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7)
I. 본문해설
당시 로마 시대에서 에베소는 가장 큰 도시들 중 하나였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는 마술과 주술이 유행하여 선교하기에는 완악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서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구속, 우주의 통치자가 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경륜에 대해 설파하여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는 긴 교리를 가르치고 나서 어떻게 이 교리를 실천적으로 적용하여 살아가야 할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투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여기서 ‘씨름’은 희랍어로 ‘팔레’입니다. 이것은 당시 로마 시대에 유행했던 격투기를 가리킵니다. 팔레 경기는 주먹과 주먹이 오가며 낭자하게 피가 흐르고, 한 사람이 죽기까지 경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신자가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신에 무장을 한 로마의 군인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II. 말씀의 검을 가지라
사도는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서 ‘말씀의 검을 가지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검을 말하기 전에 사도는 먼저 방어 장구인 구원의 투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투구는 전쟁터에서 꼭 필요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구입니다. 투구는 날아오는 화살 또는 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씁니다. 또한 머리뿐만 아니라 얼굴도 보호해주는 중요한 장구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해석될까요? 이것은 영적 전쟁을 하러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교리와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먼저 지성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또 머릿속에서 구원의 감격이 계속 함께 그 지식과 더불어 역사하고 있어야 이 전쟁에서 안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 교회에 영향을 끼쳤던 이단들의 8-90%이상은 모두 이러한 구원론을 가지고 성도들을 유혹하고 교회를 공격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머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리되어 구원에 관한 반듯한 사상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먼저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임을 알고, 이 구원의 도리를 마음 깊이 새기며 감격 속에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 “하나님의 말씀”
사도가 말씀의 검을 가지라고 명하면서 우리에게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표현은 말씀의 근원과 말씀하시는 주체, 그리고 마지막 이 말씀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진리는 말씀보다 크지만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말씀은 성경보다 크지만 성경 이외에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없으니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이 세상의 백성들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설교와 하나님의 교훈은 성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성경은 원천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와 많은 교훈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비로소 종속적인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아무리 많은 방어용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즉, 방어뿐만 아니라 악한 세력을 궤멸할 결정적인 무기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에워 쌓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유혹을 받으며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의 공격을 받는 처지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인간의 고민, 많은 생각들은 결코 그의 삶을 승리로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습니다.
로마보다 앞선 나라였던 그리스는 군인들이 매우 큰 방패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큰 방패와 창과 칼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이 방패를 가지고 이제 그리스 군인들은 방패와 방패를 맞닿게 하고 그렇게 커다란 방어벽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군인들은 전쟁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전쟁에서는 기동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큰 방패보다는 작은 방패를 택했고, 큰 칼보다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작은 검을 선택했습니다. 그 칼은 60cm를 넘기지 않는 아주 짧은 칼인데 로마 군인들이 전쟁할 때에는 방패와 방패를 맞대어서 커다란 방어벽을 형성했던 그리스 군인들과는 달리 작은 방패로 오히려 병사와의 간격을 1m씩 떼어서 오히려 공격에 유리한 대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방패로 칼과 많은 무기들을 막아내고 전광석화처럼 방패 사이에서 튀어나와 적군들을 찌르는 그 칼은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단의 고전적인 전략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로 하여금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의 씨앗’이 어떤 땅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의 비유에서 ‘길가’는 ‘굳은 마음’, 그리고 ‘부주의한 마음’을 뜻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아무런 결실을 못 맺고 사람들의 발에 밟히거나 새가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에서 ‘돌밭’은 ‘환란과 핍박에 쉽게 굴복하는 마음’입니다. 말씀이 떨어졌을 때 잠시 기뻐하기도 하나 곧 이어지는 환란과 핍박 앞에 굴복해 결실치 못하는 씨앗입니다. 세 번째는 가시나무 떨기에 떨어진 씨앗인데 이것은 뿌리가 내리고 잎과 줄기도 자라지만 염려와 물질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여 결국은 열매 맺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마음이 그것을 받아서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지 않는 한 떨어진 말씀들은 이렇게 길가에, 돌밭에,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 같아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여러분 마음에 떨어질 때 여러분의 마음은 길가입니까, 돌밭입니까, 가시 떨기 사이에 난 땅입니까, 아니면 옥토입니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은 그 밭은 오직 기름진 옥토뿐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없이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우리의 삶이 실패할 수밖에 없고,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의 권세도 이길 수 없고, 세상의 유혹도 이길 수 없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죄성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사단의 궤계를 알고 이와 더불어 싸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성령의 검”
