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2012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12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시84:5-7) 2012.1.9 새해말씀사경회(새벽) 1
2. 시온에서 복 주시는 하나님(시128:5) 2012.1.10 새해말씀사경회(새벽) 7
3. 시온에서 붙드시는 하나님(시20:1-3) 2012.1.11 새해말씀사경회(새벽) 13
4. 시온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시14:7) 2012.1.12 새해말씀사경회(새벽) 19
5. 시온에서 열납하시는 하나님(시51:17-19) 2012.1.13 새해말씀사경회(새벽) 25
시온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1 (2012.1 9.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1.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6:5-7)
녹취자 : 김세나
고라 자손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있는데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이 이 시를 썼을 수도 있고, 누가 다른 사람이 쓴 시를 고라의 자손 중 한 사람이 보관해 가지고 있었던 시 일 수도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고라의 자손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날 때에 한 때, 모세에게 반역을 했던 무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반역을 매우 진노하셨고 그래서 그 고라의 자손들이 모여 있던 그 진을 친 지역에 전대미문의 재앙이 일어납니다. 땅이 벌어지고 이 사람들이 그 땅 속으로 들어가는 끔찍한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고라의 자손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이 살아있었고 그러면서 이제 그 하나님께 범죄 하였던 가족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부끄러운 이름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윗 때에 왕국을 세울 때에 그들도 함께 협조하고 다윗을 따름으로 다윗이 후에 그들을 지극히 높여 이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을 시중 드는 아주 귀한 일에 봉사하도록 만들어 주어서 그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켜 줍니다. 언제 이 시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그런지 이 시의 관심사는 성전, 그리고 성전에서 만나는 하나님, 그리고 성전에서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그 때가 어느 때이든지 간에 오늘날과 같이 발달한 과학 기술의 시대에 아주 풍부한 물질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시대이든, 그 옛날 원시의 시대이든지 간에 그것과 상관이 없이 인생의 본질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가 써진 것이 정확하게 우리가 가늠할 수 없지만 다윗 시대라고 본다고 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인데, 그 때 써진 시 인데도 오늘 우리의 마음에 그대로 다가오는 것은 인간의 문명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변화한다 할지라도 인생의 본질도 같고 따라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앙의 본질도 얼마나 같은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눈물 골짜기로 통과할 때에. 이것은 과거를 경험하는 것으로 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찾아오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리고 가깝게 치면 바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찾아오는 것과 비교될 수 있는 우리의 인생살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지나는 인생의 골짜기를 이 시인은 눈물 골짜기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늘 속으며 사는 것인지 모릅니다. 살아온 날들을 모두 계산해도 기쁘고 가슴 벅차는 환희를 느꼈던 때에는 지극히 적은 순간들이었고 인생의 보다 더 많은 날들은 슬픔의 고통의 날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하는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영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시인은 눈물의 골짜기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의 무게이고 그래서 우리의 인생살이는 버겁고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나면 우리는 기쁜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의 본질은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같기에 130세가 되었을 때 야곱이 바로 앞에서 심히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라고 수례하지 않았겠습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우리의 인생도 역시 동일합니다. 그렇게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며 지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살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가 위로 받지 않고는 우리의 인생을 올바르게 영위해 갈 수 없습니다. 이 위로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아니라 보다 완전한 위로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위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그렇게 눈물 골짜기로 통과할 때에 그것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고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 이 이른 비는 이스라엘은 이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인데 이른 비와 늦은 비인데, 이른 비는 파종을 위한 비이고, 늦은 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여 수확하게 하는 비입니다. 이 두 번의 비가 제 때 내려야지만 그나마 흉년이 들지 않고 농사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흔치 않기 때문에 아주 깊이 우물을 파야하고 그나마 우물을 파도 거기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좋은 물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쓴 물이 나오면 그것으로서 식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샘은 바로 단물을 내는 샘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가뭄이 들어도 마를 염려가 없는 생명을 위한 중요한 자원입니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행복, 위로와 그리고 우리의 커다란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면 가끔 아이들이 그 샘물을 더럽혀도 잠시만 내버려 두면 모든 이 구정물처럼 일어났던 것들이 다 가라앉고 그리고 맑은 샘물이 계속 솟아나서 곧 그 샘물이 다시 아주 투명한 물로 가득 차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면서 어찌 낙심되지 않을 때가 있겠으며 힘들지 않을 때가 있겠으며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있겠으며 심지어는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데 어찌 시련이 없을 때가 있겠습니까. 