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집회 준비1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오늘서부터 오늘 다음 주 수요일 그 다음 주 수요일 그 다음 주 수요일 이렇게 4번 그 다음 지나간 수요일은 무슨 날일까요? 그렇죠. 사경회 주간이죠. 그래서 사경회 전까지 4번 수요일에 걸쳐서 어떻게 사경회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겠는가! 이 말씀을 차근차근하게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의 역사는 참 이상해요. 왜 이상하냐면 하나님이 그 말씀집회에 큰 축복을 하실 때에는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아요. 그리고 어떤 때는 하나님이 그 설교에 축복을 하셨는데도 소수에 사람만이 은혜를 받는 때도 있어요. 어떤 때 는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은혜가 안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준비도 별로 안한 것 같은데 은혜를 받는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획일적으로 얘기할 수가 없다 이거죠 그러나 그거는 어디까지나 사람의 판단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집회에 은혜를 내리실 때는 은혜를 내리실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많이 준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마음이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게 아니고 준비가 우리 보기에 좀 부족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하지 못한 준비가 되는 것도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그 속에 무슨 원리가 있지 않겠느냐 분명하게 원리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들이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집회를 준비하며 은 내가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또 교회적으로 하나님 앞에 이집회가 참 은혜 풍성한 집회가 될 수 있겠는가 작년에 12월 을 교회를 개척하고 1월 달에 우리 교인이 15명이 됐었습니다. 그때에 첫 번째 사경회를 하면서 우리는 속으로 아이! 이게 15명이 우리 교인 다된 몇 명이나 나와서 이 사경회를 들어줄까 그런데 정확하게 98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왔어요. 이 꽉 채우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 사람들 중에서 우리교회 등록한 사람들은 교회를 정하고 있는 못한 너 다섯 사람에 불과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살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어디 가서 살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리고 어디 가서 살든지 그 사람들의 하나님의 놀라운 그 은혜와 능력과 신앙을 가지고 사람들이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영광 되는 거예요. 우리 이렇게 넓은 마음을 가져야 되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집회를 통해서 몇 명의 숫자가 늘어나고 집회를 했더니 헌금이 얼마가 거쳤느냐? 그러한 말하자면 그렇게 인간적인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다른 사람 어떠하든지 우리는 우리가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서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어서 믿음생활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들은 많은 사람이 와서 말씀을 듣고 인생이 바뀌고 새롭게 변화를 받는 그런 집회가 되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 어떻게 준비해야 되겠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 처음에 은혜가 넘쳤던 집회를 보면서 준비를 살펴봐야지 은혜가 하나도 없었던 집회를 성경에서 찾아보면서 불발로 끝난 부흥 사경회가 어떻게 준비됐는가를 살펴볼 필요는 없는 거거든요. 오늘 이 10장에 나타난 이 부흥회는 수만 명이 모인 여의도 집회 같은 수십만 명이 모인 엄청난 집회가 아니어요. 고작해야 가정의 집회였어요. 가정에서 부흥회를 열었어요. 여러분들도 가서 가정에서 부흥회를 좀 해야 돼요. 애, 학교에서 강연을 하다 보면 가끔 그런 학생이 있어요. 설교한 것 듣고 가가지고 그날 저녁 집에 가서 부흥회를 하는 거요 .그러니까 은혜 받은 가족들이 수련회하는 장소까지 쫒아왔어요. 여러분 가정에서 적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집회에 불과 했는데 이게 기독교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집회였어요. 그게 뭐에요. 하나님이 최초로 이방인에게 성령을 물 붙듯이 유대인과 차별이 없이 부어주시는 그 최초의 집회가 바로 10장의 고넬료의 가정에서 열렸던 집회란 말이 예요. 자 보세요. 하나님이 크게 여기시는 집회와 사람이 크다고 여기는 집회가 얼마나 틀린가 하는 것을 보라이거에요. 사람들이 크다고 여기는 집회는 수많은 현수막이 나붙고 그다음에 유명한 사람들에 얼굴에 포스터가 나붙고 수십만 명이 동원되고 훌륭한 악단이 동원되고 엄청난 헌금과 후원금이 모금되는 그러한 것을 우리는 성공한 집회라고 말하는 거죠 그러한 집회가 대단한 집회처럼 여기지는 거죠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이거는 고넬료 한 가정에서 일어난 작은 집회에 불과 했는데 그야말로 가정 부흥회였는데 그런데 이 집회가 하나님 앞에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주 커다란 집회가운데 하나였어요. 우선 하나님께서 이전에는 그러신 적이 없게끔 성령을 물 붙듯이 부신 집회였습니다. 할래루야 하나님께서 모인사람들을 나는 너희들이 모인 것을 정말 기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인사람들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 뭐예요. 그렇죠. 성령은 무엇인가 은혜를 받는 것도 성령이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니까 은혜가 되는 거예요. 회개하는 것도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시니까 사람들 마음속에 강퍅하던 사람들이 뉘우치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자기가 옳다고 믿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기가 죄인임을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속에 자기가 교만한 인생이라고 하는 이러한 믿음과 그리고 죄에 대한 각성을 심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인생을 새롭게 살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끔 깨닫게 하시는 것 성령이 하시는 거예요. 늘 듣던 평범한 말인데요. 왠지 그 집회에서는 그 평범한 말씀이 내마음속에 뜨겁게 와다 아서 그래서 내 인생에 어두운 눈을 뜨게 하고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전에 보지 못했던 현실을 보게 하고 그리고 내가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고 그리고 내가 예전에 알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 체험하게 만드는 이 놀라운 영적인 모든 역사가 누가 역사하실 때 성령이 역사하실 때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그 성령으로 역사하지 않을 때 그 집회는 이론은 훌륭하고 이론으로 다 이해가가지 만은 왠지 그렇게 알게 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자신을 깊이 부복하고 복종시키려고 하는 자원하는 심령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깊이 순복하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아멘으로 받아드리면서 살고 싶은 이러한 인격적으로 승복하는 싶은 말들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의 손에 붙들림 받은 한마디의 평범한 말씀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지 않고 수천마디의 아름다운 이야기보다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더 크고 확실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집회가 바로 이렇게 성령이 역사하신 집회였습니다. 그러니 이 집회는 성공한 집회였죠. 또 하나는 이방인선교에 첫 번째 화살을 쏘아 올린 것과 같은 집회였어요. 이거는 선교사 적으로도 너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런 집회였어요. 이 집회가 어느 정도 축복한 집회였냐면 사도 베드로를 깨트려 버린 집회였어요. 설교자가 녹아진 집회였어요. 몇 달 전에 신앙과 은혜체험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한 10번 정도 시리즈로 설교한 것 생각나죠. 그때에 제가 몇 번째인가 생각나지 않지만 생각나죠. 