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4. 외부강의
동서울노회 여전도회 월례회
2009.05.04. 외부강의
녹취자: 박은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목적을 가리켜서 우리는 사명이라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가치 없는 죄인이 구원을 얻은 것도 은혜이고,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 은혜를 못 받았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힘을 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은혜는 첫 번째 은혜의 토대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은혜를 함께 누리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를 의지해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맨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전에는 우리도 주님을 모르고 내 인생을 나 스스로를 주인 삼으며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 하나님 앞에 회심하던 때에 모습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깊이 깨닫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나를 구원하실 분이 없으시다라는 사실도 절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이런 저런 근심도 많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된 이유를 보면 사람들이 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섬겨야지 그리고 예수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 난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계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제사지내기 싫어서 예수 믿은 사람도 있고,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제가 아는 목사님 한분은 무당이 예수를 믿으라고 그래서, 그래서 온 가족이 예수를 믿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인생의 많은 변고 끝에 예수를 믿게 되지만, 동기는 각각 달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보면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자신의 인생의 많은 문제는 사실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 받아야할 큰 형벌과 그 형벌로부터 나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항상 그런 고백이 처음 회개의 순간에 있었습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는 항상 숨질 때까지 이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이 내대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는 이 고백이 있을 때에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 가장 많이 마음으로 감사하던 때는 돈 많이 벌거나 자식들이 성공했을 때가 아니라, 이 십자가의 은혜가 내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겨질 때에 그때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해 산 것이 아니요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한창 전도를 많이 하던 때에 궁금해서 통계를 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 와서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이 도대체 누가 데려온 사람인가 그리고 일년치를 통계를 냈더니 전도대원 66퍼센트의 사람이 교회 온지 6개월 미만된 사람들이 전도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도도 보면 그 교회 오래 다녀서 집 팔고 땅 팔아서 헌금한 사람들이 전도하는 게 아니라, 은혜를 방금 받고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지, 자기의 영혼을 인해서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 흘리게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큰 고난이 나를 구원했다.’ 라는 이 은혜에 대한 믿음, 이것이 바로 자신의 영혼에 대해 눈물 흘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마음이 그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는 구원받은 이것보다도 더 큰일이 내 인생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이 구원 얻은 것 같은 것들은 그냥 십 원 만도 못한 구 원 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그래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기본 일 뿐이다.’ 라고 해서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한 어떠한 감사하는 마음도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나면 소명이 생기는데, 그 소명이 뭐냐 하면 ‘내가 만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면 처음 주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했을 때, 그때 아마 내 가족의 영혼을 위해서, 구원받지 못한 남편의 영혼을 위해서, 이웃의 영혼을 위해서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그 영혼이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지지, 교회위해서 땅 팔고 집 판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교회가 복음을 열심히 전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성도들 속에서 이 십자가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아마 오늘 여러분들 가정의 달을 맞아서 여기 온 자매님들 가운데 아직도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자녀들 중에도 회심하지 않은 자녀들이 있겠지요?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힘입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살과 피가 섞인 내 가족을 위해서 내가 가슴 아파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의 가족을 위해서 울어주겠습니까? 나는 실제로 전도사 때부터 교회사역을 해오면서 가족들의 영혼은 거의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서 교회 일만 열심히 하는 여성들 많이 만났습니다. 대부분 그 동기가 주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 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항상 가슴에 예수님이 나를 그 수많은 멸망 받을 사람들 가운데 선택하시고 구원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목숨이 붙어있는 날 동안에 영혼을 위해서 살게 하심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열심히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에 옥 속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도바울은 무엇 때문에 이 옥 속에 갇혀서 옥 밖에 있는 지체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까?