그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고 고통이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이러한 우리 자신이 새로워 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우리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어찌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얼마나 혹독한 시련의 인생길을 걸었길래 이 시인이 눈물 골짜기로 표현하고 있는 이 인생의 길에서 그는 샘이 터지는 기쁨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블레셋과 싸우던 삼손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입니다. 나귀의 턱 뼈로 일 천 명이나 때려 죽이고 그리고 이제 모든 싸움을 끝냈을 때 할례 받지 못한 자에게 죽을 것 같은 큰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에나꼬레 라고 하는 샘을 기적적으로 터치셨고 새로운 힘과 원기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목마를 때 한 모금의 물은 생명과 같습니다. 곤고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길을 걸을 때 주님과의 한번의 만남은 마치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물과 같습니다. 그 자체가 죽었던 자를 살리는 생명이 됩니다. 오늘 시인은 그렇게 많은 눈물을 골짜기를 통과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의 광야를 지났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이 수시로 많은 샘들을 터쳐 그 때마다 이 시인의 영혼을 두루 적셔 주셨기 때문에 이 시인은 그 고난의 길을 이기며 걸어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사람이 고난을 견디고 시련을 참는 능력도 참 크고, 또한 그 시련 앞에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의 그 연약함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살면서 극단적인 절망에 빠질 때에라도 마음의 위로가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생에 대한 우울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희망적인 마음이 생겨납니다. 말 한마디 그리고 아주 작은 위로가 되는 일 한 가지에, 우리 인간이 그렇고 그리고 또한 신앙 없이 지나치게 되면 금새 교만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불순종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근거 없어 보이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셔서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엎드러져 우는 자를 다시 붙들어 주어서 눈물을 닦아 주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 시인도 찾아와 주셨기 때문에 오늘 이 시인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그곳이 한 두 개가 아닌 많은 샘이 솟아나오는 골짜기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이 샘은 골짜기에서 실제로 물이 솟았다 라기 보다는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소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낙망과 낙심과 절망, 좌절과 비참으로 우리를 데려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당한 이 인생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큰 위로,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많은 씨들을 뿌리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그치지 않는 것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것을 그치지 않고 계속 합니다만, 그게 그렇게 행한 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예화) 저는 쓸 데 없는 걱정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교회 오면서 골목을 지나다보면 가게 간판이 자꾸 바뀌는 것을 봅니다. 그때 마다 마음이 아주 짠합니다. 예전에 가게 하던 사람이 문을 닫고 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온갖 상상이 떠오르면서 걱정이 됩니다. 그 사람이 자기 돈도 아니고 돈을 꾸어서 힘들게 가게를 얻어서 그 없는 돈에 인테리어를 하고 간판을 붙이고 손님이 오기를 그렇게 고대를 했는데 몇 달 후에 텅텅 비더니 그냥 깨끗한 인테리어 내버려두고 넘기면 그 다음 사람이 와서 다 때려 부수고 인테리어 하고 간판도 다시 바꿔 답니다. 그러니 간판이 바뀔 때마다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어떤 때는 마음속으로 그 가게 주인이 신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몰라도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먹어줘서 그 가게가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면서 지나옵니다. 그게 얼마나, 그러한 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인생이 뒤집힐 것 같은, 저 사람이 얼마나 큰 걱정을 밤마다 하고 괴로워할까. 최근에 일 년이면 햄버거를 한 두 개쯤 사먹을까, 한 개. 한 개 아니면 두 개 정도.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없어졌습니다. KFC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마음이 짠합니다. 나한테는 별로 필요 없었는데, 나갔으니까 동네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질지는 모르겠는데 그 큰 가게를 그렇게 문을 닫고 갈 때,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두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씨를 뿌리지만, 열매를 잘 맺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제 때 비를 내려 씨를 뿌려 결실을 하게끔 하나님이 도와주신 은혜의 경험을 이 시인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인이 그러면, 어떨 때에 하나님이 이러한 위로의 은혜와 많은 복을 주셨을까.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시온의 대로입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앞 뒤 문맥으로 모두 볼 때에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비교해 볼 때 이 대로는 시온으로 나는 대로입니다. 이 대로가 뭐냐 하면 고대의 중동에서 있었던 관습인데, 킹스 하이웨이라고 해서 왕이 다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왕만 다니는 것은 아닌데, 왕이 지날 때에는 작은 샛길이나 골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큰 대로로 다닙니다. 그 길이 생길 때 처음부터 왕이 어느 지방을 순시한다고 할 때 큰 길을 닦습니다. 곡괭이 부대가 다니면서 높은 곳은 낮추고 낮은 곳은 돋구고 해서 판판한 길을 만들고, 그리고 외치는 자가 지나가고 모년 모월 모시에 왕이 행차하시면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왕이 지나가면 모든 백성들이 부복하며 그 왕의 행차의 영광을 환영합니다. 