귀신을 내어쫒고 연약한자들을 고치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엄청난 성령의 능력을 예수님께로부터 마태복음 10장 누가 복음 9장에서 12사도들이 받아씀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깨어지지 않고 있었던 인간적인 상식의 벽이 있었다고 하죠. 그게 뭐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대신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누구라고 하는 상식에 머리가 붙잡혀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성령을 그렇게 물 붙듯 부어 주셔가지고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며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안주셨으면서도 사도들보고 명령하실 때 너희는 가라 가서 너희 죽은 자를 살려야 된다. 그렇게 말씀하실 리가 있느냐 이거예요.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예수님이 왜 죽어야 되는지? 왜 부활하시는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지? 이런 거 알지를 못했어요. 왜 그래요 진짜 몰라서 무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참된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가기 전에 머릿속에 있어서는 안 될 잘못된 지식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어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었어요. 그는 말하자면 백마를 타고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주시는 이런 정치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메시아여야 된다. 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 낸 것이거든요. 꽉차있는 거요. 그런데 이런 편견 중에 또 하나는 뭐냐면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주실까 하는 것이었어요. 왜 할래. 받지 않는 자들에게도 은혜를 주실까 하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이스라엘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 하냐 면은 유대인들만이 천국에 간다고 믿어요. 그러면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느냐? 이방인들 중에서 고넬료처럼 아주특별하게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 천국에 가는데 천국에 가서 유대인들의 발이나 닦아주고 화장실이나 청소하는 거기도 화장실이 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발이나 닦아주는 그러한 사람들로 살아갈 거란 거죠 그럼 하나님이 이방인을 왜 만드셨느냐? 지옥의 불길을 지피기 위한 땔감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살이 많이 찌고 뚱뚱한 사람은 큰 나무고 빼짝마른 사람들은 나뭇가지죠 .그래서 그것들을 지옥의 불길을 지피는 땔감으로 생각하는 거죠. 아직까지도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잘못 심겨진 생각이 얼마나 무섭게 우리를 주장하는지 알아야 되요. 오순절에서 성령을 물 붙듯 부음을 받았어요. 그래가지고 예수가 보였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안 깨지고 있을게 하나님께서 보자기에다가 쫙 써서 내려 보내주시는데 그게 뭐냐면 온갖 율법에서 더럽다고 말한 벌레들이 예요. 먹어라 주여 더러운 것 제가 먹은 일이 없습니다. 그 더럽다는 것은 누구의 편견이에요? 예배의 편견이죠. 내가 이것을 깨끗하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네가 먹지 못하느냐 그러면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 이처럼 충격적인 사건이 된 것임을 미리 보여주신 거요. 그래도 깨닫지 못해요. 그런데 이 집회를 통해서 완전히 이 베드로의 심령이 녹아져요. 그 잘못된 신악이 무너지는 거요. 그러면서 완전히 깨어져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외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이방인이라도 어느 나라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주를 내가 깨달았도다. 설교자가 생애 적으로 하나님 앞에 녹아져서 닫쳤던 눈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이런 놀라운 집회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때요 성도들만 은혜를 받은 집회가 아니라 설교자도 은혜를 받았어요. 성도들만 은혜를 받은 집회가 아니라 설교자도 심령이 녹아지고 이방인 가운데 벌래와 같은 그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라가 어디출신이고 피부색깔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쁘게 받으시고 유대인들에게 부어주시던 동일한 성령을 물 붙듯 부어주셔서 그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놀라운 증거를 보여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집회였어요. 이게요. 설교자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말해요 어떤 때는 막 설교를 해요. 사람들은 한없이 은혜를 받아요. 설교하는 사람은 하나도 은혜가 안 돼요. 그래서 18세기에 부흥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던 요한 위스레의 형제가운데 찰스 워스레가 있었죠. 그 찰스 워스레가 이제 조지 위필드의 목사의 부탁을 받고 그 조지 워필드 목사가 하던 대로 옥외에서 설교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할 때에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가 워필드목사에게 편지하기를 목사님 나는 너무 너무 괴롭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나만은 상관이 없이 나를 수단으로 사용해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대 내 마음에는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미국에 밤마다 나와 가지고 불면증환자들에게 설교하는 여류설교자가 있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자기는 잠들지 못하고 자기는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이 들었어요. 결국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말하자면 시체로 발견되었어요.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집회는 어때요? 응 성도들도 녹아지고 설교자도 녹아지고 성도들도 변화되고 설교자 자신도 변화되고 놀라운 역사가 잃어났어요. 10장에서 이일이 안 일어났으면 큰일이 일어날 뻔 했어요. 그게 뭐에요 9장에서 사도 바울이 변화를 받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10장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바울을 사용하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막힘이 없이 길이 열린 거예요. 그게 만약에 사도들이 그런 사실에 대해서 무지하고 바울 혼자서 은혜를 받아가지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할 때 그 모든 교회의 모교 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에서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그러면 이거는 선교에 있어서 엄청난 문제가 생기는 거죠. 하나님께서 제일먼저 예루살렘교회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드리시는 거요. 심령을 녹이시는 거요. 은혜를 받으려면 성도들도 은혜를 받고 설교자도 은혜를 받고 모두 은혜를 받아가지고 아래위로 모두가 다 완전히 익은 전병이 되어야지 위에 설교자는 냉랭하고 교역자들은 은혜를 못 받고 밑에 새로운 성도들은 왕창 은혜를 받아서 바짝 다 타버렸다 그래서 먹을 게 없다 그래서 뒤집지 않는 전병이 된다 이거요. 완전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한 자나 가난한자나 곤고함에 처한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형통하던 자나 불통하던 자나 어린 자나 나이든 자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제직이나 교역자나 평신도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은혜를 받고 함께 녹아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이런 집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도 이 집회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집회였다고 하는 증거는 너무나 많아요. 그럼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놀라운 집회가 되었는가. 그것이 오늘 우리가 알아보아야 되는 거요. 오늘 성경을 다시 봅시다. 33절 “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우선 말이 예요. 이 집회는 철저하게 기도로 준비된 집회였어요. 왜 그래요. 