서 사람들이 혼선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창조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보자직’ 그러니까 사람들이 ‘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이 무슨 뜻이냐‘메디에이터’(mediator)라고 하는 것은 ‘중보자’라고도 번역되지만 ‘중재자’, 혹은 ‘중개자, 매개자’, 이렇게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와 관계를 가지실 때 창조부터 시작해서 구속 완성 모든 것에 이르기 까지 그리스도를 통해서 관계를 가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르만 바빙크가 창조를 설명하면서 by Father, 성부에 의해서, through the Son, 성자에 의해서, in the Spirit, 성령 안에서, 이게 바로 창조에 대한 삼위일체 사역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창조 될 때에 이 모든 세계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냐 하면 “만물이 그가 없이는 지은바 된 것이 없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셨으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중재 혹은 중보로서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박사논문을 써서 여러분이 화란에서 논문을 쓰고 'cum laude'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cum laude'라고 있습니다. 'cum'은 무엇무엇 함께 'laude'는 찬양하다 그런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 책을 가지고온 스페이커르 교수님이 30년 넘게 아펠도른에서 신학교수를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아마 30명 내지 40명이 박사학위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딱 한 사람이 'cum laude'를 받았습니다. 누구냐면 윈 얀세입니다. 얼마 전까지 프리 유니버시티에 부총장 하던 분입니다. 뉴스에도 나왔고 나하고도 여러 번 만났고 아주 따뜻하게 교제를 했는데 아주 샤프한분입니다. 'mediatorship of Christ in creation'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보자직’에 대해서 논문을 써서 'cum laude'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서철원 박사입니다. 그 논문이 지금 유럽에서 백 년 동안에 씌어진 백대 신앙논문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보자직이라고 하는 것은 새롭게 내가 만든 용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서 속 있는 용어, 지금은 이러한 기독론 중심적인 장엄하고 우주적인 세계관들이 축소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자면 구속에만 관여하시는 분인 것처럼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타락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인간이 타락했으니까 그렇지만 구속은 아주 정확하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보의 개념을 항상 대신죽고 피 흘리고 이런 관점에서만 보고 그것만 중보라고 생각을 하니까 창조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중보자라는 사실이 굉장히 생경스럽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구속은 이제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다 아는 것입니다. 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결국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결국 모든 인간들이 구원받은 숫자가 교회에 차고 그 사람들이 지식과 사랑 안에서 계속해서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자라갑니다. 그런데 결국은 인간이 거기에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구속을 완성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으로 당신의 구속을 어떤 특정한 시점에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그 완성을 누가 시키십니까? 그 구속의 완성을 누가 주관하십니까?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통해서 입니까? 당연합니다. 구속의 완성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완성된 상태에서 영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원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완성이 되었습니다.
신학자들이 대게 두 가지 견해를 갖는데 완성이 다 되고 나면 그리스도께서 그 왕권을 아버지께로 돌려드린다고 보는 사람이 있고 어거스틴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신다고 봅니다. 서철원 교수도 개인적으로 후자의 견해를 따릅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후자의 견해를 따릅니다.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은 항상 삼위일체 하나님이 간섭 하시되 성자를 통해서 창조하시고 성자를 통해서 구속하시고 성자를 통해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성자를 통해서 영원한 세계까지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초기기독교 시대부터 철저하게 이 기독교는 그리스도 의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생경스럽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로 그러면 만물의 머리가 된다는 것, 그다음에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만물의 머리가 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 가 등등 생각이 들 것입니다. 성경 역대상 29장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 이심이니이다” 여기에서 여호와라고 하는 것은 삼위일체하나님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서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시나이다. 히브리어에서 ‘레콜레로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머리가 되셨습니다. 머리이십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만물이라고 번역 된 것은 정당한 번역입니다. ‘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킹 제임스 버전에서 'all'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head above all' “모든 것 위에 있는 머리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에베소서 1장 22절을 보십시오. 재미있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만물이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눈여겨 보아야할 단어가 ‘만물, 그, 교회 ,머리’입니다. 구도 상으로 보면 만물이 먼저입니다. 