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새벽예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히브리서 11:36-37)
녹취자 : 이민희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다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당한 고난의 종류에 대해 나오고 있는데, ‘희롱’과 ‘채찍질’은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고난이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도 믿음을 따라 살다가 결박당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고, 에레미야 같은 경우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시위대들에게 갇히게 되었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사람은 아벨입니다. 아벨이 결국 돌로 쳐 죽임을 당했고, 열왕기에서는 나봇이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려고 하다가 불의한 아합에 의해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후의 일이기는 하나 스데반도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왜 이리 돌로 쳐 죽임을 당한 사람이 많이 나올까요. 그것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에 대한 율법적인 정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박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은 율법을 이용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톱으로 켜는 것’,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방법으로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험’과 ‘칼에 죽는 것’, 칼에 죽는 것은 이름을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당한 고난이었지만, 특히 엘리야가 도망갔을 때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기를 아합시대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칼로 죽임을 당하고 나만 남았습니다’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을 통해 아합시대에 수많은 선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이 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세상에 의해 처참하게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고 죽어갈 때 그들에게 무슨 대책이 있었겠습니까.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실 때 칼 한 자루 가지고 내려오지 않으셨고, 사도들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창 한 자루, 방패 한 자루 없이 세상에 나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오직 믿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얻어맞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박해를 받아서 심지어는 죽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그렇게 괴롭혔나요? 세상이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세상이 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것 까지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세상이 그들을 꺾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세상이 그들을 꺾기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오히려 믿음을 말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죽었으나 오히려 믿음이 말하는 사람들이 됨으로써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사용하셔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이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힘이 있어서 그들을 때리고 박해하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목숨을 잃게 하게까지 할 수 있지만 박해하는 이 세상도 자신들이 이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히려 믿음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이 자신들이 이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파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하나님을 찾으시는 이에게 상 주시는 이임을 전파하였던 것이지 아무리 다수라 할지라도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전파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당하는 고난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일 이 세상에 고난이 없다면 여기가 우리들의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타향살이는 설움도 많고 외로움도 많고 따돌림도 많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고향’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용납해주고 받아들여주는 그런 따스함이 있는 곳이 바로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진정한 고향이 여기가 아니라 하늘나라이고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나그네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냐고 신분을 믿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나그네의 설움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끝까지 바라면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젯밤에도 가만 누워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세상이 얼마나 철저하게 허무한 곳인지 이 세상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린다면 얼마나 누릴 수 있겠으며,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들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만약에 우리가 하늘나라의 소망 없이 이 세상을 산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그 나라에 이르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 우리들을 살게 하시는 날 동안에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잊어도 괜찮지만, 하나는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그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 이것이 결코 잃어버리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할 때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부패할 것입니다. 물론 고난을 당해 뒤로 미끌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번영과 행복만 주신다면 우리는 더 빨리 부패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박해받고 고난당하고 따돌림 당하고 왠지 이 세상에 의해서 소외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그게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 갈 그날,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주님을 모시고 살 그날을 신음하듯이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잠시 고난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안락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