그러한 대로가 시온으로 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행차하시는 그 길, 그 길이 그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왕이 행차할 때 백성들이 마음을 준비하고 그 왕을 맞이하듯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이것이 신약에 적용되어서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를 통치하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권이 행사되는 바로 그 중심을 향해 하나님이 행차하실 수 있도록 난 그 길에, 우리는 그 길옆에 서서 왕의 행차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될 때, 그러한 대로가 마음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시인이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 메마른 땅을 지날 때에 샘물이 터져서 큰 위로와 환희와 격려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도 메마른 땅에 이른 비가 내려 곡식을 파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이 모든 축복들이 결국은 행차하시는 왕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항상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의 대로가 있었기 때문에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위로를 경험할 수 있었고 시련의 계곡을 지나면서도 기쁨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살아온 인생길을 가만히 돌아보면 이 세상 적으로 형통한 것 같았으나 정말 곤고하던 때도 있었고 때로는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많이 받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마등처럼 인생의 힘든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괴로운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 그 힘든 시련과 고난의 계곡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찬양) 폭풍 후 흑암 속 헤치 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시련과 고통이 좋은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만은 이렇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들은 수시로 고난과 시련의 계곡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께 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스러운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큰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위로와 사랑은 이렇게 한없이 크고 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시온의 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힘을 얻도록 도와 주십니다. 문제는 힘입니다. 절망은 이 힘이 모두 끝났다는 자신의 마음의 표현이고, 그리고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완전히 끊어진 시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인의 마음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이 시인을 만나 주셨고 형통할 때 뿐만 아니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고통스러운 인생의 시련의 때에도 오히려 하나님이 그 때를 많은 샘을 터뜨려 이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기회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시련과 고통을 만나는 그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이 시온의 대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다스리십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 악기에서 아무런 가락도 울려 퍼지지 않는데, 연주자가 능숙하게 손을 움직여 악기의 현을 뜯을 때 아름다운 가락들이 울려 퍼지게 되는 것처럼 평안할 때에는 마음속에 아무런 찬양이 없던 때에 하나님이 시련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할 때에 오히려 우리의 마음에서 온 영혼의 감각들이 깨어나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우리의 마음에 메아리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은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련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주시는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절망스러운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언제 깨달았습니다. 시련의 골짜기에서 고통의 계곡에서 깨닫지 않았습니까. 죄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았고 궁핍할 때에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섬세 하신지를 경험하였습니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외로울 때에야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친구요,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모두가 다 나를 버려도 예수 그리스도만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으셨습니까. 문제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마음속에 터치는 은혜의 샘이 말라 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길을 꿈꾸고 그 속에서 곤고하고 시련을 만났던 우리의 삶을 깊이 회개하고 주님과 함께 우리의 인생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온의 대로 없이도 나 자신의 재주와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고 내 인생의 눈물의 골짜기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새 힘을 얻었던 이 시인처럼 우리도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다시 수축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히 오셔서 우리의 인생의 길을 바꿔 놓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서 온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는 이 마음의 길에 이 대로를 내기 위해 온 사람이었고 그 대로를 절망에 빠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만들어주는 방법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임금,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이 임박하였다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깊이 하나님 없이 홀로 우리의 인생을 잘 살아 보려고 했던 독립적이고 비의존적인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 보다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날 우리의 인생이 눈물 골짜기에서도 위로가 없었고 메마른 땅을 지나가면서도 쓴 물을 머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진 한 해를 바라보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다시 수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없이 실패했던 날들을 거울삼아서 그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시온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2 (2012.110.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2.시온에서 복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주며(시 128:5)
