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행 17:1-29절)
녹취자: 양 일구
본문말씀처럼 사도의 일행들이 데살로니가로 가게 됩니다. 어디든지 가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파했으니 데살로니가에 가서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역시 복음은 전해지는 곳 마다 사람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복음이 전해지니까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A. 헬라의 경건한 무리들의 회심
헬라의 경건한 무리들이라고 그랬는데, 사실 이 사람들이 헬라인으로써 왜 경건한 사람들이 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불리웠는데, 이 사람들이 유대교를 믿게 된 것을 가르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던 사람들인지 분명치 않지만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헬라사상중에서도 사람을 방탕하게 만드는 사상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숙고하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사상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게 되면, 하나님을 믿기 참 힘듭니다. 철학자들의 회심이 가장 힘들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비록 정확하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진리 앞에서 겸손해지고 인간의 모든 삶과 보이는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진리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빨리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나와 있는 헬라의 경건한 사람들은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 그리고 적지 않은 귀부인들“입니다. 사회적으로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을 진지하게 들으면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반응이 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메시아일수밖에 없는가, 즉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는가를 사도들은 진지하게 가르쳤습니다. 설교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가르쳤더니 그들이 예수 믿을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정확하게 가르쳐 져야합니다. 예수님이 어찌해서 그리스도로써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죽으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이루셨는지, 우리가 그 분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분을 믿어야 되는지, 이러한 모든 것들을 그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가르치기 시작할때에, 결코 예수님을 믿을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B.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과 유기의 작정
인간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아니면 못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 그것이 하나님 혼자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을 믿어지게 만드는 이 일은 인간이 전한 복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믿어지게 하시지만은, 믿어지는 일 그 자체는 인간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이 전해지자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믿을 결심을 하는 놀라운 복음 전도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이렇게 복음이 전해져서 성령이 역사하시고, 신자의 마음속에 이 복음이 믿어지게 될 때에, 그 때에 마음속에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래서 아주 괴악한 유대인들이 복음이 전해질때에 그 복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작당을 하고 조직적으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대항하여 악한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예수 믿게 만드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복음이 치열하게 선포되고 성령이 그 복음을 강력하게 사용하시면, 그 복음은 예수님을 믿을 사람과 믿지 않을 사람들을 갈라놓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렇게 완강해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복음이 능력 있게 선포되니까 죽어도 그 복음을 믿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화) 마치 봄에 내리는 비가 살아 있는 식물에게는 생명을 가져다주지만, 죽어 있는 나무는 더 빨리 썩게 만들듯이, 복음이 그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언제든지 복음이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과 뜻을 다 해서 그 복음을 전하고 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눈물과 사랑함으로 전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복음을 받아들일거라고 우리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함께 어울리며 살던 사람들이 복음이 전해지고 나면, 복음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C. 회심체험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이 일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나오면 뭐합니까,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힘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면 주님이 “내가 어떻게 너희의 주님이 되는지 말해보아라, 내가 어떻게 너희 주님이느냐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는데, 너는 나와 접붙힘되지 않았는데, 너희 교회 목사는 너희의 목사가 될수는 있지만 나는 너희의 주님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마음의 생각이나 모든 것 자체가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에 속한 모든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가장 고유하고 아름다운 것은 복음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복음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미움들이 꽉 차고, 그것들이 복음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거기에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많이 기도해야합니다. 정말 참답게 회심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불쌍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칭찬과 인정을 받든지간에 그들은 불쌍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D. 회심의 깊이와 범위
이번 주에도, 이제 다음 주 설교를 준비해야할텐데, 그런 생각이듭니다. 지난주에 많은 사람들이 회심했다고 하지만, 두 가지점에서 아직 멀었습니다. 우선 깊이에 면에서 아직 멀었고, 범위의 면에서 멀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정말 회심하여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마음이 굳어진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합니다.
두 번째 깊이의 면에서 잠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정도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깊이 찔러서 그를 회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날의 죄를 애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날 우리는 회개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진실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부쩍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찬양)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 나라“
이 좋은 예배당에서 편안하게 예배를 드려도 진정으로 회심하고 그들이 변화되지 못하면 영적으로는 교회가 아니라 사실은 동물원입니다. 특히 깊이에 있어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설교사역을 하면서 회심의 역사를 늘 주셨지만, 정말 깊은 회심의 역사를 주시면 사람들이 회개하다가 기절합니다. 자신의 양심의 가책과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찌르는 아픔을 이기지 못해서 기절합니다. 그렇게 회개해야합니다. 꼭 그렇게 회개해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도로 아주 깊이 있는 회심을 주셔서 사람들이 꺼꾸러져야합니다. 그 이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는 신령한 척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서는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직장에 가서는 거짓말이나 치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하고, 진실한 회심이 없으면 이런 이중인격자들 밖에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늘 여러분들은 주일 설교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제 그러지 말고 이번 주일에는 특별히 기도를 해주십시오. 지난 주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특별히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활보하는 것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교회 나와서 열린 공간 마당에서 차를 마시고 지체들과 만나서 교제를 하고 밥을 먹으러 다니고 어울려서 심방을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신이 회심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같이 어울려 놀다가 한 사람은 천국가고 한 사람은 지옥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정직하고 강한 복음 앞에서 두려워 떨며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겠구나“ 라는 도전을 한번도 받지 못하고 인생을 끝냅니다.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루어주겠지만 지옥보내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 복음이 중요하고 회심이 중요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 것 같습니까? 오히려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하나님은 저에게 그런 생각을 주십니다. 정말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할 것들은 사소하게 흘려보내고, 사소한 것들에는 생명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모아서 진정 이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많이 울어야 합니다. 첫 째는 그들을 깊이 사랑해주어야 하고, 둘 째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복음의 말씀이 증거될 때, 저희들이 마음을 오늘 이 유대인들처럼 강팍하게 하지 아니하고, 경건한 유대인들과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 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게 되는 그러한 은혜와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그냥 기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열심히, 새벽만이 아리나 한 낮에 일하면서도 열심히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입니다. 진짜 하늘을 가르고 임하시는 거룩한 부흥이 필요합니다. 일만마디의 말로 그들을 회심시킬 수 있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기면 그들이 회심할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회심을 살수 있다면 특별헌금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아주 미묘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붙잡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많이 울어주어야 합니다.
금요기도회와 이번 주에 휴가가 완전히 끝나고 돌아들 오는데, 지난 주 이상의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다 태워버려야 합니다. 그들 안에 있는 죄악과 거듭 나지 못한 채, 은밀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을 태워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정말 영혼에 대해서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회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을 위해서 특별히 다음 주일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해주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