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5. 10 새벽예배
Psalms 18
목 차
구원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함(시 18:1-3) 3
환난에서 부르짖음(시 18:4-6) 6
건지시는 하나님(시 18:7-16) 9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심은(시 18:17-21) 11
말씀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시 18:29-34) 15
원수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시 18:35-38) 18
굴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시 18:39-42) 22
원수를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시 18:43-46) 26
인자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시 18:47-50) 29
구원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함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 18:1-3)
다윗을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시키심
이 시는 다윗이 사울의 손에서 구원을 얻은 후에 지은 시입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사울만큼 큰 고통을 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공격받을 때는 왕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권력으로나 힘으로나 비교가 되지 않았는데도 견제를 받았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산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사 기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한 편으로는 아직 보위에 있는 왕은 사울 자신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 이미 쏠리는 것에 대한 영적인 시기심이 작동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한 나라를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지도자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도망을 다니는 시기에 아름다운 찬송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수시로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라는 신앙고백이 생겼고 이것은 왕이 된 다음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에 합한 대로 쓸 그릇이 되도록 철저하게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경험함
첫째로, 시인은 하나님 앞에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18편의 문맥은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저자는 일생을 전쟁터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힘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환난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경험하였기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고난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난만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도 함께 주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고난을 배경으로 해서 구원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심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 됨
둘째로, 다윗이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는 많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라는 표현은 전쟁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입니다. 적군이 물밀듯이 몰려와도 산성이 탄탄하면 난공불락의 성이 되어 공격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굳건한 요새에서 전쟁을 하면 털끝하나 상하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꽉 찰 때 신자는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환난에서 부르짖음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귀에 들렸도다”(시 18:4-6)
시인의 고백의 이유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내가 사랑하나이다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피할 바위시며 요새시며 피난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야지만 결과가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해야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려면 순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때 의지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이 신앙의 이치요, 도리입니다. 시편 4-6절의 말씀은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절의 내용을 입증하듯이 4-6절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줄, 죽음의 올무
“사망의 줄, 죽음의 올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의 비유입니다. 시인이 택함을 입어 왕으로 부르심을 받고 일생 동안 경험한 숱한 고난과 시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로 하여금 항상 죽음을 생각하게 했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육신적인 죽음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었지만, 원수들의 공격보다는 낙담하고 좌절하는 정신적인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사망의 줄’이 성전에서 쓰는 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태워드릴 때 도살된 제물이 제단에서 흘러내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두는 줄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이 완전히 죽어서 제단에 묶여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해석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은 절망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불의의 창수’도 유사한 것입니다. 창수는 큰물이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물이 나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난리에 인간이 어떻게 도전을 할 수 있습니까? “나의 힘으로는 내 원수들의 공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간구함
고난의 때에 시인이 한 일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도록, 내게 은혜를 베풀어 살려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자가 일평생 살 동안 만나는 모든 고난과 시련, 모든 고통과 악, 이런 것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혼자의 힘으로 살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라고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때로 이런 시련과 고난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고난과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순종하면서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건지시는 하나님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불에 숯이 피었도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저가 흑암으로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파하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을 인하여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시 18:7-16)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을 보이심
시인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 자신의 권능을 보이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이 자연에서 어떻게 드러나 보이는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느낍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을 더 많이 의지하며 살았으니 자연현상을 보며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큰 뇌성, 번개, 큰물에 떠밀려 내려오는 수많은 나무, 굴러가는 돌멩이,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연의 위대하고 큰 능력에 비하면 인간의 힘은 너무 보잘 것 없고 사소해 보입니다. 자연계를 뒤흔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당신의 백성을 압제하는 수많은 원수들을 향해서 당신의 능력과 위대한 힘을 발휘하사 심판을 행하십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이 한쪽 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되고,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됩니다. 원수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고 시인은 거기에서 구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일들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유독 시인만이 독자적으로 도움을 입는 것 같이 경험하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먼저, 이것을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시인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랑은 한쪽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한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도 그의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고난과 시련을 견디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시인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놀라운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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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시편 18편에서 계속 나오듯이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인생의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사람들도 인생의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시인은 낙심하고 좌절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인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에 최고의 숙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소리를 내서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급선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인생의 시련을 만나고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힘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 수 있게 되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심은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시 18:17-22)
건져주시는 하나님
시인은 비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많은 시련과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들이 주변에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고 보호하시지만 그가 어떠한 환난과 시련도 당하지 않게끔 만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에게 큰 뜻을 품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큰 뜻을 품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특별하게 준비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준시키는 것, 때로는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인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과 악한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해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겹겹이 쌓인 시련과 환난이 많아도 그것들보다 더 큰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정말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힘입어야지만 살 수 있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아무리 시련이 많고 환난이 커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시련보다 크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정말 지푸라기와 같고 아무 힘이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시련과 환난을 만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 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언제나 시련과 환난과 고난이 뒤따르기 마련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믿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건져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더욱 순수해지고 주님을 꼭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져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에게 시련과 환난을 허락하기도 하시고 가혹하리만치 긴 시간동안 아픔을 당하게도 하십니다.
