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학교 이야기
녹취자: 허혜숙
2009.2.13 내부강의
저는 75년도에 회심을 하고 그리고 76년도, 엄밀하게 말하면 77년도서부터 제가 회심하고 1년 반, 2년 후에서부터 사실은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교사생활은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제대로 된 교사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겠고 회심하고 난 후 2년 반 뒤부터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너무 신앙적인 면이나 모든 면에서 미숙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인지 몰랐고 또 다른 사람도 누가 진짜 좋은 교사인지에 대한 감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83년도에 전도사가 되고 그 후에 많은 굴곡이 있었습니다. 소명도 받고, 결혼도 하고, 은혜 체험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83년도에 처음으로 교육전도사가 되어서 그 때에 주일학교를 맡아서 인도를 하면서 그 때부터 비로소 진짜 좋은 교사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만 하더라도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제가 주님을 좀 더 깊이 만나고 변화 된 뒤에 물론 그 전에도 열심히 주일학교 사역을 했고, 그래서 부흥도 있었고, 또 많은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그 후에 제가 깊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틀이 잡힌 설교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에 저는 7년 동안 있던 교회를 떠나서 새로운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있던 교회는 약 150명 장년이 모이는 교회였기 때문에 청년부, 고등부, 주일학교, 찬양대, 구역, 장년 성경공부 하여튼 전천후 폭격기처럼 교회 청소까지 안 하는 것이 없이 그렇게 하다가 처음으로 조금 규모가 큰 500~600명 되는 교회에 가서 제가 중등부를 2년 정도 돌보게 되었고 그 다음에 고등부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만났던 교사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 때 비로소 제가 정말 영혼을 잘 돌보는 사람으로서 교사가 어떤 교사가 정말 참된 교사인지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안목이나 생각 이런 것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받았던 생각과 인상을 토대로 어떤 교사가 그렇게 귀하게 남고 또 어떤 교사가 어떤 면에 있어서 교회 학교에 영혼을 돌보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진솔하게 제가 말씀을 드리고 그런 경험들이 열린교회를 세워놓고 나서 열린교회에서 직접 교회학교를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각 교회학교에 대해서 내가 바라는, 그런 이상이나 표준 같은 것을 세우는데 기본적인 많은 기준이 되었다고 할까 그런 정신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사역이나 아니면 중고등학교를 해 갈 때 사실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인가 하는 것이 교사들이 그 교회학교를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것과 또 교역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학생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들이 각자 똑같지 않고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고 마음들이 다 합해지고 모아지면 이런 것들이 잘 정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평행선을 달려서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제가 한 교회에서 2년 동안은 중등부를 맡고, 3년 동안은 고등부를 돌보다가 횟수로 7년 만에, 그리고 만 6년 만에 그 교회를 떠나서 잠깐 나와서 청년사역을 하다가 1년 반 있다가 열린 교회를 개척을 하게 되었으니까 회심하고 나서 다닌 교회가 교회를 개척할 때까지 불과 세 교회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어려운 것이 뭐냐면 한 번 각 부서마다, 교회학교마다 그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런 분위기 중에서도 영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좀처럼 뒤집혀지지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제가 중등부 사역을 했는데 제 나름대로는 교수가 되고나서 얼마 안 되어서 너무 힘들게 사역을 했지만, 그래서 사실은 힘을 좀 못 썼던 때도 있었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는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를 돌아보면 설교를 하는데 꼭 벽에다 대고 설교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있던 교역자가 중등부 아이들을 74명을 물려주고 가시면서 마지막 교대식이 있는데 지금 이 장소의 1/4밖에 안 되는 공간이었고 전도사님이 마이크 없이 설교를 하는 공간이었는데 70명 학생들이 앉아있는데 뒤에서 설교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떠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중등부를 맡았는데 제일 힘들었던 것은 벽에다 대고 설교를 하는 것 같은 것이었습니다. 