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통해 배운 말씀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0-71)
녹취자: 손지애
사람은 동일한 사물을 볼지라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물이 사뭇 다르게 사람의 마음에 다가옵니다. 인간은 모든 다른 동물과는 달리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어떤 사물에 대한 인상은 사물 그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과도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을 열어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고 우리의 마음에 깨달아집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오래전에 담겨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들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내어서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펴지 않았어도 때때로 어떤 특정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예전에 기억 속에 남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고, 그것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시고 가르치십니다. 예배 시간에 드리는 설교는 더더욱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사람,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에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이 외에도 많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도록 들려주시거나 기억나게 하시거나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합당하게 늘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지성은 아주 밝고 활기찹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으려는 그러한 열정에 넘치게 되고 우리의 감정은 항상 하나님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주님의 만져주심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진리를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보여주려 하면 우리의 영혼은 아주 놀랍게 반응하며 기뻐하게 됩니다. 의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전에 알지 못했던 진리를 깨달을 때에 우리의 의지는 선한 의지로서 크기가 커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적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을 주십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악인과 하나님의 자녀 경건한 시인과 대조되는 악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악인에 대해서 성경은 묘사하기를, ‘저희의 마음은 살져 지방 같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저희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사람이 지방이 많으면 몸 움직임이나 모든 것들이 둔해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기름이 끼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을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마음이 부요하다’ 라는, 성경의 표현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요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심정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만하고 교만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어도 그것에 의해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항상 악인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언제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들이 경계하고 또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입니다.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또 앞에서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한 후에는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지만, 우리가 그 말씀에 착념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종종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때려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큰 어려움이 오거나 혹은 커다란 시련이 온다고 해서 저절로 움직여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땅에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열렬하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 은혜를 구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침체에 빠져서 미끄러진 사람 중에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모든 것이 넉넉해서 방심함으로 미끄러진 사람도 있지마는, 고난을 많이 당하고 괴로우면서도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때려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가장 잘 움직이고 흔들릴 때는 언제냐 하면, 우리가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들의 질서를 하나님이 움직여 놓으실 때, 그 때는 우리의 마음이 가장 잘 출렁거리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의 사랑하는 것들을 거두어 가시거나 혹은 크게 흔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아닌 것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이 세상 사람의 끈끈이에서 떼어 놓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바로 그런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이 고난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어쨌든 악인들에게 에워싸여 박해를 받으면서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안정된 생활 자기가 집착하던 평안한 환경 이런 것들이 흔들리고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흔들리는 사물의 질서 속에서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들이 한 번 생각을 해 봅시다. 만약에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인 여러분들을 고난에 처하게 하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때로는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흔들어 놓아서, 혹은 여러분들이 깊이, ‘나의 시대는 영원할 것이다 나의 평안함은 언제까지나 계속 지속될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환경들을 뒤흔들어 놓아서 크게 고통 받게 하실 그 때에, 만약에 그렇게 고통을 받게 할 때에 그 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식으로 마음이 변하게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모든 사름들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고난을 당할 때 밖에 나아가 목매어 떨어져 배가 터져 창자가 쏟아지며 죽어버리는 자살을 택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고난에 대한 신앙적인 해석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생에 대한 견해와 생각은 다를지라도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 아무에게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길보다는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의 길이 훨씬 더 훌륭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거역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항상 평탄한 길만 걸어가게 하시지를 않으십니다. 그래서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그 시련과 고난이 박해나 핍박, 오해나 근거 없는 비난처럼 자기와는 상관이 없이 화살이 날아오듯이 자기에게 꽂히는 그런 종류의 고난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는데 비난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전혀 근거가 없는데 단지 사람들의 오해나 악의로 말미암아서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악한 것에는 쉽게 믿음을 주고 선한 일에는 의심하기 때문에 때로는 비난의 표적이 되고 오해에 휘말려서 고통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자녀는 대부분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핍박을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때에는 예전에 우리들이 행한 잘못,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에게 열매가 되어 돌아와 당하게 되는 고통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환경을 흔들어 놓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바꾸어 놓습니다. 이때에 한 부류의 사람들은 불신앙으로 반응을 합니다. 이때에 시련과 고난 속에서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반감과 그리고 원망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성찬, 더 넓게 보면, 예배, 신실한 지체들과의 교제, 이런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통로 모두가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 주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가장 중요한 방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고난을 당할 때에 불신앙의 반응입니다.