만물이 있는데 그 위에 머리가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머리가 홀로 계신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로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있고 그 다음에 교회가 있고 그 다음에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의 머리시라는 사상이 성경에 분명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신학적으로 혼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신다는 것과 만물의 머리되신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이냐? 이렇게 봅니다. 우선 맺는 관계자체가 다르니까 머리되심의 의미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짐승들을 다스리는 것과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똑같겠습니까? 물론 똑같은 방식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와 맺는 관계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영적인 유기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적인 덩어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인간 모두 영적으로 영적인 피조물인 인간과 영이신 그리스도가 연결을 이루고 그리고 이것은 삼위 일체적으로도 연결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흔히 아는 것처럼 그런 연결을 이뤘다고 해서 우리가 신과 동일한 존재가 된다고 하는 존재론적인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영지주의나 이런데서 이야기하는 신일혼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적인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범신론적인 구도가 아닙니다. 무슨 뜻이냐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되시고 거기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이 연합은 하나님만의 연합입니다.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의 영적인 이 관계는 다른 피조물 속에서는 반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모상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그 자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교회와 영적인 연계를 이룹니다. 그러면 당연히 영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과 존재론적으로 동질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연관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연관을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다시 말하면 신자들의 머리가 되신다 라고 하는 것 더 넓게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들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는 의미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의미와 그 다음에 교회에 몸을 이루고 있는 구원받은 신자들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로서 갖는 그 의미와 두 번째 불신자들인 인간의 통치주로서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관계와 그리고 아예 영혼이 없는 이 세계의 모든 만물들과 그리스도가 머리로서 갖는 그 관계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신자를 향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 성령을 내주하게 하십니다. 그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대로 거룩한 사람들이 되도록 우리의 지성과 의지를 일깨우셔서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해 가도록 만들어주고 간섭해 주십니다. 불신자들을 향해서는 그렇게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신자들조차도 그리스도께서 때가되면 그들에게 지성을 열어서 복음을 알게 하시고 의지를 감화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도록 만드신다는 점에서 그런 식으로 불신하는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그런 모습은 개나 돼지나 짐승들과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개가 회개하겠습니까? 돼지가 뉘우치겠습니까? 사자가 거듭나겠습니까? 인간이 아닌 모든 만물들의 머리가 되신다고 할 때 이것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아브라함 카이퍼가 이야기 했던, 사회를 정화하는 작용,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죄에 대한 어떤 자각이 일어나게 하고 인간의 마음속에 상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생겨나게 하여서 선을 촉진하는 모든 계시에 대한 깨달음과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하신 세계와 인간의 본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퍼레이션 되는 것입니다. 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그러니까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와 연관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보면 이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피조물들이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피조물이 왜 탄식합니까? 피조물들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뱀은 사탄의 도구가 되어서 그 짓을 했지만 땅이 저주를 받았는데 땅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땅은 가만히 있었는데,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 앞에 타락하고 징벌을 받으니까 이 땅이 인간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따라서 모든 땅들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영향을 받아 저주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땅도 인간의 구속을 위해서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수동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속이 모두 완성될 때 땅에 맺힌 저주가 풀리면서 이 피조물들이 다시 본래의 하나님과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에 모든 피조물들이 각기 자기의 창조의 본래의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본래 하나님이 부여하신 모든 기능들을 따라서 태어나고 생산하고 열매를 맺고 이러면서 번성하고 하는 작용들을 계속할것입니다. 이 작용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통치입니다.
