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새벽예배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여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사15:30-35)
녹취자: 김나영
이렇게 해서 이제 안디옥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였습니다. 여기에 갈 때에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애를 썼던 바나바와 바울만 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냈던 사람들, 그 중에는 유다와 실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내려가서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의 편지를 직접 읽어주었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지혜로운 것입니다. 만약에 결정만 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서 하게 했다면, 거기에 섞여 있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생각과 바울의 이야기 사이에 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아예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파송한 것입니다. 보내준 것이지요.
그렇게 보냄 받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내려와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결정된 이야기들을 편지로 써서 준 것을 정확하게 읽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 합니다. 왜 위로가 되었을까요?
우선 첫째는 예루살렘 교회가 자신들은 이방인이고 예루살렘 교인은 유대인인데도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이방인으로서 구원을 얻기는 했는데 일각에서는 예수님만 믿는 것으론 안 되고 율법 전부를 지켜야 한다고 하니까 이것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지키지 못해서 방황하고 하면서 자신들과 유대인 사이에는 역시 커다란 간격이 있다고 느꼈을 텐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가 권해준 결정을 읽어줄 때에 그들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권위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원 사도들이 어느 선까지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기 위해서 율법에 나온 것들을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나와 있기 때문에 지킨다기보다는 이 네 가지가 말하자면 유대인들과의 사이에서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혹시 와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네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우리에게 율법을 그렇게 가르치느냐, 너보다 훌륭한 원 사도들이 모두 모여서 결정을 했는데 우리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신앙이 안정감을 갖고 위로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만 하고 간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상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 주었더니 그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 사람들이 깊이 말씀에 감화를 받고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견고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것을 지식으로 잘 깨달아 알게 될 때 견고한 신앙이 나오게 됩니다. 이치를 바로 깨닫지 못할 때는 혼란이 왔는데 이치를 잘 깨닫고 나니까 그 다음에 이들이 안정감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고 바울과 바나바는 거기에 남아 이제 이방인들을 선교하는 것을 계속 했습니다. 거기에 한동안 남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들을 견고한 신앙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이 안디옥이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였기 때문에 여기에 와서 예루살렘 교회의 편지를 읽어준 것이 모두 알려졌을 것입니다. 아마 틀림없이 편지를 남겨두고 왔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교회에 회람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일단락되고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원래 하던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애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애쓰고 수고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이렇게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지혜롭게 처리해서 그 문제들을 잘 마무리하고 그렇게 해서 문제들을 통해서 오히려 더 좋은 방향을 볼 수 있도록, 이것이 선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충성스러운 것과 함께 지혜도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지혜롭게 이 문제를 처리하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아주 놀라운 은혜로운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벨라인이냐 유대인이냐 즉 이방인이냐 유대인이냐 하는 차이보다 함께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이 더 커다란 공통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놀라운 역사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예루살렘 공로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전통을 따라서 교회의 역사에서는 교리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교회 전체가 모여서 교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교회서의 전통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공리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서 교회의 역사가 진행되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것을 보면서 교회적으로는 슬기롭고 지혜롭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된다고 보고 두 번째는 우리들이 이 모든 신앙에 있어서 견고함이 올바른 신앙의 이치를 깨닫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이치를 깨닫도록 할 때에 신앙이 견고하게 형성된다고 하는 것을 오늘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