우리의 인생사라고 하는 것은 불완전한 세상에 불완전한 인간이 살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든지 고난이 있고 시련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본질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떤 경우에든지 항상 시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더듬어 내려가면 그 마음속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의 국면들을 각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만약에 우리에게 그런 고통스러운 부분들과 그리고 시련의 흔적들이 우리에게 없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 여기 있어서 그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련과 고통을 우리들이 깊이 당하게 될 때 그 것이 인생이 본래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에겐 언제나 그런 시련과 고통이 있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종말에 이 모든 세계가 완성이 되고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까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고 바라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마는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이 세상의 악에 의해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인생의 본질적인 모습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들이
(찬양)
쓰라린 눈물을 흘릴 때와
비참한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시시때때로 날 도우시네
시시때때로 날 사랑하사
시시때때로 새 생명주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시시때때로 주만 봅니다.
스물한 살에 회심을 해서 이제까지 오면서 아마 가장 많이 부른 찬송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고통과 시련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인생의 갈 길이 무엇인지 몰라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는 내 인생의 갈 길만 분명해지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갈 길이 정해지고 나며는 물질적으로 곤고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고통을 받고 괴로우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고 나며는 인생은 살 만할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고 나면 그 다음엔 하나님이 인간관계로 연단을 시키십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도 착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착한 사람들이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엔 소명이 우리를 부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나쁘고 나를 괴롭혀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데 내 안에서 소명을 따라 살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 자체가 내 인생에 무거운 무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립니다. 이제 나도 어느 정도 성화되고 길들여져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치면 이번에는 나이가 들면서 온 몸이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조금 유명해지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일에 있어서도 유능해지고 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비방을 하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마음에 화살을 날립니다. 이 세상 끝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끈끈이에 매달려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기까지 그렇게 이 세상에 코 박고 살도록 하나님이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어제 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얼마나 불완전한 세상일까.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열렬하게 살면서도 우리의 꿈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두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묵상에서 큰 위로를 발견하고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살았습니다.
(찬양)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그렇게,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해 좋은 뜻을 품고 선한 결심을 갖고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님 앞에 바치겠다고 하는 결단을 한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온전히 강한 사람이 되어 인내하지 아니한다면 그 결심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화) 언젠가 한 번 언론에 수십 년 동안 조선 시대에 있었던 그 칼을 만드는 일에 헌신해 왔던 어떤 장인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야기가, 큰 칼을 집안에 두면 그것은 그 검이 집안의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답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그런 칼을 주문해서 하나씩 만들어 집안에 장식품으로 둔답니다. 그 칼 한 자루가 2천만 원쯤 한다고 합니다. 전 그게 그렇게 비싼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그게 그렇게 비싸냐 했더니, 쇠를 두들겨서 두들긴 쇠를 다시 불에 달궈서 다시 접고 또 불에 달궈서 접고 불에 달궈서 접고 이렇게 하게 되면 쇠가 아주 강해져서 그 검으로 바위를 내려치면 바위는 부서져서 칼날은 손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검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된 그런 칼이 되기 위해서는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면서 2천 번을 접어야 된답니다. 그러면서 그게 정말 제대로 된 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당신의 쓰심에 합당하도록 만드실 때까지 많은 고난의 불과 연단의 망치로 그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고귀하게 쓰임을 받는 많은 사람들,
(찬양)