유대인들이 기도시간이 있었거든요. 6시요. 6시가 기도시간이었대요. 6시가 9사란 말이 예요. 베드로가 기도하려로 지붕에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내려오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는데 네발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이런 곤충과 할 것 없이 율법에서 가증하다고하는 그 많은 짐승들이 내려오는 광경들을 본거요. 그것을 보면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차별 없이 은혜를 베푸신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죠. 그때가 언제였어요. 그때가 언제였어요. 베드로가 기도하러 올라갈 때에 강사가 기도하러 올라갈 때에 그때 고넬료 집은 뭐하고 있었어요? 고넬료도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때요. 천사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네 기도와 구제를 들으셨는데 욥바에 가면 시몬이란 사람이 있는데 베드로라는 시몬을 청해서 그가 피장을 가죽을 다듬어서 먹고사는 사람이죠. 그 피장이 시몬이란 집에 베드로라 고하는 또 다른 시몬이 있는데 그 사람을 불러다 부흥회를 해라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언제였어요. 9시였더라. 그랬어요. 그런데 몇 시간을 기도 했다는 거요. 그렀지 !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 이였지만 고넬료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도시간에 맞춰서 기도를 같이 했던 거예요. 6시 기도가 시작 되었을 때 같이 기도를 하는 가운데 베드로는 그 이상을 보면서 너는 일로 가라라는 지시를 받았고 또 이 고넬료는 가서 피장이 시몬의 집에 가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 시몬을 불러오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거는 몇 시? 9시 낮 12시에요. 그러니 3시간 이상 동안을 기도로 깊이 몰두하는 가운데 비로소 누구를 불러다가 부흥회를 해야 할지를 깨닫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고녤료에게 은혜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때요. 기도로 깊이 기도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설교자와 깊이 기도하면서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가 만나게 되니까 그 집회가 그 집회에 부흥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게예요. 양쪽이 다 신령해요. 교회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지도자와 그 다음에 그 지도의 성숙한 신앙으로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을 가진 성도들이 함께 만나는 역사가 일어날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 집회가 바로 그런 집회였어요. 한 사람만 기도 한 것이 아니라 설교하러 오는 베드로도 깊이 기도했었고 그 사람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고 은혜 받기를 원하는 이 고넬료도 깊이 기도하면서 적어도 6시에 기도하러 올라가서 7시 8시 9시가 다되었는데 점심때가 다 되었을 때에야 하나님께서 시몬을 불러 와서 집회를 하라 알려주시고 은혜를 받을 길을 여시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럼 6시에 시작 했는데 8시에 내려왔더라면 이런 응답을 받을 수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몇 시에 응답이 왔다고요 9시. 깊이 기도하면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 이 집회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를 하다가 보면 생각지도 안게 은혜를 받는 일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소수에요. 정말 소수예요. 나도 은혜 받을지를 몰랐다 그런 사람은 소수예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이 마음이 준지되어서 마치 불을 붙여서 던지면 막 타오를 것 같이 기도로써 깊이 기경되고 준비된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집회를 이렇게 가보면 은 첫 시간에 올라가면 기도를 많이 하면 기다린 그 교회는 교인들이 너무너무 사모해요 .그러니까 어때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누군가 경개할 시간이 없어요. 왜 무슨 말씀이던지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옵소서. 종이 여기서 듣고 있사옵나이다. 이런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데 그 준비된 교회에는 특별한 사람이 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영혼들을 바꾸시고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막 돌아다니면서 부흥회를 해가지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하는 것 쉬운 거예요. 왜 아주 특별한 교회들을 빼놓고는 그 부흥회에 그 수련회 그 집회를 기다리면서 심지어는 여섯 달 전서부터 혹은 일 년 전서부터 두 달 전서부터 한 달 전서부터 금식을 한다. 철야를 한다. 그러면서 막 기다리면서 나오는 거요. 교회는 어때요. 늘 말씀드리지만 설교 준비는 강조하지만 설교들을 준비에 대해서 강조를 받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늘 듣는 말씀이니까 늘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집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이거보다도 더 특별한 설교를 합니까? 맨 이 똑같은 얘기 하는 거죠. 그런데 왜 늘 듣는 사람들은 감동이 적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늘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거예요. 설교자도 마찬가지죠. 처음 보는 사람이면 나 네 번 만나는 것 밖에 여유가 없어요. 네 번 만나고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까 죽을 둥 살 등 전하는 거죠 그러나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오늘 못 만나면 내일 만나고 내일 못 만나면 다음 주에 만나고 이러면서 우리들은 세월을 허송하는 거죠. 좀 더 비장하고 그리고 사모하고 매시간 그 말씀 속에 내 인생이 달렸다라고 하는 그런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는 거요. 그 바로 기도로써 이 고넬료가 철저하게 준비하는 거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고넬료 한사람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깊이 기도하면서 그 집회를 하였더니 고넬료 혼자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고넬료의 식구들과 거기에 딸린 수많은 가족들이 한꺼번에 은혜를 받고 이방인으로써 헛열매가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또 이 집회는 이렇게 깊은 기도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어요. 집회를 앞둔 기도는 특별한 기도가 되어야 되요. 특별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특별히 준비시켜요. 그러나 집회하러 갔을 때 교회가 기도하지 않은 교회는 꼭 거기가면 뭐 설교하러가는 부흥 강사를 뭐 보듯 하냐하면 가수 노래하라고 무대에 세워놓은 사람구경 하듯이 다리 꼬고 앉아서 이렇게 .그 사람들 눈에서 무슨 소리가 들 리냐면 뭐라고 그러나 한번 들어볼까 . 그런 곳에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요. 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기도를 통해서 자기를 나추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 은혜 사모하고 내가 말씀을 통해서 고쳐져야 되겠다고 하는 사모하는 심령을 갖게 되니까 그 집회를 앞둔 그런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큰 은혜만 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기도하게 하는 가운데 집회를 통해서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또 기도하는 사람에 마음을 바꾸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고쳐지게 만드는 거예요. 말씀을 향한 태도가 고쳐지고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고쳐지고 자기가 먼저 개선이 되고 또 변화가 되도록 기도를 통해서 준비시켜 주시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실 때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죠. 농부들이 봄에 보면 어떻게 해요. 하나을 갖다가 흙에다 집어넣고 또 하나를 갖다가 씨앗을 집어넣고 흙을 갖다가 하나를 덮고 또 하나를 뿌리고 흙을 덮고 거기다 비료를 주고 물을 주고 그래요? 그래요? 그렇게 하다가는 아마 하루 종일 씨앗을 뿌려도 한 평도 못 매요! 그렇죠. 어때요? 