찬양을 불러도 따라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고 기타소리하고 피아노 소리만 크게 나고 찬양을 인도하는 선생님 목소리만 나지 그리고 선생님들이 따라서 부르는 것이지 수수를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거의 따라 부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것을 원인을 놓고 보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부분이 회심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중고등부 사역을 할 때까지만 해도 회심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사역의 경험은 많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 아이들이 회심이라는 신학적인 주제나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 아이들에게 적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1년 정도 사역을 했을 때 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결심을 하고 토요일 날 집에서 8시 반쯤 되면 제가 보따리를 싸들고 양복까지 들고 교회로 가서 철야를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가서 아홉시 반 쯤 도착해서 사찰 집사님이 청소를 했지만 혼자 사시니까 깨끗이 하지를 못해서 제가 청소를 다시 하고 돗자리(장판)를 펴면 11시쯤 됩니다. 아무도 없고 혼자서 찬송을 약 30쯤 부르고 기도하는 겁니다.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하면 2시까지 기도하고 자고, 어떤 때는 기도가 잘 될 때는 4시까지 하고 그러다가 7시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우유나 한 잔 먹고 8시 조금 넘으면 찬양을 부를 준비를 하고 9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교준비를 하고 기도 준비를 했으면 주일 날 은혜가 쏟아져야 되는 것인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사역의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건강도 안 좋아가지고 화장실에 앉으면 피가 한 컵씩 쏟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뜻하심이 있으셔서 제가 교역자가 바뀌면서 고등부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올라가니까 굉장히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얘네들은 말귀를 좀 알아듣지 않습니까? 지금도 저는 중등부 사역을 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하는 행동은 애들 같은데 취급은 애들 취급을 하면 큰일 납니다. 굉장히 애매한 연령대입니다. 지금도 김동기 전도사님이랑 부장집사님, 부감 집사님, 교사들 보면 참 기특합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정말 못 하겠더라구요. 어떻든 그렇게 해서 열심히 하고 심방도 부지런히 했는데 썩 그렇게 재미있는 성과를 못 거두었습니다. 고등부에 올라갈 때 기뻤던 것은 ‘아, 애들은 말귀를 알아들으니 설교를 하겠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뜻을 세우기를 그 때 굉장히 제가 은혜를 많이 받고 있던 때였습니다. 올라갈 때 제가 결심하기를 ‘나는 이 아이들에게 청소년을 위한 설교를 하지 않겠다, 이 애들이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하겠다’ 생각하고 그 다음부터는 철저히 설교준비를 하고 설교를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토요일이면 여덟시 반에 가서 아홉시 반부터 옷을 벗고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혼자서 합니다. 그러나 아홉시 반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청소를 하기 시작을 하면 대개 빨리 끝나면 11시에 끝납니다. 거들어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기다란 의자에 비닐로 씌워진 의자 아시죠? 그것이 굉장히 나쁜데 그것이 여름에는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습니다. 그것까지 뒤집어서 걸레로 깨끗이 씻어내고 닦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하는 청소가 내일 설교할 강대를 닦는 것입니다. 강대도 너무 오래 써서 낡은 강대였는데 닦을 때는 걸레를 항상 깨끗이 새로 빨아서 닦습니다. ‘하나님 제가 내일 아침에 여기에서 설교를 하는데 은혜를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면서 청소를 깨끗이 합니다. 끝나고 나면 보통 11시쯤 됩니다. 그러면 온 몸이 땀이 뻘뻘 납니다. 그 때가 6월이었는데 샤워할 데도 없으니까 대충 수건으로 닦습니다. 강대 위에서 기도하면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거기에다가 비닐 같은 것을 하나 깔고 방석 하나 놓고 벽을 보면서 찬송을 혼자서 조용히 약 30분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첫 주에는 그렇게 기도를 하고 끝났습니다. 기도가 잘 힘들고 안 되더라구요.