고난과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이런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연단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존귀하게 쓰시는 사람들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인생의 골짜기를 걸어오면서 견딜 수 없는 연단과 시련을 당하게 하셔서 오늘날,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때리시고 치시면서 우리에게 연단을 주실 때에도 있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떼어 놓으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닌 것을 사랑한 결과가 얼마다 쓰디 쓴 지를 우리에게 교육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우리가 그것을 통해 깊이 교훈을 받고 변전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변함없이 사랑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하나님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마음을 갖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가려면 당연히 당해야 되고 또 하나님 말씀 따라서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여러분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 사는 모든 날 동안 크고 작은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데 그 모든 고난을 우리의 영적인 성숙과 하나님 앞에 더 굳건한 사람이 되는 일에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사람이 혼절하거나 쓰러졌을 때 먹으면 기적같이 깨어나는 약이 있습니다. 아마 양약에는 그런 약이 없을 것입니다. 그게 중국 한의학에서 안궁환이라고 부르는 약입니다. 그런데 그 약은 사람이 혼절하거나 쓰러졌을 때 눈곱만큼 떼어서 입어 넣어 주면 사람이 깨어납니다. 그런데 그 약의 놀라운 비밀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주토라고 있는 성분에 있습니다. 그것은 광물질로 알고 있는데, 그 주토는 무시무시한 독약입니다. 그래서 그 약은 상습적으로 복용하면 사람이 심각한 불구가 됩니다. 3일 이상 복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주토는 아주 무서운 극약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먹으면 죽습니다. 독과 약은 아주 놀랍게 그 끝에서 만납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고난과 시련이 우리에게 독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거의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을 살리는 주토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오늘 아침에 가르쳐 드리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장시간동안에 논증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시련과 고난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본질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그런 일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일생 동안 계속 될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의 문제라든지, 질병이라든지, 원하지 않는 사고를 당한다든지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비참하게 될 때 나의 삶의 평안까지 흔들리게 됩니다. 결혼을 하면 이제는 그 문제가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문제요 이렇게 해서 사라들끼리 결합을 하면서 인간의 모든 불행한 요소들이 더 많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련과 고통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행히도 편안한 환경이 되었고, 무엇에도 마음 아프지 않은 아주 좋고 바람직한 상황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 때에는 틀림없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부패함이 여러분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주어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미끄러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시련과 고난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련과 어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평안이 찾아오고 그 때에는 내가 주님을 잘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된 속삭임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런 인생의 날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그 고난 받을 인생에서 매일 매일 만나는 고난의 때에, 어떻게 그 고난을 인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영혼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터득한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주의 율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시편에 나오는 율례와 규례를 구분합니다. 즉 규례는 하나님의 제사에 관한 규칙들이고, 율례는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의 규칙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시인은 고난당한 것이 제게는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 뜻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고난이 이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고난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된 이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할 것입니다. 혹은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너무나 고난을 당하고 영적으로 힘들어지면 하던 교회 봉사는 하루 이틀 빠져도 됩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섬김의 현장에 심경이 너무 괴로워서 못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좀 더 양보해서 이야기하자면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는데 심경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스스로에게 져서 새벽기도를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조차도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인생사는 게 너무 괴롭고 시련이 겹쳐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움을 당한다 그래도 밥은 먹지 않습니까, 물론 한 끼나 두 끼 정도 마음이 상해서 안 먹을 수는 있는데 세 끼 까지는 못 참을 것입니다. 결국은 먹지 않습니까. 심경이 괴롭고 너무 힘들어도 잠을 설칠 수는 있지만 어두워지면 베개를 베고 침상에 눕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 제가 그럴 정도의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너무 힘들어서 성경이고 뭐고 싫어요.’ 이건 뭐냐면 하나님을 막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그렇게 막 보려면 회복도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 소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무슨 뜻이냐 하면, ‘나는 배교적으로 살다가 죽을 테니 내버려 두십시오.’ 그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에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마음을 드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어떠한 영광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누가 그래요. ‘그러면 어차피 내 마음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으면 예배에 안 나가도 되겠네요.’ 그것은 하나님을 막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맘에 안 들어서 뒤에서 구시렁대면서 친구들하고 욕한 적 있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런데 대놓고 선생님한테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욕하던 것을 선생님 얼굴에 대 놓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맞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주 노골적인 반항으로서의 모욕입니다. 