녹취자 : 김세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를 달았으니 아마 이 시는 성전에서 많이 낭독되던 시였던 것 같습니다. 여섯 절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시 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원리를 아주 핵심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나머지 2절부터 6절까지 전체의 요지를 싣고 있습니다. 그 요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삶을 함께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내적인 품질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그 도에 행하는 것은 그러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구체적인 삶으로 구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삶의 일치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1절의 전체적인 요약에 이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집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 사람이 바깥에서 노동을 하고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직업의 소명을 따라서 일을 할 때 하나님이 그 손에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도록 결실을 주시고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수고하지만 수고하는 것 만큼 그 손의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많이 노동하고 애를 써도 그것이 우리에게 소득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멀리 떠나서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개 시대에 많이 애쓰고 힘써 돈을 모아도 마치 뚫어진 전대의 돈을 저장하려고 하는 것처럼 계속 그 돈은 뚫어진 전대로 흘러 그래서 그들이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거나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 어떤 사람은 아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애를 써도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그의 모든 삶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많은 불화와 갈등들은 이렇게 손이 수고한대로 소득을 얻고 풍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들이 시작이 됩니다.
또 하나의 측면은 가정 생활입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고, 했습니다. 포도는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음료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이 포도가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는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이 포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생수와 같이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 포도가 수확 철에 아주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붙어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특별히 이스라엘은 이 포도가 아주 중요한 산업이었고, 에스골 골짜기 같은 곳에서는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 송이에 6kg 포도까지 나왔다고 어느 주석가가 이야기 했으니까 이 당시에는 훨씬 더 큰 포도송이가 생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내가 그렇게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고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집에 들어갔는데 매일 집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다투고 그리고 가장이 집에 들어와도 그 아내를 보면서 마음 둘 곳이 없는 가정이 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자녀의 가정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게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이 아내가 사랑스럽고 존귀하고 아주 소중하고 꼭 필요하게 보이는 가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어린 자식들이, 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 감람나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감람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소중한 나무였습니다. 여기에서 기름이 나오고 이 기름이 성전의 불을 밝히고 치료에 쓰이고 그리고 그들의 식용을 위한 영양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아주 존귀하고 소중하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자식을 낳았을 때는 자식이 생겨난 것을 인하여 기뻐하지만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아이들이 낳은 것이 후회가 되는 적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낳는 것은 내 힘으로 낳았지만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거칠고 쓸모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감람나무와 같이 소중해서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에게 존귀한 자녀로 자란다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대치 할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나이 들면서 부모의 영광은 자식들이 얼마나 존귀한 자들로 자랐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이 모습은 사실 인류역사 이래 모든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꿈꾸고 그리워하는 그러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이러한 복을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내려주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지를 가리킵니다. 원래 찌온이라고 하는 이 말은 거친 땅, 요새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 자체는 그리 좋은 말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바로 그러한 시온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임재해서 예루살렘을 통치하시는 한 장소로서 지정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루살렘이 있고 에워싼 그 산지인 시온에 임하셔서 팔을 벌려서 예루살렘을 안은 것처럼 거기에 임재 하셔서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왕권이 행사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시온에서 임재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상 때문에 이 시온이 매우 중요한 장소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 시온은 장소적으로 보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지명이지만, 그러나 또한 영적으로 보면 이 시온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 하시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그 언약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보증이 됩니다. 더 멀리는 이 시온이 바로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멀리는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아무튼 바로 그렇게 이 시인이 하나님이 이 놀라운 복을 시온에서 주겠다고 말씀하였으니 이것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와 교회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높은 산을 생각나게 합니다. 