그런데 둘 째 주에 기도를 하는데 일생에 경험을 하지 못했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기도를 하고 한 열두시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두시쯤 넘게까지 기도를 했나 그랬는데 구체적으로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깊은 영적인 씨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지쳤는지 제가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서 그 다음날 주일날 설교를 하고 오후에 마치고 집에 가서 정확하게 스물 네 시간을 누워있었습니다. 그 날 그러고 나서 죽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다음 주 토요일 날 다시 또 올라갔습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뭔가가 있었던 거야 라면서 올라갔는데 그 전주에 경험 한 것과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보다는 좀 약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때에 제가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결국은 영적인 싸움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구나’ 생각하면서 마음을 강하게 먹고 토요일마다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주일이었는데 첫 번째 올라가서 설교할 때는 그래도 중등부보다 좋았던 것이 그래도 무슨 소리를 하나 하고 나를 쳐다보더라구요. 중등부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그래서 몇 번씩 혼을 내면서 고개를 들게 합니다. 고개 들고 잘 쳐다보면 15분만 설교하겠다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하고, 그래도 안 쳐다 보더라구요. 35분을 설교를 했습니다. 쳐다보긴 쳐다보는데 흔들리지를 않아요. 그리고 나서 그 다음 주에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설교를 했는데 길게는 안 하고 약 40분 정도 설교를 하고 ‘다 같이 기도 합시다’ 하고 기도를 하는데 엄청난 회개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딱 절반이예요. 비율로 볼 때 절반이 막 기도하고 절반은 아주 차가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도 똑같은 것입니다. 교사들도 모였는데 교사들도 절반으로 쪼개졌습니다. 그건 뭐냐면 예배시간 마다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은 교사들과 뭔가 불만이 꽉 차가지고 대들 것 같은 자기들이 이제껏 지내온 독특한 분위기와 전통을 다 무너뜨리는 전도사가 왔다라고 하는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 중에 몇 사람은 평행선을 달리다가 교회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함께 은혜를 받고 열심히 사역을 하고 아이들이 은혜를 받으니까 설교하는 것이 신이 났습니다. 지금도 저는 은혜 안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설교한다고 생각을 안 합니다. 그것은 너무 지치고 낙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를 잘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교를 한다라고 생각을 하고 설교합니다. 그래서 차곡차곡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에 설교한 원고를 모아놓은 것이 ‘십자가를 경험하라’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은혜를 받고 깊이 변화 된 선생님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똑같이 깊이 회개하고 그 선생님들이 교사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는데 이 선생님들은 대예배보다도 9시에 와서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예배가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면 그렇게 은혜를 받은 선생님들 속에서는 자기의 그 공동체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자체가 교역자를 향해서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그러한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은혜를 받으면서 교역자와 한 마음이 되어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본론으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그 때 선생님들을 기억을 하면서 교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라고 하는 것을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첫 번 째가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로 변하더라구요. 그래서 교회학교는 학생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문제이기 때문에 새롭게 문제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라면 엄마 따라 그냥 교회 다녔지 굳이 교회학교에 왔겠습니까? 문제는 교사입니다. 교사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냐면 와서 교회학교 섬기는 것도 대개 교사의 지망하는 동기의 60%는 학교 선생님들은 지망을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너무 선생 소리를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성가대나 그런 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안 해 본 사람들한테는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아주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런 감정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교사들 중에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면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없는 가운데 교사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청년부 가서 거기에서 어울릴 것 다 어울리고, 즐길 것 즐기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예배시간에만 와서 달랑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과공부 가르치면 자기는 다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해서 사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니까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것은 다른 교회는 교사가 다른 일을 겸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구역장도 겸하고 성가대원도 겸하지만 저는 그렇게 못하게 하는 이유가 하나에 쏟을 때 거기에서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고등부 전도사 할 때 청년부에서 구역장인데 아침에 와서 봉사하러 왔다고 할 때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만 두고 오던지, 아니면 우리는 올인 할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이 선생님들이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니까 영혼들에게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보면 열심히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우리가 만든 어떤 제도와 방법에 의해서 학생들이 변화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런 제도나 방법들을 거의 고치지 않고 답습하면서 그냥 해도 선생님들이 영혼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되니까 영혼들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는 거기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교사로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인격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성경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 물론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그런 뜨거운 사랑이 있는 인격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맡기시기 전에 물어보신 것이 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동일한 그 한 가지 질문을 세 가지로 세 번 물어보신 후에 세 번 다 동일하게 양을 먹이도록 그렇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고, 이런 사람을 처음 영혼을 돌보기 시작할 때 그 마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일 지도 모릅니다. 