만약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움이 없다면 우리가 깨어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아무런 고통과 자극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시인을 건져주신 경험을 노래하면서 의미 있는 말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시련을 당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에도 슬픔에도 이기게 하옵시고 ♬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인생 자체가 고난과 슬픔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슬픔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고난 가운데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고 흩어졌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시키면, 하나님이 나를 에워싼 수많은 이리와 같은 대적들에게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깊이 깨달을 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를 불러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사랑하게 하고 세상의 헛된 욕심을 버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이렇게 되게 만드시려고 시련도 주시고 환난도 주십니다. 고난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시인을 왜 기뻐하셨을까? 시인은 “내가 주의 법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올수록 우리는 온전해지기를 더 힘써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온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시련과 고난의 날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을 탓하거나 환경을 타하거나 세상을 탓하며 원망하는 식으로 사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살이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이런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이 믿음 있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나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주시는구나.”하고 자기의 불결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의 편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원수들에게 힘없이 노출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하는 자식을 지키는 아비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니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도 때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을 꼭 붙들고 의지하면서 고난도 슬픔도 이기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시 18:29-34)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을 넘음
시인은 계속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이렇게 악인에게 압제와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모든 시련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은혜를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달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것은 원수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상황을 보여 줍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극복해 보려고 최선을 다 합니다. 달리는 힘을 의지하지 않고 담을 뛰어넘는 기술도 의지하지도 않고, 그가 의지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하나님의 큰 도움과 은혜를 의지하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려고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가난해서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의 돈 버는 기술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집에 한숨만 쉬면서 앉아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최선을 다하여 행하면서도 그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환난과 시련을 만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환난 가운데 있는 자녀들을 도우시는지 하나의 공식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말씀을 통해서 내적인 힘을 주십니다. 환난과 시련을 만날 때 사실 정말 어려운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은 큰 어려움이든 작은 것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이나 시련이 있게 되면 외적인 여건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이 문제가 됩니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신령한 마음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며 내 방패시라
환난을 당할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주셔서 나를 에워싼 많은 산적해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편이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확신을 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의 평안과 은혜가 밀려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입니다. 내 마음에 은혜가 밀려오면 밖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보는 눈이 틀려지게 됩니다. 은혜가 없으면 모든 것이 불평거리인데 은혜가 생기면 모든 것들이 다 감사제목이 되고, 은혜가 없으면 환경을 바라보면서 낙심하게 되는데 은혜가 생기면 도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시인이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면 사람이 마음에 변화가 오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전쟁 시에 방패는 보호를 의미합니다. 방패의 종류가 서양전쟁사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희랍식 방패와 로마식 방패로 나눕니다. 희랍식 방패는 굉장히 커서 세워놓고 방패 뒤에 숨으면 어떤 화살이 날아와도 다 막아줍니다. 로마식 방패는 크지 않습니다. 방패가 크면 멀리서 공격하는 적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가까이 이는 상대방과 맞붙어서 싸울 때는 걸림돌이 됩니다. 희랍식 방패는 사각형인데 로마식 방패를 원형으로 팔에 착용하기 간편하게 되어있습니다. 한손으로는 수비를, 그 반대편 손으로 공격을 용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화살의 공격을 받을 때 방패로 동그랗게 지붕을 만들게 고안되어 있습니다. 공격이 아무리 심해도 방패로 잘 막을 수 있다면 오히려 공격하는 동안에 상대방의 물자와 에너지를 소모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의 방패를 힘입으라
은혜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방패삼아서 많은 환난과 시련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환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뛰어난 방법들은 말씀을 통해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신자들을 하나님이 친히 구원해 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고 도우심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어려움이 오면 절망하기 보다는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보이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어떤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실까?”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신자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말씀으로 방패를 삼으며 그분의 구원하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으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없는 삶이었다면 환난 가운데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고 자신의 불행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해로운 인생을 살았을 텐데, 주님이 계시는 삶이기에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놀라는 변화를 경험하며 주변에 유익을 끼치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수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치 않게 하셨나이다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미치리니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저희를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리이다”(시 18:35-38)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악한 원수들을 이 시인이 멸하기 위해서 쫓아가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이전 것을 하나님의 보호라고 말한다면 이번 것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간신히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영위해 나갑니다. 그것이 충분히 바람직한 것이겠습니까? 사실은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죽일 뿐만 아니라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유혹을 뿌리치고 슬픔을 견디는 것들을 넘어서 그것들을 극복하고 정복하는 그런 삶,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언약 백성다운 삶입니다.