높은 산에 하나님이 이제 눈을 주시면 마치 시편 133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에 내린 것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헐몬의 이슬이 내리고 거기에서 이슬이 흐르고 흘러 시온의 산들에게 내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높은 헐몬산은 높은 꼭대기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자원들을 시온의 산들 아래로 내려 보냅니다. 마치 머리에 바른 아론의 기름이 수염 까지 흘러내려서 옷깃까지 내려오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제 시온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거기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은혜와 그리스도의 교회에 부어지는 것이 그 교회의 일부가 되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여되는 복이며 그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주신 분복들인데 그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모든 지체들에게 그 복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교회 중심이어야 하고 교회 중심이라는 말은 곧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연합을 이룬 중심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분께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영적인 교회의 훌륭한 한 지체가 되어 갑니다. 그리스도와 사랑의 연합을 이룬 사람들은 그의 몸인 교회를 함께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함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져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지체들을 지극히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비극은 바로 우리 자신이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의 한 지체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 시온에서 받는 복들을 누리며 살아야 할 터인데 여기에서 이기심으로 스스로 끊어지는 것이 우리의 모든 불행과 메마름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뿌리이고 특히 우리의 영적인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리스도께 사랑을 받으며 그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영적인 자원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충만히 공급될 때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오늘 이 시인이 4절까지에서 언급하는 것 같은 그러한 복들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홀로 계시지 아니하시고 교회의 머리로 계시나니 우리가 그리스도로 사랑하는 것은 곧 교회에 대한 사랑과 나눠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교회에 대한 태도는 그리스도께 대한 태도와 결코 나눠질 수가 없고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태도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의 어떠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를 진심으로 공경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 부어진 복은 헐몬에 내려진 이슬과 같아서 산 아래 시온으로 그 이슬이 흘러내리고 우리는 바로 그 시온에서 내리는 이슬로 말미암아 풍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생각이 새로워지기 시작하고 한 사람이 주님과 평화롭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방황할 즈음에는 예루살렘과 교회로부터 그의 마음이 멀어지고 자신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이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자기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져 버린 사람들은 모든 관심이 자신의 행복에 쏠리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성도들의 관심은 확산되고 교통하는 관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모든 교회의 상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의 형편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한없이 기도제목이 늘어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은혜에서 멀어진 성도들은 아무것도 기도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놀라운 복들을 교회에서 주시기 때문에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마치 교회를 다루기를 자신의 영혼을 다루는 것처럼 그렇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거기에서 복이 흘러내려 자신의 외면적인 삶과 사업, 생업, 그리고 가정까지 두러 적시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온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갖고 그 안에서 자신은 이 교회에서 멀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존귀하게 여기며 섬기는 것처럼 교회의 제도들과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교회 안에서 그리스께 연합된 모든 지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영적인 축복도 아울러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온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라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시는 보좌입니다. 바로 그 예루살렘이 번영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삶이 번영하는 것과 놀라운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저수지에 물이 마르면 산 아래 잇대 인 모든 농토들이 식물을 심을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부여되는 모든 복은 예루살렘의 번영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교회가 다투고, 분쟁하고, 심지어는 법원에 고소를 하고 교회가 시험에 드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사람들은 저게 교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교회가 저수지가 마르고 저렇게 큰 분쟁과 소란이 일어나고 시험이 가득할 때 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의 끔찍한 재난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골머리 아픈 교회 어디 간들 교회가 없을까 하고 발로 깡통 차듯이 툭 차 버리고, 소위 좋아 보이는 교회에 갑니다. 그것이 즉각적인 해결이 된다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고통을 받겠습니까. 그렇게만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자신의 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고 바로 그 교회와 관계를 잘못 맺고 있는 그 때 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하나님이 그 책임을 물으시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교회에 고통과 아픔을 준 책임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 교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을 이루었던 자신의 영혼을 고통으로 남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것과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많은 고통과 시련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물려주신 좋은 점 하나는 튼튼한 치아입니다. 