그래서 간밤에는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을 당하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어도 아침에 일어나서는 성경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놀랍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우리의 상태를 정확히 보여 주시고, 예기치 않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때로는 용서를 빌고 때로는 낙심한 마음이 위로를 얻고 때로는 무지 속에서 고통 받던 우리의 마음이 진리의 밝은 빛을 발견하여 새 삶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유 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의 기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육체의 힘이 남아 있는 한 어떤 괴로운 일을 만나도 성경을 매일 아침 혹은 매일 저녁 언제든지 간에 어쨌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그 것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다루실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떨쳐버리고 당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고 고난을 주셨는데,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펴지 않는다면 더 커다란 고난을 당하고 견디기 힘든 괴로운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외에는 치료제가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종종 울화에 못 이겨서 보복하듯이 우리를 징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늘 아버지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인하여 아파하고 자신을 고치려고 하는 것을 깨닫는 즉시 하나님의 치시는 손은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사랑의 손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미끄러져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에도 성경을 펼쳐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 고난의 시기를 줄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말고 그 말씀을 의무적으로 읽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말씀 속에서 내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가능하면 신학적인 성경 읽기를 통해서 묵상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위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심령에 큰 위로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종종 자기 설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일 경우가 있는데, 성경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흘리는 눈물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는 눈물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놀라운 신비이고 경건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이 있으면 전혀 안 되지만, 너무 심경이 괴로워서 예배에 심지어 못 나가는 날에도 성경은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하나님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세요 교훈입니다. 우리가 그릇 행했는데 나는 몰랐는데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굽은 모습을 보게 해서 바르게 하십니다.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깨우쳐 의의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 모든 작용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는 상관이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무데도 안 계신 것 같아서 원망했는데, 말씀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하나님은 어디서나 계시고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고통 받을 때 주님은 어디 계셨냐고 물을 그 때에, 사실은 내가 고통 받는 그 때에 그 삶의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정말 놀랍게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캄캄한 자신의 인생길의 빛이요 어두운 자신의 인생길에 발 앞을 비추는 등불이라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일정 분량을 읽고 아침에 한 장이든 두 장이든 석장이든 읽고 그 다음에 읽을 때에 마음에 다가왔던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서 천천히 천천히 읽으면서, 그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찾아내서 노트에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놀랍게 하나님이 우리의 괴로움의 원인 이 외에 아무 것도 아닌 줄 알았던 그 시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이 그 큰 독약과 같은 고난을 통해서 죽은 것과 방불한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려내시는 하나님이 경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그래서 젊음의 시절에 많은 사연을 이 성경에 묻고, 기도하고, 그래서 이 젊음의 시절이 다 지나가고 나면 성경 곳곳에 눈물이 묻어, ‘그래 맞아 그랬지, 그 때는 살을 떼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때였어. 죽을 것 같은 그 때에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살아나게 했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바로 그 때에 바로 이 말씀이 나를 캄캄한 흑암에서 건져내는 빗줄기가 되었지.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을 때에 그래 맞아 바로 이 말씀이 나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주었지. 아멘. 아멘. 아멘.’ 그러면서 결혼한 후에도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고비 고비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집가고 애기 낳고 아이 키우고 그러다 결국은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죽은 다음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찬양)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내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기르지 못했어도,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꼬이고 많은 방황의 날들을 따라 살아왔어도, 우리의 자녀들에게만은 그렇게 자라게 하지 말자, 결심을 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말고 오늘, 오늘부터 성경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괴로워서 죽어버리고 싶은 날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는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의 설움과 원통함을 토해 놓으며 성경을 읽으십시오. 이제껏 여러분들의 인생에 경험하지 못했던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