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전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구원의 사실을 전파하고 전파하다가 체포되었고 그리고 감옥에 구금된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자기가 복음을 인하여 매인바 되었다고 했을 때에, 밖에 있는 자유로운 많은 지체들에게 하나님이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게 하심이라 이렇게 말했을 때에 그 고난은 일차적으로 무슨 고난이었겠습니까? 자기와 꼭 같은 고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이 예수의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함에 있어서 함께 참여했던 이 빌립보 교인들이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이 일에 신명을 바치기 위해 고난을 받도록 부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123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서울에는 거리거리마다 전도 부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도사가 아니라 은혜 받은 평범한 평신도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시장 어귀 같은 데서 벽돌 몇 장 올려놓고 그리고 한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간증하다가 가슴 아픈 대목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한손에 성경을 들고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 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증거했습니다. 간증이 끝나고 나면 “여러분 예수를 믿으셔야 됩니다.” 그러면 그 놀랍게 그렇게 얘기를 듣다가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손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즘으로 말하면 이 무슨 카드에다가 그 사람 주소하고 이름을 적는 것입니다. 그러면 찾아가서 또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이끄는 그러한 일들을 부인들이 많이 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와 꼭 같은 방법이 오늘 날에도 유일한 전도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 우리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이 일들을 위해 현저히 헌신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참 놀라운게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여름이면 한 6백명 8백명씩 이제 교회가 없는 지역에 전도를 나갑니다. 시골에. 그러면 교회 안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키고 얼마나 잘 되어 있는 줄 모릅니다. 나중에 여러분 서점이나 쭉 교회당을 돌아다보시면 공간도 있습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교재도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 때에는 은혜를 못 받던 사람들이 가서 그 강팍한 할머니 할아버지 들에게 복음 전하다가 부지깽이로 맞기도 하고, 빗자루를 집어던지기도 하고 이렇게 핍박을 받으면서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마치 배에 기름이 많이 껴서 비둔해진 운동선수 같지 않습니까? 고난이 없기 때문입니다.
2009.05.04. 외부강의
(예화)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을 피해서 육지 쪽으로 가고 가는데 거기에 암초들이 많이 있었는데 물에 잠겨 있어서 보이질 않았습니다. 배는 파선이 되었고 결국은 그 두 사람은 물에 빠졌습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어두운 밤중이었습니다. 간신히 나무 쪼가리를 붙들고 밤새도록 사투를 하다가 눈을 떠보니까 기적적으로 죽지를 않고 바닷가로 떠 밀려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었는데 두 사람만 살아남아서 그래서 바닷가에서 두 손을 붙들고 신께 감사했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합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산 것은 신의 큰 축복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 그러지 말고 여기에서 밤이면 많은 배들이 여기를 지나가다가 또 파선을 당할 턴데, 우리 여기에서 있고 그리고 여기에다가 우리 횃불을 올리고 등대처럼 역할을 하고 배가 파선하면 우리 가서 구해오자 이렇게 하고 남은 인생을 선한 일에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닌 게 아니라 폭풍이 있는 밤이면 배들이 항상 그길로 가다가 파선을 하고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서 작은 배를 노저어가서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물에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건져서 끌어냈더니, 이 사람들도 감격하면서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출 받을 수 있겠느냐고 우리도 이미 죽은 목숨이니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여기고, 여기에서 구조대의 역할을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이니까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해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사람이 말했습니다. “야, 우리 구조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우리 이렇게 맨 바닥에서 텐트를 치고 자서는 피곤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 우리 집을 짓고 그리고 더 편안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하자.” 그래서 이제 벽돌을 지어서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지으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집만 짓지 말고 옆에다가 연회장도 하나 만들어서 가끔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우리 구조하기로 하자.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야, 이거는 촛불을 가지고 너무 그러니까 좀 화려한 등을 달고 침실은 좀 더 예쁘게 장식하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자. 앞에는 꽃밭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폭풍이 부는 날, 이제 지나가는 배가 또 파선 당한 것을 보고 구조하던 날인데, 구조가 끝난 다음에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할 때에 어떤 사람이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두 밤을 새울 게 아니라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밤을 새우면 어떻겠느냐?” 사람들이 기쁘게 받아들였고 점점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날 사람들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비록 밖에서는 큰 폭풍이 일고 비록 밖에서는 배들이 암초에 부딪쳤지만,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고 폭풍이 일어나는 이 날에 저 사람들을 구원하러 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밖에서는 뒤웅 치는 파도와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수많은 물에 빠진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게 오늘날 주님을 위해서 전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2009.05.04. 외부강의