결국 타락해서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모든 땅의 저주된 상태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그 징벌을 통해서 넓은 의미 에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통치를 모든 만물이 벗어날 수 없지만 좁은 의미 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던 완전한 질서와 조화와 균정의 상태가 깨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아무리 타락해도, 그리고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다스리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스리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간이 어떠한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이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 깨뜨려진 질서 속에서 살도록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이 진리에 대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참 생명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비참한 삶을 살고 그것이 바로 죄의 비참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요약을 하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라는 의미, 인류의 머리가 되신다는 의미, 그리고 영혼을 갖지 않은 비지성적인 모든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는 의미는 각각 다르다. 그리고 비이성적인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통치함으로서 머리가 되는 것은 오직 신자들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 통치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계속 의지를 가지고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지성에 말씀하시고 의지를 변화시키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점에서 그 아래 있는 모든 만물들을 통치하시는 것과는 다릅니다. 모든 만물들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 져서 창조의 원래의 아름다운 상태로 돌아오고 만물들이 그분의 통치의 질서 속으로 순응하는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어떠한 에니미즘적인 요소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아까 읽은 에베소서 1장 22절 같은 경우에 보면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요게 언제부터냐면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입니다. 그때 이 ‘주’라고 하는 ‘아도나이’ 칭호는 사실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칭호입니다. 여호와의 ‘께레’가 아도나이였기 때문에 ‘께레’는 읽는 것이고 ‘께티브’는 쓰는 것입니다. ‘께티브’는 ‘야훼’라고 썼지만 읽을 때는 ‘아도나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는 곧 여호와입니다. 그 칭호가 사실은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만 사용이 되었던 것이 여기에서 그리스도 성육신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적용이 된 것입니다. 기독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심으로서 모든 만물들을 그리스도께서 직접적으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을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치하시고 모든 만물들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 그 다음에 십자가에 죽으실 때 부활하실 때 모두 자연현상들이 동반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일으키셨던 자연적인 커다란 이적들은 그것이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만물들이 그 발아래 복종하실 말하자면 완성된 세계의 어떤 모습들을 미리 투사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셔서 마지막에 완성하실 나라에는 모든 만물들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지양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그 모든 만물위에 교회가 있고 그 다음에 교회의 머리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장성하여 교회가 완성이 되면 그 다음에 이 모든 만물들도 완전히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창조의 아름다운 질서 속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우주론적인 구조를 에베소서 1장 22절이 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성경 구절 골로새서 1장 18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여기에서 ‘근본’이라고 하는 단어가 ‘아르케’입니다. ‘아르케’란 시작, 원리, 원천, 근원 그런 뜻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아르케 없이는 아무것도 생겨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브레시트 브레시트 바라 헬르 브레시트”라고 하는 단어가 동시에 오고 그것에 대한 똑같은 표현이 ‘엔 아르케’라고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옵니다. ‘엔 아르케’ 해놓고 ‘로고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현재완료형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왔느니라” 이렇게 됩니다. 완료형입니다. 그래서 태초를 기점으로 볼 때 그 말씀이 계속해서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보면 교회의 머리이시라 그랬고, “그가 근본이시요”라고 할 때 이 ‘근본’이라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근본이 아니라 모든 만물들의 아르케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하심이요”라고 나옵니다. 이 ‘으뜸’이라는 것은 결국은 모든 만물들 위에 가장 뛰어나셔서 가장 높으신 분으로서 모든 것들을 머리가 되어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머리라고 하는 것은 최고의 권위, 능력, 이런 것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머리로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생각들을 피조 세계 속에서 구연하시는 분으로서 머리입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아래로 내려가면 골로새서 2장 10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니라,’ 여기서 통치자, 권세 이런 것들은 이 땅에 임금들일 수도 있고 영들의 세계에서의 천사들의 랭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그것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똑같이 결국은 머리라고 하는 의미가 구현하는 바는 통치, 그 다음에 하나님의 생각을 구현하는 지성, 그리스도의 교회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연합의 머리, 이런 의미입니다. 결국은 인간의 구속의 완성은 인류 중 어떤 사람들은 멸망에 이르고 나머지는 구원 받은 사람 또는 모두 그리스도와 완전히 접붙여져서 완전히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을 이룬 상태에서 모든 만물들의 머리로서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그 일에 인류가 기여하면서 사는 것이 이 세계의 완성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안 되신 적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겠습니다. 