더 어려움 것은 그 마음을 시종일관 똑같이 가지는 것, 그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의 은혜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자기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자기의 영혼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주님을 깊이 만난, 그리고 은혜 가운데 있는 교사들은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같이 모여 앉아서 찬송 한 장 부르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눈물이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영혼이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사업을 하고, 남편과 아내가 있어서 고통을 당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똑같이 그들대로의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영혼이 곤고하면 견디기 힘들도록 고통 하는 것들이 느껴집니다. 선생님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가 되니까 그 영혼들의 고통 하는 것을 대하면 느낄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래서 그 때 사역할 때 제일 행복한 시간은 설교하는 시간과 함께 모여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선생님들이 모여서 기도하면 절실하게 아이들을 위해서 몇 시간씩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돌멩이같이 굳어져있던 마음을 가진 영혼들이 영혼이 토라지게 되면 심방을 가도 필요가 없고,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백약이 무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선생님들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 주니까 하나님이 혼자서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두 주 전에 갔을 때는 문도 안 열어주던 아이가 놀랍게 마음이 녹아서 심방을 하면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이 영혼을 돌보는 사역의 원리는 자기 밖에 있는 물을 퍼서 자기 밖에 있는 사람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그 영혼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입니다. 배라고 하는 말은 인격과 신앙의 좌소를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한 사람의 신자로서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인 영혼들에게 교사의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준비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준비한 것이 부족하고 선택한 방법이 다소 부실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만약에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면 그래서 영혼을 향한 눈물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런 눈물이 없는 훌륭한 방법과 수단보다 눈물에 젖은 조금 부족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여러분들의 영혼은 여러분들만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돌보고 있는 양떼들이 함께 유익을 얻는 영혼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았던 교사들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교사들은 교회학교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밤 11시라도 아무 불평이 없이 모이고,. 심지어는 밤 11시가 넘도록 심방을 하고 마지막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도 마음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 기억에 남는 첫 번째 교사에 대한 인상입니다. 그래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는 교사들, 그리고 눈물이 있는 교사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 토요일마다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날은 사생결단을 하고 토요일 날 보따리를 싸고 가서 다음 주일을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열심히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일 예배를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혼자 기도를 하는데 한참 기도하다보면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입니다. ‘너 왜 왔니?’ 그러니까 ‘아, 지난주에 하나님이 저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마음이 너무 교회에 가고 싶어서 왔어요’ 선생님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온 것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 같이 기도하자’ 세 명 네 명 모여서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찬송을 30-40분 부르고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는 사실은 학력이나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았는가에 비례하잖아요? 계속 기도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쯤 되니까 한명씩 두 명씩 모였습니다. 무지무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옥상이어서 가건물을 지었는데 물을 가져다 놓으면 얼 정도로 엄청나게 추웠습니다. 약 30명씩 모여서 의자를 저리 치워놓고 바닥에 넓게 방석들을 놓고 앉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11시에 모여서 12시까지 찬송하고 12시에 기도하면 한참 기도하다가 이상하게 주위가 빛이 너무 많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보면 먼동이 터 오는 것입니다. 약 다섯 시간 넘게 애들하고 기도한 것 같아요. 잠을 한 숨도 자지 않았죠? 곧바로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6시 반에 새벽기도를 만들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만드니까 목사님께서 웃으시면서 누가 새벽기도를 오겠느냐고 하셔서 ‘몇 명이 모여도 하겠습니다’했는데 아이들이 머리를 감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모여서 새벽에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면 약 한 시간쯤 하거든요. 