그냥 힘도 하나도 안 드는 것 같아요 바가지 들고 걸어가면서 쉬쉬 뿌려요 이렇게 그냥 휘 휘 뿌려요. 휙휙 뿌려 그냥 집에 가는 거요. 그런데 싹이 나요 거기서 그리고 잎이 돋아요. 그리고 줄기가 뽑고 가지가 뽑고 뿌리가 내려요. 신기하잖아요. 그거를 갖다가 길가나 자갈밭이나 아니면 딱딱한 맨땅에 휘휘 뿌리면 어떻게 되요. 아무것도 나지 않아요. 아무것도 나지 않아요. 똑 같은 거죠.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는 데요 이런 역사가 일어나서 어떤 때는 말씀을 휙 전할 때 수많은 사람이 그 말씀에 자기의 말씀이 녹아지면서 자기의 인생을 새롭게 보고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신앙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아무것도 내줄 수 없는 사람들이 변화되고 바뀌고 고쳐지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뿌리가 없던 그 희망이 그 뿌리가 내리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줄기와 가지가 튼튼하게 뻗어서 바람이 불어오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러한 튼튼한 신앙이 되었어요. 엊그저께도 시골가면서 보니까 화요일인가 어저께죠 . 바람이 어떻게 강원도 쪽에서 부는지 몰라요. 후 차를 이렇게 섰는데 흔들흔들한 정도로 바람이 그렇게 불어요. 어때요. 나무 중에서 먼 산을 쳐다보니까 몇 백 년을 묵었는지 그 아름이 넘는 그 노송들 그런 것들은 곁가지만 한들한들 둥지는 가만히 있어요. 싸리나무 이런 것들은 볼품없이 삐쭉하게 솟아 오른 것들은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요동을 치고 난리예요. 큰 나무는 소리도 별로 안내요. 이 째긋만 나무들이 바람한번 지나가면 쌩 하는 소리를 내죠. 신앙도 마찬가지죠. 뿌리가 내리고 깊이 자라나서 튼튼한 나무가 되었어요. 왜 무엇의 차이죠. 나무의 차이예요. 어때요. 옥토와 같은 마음 밭 그런 것들이 어떻게 생겨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집회를 준비하면서 집회를 통해서 내 인생이 정말 변화 받아야 되겠다. 이러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하면서 그 기도 속에서 성령을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과 하나님을 향해서 진리를 향해서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태도들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그러한 잘못들은 신앙의 태도를 신앙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믿음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는 기도하는 과정에서 기도가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기도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아버리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 올라가실 때 기도하러 올라가셨어요? 변화 받으러 올라가셨어요. 그런데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일으키시니까 예수님에 몸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온 몸이 말이 예요. 이 세상에서 그 어떤가 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웠어요. 어떤 것으로도 그렇게 세탁 할 수 없는 그런 빛나는 형상을 입게 되었어요. 바로 기도가 그런 거요. 집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보게 되고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보게 되는 거예요. 기도 안하고 집회를 하면 꼭 그런 사람들 뒤에서 앉더라고요 그리고 뒤에서 다리 꼬고 앉아서 무슨 소리 하나 웃은 소리하면 히히 그리고 한번 웃고 남들이 기도하면 엎드려 있다가 돌아가는데 무슨 선한 일이 일어나겠어요. 왜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되겠어요. 안 믿으려면 집어치우고 세상 나가서 자기 요령대로 한번 살아보던지 믿으려면 확실히 믿든지 둘 중 하나 해야 될 거 아니 예요. 내 요령대로 한번 살아봐야 되겠다. 아무래도 하나님 보다는 내가 나의지하고 사는 게 나을 것 갔다 . 그 생각 한번 살아보는 거요. 실현해 봐야 뻔 하다 얘기지만은 그러나 그렇게도 결론을 몸소 체험으로 얻고 싶다고 그러면 나가서 한번 살아보는 거요. 그렇게 살든지 아니면 은혜를 받고자하면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준비하다가 정말 그야말로 내가 이번 집회에 하나님을 못 만나면 난 인생 정말 끝이다. 나 하나님 벼랑에 섰습니다. 나를 안아주시던지 떠밀어 버리시던지 둘 중에 하나 하십시오. 이러면서 하나님 앞에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해야지 무슨 인생이 바뀌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만날 뜨물에다 물 탄 것처럼 말이지 희미하게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헌신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헌신된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그런데 이 10장을 봐요. 이렇게 고넬료가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하는 가운데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여오기만 하면 아멘 하고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준비를 갖춘 사람으로서 설교자를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먼저 누구를 바꿔놓았어요. 그 기도가 고넬료와 고넬료 집안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바꿔놓는 역사가 일어난 거죠. 바꿔놓는 역사가 일어난 거요. 하나님께서 가끔 이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무명한 설교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크고 위대한 사람들을 생애 적으로 변화시키시는 이런 사건들을 보게 되죠. 그렇죠. 우린 스펄전을 잘 알아요. 무엇이 평범한 젊은이였던 스펄전을 그렇게 변화시켜가지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가게 만들었는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스펄전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리나 그 사람은 무명한 시골 교회에 교인 세 명 모이는 교회 목사였어요. 하나님은 때로는 유명한자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무명하고 능력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을 택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내가 누구 설교를 보고했다 .그런데 그 설교 원판을 만들어 나온 사람보다 그것을 배겨 가지고 설교한 사람이 더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거 보면서 우리는 뭘 느끼게 되던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정말 크고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변수가 무엇이냐 하면은 준비된 청중들이예요. 사모하면서 다 준비된 사람 3시간 30부을 설교를 했는데도 가면서 하는 말이 으 벌써 3시간 30분이 흘렀어. 나는 한 30분 지났는지 알았는데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이각이 여삼추 한 시간 설교하는 것이 꼭 3년 흘러가는 것과 같아 아무리 졸다 깨어나도 서론을 지나가지 못했어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 이뤄질 리가 없어요. 그런데 고넬료는 기도를 통해서 자기가 변해되었어요.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뭔가를 말씀하실 수만 있다면 그러면 내가 거기에다 생명을 걸고 살아야 되겠다. 그런 사모함이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준비된 그런 회중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집회에 진리의 말씀을 보내시고 그래서 준비된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불을 던지시니까 성령이 물 붙듯 이방인들의 가정에서 유대인들이 얼마 전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은혜를 체험했던 것과 같은 그러한 놀라운 성령의 체험을 하면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보게 되고 예수가 왜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됐는지를 깨닫게 되고. 구약이 열리고 신약이 열리는 이러한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 과정처럼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깨닫고 돌아가야 될 것은 변화받기 위해서 집회에 참석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변화 받게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들릴 때까지 우리 자신이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요. 