이미 두 개를 설명하면서 거의 답이 나왔지만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안 되신 적은 넓은 의미에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 에서는 인간이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에서 끊어지게 해주시고 모든 피조물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질서와 조화와 균형의 상태에서 이탈하게끔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들이 인간의 경우에는 도덕 악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모르고 하나님의 생명도 없으니까 죄짓고 악을 행하고 자기를 주인 삼으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자연의 세계는 그런 그리스도의 통치로부터 이탈하니까 자연에 악들이 도입됩니다. ‘자연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엄청난 자연의 재해라든지 부조화로 일어나는 어떤 기상 이변이라든지 혹은 문명은 발달했지만 인간들이 그 문명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도덕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문명의 기술들이 오히려 인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알고 쏘았겠습니까? 오해하고 쏘았을 것입니다. 옛날에 칼기 격추할 때도 미국이 수시로 항공기로 소련영공을 침범해서 정찰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신을 한 것입니다. 미국 정찰기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쏜 것입니다. 결국은 한명도 못살고 다 죽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입니다. 민항기라는 것을 알았으면 그 사람들이 쏘았겠습니까? 얼마나 욕을 먹을 텐데, 그런데도 격추시켰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발달들을 그것들을 인간들이 통제할 올바로 사용할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만들어낸 인간의 기술들이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인간들을 매우 불행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은 그리스도의 머리되신 통치를 벗어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머리되신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서 ‘다시’라는 것은 타락하기 전, 창조의 상태를 먼저 원래의 머리되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 때에 모든 인간과 만물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의에서 제정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면서 완전한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때 상태가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 상태입니다. 인간들과는 지식과 사랑으로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계셨고 그리고 이모든 세계는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하는 상태였습니다. 이것들이 깨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세계와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자기와의 관계 다 파괴됩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은 그의 온전한 통치의 질서에서 벗어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스스로 이탈했다고 보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징벌로서 그리스도께서 그런 질서에 이탈하도록 피조물들을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이것을 좁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부분적으로 실종된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완전히 복구된 상태가 구속의 완성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되심이 깨어진 그것을 내가 만물의 흩으심이라고 했는데 흩어진 그 상태에서 다시 모아서 통일되게 하는, 다시 머리되게 하는 상태 이 중간에 바로 인간에 대한 구속이 먼저 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이 모든 만물의 흩어짐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기 때문에 타락한 그 인류를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이 세계 전체에 대한 치유를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를 먼저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 신 것은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먼저 택하셔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는 의미는 예전에 타락한 인간들과는 가지신 적이 없는 매우 아주 독득한 특별한 생명과 성령과 은혜의 통치로 말미암는 그런 머리되심을 말하자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그 생명을 얻고 그것으로서 하늘자원을 누리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독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개념이 여기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결국 만물의 흩어짐으로부터 그 만물이 다시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에 굴복하여 머리가 되시는 그 때까지의 인류의 구속을 완성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완성된 인류는 따라서 구속의 개념이 이 모든 피조물들을 구속의 개념 속에 같이 넣어서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다 듣고 나면 아주 분명하게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 ‘아 구속받은 우리들이 이제는 우리의 구속을 통해 마지막에 완성되는 것은 우리의 구속만이 아니라 이 피조물들이 잘못된 인간의 문명으로 말미암는 파괴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구나.’ 그런 정당한 견해를 가지고 오늘날의 물질문명에 대해서도 적절한 견해를 가지고 우리들이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또한 이 모든 세계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우리와 운명을 같이하는 구속의 대상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이 모든 만물들의 복지적인 측면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유제품을 거의 안 먹고 있는데 앞으로 못 먹을 것 같습니다. 그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보통 소가 몇 년쯤 살 것 같습니까? 평균 수명이? 최단 15년 길면 25년 정도 사는데 일상적인 소의 수명입니다. 그런데 젖소의 수명은 3~4년이면 죽습니다. 왜냐하면 젖소에서 젖을 짜내려면 계속 임신을 해야 합니다. 계속 새끼를 낳으면 접붙이고 접붙이고 새끼를 낳으면 딱 떼어서 어미젖을 안 먹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조잡하게 만든 우유를 먹입니다. 그리고 어미젖이 세균에 감염이 되어서 팔 수 없게 되었을 때만 주는데 그것도 암놈에게만 준답니다. 숫놈에게는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착유기를 단 채로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안 되니까 성장 촉진제를 주어서 빨리 임신할 수 있는 소로 변신시킵니다. 그리고 우유가 많이 나오도록 주사를 놓습니다. 그리고 항생제를 집어넣어서 젖을 계속 많은 양의 젖을 짭니다. 착유기를 계속해서 달고 사는 것입니다. 거의 골수를 빼내는 것입니다. 젖만 짜는 기계로 만듭니다. 계속해서 임신을 시킵니다. 결국은 3년 내지 4년이 되면 소가 너무 많이 젖을 짜내고 소진해 버리기 때문에 서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리는 다운소가 됩니다. 그러면 도살장에 가서 육류로 처분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우유가 신선한 풀밭에서 소들이 뛰어다니면서 젖을 짜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그런 소는 없습니다.