그러니까 여섯 시 반쯤해서 7시 반에 끝나고 그 다음에 약 8시까지 기도하고 잠시 쉬었다가 그러고 나면 아이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여덟시 반쯤부터 찬양하기 시작하고 9시에 예배를 시작합니다. 이 선생님들이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예전에는 기도하지 않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움직이신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그리고 성령이었습니다. 그것을 모아놓은 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의무감으로 기도했는데 그렇게 깊이 은혜를 받고 예배시간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성령을 경험하니까 이 선생님들이 열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는 토요일 휴무도 없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근무하고 주일 딱 쉬는 시간이었는데 토요일 날 밤에 와서 꼬박 밤을 새우고 주일을 맞는다는 것이 정상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네 시쯤 끝나고 두 시간쯤 자고 새벽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일 날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도 그 기도 속에서 아이들이 하나님께 힘을 공급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교회학교는 교사들이 기도하는 교회학교가 되어야 된다. 그 때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을 때에는 꿈꾸지도 못했던 아주 놀라운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기도하던 교사들이 생각이 납니다. 충심으로 한 마음이 된 가운데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물 같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 때 기도의 제목은 오직 하나 예배시간 마다 아이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도록, 하나님 앞에 반항하고, 말씀 앞에 굴복하지 않은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서 깊이 변화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모여서 금요일에도 모여서 기도하고, 토요일 밤에도 기도하고, 주일 끝나고 나서 아이들을 모두 보내놓고도 또 모여서 기도하고, 기도회가 시작하면 선생님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은혜를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던 교사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영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은혜로, 말씀으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그렇게 영혼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돌아가니까 일주일 내내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교회로 새벽기도를 달려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하니까. 그런데 그것이 어느 곳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혼들을 위해서 아주 깊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시련도 만나고 고통도 만납니다. 다른 것 말고 내가 돌보고 있는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그래서 마음이 물같이 녹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였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교회학교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 참신한 생각, 비싼 돈으로 구입한 교육 기자재들, 아주 휘황찬란한 영상과 새로운 미디어 자료들에 의해서 영혼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 생각이 그대로 납니다. 주일날 아이들을 다 집에 돌려보내고 마지막 회의를 하고나면 ‘누구는 이래서 교회에 나오지 못 했구요, 누구는 이래서 시험에 들었구요, 누구는 이래서 다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교회에 나왔구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마음속으로 감사의 찬송과 눈물의 탄식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끝나고 나서 바닥에 내려와 방석을 깔고 둥그렇게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가 막 기도하라고 동요하는 사람이 없어도 성령께서 동일하게 오셔서 확 만지고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도저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아이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어떤 때는 주일 날 사역이 끝나고 기도하는 그 때가 두 시간 반씩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면 그 영혼들의 상태가 우리에게 느껴집니다. 교만함 때문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마음의 죄 때문에 억눌려 있는 아이, 깨어진 가정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방황하고 있는 아이, 그러면 기도는 놀랍게도 자기 힘으로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의 고통이 있어도 아파할 줄 모르는데 그를 위해 중심으로 섬기며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이 영적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래서 죄는 저 사람이 지었는데 대신 기도하는 내가 회개하게 됩니다. 상처는 저 사람이 받았는데 저 사람이 못 느끼는 상처를 내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뜨겁게 기도하게 됩니다.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지
또 무엇을 견디게 되든지 나는 관계 칠 않노라
잠을 자면 저들을 꿈꾸고 잠을 뜨면 첫째 생각이
영혼들이라 영혼들이라
그 노래를 내가 곡을 붙여서 만들어서 교사들에게 보급을 했습니다. 모여서 기도회를 할 때 그 찬송부터 불렀습니다.
아무리 박식하고 능란하며 또 심오한 설교와
청중을 감동시키는 웅변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결코 인간의 심령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결핍을 대신할 수는 없노라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한 영혼이 주일날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마음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뛰어나와서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식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배운 교회학교 사역의 정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까 하나님이 이 예배가 우리의 섬김에 있어서 딱 중심에 있습니다. 제가 보통 고등학생을 상대로 매 주일마다 90분을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90분씩 설교만 90분입니다. 애들한테는 사실 비교육적인 방법이지만 그건 모두 사람의 이론이지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상관없습니다. 90분 동안 이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석고상을 깎아서 90개 갖다 놓은 것 같습니다. 