흔히 전쟁에 있어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적군이 모든 준비를 갖추고 공격해올 때를 기다리다보니, 적국인 너무나 막강해서 역부족이라고 판단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반대로 기습을 감행하면 도리어 상대방이 놀라서 군사력이 분산됩니다. 이 작전이 성공해서 놀랍게도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해냅니다. 시인이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구원하는 방패를 주심
이렇게 전세를 뒤집는 놀라운 변화는 어떻게 오게 되었습니까? 여기서 그 요인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방패와 의로운 손과 하나님의 온유하심.
첫째는 방패입니다. 시편 2편에서도 시인이 “하나님은 나의 방패요 내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방패는 전쟁에 있어 방어용 무기입니다. 화살이 빗발칠 때 그것을 막아줍니다. 원수가 겨냥해서 내리치는 칼을 막아주는 놀라운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시인이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약해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란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보호해주십니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 살려고 하면 하나님이 보호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된다는 뜻입니다. 방패의 역할을 생각해 보십시오. 칼로 내리칠 때 그것을 맞으면 당장에 절명하겠지만 방패에 의해 생명이 보호를 받습니다.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주의 오른손으로 붙드심
둘째는,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오른손은 선택의 개념입니다. 주께서 오른 편에 두신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오른손은 ‘야드’라는 단어인데, ‘힘, 권능, 능력’과 같은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 손으로 하나님이 붙드신다는 것은 시인이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사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오른손의 개념입니다.
이사야 41장에서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이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자기를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드사 자기를 택자가 되게 하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대상이 되게 하신 것이, 결국은 하나님이 시인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리하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족하지만 선한 의지를 가지고 주님을 꼭 붙들고 살아가려고 애쓸 때, 의외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의 온유하심으로 크게 하심
마지막 세 번째로, 주님의 온유하심 때문입니다. 이 온유는 무골호인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비롯된 자신감에서 유래하는 내적 평강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언제나 평화로운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온유함을 시인이 경험했습니다. 그 평화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거기에서 자신감이 생겨나고, 원수를 후대하고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기꺼이 용서할 여유들이 생겨납니다. 그 모든 자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결론과 적용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지 시험을 견딜 뿐 아니라 그것을 이기고 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방패이신 하나님, 나의 보호가 되시는 하나님, 나를 특별히 선택하사 능력주시는 하나님,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온유한 성품을 끊임없이 발견하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화목 속에서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환란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굴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시 18:39-42)
전쟁케 하시려고 띠를 띠우심
시인 다윗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일평생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왕이 되기 전까지는 원수들에게 끊임없이 쫓겨서 도망을 다니며 싸워야 했으며, 왕이 된 후에도 계속되는 전쟁과 환란 속에서 자신을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전쟁은 아마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시려고 내게 띠 띠우셨나이다” 여기서 띠를 띠운다는 것은 힘을 준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힘을 내서 일을 하거나 전투를 해야 될 때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는 것은 남자의 힘이 허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항상 문제가 없고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어려움과 난관이 생겨서 전쟁처럼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찾아옵니다. 전쟁 같은 위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이길 힘을 주십니다. 전쟁을 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작은 나라들이 다윗과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입니다. 전쟁에서 지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악한 원수들을 다 무찌르고 후한을 없앨 수 있습니다.
시련을 통해 연단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눈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이 너무 고달프고 괴롭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가 싸워야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문제들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서 해결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렇게 승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외부로부터 큰 시련과 어려움이 오면 우리들은 많은 고통 속에서 상황과 더불어서 씨름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 계기를 통해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물론 우리가 실패한 것이고 잘못 살아온 것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자체가 우리를 고치시는 복된 일입니다. 이전에는 몰랐던 우리 안에 있는 죄와 불결한 것들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자기 자신과 맞붙어 싸우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드러내실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시인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윗이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원수들과 전쟁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속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사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두 번이나 반란의 고초를 겪는데 그 반역자들도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언약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누구든지 이기기를 원합니다. 승리하는 것보다도 더 뛰어난 가치가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도 간절히 부르짖었지만 저희에게는 응답해 주시기 않았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고 다윗의 편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의 문제가 생겨난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승리를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하는 것 자체가 우리로 전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은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문제는 결코 문제일 수 없습니다. 고난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온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문제들이 있어도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고 붙들어 주십니다. 사람들은 내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안하기 때문에, 내 문제들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섭리 가운데 문제를 남겨두사 우리로 부패하지 않고 당신만 의지하며 매순간 살아가게 하십니다.