두 번째로 ‘말씀의 검’을 ‘성경의 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훌륭하게 제작된 칼이라고 할지라도 용기와 기술을 가지고 있는 로마의 병사의 손에 들릴 때 비로소 그 칼은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에 붙잡힐 때에 말씀의 칼은 악한 영들의 권세를 찔러 쪼개고, 세상의 유혹을 파하며 자신의 죄성을 거꾸러뜨릴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여기에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희랍어 ‘테어퓨누스토스(theopneustos)’입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코에 ‘후’하고 생기를 불어넣자 영혼이 창조되고, 영혼과 육체가 만나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당신의 성령의 영감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쓴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성령으로써 말씀하게 하시고, 또 그 말씀을 말할 때에 성령이 역사하게 하심으로써 그 모든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을 찔러 죄에 대해 회개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함께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라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는 성령을 힘입어 예수의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말합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 말씀과 함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온 세계는 존재하게 되었고, 상호 연관을 맺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는 허공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 말씀이 깨달아지는 곳에 역사합니다. 전해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차별하듯 이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저 사람은 피해가시는 성령의 역사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게 하심으로 그들을 새 사람으로 만드시고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받은 은혜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에게 만만하지 않고 하루하루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받은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영적 전쟁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실에서 투구도 없이 그리고 손에는 든 검도 없이 그렇게 맨몸으로 전쟁터에 서있을 때에 그는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투구도 없이, 칼도 없이 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마귀를 이길 수 있겠으며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겠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왜 주일마다 교회에 보내시고, 또 여러분들을 때때로 하나님께 예배 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검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의 은혜로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여러분 자신을 이기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교회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에 있습니다. 말씀의 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예배를 사모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안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도 없고, 성령이 충만하기를 원하는 간절함도 없는 이 나태한 신앙생활을 우리는 규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무엇으로 우리가 이길 수가 있겠으며 성령의 검 없이 모든 악의 세력들을 어떻게 정복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마귀는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받은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멀어지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합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살고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죽어버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전우애를 상실한 군인, 애국심을 상실한 군인, 싸우고자 하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군인의 최후는 변절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건지거나 아니면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죽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성령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까? 거짓된 이 세상의 사상과 거짓된 생활의 습관, 헛된 것들에 대한 영화와 욕망으로 부패해지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치료되지 않고 어떻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활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목마르고 그리워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려 산다는 것은 곧 그분의 말씀에 붙잡혀 한다는 것의 다름이 아닙니다. 연약하지만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성도들, 그 말씀에 깊은 감화를 받아 가슴에 찔림을 받은 성도들은 항상 회개의 눈물 뒤에 이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성령의 검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여 이 성령의 검을 가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가지라”
마지막 세 번째는 “가지라.”입니다. 희랍어 성경에 ‘덱사스데(deksasthe)’이고, 이 단어는 ‘데코마이’라고 하는 단어의 변형입니다. ‘소유하다, 가지다 혹은 처리하다.’라는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은 지금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활용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에 우리를 주님 앞에 세워주었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여기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시련과 박해, 유혹과 염려에 맞서 대항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하기 위해서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매일매일 전개되는 우리의 현실과 맞서 싸워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의 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책속에, 기억 속에 누워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힘을 주어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진다.’라는 것은 언제든지 자신이 그 말씀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에 대해서 시편 119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시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유혹을 이기게 하고, 모든 죄의 욕망을 꺾게 하고 또 그 죄를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니 이것은 과거에 받은 말씀이 아니라 오늘 받아서 오늘 이 시인의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최근에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화를 받고 그 말씀이 내 마음을 꽉 붙드는 것을 언제 경험하였습니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병사의 손에 들린 칼과 같습니다. 그것을 휘둘러 악한 권세와 영적인 세력들을 거꾸러뜨리고, 이 세상을 쓰러뜨리고, 죄악 된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을 할 수 있는 병사만이 전쟁에서 자신도 지키고 나라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오늘 은혜를 받고 간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II. 적용과 결론
신자의 삶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혈과 육에 속한 씨름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라면 우리의 육신과 지상의 자원으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성도들만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여러분의 마음에 역사하도록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