그대로 정자세로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심지어 안경 쓴 사람은 움직이면 잘 보인 것 알죠? 움직이다가 초점이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붙들고 90분 동안 예배를 드렸어요. 메모? 그런 것 없습니다. 듣고 자기 친구한테 가서 그대로 Repeat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뭐가 들어 오냐면 전도에 대한 열망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교회에 들어와서 쓰러지고 미끄러지는 영혼들을 보니까 그러면 저 바깥에서 아예 쓰러질 수도 없을 정도로, 미끄러질 수도 없을 정도로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은 얼마나 불쌍한 영혼들인가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방법은 별로 문제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해야겠다라고 하는 열정과 의지가 강하면 거기서 수많은 창의적인 방법이 나옵니다. 선생님들보고 아무리 전도를 하라고 해도 선생님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해옵니까? 그 시절에는 특히 아이들하고 부녀자들의 인신 매매범들이 봉고차로 납치해 가는 것이 굉장히 유행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얘야 이리 와봐’ 하면 ‘아저씨가 날 따라 오세요’ 할 정도로 그렇게 세상에 경계심이 심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안 되죠. 그래서 방법이 뭐냐면 아이들이 가서 전도해 와야 했습니다.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많이 울고 심방도 열심히 하는데 새로운 영혼들을 전도해야 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이들보고 데리고 오라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쉽지를 않았어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선생님들이 모여서 영혼을 향한 사랑이 있으니까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만든 누구한테도 물려받지 않고 우리들이 만들어 낸 전도법이 학교 앞 전도였습니다. 그래서 가기 한 2주 전부터 아이들한테 다섯 명씩 명단을 내게 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토요일 날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앞에서 선생님들이 봉고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랬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한테 단정하게 나오라고 하면 부츠에 가죽점퍼 입고 그렇게 나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보고 복음을 전해서 영접기도를 시켜라 그것은 기대를 안 한다. 학교 앞에까지만 끌고 와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한 명씩 두 명씩 모입니다. 딱 점심때였습니다. 밥을 먹고 이야기 하자 해서 중국집에 들어가서 자장면을 시켜놓고 방으로 들어가 이야기합니다. 주인한테 천천히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를 해 놓고 너는 누구냐 하면서 천천히 이것저것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집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 중에서 일부가 주일날 교회에 옵니다. 그러면 왔을 때 그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씩 복음을 전합니다. 참 많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전혀 없는 아이들이 신앙이 없는 아이에 의해서 전도되어 왔는데 몇 달 지나고 난 후에 자기를 전도한 애를 심방해서 데리고 올 정도가 된 것입니다. 전세가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니까 이 교회학교가 활기가 넘치는 것입니다. 뭐냐면 나아가서 한 영혼을 위해서 전도해 본 사람은 그 아이가 ‘선생님 이제 저 교회 그만 다닐래요,’ 혹은 ‘다른 교회 다닐래요’ 할 때에 그 영혼을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줄을 알았기 때문에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생님들이 토요일이면 돌아가면서 오늘은 이 학교 내일은 저 학교 매주 돌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들이 그 일을 위해서 학급에서 열심히 기도를 해 주니까 그 영혼들이 새롭게 그 학급에 하나씩 둘씩 들어오면 그 학급 자체가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는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교회학교의 전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은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선생님들에게 감화를 받아서 그래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의 정신을 물려받게 되어야지만 전도의 열정이 일어나지 전도사가 혼자 세우는 전도 계획 가지고는 안 된다. 쉽게 하기 위해 대게 큰 행사를 계획해서 행사 안에서 그물을 쳐서 사람들을 거두려고 그러는데 사실 해 보면 실익이 별로 없는 행사일 경우가 돈만 많이 들어가고 에너지만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없습니다. 그러니까 행사가 아니라 ‘야, 내가 오늘 너희 학교 갈텐데 너희 학교 다니는 애들 3명이잖아? 학교 앞에서 만나자, 그리고 우리 전도하자’ 그것을 몇 주 전에 이야기 해놓고 그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한 명 두 명 건져지지 교회에서 큰 돈 들여 가지고 그렇게 해서 되어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친구 초청 별난 것을 다 해봤는데 실익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이 그 일을 통해서 영혼을 하나님이 자신들의 손에 붙여주시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교사들은 교회에서 만들어준 프로그램에 상관없이 토요일마다 돌아가면서 가는 것입니다. 저도 가고 다 가는 것입니다. 말하기도 좋죠? 우리 전도사님인데 대학교 교수님이야 자랑도 하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그 교회는 그렇게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대부분이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공부를 잘 하든지 집안에 돈이 많든지 해서 올라온 아이들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선생님이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니까 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져서 전도하는 교사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에게 부족한 정신이 이런 정신입니다. 우리들이 2005년도에 여기에 올 때 주일학교 학생들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쨌든 반성을 하면서 무슨 생각이 드냐면 만약에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가 커다란 계획을 세워서 전도의 프로그램을 기대하지 말고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사 자신이 전도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영혼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놀랍습니다. 전도를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말고 심방을 다니면서 옛날에 우리교회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 친구인데 옛날에 교회 다니다가 지금은 안 다니는 사람, 이 사람이 1순위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 먼저 주님이 보내셨으니까 그 애들에게 접촉점이 훨씬 많습니다.