여러분, 다큐멘터리 유튜브에 들어가면 ‘음식주식회사’라고 하는 다큐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탐욕이 지배를 합니다. 여러분 닭가슴살 좋아하지 않습니까? 보통 닭이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 병아리가 되려면 75일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수지가 안 맞습니다. 굉장히 비싸게 받아야 합니다. 두 배 정도 그러니까 막 촉진제를 놓아서 앞가슴 살을 좋아하니까 가슴만 커지도록 변형을 시킵니다. 그래서 닭이 서지를 못합니다. 가슴이 커져서 앞으로 고꾸라지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계속먹이를 먹여서 딱 죽여서 가슴살을 떼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비인간화 들이 우리나라 에이 투플러스 하는 것들도 전 세계에 일본과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 자체가 비인간화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방목을 하면 에이 파이브 플러스까지 있습니다. 에이 파이브 플러스는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는 백화점이 몇 안 됩니다. 아마 100그램에 한 삼만 원 정도합니다. 그런 말할 수 없는 비인간화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서 오는 겁니까? 결국은 피조물에 대해서 아주 잔인한 것입니다. 아무 생각을 안하는 것입니다.
원전을 건설한다고 하는데 미친 짓입니다. 전기 덜 쓰면 됩니다. 덜 쓰고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동적으로 들어오면 켜놓게 되지 않습니까?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파괴하는데 돕는 행위입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꺼도 얼마든지 되는데 에너지를 한없이 낭비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짓밟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올바른 견해를 가지면 사실 그런 식에 대한 개발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4대강도 개발한 후유증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게 그게 가장 커다란 투자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겠죠. 홍수피해도 줄고 하는 면도 있겠죠. 그러면 그것은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을 짓밟고 파괴해서 44조나 되는 돈을 쓸어 넣어서 8조 내지 12조가 빚덩어리로 남아서 계속 이자가 들어갑니다. 지금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지만 나는 만약에 우리나라 포항 이쪽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나면 거의 회생 불가능한 상태일거라고 봅니다. 일본은 그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대도 지금 저렇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 그때 한번 시뮬레이션 나온 거 보니까 하나 터지면 350키로가 오염이 된다고 그럽니다. 그럼 남한이 거의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위 강북하고 전라도 쪽 제주도 좀 빼고 다 오염상태로 들어간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빨리 폐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에너지를 찾고 모자라는 것은 올려야 됩니다. 전기요금은 파격적으로 올리고 사람들이 전기 그러면 무서워서 벌벌 떨게 만들고 기본적인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싸게 주고 그 다음에 기본적인 공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저렴하게 주되 일정부분을 넘는 것에 대해서는 그 희생을 감수하는 게 미래를 위해서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자원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의 세계에서는 이런 것들을 들을 수가 있어야 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제임스 사이어’를 비롯해서 ‘폴 존슨’, 이런 사람들의 수많은 세계관에 관한 책들을 읽어도 무슨 소린 줄을 몰라 이런 시리즈를 사실은 설렁설렁 한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환경문제나 심지어 금용문제 요새 나오는 비트고인 문제 다 이해하면서 다 모아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얼개 속에 모두 다 들어가면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학문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서 적용능력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해방시켜주는 것이 개혁주의적인 구원론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구원에 대한 전망이 정말 하나님나라와 관계가 없는 개인적인 피안주의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의라든지 부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들이 너무나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개가 없습니다. 이것이 참 진리요 길이다 그러면 사실은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한없이 양보하고 자기를 죽일 수 있지만 진리인 것에 대해서는 사실은 그것을 굽히고 사느니 그것과 함께 장열하게 죽는 게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이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용기 같은 것은 대단하게 쳐주지도 않고 구조자체가 그런 식으로 되니까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높은 관직에 이를 때 사람들의 사회 속에 정의가 사라지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성공이라는 미명아래 흐려져 가는 것입니다. 이게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그리스도의 다시 머리되심이라는 교리가 아주 매혹적입니다. 최근에 제가 뭘 읽었냐면 오리겐의 『원리론』(On the First Principle) 을 읽고 있습니다. ‘프린키피아’라고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이미 그리스도의 머리됨의 교리가 아주 구체적으로 다 나와 있습니다. 오리겐은 2세기 때 사람인데 내가 연대를 기억하기에는 이 사람이 오히려 이레네우스 토틸리엔 보다 거의 동시대보다 약간 앞선 사람인데 이게 어느 날 생긴 교리가 아니라 초대교회에 다 있었던 교리이고 이게 사라졌다가 중세에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서 공인되면서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지상세계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과 함께 루터를 비롯한 사람들에 의해서 화려하게 재생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토마스 뮌처나 이런 사람처럼 육적 왕국으로만 세상왕국으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시야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총체적인 세계관을 갖게 해주는 중요한 교리에 대한 체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우리들이 이 문제를 접근해야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