결론과 적용
여러분, 문제들이 드러났을 때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편에 서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후한을 없애십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를 없애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의 섬김을 통해 폭발적인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짖어도 듣지 않는 편에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고해야 합니다. 기도는 삶을 위한 것이고 삶은 기도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살려고 애쓸 때 그것이 훌륭한 기도의 준비입니다. 거기서 모든 승리와 이김이 시작됩니다.
원수를 굴복시키시는 하나님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저희가 내 풍성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이방인들이 쇠미하여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시 18:43-46)
하나님이 견고한 진이 되어주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시인으로 하여금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단순히 이기는 것을 넘어서 열방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으로는 수많은 자기의 의, 비난, 다툼과 구설 속에서 고통을 받고, 밖으로는 수많은 타국의 대적들이 일어나서 시인과 더불어 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시니까 안팎으로 일어나던 다툼들이 멎고 거기에서 시인을 건져주셨습니다.
수많은 이방 백성들과 더불어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승리를 주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될 때 이방 백성들이 떨면서 도망갔습니다. 그들이 시인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이유는 견고한 진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이 무너지지도 않았는데 모든 적들이 손들고 나와 항복하고 나오는 것 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는 사람
그러면 안으로는 언약 백성들에서 일어나는 시기와 다툼, 구설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외적들과 더불어 싸워서 영광스런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시인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설령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잘못할 때일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모든 구설의 다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외적들과 싸움에서 이런 감격적인 승리를 안겨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이기려고 하는 시인의 모든 노력들이 전편에 흘러넘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그분의 계명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시인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고통 속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밖으로는 수많은 외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주시고 안으로는 언약 백성들의 구설과 다툼에서 벗어나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평화 안에서의 사랑, 순종, 기도 같은 것들을 보시고 시인을 모든 환난과 어려움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고난은 우리 자신의 성찰의 기회
우리가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은혜 안에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꺾을 대적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환난과 괴로움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듭니다.
시인의 마지막 고백은 ‘하나님이 생존하시니’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반석’은 큰 돌을 의미합니다. 무엇에 의해서도 요동치 않는 그런 큰 반석, 그 위에 집을 세우면 무너지지 않고 그 반석들 사이에 숨으면 원수들의 어떤 공격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반석이란 말은 나의 든든한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시인이 하나님과의 평화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며 살았기에, 어떤 곤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에서 시련이 만날 때 이것은 사방에서 우겨 쌉니다. 한꺼번에 벌 떼처럼 달려들어서 우리를 곤고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결국은 마음이 괴롭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내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가? 내가 정말 순종하는가? 내가 정말 기도하는가? 나와 하나님 사이에 내적인 평화가 있는가?’ 모든 것들이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결국은 인생을 방향 짓게 만드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를 고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가 이런 것을 충분히 배울 때 우리는 오히려 환난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오히려 환난을 당했기 때문에 예전보다 하나님을 더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시인이 그런 응답을 경험하고 난 후에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임없는 화목과 사랑의 관계가 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이 깊어지는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자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실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후손에게로다”(시 18:47-50)
하나님은 의지하는 자들의 편
본 절에서 모든 찬송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방식이 바로 택자를 대적하고 해치려고 하는 모든 자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수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들에게 복수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의 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계획을 당신의 계획에 합치시키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치시켜 살아가는 사람들을 왜 사랑하시는가? 바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도 참답게 순종을 드릴 수 없고,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포기하고 매달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온 땅의 사면을 두루 살피며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회심,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
우리들이 회심의 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다루는 것도 회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심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회심이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회심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회심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살았어도 한 번도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환난과 어려움들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갈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수없이 많은 상처와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십시오.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스스로 올무 속에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회심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관계에서 인생의 문제들을 해석합니다. 물론 은혜가 떨어지면 그것이 잘 안됩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일입니다.
많은 시련과 고통은 대부분 우리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그릇된 수많은 욕망들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의지합니다. 우리의 부패와 연약함으로 인해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깨뜨려집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회개의 눈물 속에서 그릇 되게 사랑하던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시인이 바로 그런 것들을 경험했기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물론 시인도 항상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걸으면서 수시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힘을 공급받으며 사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평생의 숙제입니다.
구원과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송함
구원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한 사람만 통치할 뿐 아니라 열방을 다스리시고 통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나 한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 만민들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항상 고난 중에도 감사가 입에 배어야 됩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온 천하만민을 다스리는 위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오늘 나를 사랑하고 붙들고 계시다는 신앙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자를 베푸십니다.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그 후손에게 인자를 베푸십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죄인을 오래 참으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양식이 됩니다. 그 사랑 때문에 고난을 슬픔도 이기고 우리가 매일 그분의 뜻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향한 마음은 항상 인자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릇되게 행하면 때리시지만, 그것은 보복이나 복수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 항상 복수심을 갖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의 품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시편18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