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새벽예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6-10절)
녹취자: 김은정
성령님께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는데 사실 성령님이 어느곳에서든지 복음전해지는 것을 싫어하시거나 나빠하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가지고 계신 선교의 계획과는 다르게 교회가 움직이니까 성령님이 그것을 막고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를 쓰는데 지도에 보면 지중해가 있고 시나이 반도가 붙어있고 아래쪽으로 애굽이 있는데 이제 예루살렘쪽에서 시작된 복음이 지중해 쪽으로 번지다가 그들이 아시아쪽으로 가고자 했는데 그것을 성령님께서 막으시고 마게도냐 사람들이 환상 가운데 나타나게 하셔서 정 반대쪽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리스가 있고 동쪽으로 이동하면 장화같이 생긴 이탈리아 나오고 프랑스, 영국이 나오는데 그쪽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성령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많은 선교학자들이 성령님의 놀라운 인도였다고 평가를 합니다. 그 중에 몇가지가 무엇이냐면 만약에 아시아 쪽으로 복음이 전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 까요? 아마 아시아 쪽으로 전해졌다면 복음이 전해지면서 엄청난 속도로 세계가 복음화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이후의 역사를 보면 로마시대가 되면서 1000년동안 로마나라가 존재를 하는데 유럽대륙 아시아 일부까지 포함해서 전부 하나의 통치권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문화나 이런 것들이 전체적으로 통합현상이 일어나면서 교통과 모든 것들이 발달되게 됩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면 모든 나라가 국경없이 한 나라인 것처럼 그렇게 복음이 전파되어 다 퍼지게 됩니다. 아시아 쪽으로 오게되면 하나하나 언어가 다 틀리기 때문에 나라마다 전부 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전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복음이 마게도냐 쪽으로 전해짐으로 말미암아서 마게도냐는 그리스입니다. 그리스는 옛날부터 사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인류역사의 철학적인 기초들이 거기서 생겨나게 됩니다. 철학적 학문적 토양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해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므로 복음을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면 그냥 믿기만 하면 실천적인 종교가 아니라 커다란 사상을 가진 기독교로 만들어 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만약 아시아 쪽으로 복음이 전하여졌다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아시아 쪽으로 궁극적으로 가지만 유럽 쪽으로 전해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문화권, 나라, 경제 이런 것들을 통해서 복음이 아주 급속히 전파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결국은 후에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온 땅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고 그리고 기독교는 급속한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유럽 전체가 기독교 세상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영국까지 가고 영국에 복음이 들어간 것이 7세기 정도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선교사들이 수없이 인도 쪽이나 이쪽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퓨리탄들이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건너서 대륙으로 가게되고 거기에서 신앙이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쪽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와서 온 복음이 우리나라나 일본을 거쳐 중국을 지나 회교권을 복음화 하면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인류의 역사가 끝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아주 정확하게 교회의 선교를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하나 배우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성령님이 교회를 인도하셨지만 지도자인 바울 자신이 성령님의 인도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여주셨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지시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영적인 인도에 대해 매우 탁월하게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자기의 온 마음을 드려서 이 선교사역에 마음을 기울이니까 성령님께서 이런 분별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별력으로 이 선교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서 본받게 되는 것은 이런 환상을 본 사람은 다수가 아니라 바울 혼자였습니다. 바울이 그 얘기를 하자 일행들이 모두 그 뜻에 순종하며 바울을 따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도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 지도자를 따르는 교인들도 상당히 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도바울의 결정에 순종하면서 따라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선교역사는 새롭게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간에 3가지 성령님의 인도, 거기에 민감한 지도자, 그리고 그를 신뢰하고 따르는 성숙한 교인들 이 3요소가 잘 합쳐져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바울의 선교팀들이 골고루 갖추고 있던 것입니다. 앞부분에 보면 사도바울이 해서는 안될 일을 합니다.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시키는 일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의미를 몰랐을 까요 상당한 반성들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럼에도 바울의 지도자의 리더십이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만큼 바울을 따르는 선교팀들이 바울을 신뢰했고 그가 그런 인간적 결점이 있었지만 그것을 상당부분 인정하면서도 성령님이 바울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선교사역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동시에 똑같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마게도냐의 선교계획을 발표했을 때 그들이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확신하면서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도 항상 세 가지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 인도에 민감한 지도자들, 그리고 지도자들을 따르는 성숙한 교인들, 그래서 공동체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선교사역에 헌신하고 쓰임 받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