그래서 그 집회를 준비하면서 고넬료가 6시서부터 9시까지 간절히 기도하고 점심시간이 임박해서야 천사를 만나고 그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구제를 기억 하셨으니 욥바에 있는 베드로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그를 모셔다가 하나님께서 그 그를 통하여 너희들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지니라하는 이러한 응답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러니 그렇게 되어가지고 시몬 베드로가 왔는데 그 말씀에 무릎을 끊고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심령에 털 난사람이지 천사가 와서 강사를 내가 지명해 주겠는데 가서 욥바에 있는 시몬 베드로를 대리고 와라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를 통해서 너희에게 해줄 태니까 그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너희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라 그렇게 까지 응답해 주셨는데 시몬 베드로가 왔을 때 어떻게 거기서 졸수 있겠어요. 어떻게 그에게 거기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가 한마디라도 헛듣게 놓치고 흘려버리고 그럴 수가 있겠느냐 이거요. 무엇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바꿔놓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하나님께서 바꿔놓으신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때요. 변화된 설교자 변화된 말씀 변화된 능력의 말씀을 간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는 깊이 이 고넬료가 기도할 때에 그 말씀에 변화를 일으키시기에 앞서서 그 말씀을 들으러 나가는 이 고넬료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런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셨던 거요. 그러니까 이 고넬료가 변화된 가운데 이미 벌써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 깊은 응답을 이미 집회 전에 받아낸 거예요. 받아낸 거예요 집회 전에 받아낸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집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면은 하나님께서는 그 집회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거요. 이번 집회는 하나님이 내게 붙이셨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응답을 받아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33절에 보니까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첫 번째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그랬어요. 이것은 뭐냐면 베드로를 고넬료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 이유가 없는 사람이에요? 이탈리아대의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그랬으니까 백부장이래. 봐야 지금으로 따지면 대대장도 안 돼요. 그래도 대대는 몇 백 명 되잖아요. 몇 명이요. 400명 정도 된대요. 이등병 이야기지만 정확할거예요. (청중웃음) 요즈음 이등병도 무서워요 소대장 막 길 드리니까 소대장 길들이지 말라고 내가 그래 당부했어요. 그런데 어때요. 백 명밖에 안되니까 소대장 조금 더 대는 그런 정도의 지휘였어요. 그런 사람이 베드로가 기억해야 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장군정도 라면 기억 했는지 모르지만 신문에서 봤을지도 모르지만은 그러나 뭐 기억해야 될 이유가 뭐 있겠어요. 그런데 어때요 기억해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도이었어요. 그랬는데 뭐라고 했냐면 당신에게 명하신 고넬료도 베드로가 고넬료도 알지 못하고 고넬료가 베드로ㅇ를 말을 많이 들었을지 모르지만 잘 알지 못하였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이 집회가 되려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려고 하니까 이 집회를 임하는 고넬료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베드로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어떠한 형편에 살고 있는지 우리가족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내고민이 무엇인지 내 평생소원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지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심지어는 내 몸에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는지 내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뭐예요.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 하실 것이다 이게 바로 집회를 임하는 고넬료의 확신 이었어요. 응, 하나님은 집회에서 설교자를 통하여서 나의 인생에 개인적으로 말씀 하신다. 그 확신을 고넬료가 가지고 있었어요. 고넬료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 뭘 먹고 사는 사람인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인지 뭘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인지 베드로가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어요. 그러나 베드로가 자기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나에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하는 말씀을 들려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설교를 들으러 나오는 고넬료의 마음이었어요. 집회를 한다. 그러면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데 그 말씀을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 집회를 기다라고 있습니까? 혹시 이런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의 인생에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참고서 정도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데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참고서 정도가 된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참고서는 뭐에요? 참고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어요. 한번들 어보고 참고하고 안 하고는 내가 결정하는 그런 것일 수 없어요.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에 이 고넬료가 지금 이 집회로 오는 이 베드로의 설교를 기다리면서 자기가 듣는 그 태도는 무엇 이예요. 주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이미 고넬료는 베드로가 자기가 어디 사는 누구고 어느 동네에 누군지도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고민하고 자기의 인생의 문제와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그를 나에게로 보내실 때에 그에게 이미 말씀을 주셨고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서든지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무지와 이런 것들에 억매이지 못하게 하셔서 결국은 내 인생에 필요한 말씀을 베드로를 통해서 주실 것이라 그렇게 생각할 때에 이 고넬료가 기다리고 있었던 이 베드로의 설교는 참고서가 아니라 도로를 차를 몰고 달려가고 있는 고넬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지만 어디로가 야할지 모르는 시속 120K로 달리고 있는 고넬료 앞에 나타난 표지판 같은 것이 베드로의 설교였어요. 믿습니까? (아멘)닥 부산 쉭 꺾어지는 가예여 표지판 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이리 갈까 저 리갈까 침 뛰기고 어느 쪽으로 갈까 따져 봤다. 잘못 길들어서면 그다음에는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한없이 달리는 거요. 그럴 텐데 어때요. 하나님의 말씀이 한없이 그들의 인생에 참고가 아니에요. 참고가 아니에요. 참고가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신지 한번 들어볼까 그거 뭐 좋은 게 있으면 내가 한번 그대로 해 보도록 노력을 해볼까 그것도 한번 들으면서 내가 생각을 해볼까 이 사람들 하나해 주시지 않아요. 표지판과 같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표지판이 나타나면 전폭적으로 그 표지판에 따라서 인생을 몰고 가야 되겠다고 라고 하는 이런 확신과 결단이 설 때 그것이 바로 오늘 나온 이 고넬료의 고백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첫 번째 메시지예요. 