두 번째로는 이 은혜는 우리를 거저 구해주신 은혜일 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내적인 은혜도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기를 “아무개 집사는 요새 은혜를 많이 받았나봐.” “왜?”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고 교회도 열심히 섬기고 있잖아?” 이럴 때에 너 은혜를 많이 받았구나. 요즘 은혜가 떨어졌구나. 그럴 때에 그 은혜도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야!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은혜가 떨어지면 세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를 잘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기억해보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저 주셔서 누리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오늘도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으면 은혜를 주시고 기도하면 은혜를 주십니다. 찬송을 부르고 함께 교제하면 올 때에는 퍽퍽한 마음이었는데 돌아갈 때는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항상 살리라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 은혜를 이미 받은 은혜를 사용해서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고난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또 다른 은혜를 계속 부어주십니다. 졸긴 뭘 졸아? 여전도 회원들이! 응? 그렇게 의지가 없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여러분들이 대통령 만나는 그 앞에서 끄떡거리고 졸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우습게보니까 그러는 거지. 우리 교인들 같았으면 벌써 혼났습니다. 벌컥 뒤집어졌습니다. 한사람도 못 좁니다. 졸면 내가 이렇게 딱 가리키면서 일어나라고 그럽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호수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갈릴리고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는 위로부터 물을 받아서 아래로 흘러 보냅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는 호수는 아주 맑고 물고기도 많이 삽니다. 밑에 있는 사해는 놀랍게 물을 받기만 하고 흘려보내질 않습니다. 강렬한 햇빛 속에서 흘러들어오는 물과 증발하는 물이 거의 일치를 이루어서 계속 짠물이 되어 갑니다. 아무 고기도 살수 없는 호수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많은 은혜를 주셔도 주님을 위해서 섬기려고 고난을 받지 않으면 은혜는 부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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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전주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예수 믿는 사람이 운영하는 병원 원장실에서 어떤 사람이 원장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자기의 눈을 그 병원에 팔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법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우리의 장기를 그렇게 팔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밀매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달라는 사람과 그 다음에 살 수 없다는 병원 측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하면 문제의 이 사람은 시골교회의 집사님이었습니다. 교인이 열 서너 명 모이니까 목회자를 모실수가 없고, 또 어떤 때에 목회자가 왔다가도 그저 좀 더 큰 교회가 나오면 가버리고, 목회자가 오셔도 교회에는 교인들이 헌금을 내서 생활비를 드릴수가 없으니까 결국 목회자 없이 그 교회를 집사님이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개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까 장로도 없고, 자기 혼자가 교회의 어른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다른 목사님이라도 오셔서 설교를 해주는 주일이면 수지를 맞은 날이고 대부분 자기가 기도회도 인도하고 설교를 하면서 열 서너 명의 교인들이 천막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답니다.
하루는 이 집사님이 곰곰이 생각하니까 자기는 이렇게 그래도 제대로 지어진 벽돌집에서 살면서, 주님의 교회는 천막으로 있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교인들에게 교회를 짓자 그럴 때 교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집사님 무슨 돈으로 우리가 교회를 짓습니까?” 그래서 교인들을 설득을 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우리가 적은 돈으로도 교회를 지을 수 있다. 이 말에 감동 받은 교인들과 그리고 교인들 중 청년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냇가에 가서 모래를 퍼다가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헌금한 돈으로 시멘트를 사서 밤중에 블록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두어달 지난 후에 훌륭한 성전은 아니지만, 블록을 쌓고 그리고 위에 루핑을 치고 그리고 아래로는 나무를 사다가 못을 박아서 마치 우동집에 의자처럼 만들고 앞에는 궤짝들을 올려놓아서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 사람들, 천막 어두운 구석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궁궐 같은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느 날 폭풍이 불고 강한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쳤는데, 이튿날 아침 나가보니까 얼마나 교회를 아우러지게 지었는지 지붕이 날라서 저 밭에 뽀개져서 뒤집혀져있고, 그리고는 물이 들어와서 예배당에 한쪽벽도 무너지고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애쓴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하는 수없이 무너진 벽돌을 쌓아놓고 다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는데, 몇 달이 자나면서 이 집사님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교회를 다시 지을 수 있을까? 