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2일 새벽예배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시 61:3).
여기에서 나오는 이 피난처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서는 그저 전쟁이 나면 피난하는 곳이다 이렇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여기에서 이 피난처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도피성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도피성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이 살다가 보면 실수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을 과실로 사람을 죽게 한다든지, 다치게 한다든지 그런 경우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피해를 당한 당사자나 당사자의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그 분노라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잖아요. 이런 식으로 해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보복을 당한다면 언약 백성의 사회가 그 끊임없는 그 보복과 보복에 따른 복수, 원한의 감정, 이런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거 아니에요? 이런 것들은 언약 백성의 삶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그리고 도피성이라는 것을 만들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만약에 누구를 잘못해서 다치게 했다든지, 죽게 했다든지 하면 그리로 도망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이제 사실은 일단 도피성에 들어가면 거기에서 이제 사실을 심사해서 이 사람이 정말로 의도가 없이 실수로 그랬다면 그 도피성에서 말하자면, 보복을 피할 수 있도록 그렇게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죠. 그런 개념이 많이 들어간 거죠.
물론 이제 다윗은 전쟁터를 누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싸움에 이길 때도 있었지만 그 싸움을 피하여야 하는 때가 있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도피성의 개념도 있었겠고, 전쟁터에서 실제로 전쟁에 질 것 같은 위기 속에서 도망칠 때에 좋은 지형지물을 만나고 요지를 만나든지 하게 되면 안전하게 그 환란을 피할 수 있는 그런 경험도 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다 하는 것을 시인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안팎에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이 있고 그리고 고통이 있을 때에 그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간구하는 가운데 마음이 눌릴 때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가운데 주님이 자신의 피난처라는 사실을 이 시인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 전체가 끊임없는 시련의 연속이고, 그 고통이 사라질 수 없는 전쟁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런 인생의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피할 바위시고, 그리고 우리의 산성이시고, 우리의 유일한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나의 피난처시요, 그리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는 그런 경험을 이 시인이 아주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이 환란을 만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주님만이 궁극적인 피난처가 된다는 것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환란을 막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권력이나 물질이나 자신의 재능을 의지하지만은 시인은 주님만이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피난처시라는 사실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련이 때로는 물질로,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육신의 커다란 완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걸 이기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결국은 내가 이기고 내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움과 그 은혜를 힘입어 피하고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의 역할을 해 주신다는 거죠.
그래서 피한다는 말은 성경에 원래 안 나오는데 보역(??)이죠? 피한다든지 혹은 원수를 감시하는 견고한 망대일 수 있는 거죠. 망대는 성이나 혹은 성체 위에 높이 짓고 그리고 거기에서 사면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적들이 달려와서 해칠 수 없는 그런 곳에 위치 해 있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면 우리에게 엉겁결에 밀려오는 환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우리들은 크고 작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그게 결국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의 그 무엇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그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 일 하나하나는 우리들이 그저 일상 경험하는 것이지만 그 뒤에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모든 환경들을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신 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믿음 생활을 해 나감으로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섭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도구가 되는 거죠.
또 설령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는 한 이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그리고 겁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은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그 큰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면서 주님 앞에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