그게 뭐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바 그러니까 어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혼돈을 만나고 그리고 이길 계속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내 앞에 있는 이 험난하고 캄캄한 이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될까 말아야 될까 이렇게 결정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이렇게 살아야 될까 말아야 될까 일 년 동안 망설이면서 결단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뭘 기다려야 되요. 집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집회를 통해서 내 인생의 분명한 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된단 말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바로 그거예요 . 고넬료가 이것을 가지고 있었어요. 또 하나는 뭐냐면 무엇을 듣기위해서 모였어요? 성경을 봐야 나오지 제 얼굴에 뭐가 보여요. 성경을 봐야 나오지 무엇을 듣기 위해서 다시 무엇을 듣기 위해서? 아 왜이래 실력이 떨어졌나. 무엇을 듣기 위해서 모였어요? (청중) 모든 것 모든 것 모든 것 이번 집회에서 내가 위로를 많이 받아야 될 텐데 그리고 나왔는데 시종일관 쏟아지는 것이 책망과 도전이에요. 그러면은 입술을 깨물고 마음에서 뿔뚝심이 돗아가지고 그 못된 고집이 다 돗아가지고 꽃을 다 피면서 그러면서 가는 거예요. 이게 모든 것을 듣기 원하는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번에는 내가 큰 능력을 받고 싶은데 그리고 왔는데 계속 나오는 이야기 죄에 문제에 대해서 회개에 대해서 나는 뭔가 특별한 거 받고 싶은데 계속 주어지는 메시지가 기초 기초를 강조하는 메시지야 여기서 뭔가 뿔뚝심이 솟아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거시 저게 아닌데 설교자가 영적으로 무지해가지고 말이지 감각이 없어 그러면서 꽃이 피면서 바이바이 하는 거죠. 그러면은 모든 것을 들으려고 하는 거요. 아니면 조그만 것을 들으려고 하는 거요? 마음에 맞는 것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는 거요.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서 주는 말씀이 선한 말씀이던 악한 말씀이던 그것이 자기의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거든 자기의 인생을 고달픈 인생의 비탈길로 끌고 가는 것이든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문제는 무엇이었어요. 문제는 무엇이든지 모든 것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지 어떻게 말씀하시던지 모든 것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선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대해서 증거해주는 그 모든 교훈은 참되고 올바른 것이고 그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대로 따르는 것만이 내 인생의 참된 행복이요. 내가 이 모든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고 참된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 수 있는 그러한 유일한 방편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요. 응, 그러니까 어때요. 무슨 말씀이던지 주님 말씀하옵소서. 모든 것을 모든 것 모든 것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고넬료에게 말해 주실 수 있어요. 고넬료의 머리 용량이 몇 비트 명 매가가 되는지 모르지만은 다 담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물량적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씀하시던지 간에 심지어는 나도 내가 무슨 말씀을 들어야 좋을지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거요. 그렇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내게 주시던지 당신에게 명하신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쓰든지 달든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우리가 그 말씀이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듣고 싶사옵니다. 이 마음이었어요. 여러분들도 기도를 많이 하면 집회하기 전에 이런 마음이 생긴다는 거요. 응, 정답이 다 나왔어. 하나님 내 갈 길을 정해졌습니다. 팍팍 밀어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아무 말씀도 마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은 진짜 아무말씀도 안하셔요. 누구만 고달파? 표지판 안 나타나면 여기다 매다 끌고 저기다 매다 박고 그러면서 비 포자이고 막 올라가는 거요. 맨 마지막에 가서는 말뚝이 하나 나오는데 길 없음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언덕이 나오고 절벽이 나오고 해골 하나 그려져 있고 말이죠. 그런 거죠. 응, 누가 답답해요. 하나님께서 고넬료가 기도하니까 신령한 마음으로 집회를 준비하게 되었고 신령한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니까 고넬료의 마음속 모든 것 쉽게 말하면 뭐에요? 주님 내 마음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말하려고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무엇이든지 당신 하시고 싶은 말씀을 확 확 하시옵소서. 무엇이든지 제가 듣겠사옵나이다. 이런 태도로 벗겨지는 여러분들이 대시길 바랍니다. 아멘(청중) 이게 은혜 받는 비결이 예요. 그다음에 세 번째는 뭘 하고자 모였어요. 뭘 하고자 듣고자 신약성경에서 나와 있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동사가운데 가장 의미 깊은 동사가운데 하나가 이 듣는다는 거예요. 이거는 그냥 들리는 게 아니에요. 듣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지금 설교를 듣고 있죠. 어린아이 귀에도 들려요 그 어린 아이들은 듣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때요. 설교가 들려오는 모든 사람이 그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에요. 설교를 느끼는 모든 사람이 그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에요. 아니라는 거요. 듣는다. 고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대표적으로 샤마데 그게 뭐냐면 청종하다는 거요. 청종한다는 거요. 이 듣는다는 것은 그냥 가만히 물리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내면적으로 따라서 살려고 청종하는 미음을 가지고 겸비함 가운데에 순종의 욕구를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거요. 그렇게 듣고자 했던 거요. 그게 뭐요?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던지 고넬료와 고넬료의 집안의 사람들은 마음을 다 기우려서 그 말씀을 청종할 각오와 준비된 마음으로 그 설교를 듣고자 하였어요. 그러니까 뭐예요. 무엇이든지 말씀하시면 내가 그 말씀대로 행하겠사옵나이다. 라고 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그 말씀이 그냥 평범한 말씀인데도 그 말씀이 생명을 일으키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의 가슴속에 파고 들어오는 거요. 파고 들어오는 거요. 그러니까 어때요. 가만히 앉아가지고 자 은혜 한번 끼쳐보시오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은혜주시지 않으셔요. 주님 무엇이라고 말씀 하시던지 다만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들이 듣겠나이다. 마음을 다 기울이면서 그 말씀하시던 분부대로 살아가려고 지금 애를 쓰면서 승복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사옵나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갈 때 말씀이 가슴을 타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가. 아녜요. 인생이 걸린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고 마음도 기울이만 인생에 걸리지 않은 이야기는 귀 기울이고 마음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게예요. 그렇잖아요. 무슨 이야기 인지 좋은 이야기 인가 그렇지 않은 이야기 인가 내 인생에 있어서 뭔가 선한 것을 판단하기 위해서 영양가가 있는 소린가 없는 소린가 그런 판단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가 꼭 원하는 말씀을 하나님이 하셔도 결코 그의 귀는 즐겁게 할지 모르지만 가슴을 파고들어가서 그의 심령을 녹이는 그런 설교는 될 수 없는 것이에요. 이 고넬료는 집안사람들과 함께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던지 완전히 순복할 의사를 가지고 귀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에 말씀을 들으면서 집회를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도 두 종류에도 검사를 해 봐야 되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는 완전히 순복된 가운데 지난날을 회개하고