교인들에게는 면목이 없어서 다시 하자는 이야기도 못 하겠는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까 눈을 삽니다. 라고 광고가 나왔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일주일을 고민을 하더니 어느 날 밤에 누워서 자는데 부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왜요?” “나 사랑해?” “그럼, 여보.” “만약에 내가 장애인이 되어도 나를 끝까지 데리고 살 거야?” “그럼, 여보. 그걸 말이라고 해?” “여보, 내 눈 하나 없어도 당신 나 끝까지 사랑하고 돌봐줄 수 있어?” “그럼,. 여보.” 그랬더니 아내 손을 꼭 잡고 “여보, 내 눈을 팔게 해줘.” “왜?” “건축헌금을 하게.”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집을 팔고 땅을 팔아서 건축헌금 냈다는 사람도 봤고, 간혹 어떤 사람은 나중에 갚기로 하고 빚을 내서 헌금을 했다는 사람은 봤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눈알을 빼서 건축헌금 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안 된다.” 남편이 일주일 동안을 베갯잇을 적시며 울었답니다. 하다못해 이 부인은 허락을 했고 남편은 이 신문을 들고 뛸 듯이 기뻐하며 전주에 있는 어느 한 복음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것이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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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병원에서 하는 이야기는 “이것은 죽은 사람의 눈을 산다는 것이지, 죽는 사람이나 죽을 사람의 눈을 산다는 것이지, 살아있는 사람 눈을 뺀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라고 그랬더니 “나는 괜찮으니까 이 눈을 사라. 나는 더 많은 돈도 필요 없고 50만원이면 된다.” 그때 50만원이면 충분히 그럴 교회를 지을 수 있었을 때였습니다. 도저히 직원들이 말이 안 통하니까 원장에게 데리고 갔는데 그분이 한 교회의 장로님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 원장님이 안경을 벗으면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한교회의 장로로 일생 살아 왔는데, 그래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해 본적도 없고, 그런 마음을 먹어본 적도 없는데 당신은 집사로서 어떻게 그렇게 주님의 교회를 위해 희생할 마음을 갖습니까?” 그리고는 병원에 광고를 해서 점심시간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강당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집사님의 눈물 나는 사연을 알려주고 즉석에서 헌금을 했는데 200만원이 걷혔답니다. 그래서 이 양반이 눈도 안 팔고 그리고 그 200만원을 가지고 와서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참 저 어렸을 때 그 간증을 들으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찬양)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이거 실화인데 마지막으로 우리교회에 젊은 집사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암으로 젊은 40대 후반에 나이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그 병실에 심방을 갔을 때에는, 산소 호흡기를 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와의 이별에 인간적으로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해 전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는 한 8년 전에 이 교회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경험한 다음에 그가 하던 사업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오직 회심하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염려와 방황하는 구역식구들에 대한 생각을 늘 잊지를 않았습니다. 간암으로 판명을 받은 후에도 주일 오후에는 물론, 바쁜 평일까지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병원을 다니면서 온 마음을 쏟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섬김에는 언제나 확신과 평안이 가득했고 병색이 완연 했을 때에도 열정적으로 환자들에게 그 몸을 이끌고 복음을 전했고, 자신도 그들과 꼭 같이 말기 암의 환자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친근하게 간직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배에 복수가 차서 배가 커다란 남산만한 배가 되었는데도 구역예배를 죽을 때 까지 인도 했습니다. 뒤에다 이불을 두 개씩 받혀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러면서 자기의 구역 식구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자기는 곧 부름을 받지만 그들은 남아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도록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구역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그의 기도소리는 차라리 신음소리였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퇴근 후에는 구역에 회심하지 못한 가정의 남편을 찾아서 심방을 했고, 교회 뿌리내리지 못했던 연약한 지체들의 냉담한 마음을 눈물로 녹였습니다. 자기의 시신까지 대학병원에 기증하고 떠났습니다.
죽기 이틀전에 목사인 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직도 그 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께 드립니다. 제 육신과 영혼이 가장 힘든 상태에서 음부 속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상황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주님 안에서 목사님을 사랑했습니다. 깊은 웅덩이와 죄악의 수렁에서 헤매던 많은 영혼들에게 생명 전해주시는 우리 목사님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이 인생의 막바지에서 흉한 몰골로 앞으로 많은 영혼들을 살리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저는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순종하며 섬기고 싶었는데 이제 저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죄인이 다 못한 섬김까지 하나님께서 목사님 통하여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먼저 천국에 가서 후일에 많은 상급을 받으실 우리 목사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쓰실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기도 하겠습니다. 목회할 때 힘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목사님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목사님 사랑합니다. 정명진 집사올림.’ 이 편지를 남기고 이틀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흘러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무위도식해서는 아니 되고 생명 있는 날 동안에 무엇이든지 영혼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