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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행15:19-21)
녹취자: 박은경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이방인들이 다시 율법을 지켜야 되느냐는 커다란 논쟁이 여기에서 마무리지어집니다.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지만 그들이 당시에 있던 구약성경을 다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 할지라도 바탕자체가 구약의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오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해서 율법은 이제 필요없으니까 여태까지 우리들이 지켜왔던 율법을 하나씩 어기자고 살 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사도들이 바로 잡아줘야 했던 것이 예전에는 우리들이 율법을 지킬 때 이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켰지만 이제 너희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이 되었으니까 이제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그래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제 율법은 우리의 삶을 더 이상 구속하지 않는다. 다만 구원받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실까를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될 것들이 구약에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제사를 어떻게 드리고, 어떻게 하면 불결해 지고, 백성들 사이에 지켜야 할 시민법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명령들이 있습니다. 십계명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약속과 함께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백성이 될지어다.’ 와 같은 명령들은 구원의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하나님의 지시입니다. 그것을 끊임없이 따르고 순종하려고 애를 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이 은혜언약인데, 이런 것들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써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다만’ 그러면서 네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우상숭배하는 것, 음행하는 것,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 모세의 율법을 다 지킬 필요는 없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이 네 가지는 그래도 율법을 따라서 멀리하라고 이야기를 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의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율법을 구원얻는 조건으로 안 지켜도 된다고 하면 다 안 지키는 거고 지켜야 된다고 하면 다 지키는 것이지 네 가지만 떼어내서 지키라고 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떠 오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네 가지 죄는 당시 이방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로 죄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견해차이가 있습니다. 그 증거가 살인이 빠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살인보다 더 큰 죄가 될까요? 음행을 하거나 심지어는 피를 가까이 하고 목매어 죽인 짐승들을 먹는 것보다 살인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죄라고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 살인 같은 것들이 빠진 이유는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똑같이 다 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공통적인 것들은 빼고 그 당시는 다신사회였잖아요? 그당시에 문화적으로 헬레니즘하에 있었는데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이 이 헬레니즘의 영향 하에 있는 나라에서는 다신을 섬겼습니다. 즉 아무 신이나 섬겨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됐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지침이 이제 율법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행을 멀리하는 것. 당시에 헬레니즘 하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그러하듯이 이것에 대해 아주 폭넓은 관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종교에서 보면 이 세상의 폭넓은 관용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하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목매어 죽인 짐승들을 먹는다는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상실됩니다. 이방인들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다기보다는 유대인들을 위한 배려였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하면 선교적 배려였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유대인들이 이 두 가지를 굉장히 혐오했습니다. 율법에 분명히 피째 먹지 말라고 나오는데 피는 곧 생명이다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피째 무엇을 먹는 것을 굉장히 가증하게 여기고 목매어 죽인 짐승을 먹는 것 그렇게 생각이 된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믿고 난 후 그런 것들을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이제 유대인들에게 복음전파 하는 길들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잠정적인 배려를 한 것이지 영원히 도덕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와 자비는 결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의 형통함과 부요함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 그 자비를 힘입어서 매일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토록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음행은 계속해서 도덕적인 가치를 갖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교회에서 이런 문제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율법에 대한 논쟁들이 일단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자가 된 사람들에게 구지 구약을 가르쳐서 구약에 있는 율법들, 유대인들도 다 지키지 못하는 멍에를 다시 짊어지게 해서 네가 예수 믿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것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을 짊어지고 결국은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율법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명백한 구원계획에 위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 네 가지를 지키도록 하자. 그러면서 이 예루살렘 공의회가 합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후로 복음전파에 있어서 이 규칙들이 그대로 적용이 되면서 이제 이방인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 예전에는 우상숭배하는 것을 하찮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오직 하나님을 섬겨야하고 음행에 대해서도 아주 너그러운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정절을 지키게 되고 자신들에게는 생경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다음에는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해서 유대인들과의 마찰을 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아름다운 공동체로 운영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교회가 분열될 것 같은 커다란 위기가 왔었는데 이 때에 사도들이 지혜를 발휘해서 교회의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이런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결단이나 지도력이 아니라 복음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살라고 명령하는지 아주 명쾌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들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교회를 이끌어 나아갈 때에 이런 지도력, 이런 복음에 대한 명쾌한 통찰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교회가 의견이 나누어지지 아니하고 어려울 때마다 의견이 하나가 되어서 복음전파에 기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이 기도하고 그런 말씀의 역량들을 길러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