(찬양)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 새 빛을 발견했기 때문에 회개와 기쁨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 있고 은혜는 임하는데 순종을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순종을 안 하자니 감동적이고 그러면서 흘리는 눈물을 갈등의 눈물인데 끝나고 나면 적어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다. 이게 집회의 유산이에요. 그게 바로 수많은 사람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변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그거라 이거에요 . 그리고 많이 운다고 해서 그 집회가 성공한 집회는 아니에요. 물론 하나도 안 울면 전혀 성공할 수 없지만은 그렇잖아요. 그 갈등으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눈물을 씻고 나서는 스스로 대견해 하는데 적어도 나는 이번 집회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다. 내가 그래도 내가 가는 길을 결국은 내 마음대로 가지만은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주어질 때 그래도 내가 갈등을 일으킬 정도의 양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를 대견해 하는 거요. 그러니 무슨 선한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게 뭐여 자기 자신도 속아 넘어가는 회개에요. 감동은 받으나 하나님 앞에 전폭적으로 자기 인생을 맞기지 못해요. 갈등을 느끼지만 그러나 하나님 편 에서서 하나님을 설득 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요. 왜냐하면 받지만 그러나 자르지 못하는 게에요. 강변을 받지만 돌이켜 서지 못하는 거요. 커다란 이상을 가지고 도전을 받지만 완전히 그 말씀 때문에 삶을 정리 하고 가던 길을 돌이켜서 서 이전의 새로운 신앙을 표지판을 달고 그 표지판을 향해서 걸어갈 수 있는 이러한 인생의 참다운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거여요.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무얼 하냐. 들을 때 나도 감동이 되고 눈물을 흘렸다 그게 아니에요. 듣고자 했어요. 듣고자 했어요? 아니면 들어보고자 했습니까? 하나님 주님이 제 인생에 대해서 무슨 견해가 있으시겠지요. 제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하나님 뭔가 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죠? 말씀해 보십시오. 참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결정은 제가 합니다. 그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거요. 옆에 사람이 보면 은혜 혼자 받는 것 같죠. 끝나면 바이바이 남는 것은 집회 때 흘린 눈물의 추억밖에는 없어요. 우리의 인생을 붙들어 주는 것은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는 것 같은 그런 체험을 했느냐는 것이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내게 들려 올 때에 그 이전에 그 말씀 앞에서 얼마나 그 말씀을 듣고자하고 귀 기울이고자 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그 세미한 음성으로 내게 들려주시고 내게 깨닫기만 하시면 내 인생을 전폭적으로 복종시키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 자신을 꺾고 불순종하고자 하는 내 자신을 잘라 내고 꺾고 굴복시키고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겠사옵나이다. 그런 결단 이때에 그 집회가 바로 그 후일에 나는 그 집회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런 집회가 되는 거예요. 뭐 은혜도 못 받고 뒤에서 졸다 가는 사람은 그것 얘기 할 것 없고 그것 얘기 할 필요도 없는 거고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그렇다 이야기 에요. 이 고넬료는 전심으로 마음을 기울여서 들어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 기울여서 인생 자체가 그 집회에 걸린 것처럼 그렇게 듣고자 하였다. 완전한 내적인 승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할 때 과연 하나님은 특별한 이야기를 고넬료에게 들려준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있는 복음의 내용을 들려주신 거예요. 그런데 어때요. 성령으로 역사하니까 그 말씀이 고넬료와 고넬료 집안의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성령의 은혜를 부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자신을 내면적으로 깊이 승복시키는 그런 집회 준비가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모였어요. 누구? 다 모이는 집회가 되어야 되요. 응, 다 모이는 집회 무슨 얘기에요. 고넬료는 자기 하나만 은혜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함께 은혜에 동참하기를 사모했어요. 그리고 모두를 불러다가 세워주셨어요. 다 나와야 되는 거예요. 주의에서 인생의 막다른 골목서 생의 목적도 모르고 허무하게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미련하고 불행한 많은 이웃들에게 여러분들이 베풀 수 있는 최대에 사랑 최대의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은 무엇이에요?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거예요. 그것은 쇠하지 아니하는 커다란 선행을 그 사람들에게 해주는 거예요. 그 일들을 여러분들만이 할 수 것이에요. 모두를 다 세워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선 그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 바로 그 일인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모두 함께 모두 다 나왔나이다. 하나님이 이것이 열린 교회 식구 다냐고 물을 때 열린 교회 식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할 모든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집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있다고요.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 앞에 있어요. 베드로 앞에 있는데 왜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렇게 고백했던 이유는 무엇이에요? 그는 베드로를 하나님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집회가 장충체육관에서 하는 집회는 아니고 자기들이 하는 집회가 커다란 운동장에서 모이는 대규모의 집회는 아니고 심지어은 자기들이 하는 집회가 몇 년 전서부터 계획한 그런 집회는 아니었지만은 하나님이 그 집회에 함께 하고 계시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게 이방인이 가지고 있는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이에요. 우리는 비록 초라한 집에서 몇 명 안 되는 식구가 모이고 그리고 피장이네 집에서 은거 하면서 신세를 지고 있던 허름한 차림에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이 왔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 집회 가운데 계시다고 하는 확신을 고넬료가 갖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몇 명이 모이든지 몇 사람이 모이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집회가 될 때 그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집회가운데 함께하실 것이라는 것을 이런 확신이 넘쳐야 되요. 이것이 없으면 그 집회가 살아있는 집회가 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상식적인 이야기 하다가 돌아가는 그런 집회밖에 될 수 없는 것이에요. 이 사람 고넬료에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확신하고 있었어요. 자기부인이나 아이들이나 종이나 부하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예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확신이 고넬료에게는 있었던 것이에요. 여러분 불행에 처해있는 여러분의 이웃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쉬하지 않는 선행, 연말을 맞아서 10만원 20만원 도와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힘을 다해서 10만원 20만원 보태줘도 두 달이면 그 돈은 간 곳이 없어요. 그러나 그를 한번 하나님 앞에 데리고 나와서 집회에서 변화되어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 자체가 변하는 것이에요.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두 다 나왔나이다. 고백할 수 있는 집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열심히 복음전할 기회를 노리면서 사람들 데리고 나오기를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으로 기도합니다. 