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주 추상적인 이야기 같지만 200명의 교사들이 그러한 생활이 습성화 되어있다고 하면 한 주일에도 7-8명씩 안 나오던 아이들이 교회에 나온다는 간증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영혼들의 소중함과 그 다음에 그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혼들을 찾아가는 그 정신이 흘러 들어와야 됩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이 갈 때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아이들이 맨 처음에는 장난처럼 따라 나섭니다. 선생님이 너무 진지합니다. 길거리에서 ‘야, 우리가 이 아이를 전도하러 가는데 우리가 이 아이를 꼭 만날 수 있도록 꼭 기도하자’ ‘여기서 기도해요?’ ‘그럼’ ‘사람들 다 보는데요?’ ‘야, 주님이 보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사람들이 보건 말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야?’ 말은 맞거든요. 거기에서 손잡고 가로등 아래에서, 혹은 벤치에서, 혹은 남의 집 문 앞에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아이들이 그런데서 ‘아, 이게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일부분이구나’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실제적인 삶에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지금도 옛날을 회상하면 영혼에 대한 그런 탁월한 사랑을 가지고 토요일마다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전도하던 지체들이 생각이 나고 학교 앞에서 토요일마다 기다리면서 영혼들을 한 명이라도 만나면 그렇게 기뻐하던 교사들이 생각이 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전도자로서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선생님들이 깊이 은혜를 받고 변화 되니까 공과 공부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이면 대부분 너무 세속적인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배우고 그 맛을 알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고, 아이들이 회심하고 나니까 말씀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이 영혼의 욕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뭐냐면 영혼의 변화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고 변화 받은 그 영혼이 말씀을 먹고 변화 되고 그 때 욕구가 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사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예전에 공과 책이 있을 때 버스타고 오면서 죽 읽어보는 것입니다. 고등부라고 해봐야 사실 뭐 여태까지 한 번씩 들어봤던 내용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와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가서 설 풀면 되겠지, 그런데 은혜를 받고 나니까 꼼꼼하게 준비를 해 옵니다. 그리고 와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성경을 펴놓고 가르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이 여러분 같은 평신도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도 눈물을 안 흘리던 아이들이 여러분 같은 평신도가 성경을 펼쳐놓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것이다 가르쳐줄 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를 개척하고 정신으로 삼고 싶은 교회학교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학교입니다. 사실은 그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깨어진 가정이 많습니다. 그것이 심리학적으로 해결의 길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 만나면 원수처럼 미워하던 자기 아버지 용서합니다. 그리고 새 엄마를 정말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심리치료나 아니면 뭐 그 아이에게 인생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그렇게 변화 시킬 수 있습니까? 본성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까? 진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면 우리는 그 아이가 무슨 형편에 처해 있는 지 다 모르고 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켜 줘야 할지 모르는데, 놀랍게도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성령님께서 그 속에 오셔서 이것을 적용시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 속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로부터 그렇게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깊이 감동을 받고 깨달음이 오고 눈물을 흘리게 되니까 공과공부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제일 좋아하는 것이 선생님 결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과공부 안하고 집에 가게 되니까. 그러다가 애들이 변화 받고 나니까 공과공부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파서 못 나오고 혹은 끝까지 변화 되지 않고 속 썩이던 교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요동도 하지 않고 동그랗게 모여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프시면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기들끼리 공과 책 펴놓고 공부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모여서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눈물로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놀라운 것은 선생님이 그렇게 수준이 떨어지는데도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니까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중심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후일 내가 교회를 일구게 될 때의 그림들, 교회학교의 그림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그림들이 떠오릅니다. 목숨 걸고 심방하던 형제자매들, 그 수많은 간증들, 자기 물질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내 놓던 지체들, 궂은 일, 고통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밤늦게 까지 묵묵히 나를 따라서 섬기던 많은 형제들이 떠오릅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잊을 수 없는 내 마음의 동지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 거기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반드시 인정을 받는 교회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영혼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부지런히 전도하고, 그리고 영혼을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는 그런 교사들이 될 때, 얼어붙은 영혼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교회학교 부서 위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칭찬받는 사역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