오늘도 아주 귀한 분을 만났어요. 아침에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 데 전화가 와서 목사님(목사 아닌데도 목사로 안 모양이에요) 목사님 저를 만나 주십시오. 누구입니까? 제가 아무 아무개 다니는 교회 권사입니다. 그런데 왜 저를 만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래 꼭 좀 만나야 되겠데. 꾸역꾸역 다녔지요. 만났는데 자기는 미국에도 집이 있고 한국에도 집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인데 내가 어느 집회에서 교수님 설교를 한번 듣고 큰 은혜를 받고 저기가 ”십자가하고 벧엘로 올라가자“를 읽고 더 큰 은혜를 받았는데 자기는 15년 동안 전도할 친구가 있는 데 그 친구를 어는 교회에 데려가 줘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는 데 어떻게 해야 될 지 찾을 길이 없고 교회를 향한 비판만 넘치고 있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구원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열린 교회로 데려갈 태니까 몇 주 동안 계속 데리고 나올 태니까. 꼭 그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는 못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뭐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뜻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겠지요. 주일날 세 명을 데리고 오겠대요. 할렐루야. 전도도 그런 전도가 있네요. 좋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어냐면 자기가 사람들을 전도해야 되는 데 그 사람이 교회 나가고 그 사람을 전도하지 못할 때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자기가 마음의 짐이 무거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예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에요. 무엇을 줄 수 있겠어요. 다 잘사는 사람, 돈 많은 사람,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두 데리고 나와서 은혜 받는 집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있을 때 그것을 굳게 믿을 때 그 때에 이 고넬료의 집안에 큰 복음의 역사가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번 집회를 이렇게 준비해서 고넬료의 집안과 같이 초라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집회이지만 고넬료의 집안에 넘쳤던 그런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집회에 임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여러분이 인생의 길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이런 열린 집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다 같이 하나님께 집회를 위해서 한 음성으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준비하고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고 모든 것을 그리고 순종하는 미음하는 마음으로 듣고자 복음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집회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저희들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들을 이 시간 택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역사하였사오니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많으신 내 하나님 아버지여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하오니 주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고넬료 집안에 임하셨던 그 성령의 놀라운 역사와 아버지 하나님이여 믿음의 역사가 열린 교회 집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가 고백할 때에 그 집회가 하나님 앞에 받음직 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고넬료가 간구하고 기도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집회의 응답을 받았던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이여 사랑하는 성도가 이렇게 깊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사모하는 그러한 집회로 준비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간구하고 기도하오니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베드로가 아버지 하나님 지붕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베드로를 통하여서 집회의 성격을 보여주시고 집회를 통하여 베드로 자신도 깨트려주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 집회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이 변화를 받고 은혜를 받고 새롭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 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여 연약한 인생도 변화되고 교역자들도 변화되고 아버지 하나님이여 재직들이 변화되는 놀라고 은혜로는 집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여 역사하여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여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이 녹아지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이여 심령이 변화되고 새로워 질 수 있는 집회가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에게 명하여 주시고 그리고 나에게 명하신 모든 것들을 모든 열린 교회 식구들이 듣기를 사모하고 모든 것을 듣기를 사모하고 모든 것을 깨닫기를 원하고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이여 말씀을 듣되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을 다하여서 전폭적으로 승복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인격적으로 그 말씀 앞에 무릎 끊기를 원하는 순종의 마음으로 나아가 간구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이러한 종들이 다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성령을 물 붓듯 내리셔서 모든 사람을 새롭게 변화 시켰던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이여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 위에 성령이 내리셔서 그로인하여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성령주신 것으로 인하여 놀랐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이여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변화를 받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놀랍게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인하여 놀라고 감격하고 변화 받고 하나님 앞에 주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그러한 종들이 다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여 역사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리하여 성령을 받고 그리하여 아버지 하나님이여 변화를 받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무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집회를 통하여 일어나도록 역사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은혜를 내리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말씀으로 성령으로 모든 사람에 풍족하게 임하시는 집회가 되도록 아버지 하나님이여 역사하시는 집회가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여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주님 미련한 인생들입니다.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인생의 표지판을 새롭게 보게 하여 주시고 가야 될 길로 돌아서는 저희가 되도록 아버지 하나님이 은혜를 내리워 주시옵소서.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많은 성도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도하는 집회가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리워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