저는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6살 때 시골에서 이빨을 뽑다가 부러뜨려서 그래서 6살때인가, 7살 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서울 치과에 한 번 간 것 이외에는 한 45동안 한 번도 치과를 안 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치과 의사가 목사님 같으면 우리는 벌써 굶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큰 질환이 없고 조금 문제가 있는데 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가서 이제 스케일링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빨이 나쁘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신장염으로 큰 건강의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동안 잇몸에서 피가 나오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사를 상세히 읽어보니까 그렇게 잇몸에서 나오는 피에 각종 세균들이 함께 감염이 되어서 그 피가 우리의 몸에 흐르고 심장에 들어가서 심장 이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 피 속에 각종 세균과 고름들이 함께 핏속으로 먹으면 그것들이 흡수가 되어서 몸을 돌다가 그 피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콩팥으로 들어가는데 쉽게 이야기 하면 콩팥은 우리 정수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집어넣어서 깨끗이 걸러주고 우리의 몸에 돌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수기에 물을 거르는데 쓰는 맨브래인 필터를 넣는데 그 물을 쏟아 버리고 거기에 뜬 물을 부은 격이 되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이 맨브래인이 막혀 버리고 이상이 생기는 것처럼 이 콩팥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과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의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 목사님 그것은 당연하죠. 모르셨어요?” “처음 알았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질병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모르고 또한 그 질병이 걸렸을 때 자신이 이 질병이 서로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지 추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걸린 이 질병의 근원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하는데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합당한 원인과 결과처럼 보이지만,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질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당부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영적인 번영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 이 두 가지는 성도의 가장 커다란 기도 제목이고 예루살렘의 번영 없이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게 해 주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번영을 본다고 하는 것은 마치 물이 가득한 저수지 아래 농토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가뭄이 들면 모두 물을 댈 수가 없어서 파종도 하지 못하고 또 결실에 이르지 못하나. 큰 저수지에 가득찬 물이 있는 그 저수지 아래 잇대 인 농토를 가진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뭄이 와도 그 저수지에 물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 물로 농사를 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영적인 번영이 충만할 때에 성도들은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그 교회의 영적인 번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복을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약속하시는데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의 자녀들이 계속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하게 되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일관적인 섭리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적인 자녀들을 계속 더 하심으로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사람들로 가득찰 것을 영적인 번영의 열매로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멀리 떠나 방황할 때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보람은 무엇입니까. 예전에 나처럼 거친 인생 길에서 방황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원망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에 칼을 꽂던 그러한 사람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떠한 사람들이 방황하던 인생을 접고 하나님 안에서 단정한 삶을 살며 그 분을 공경하게 되어 복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교회를 바라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번영과 그 다음에 그 영적인 자손들의 번성함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흥왕하는 것을 자신의 삶에 큰 위로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하나님 앞에 그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죄인들의 수요에 비하면 교회는 너무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며 주님이 예루살렘에 복을 넘치게 하심으로써 이 교회의 영적인 자녀들의 자녀들이 번성하고 여기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로 주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그렇게 하나님께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는 자식들의 자식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기를 갈망하며 사는 것이 우리 신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사는 시온의 사람들에게 평강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와 사람들과의 평화, 영적인 세계에서의 하나님과의 질서로운 관계가 자신의 섭리적인 삶 속에서 그대로 구현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은혜와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경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큰 하나님의 복을 보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예루살렘의 번영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복을 누리도록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교회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성도를 향한 사랑을 배우고 그 속에서 살 깊은 하나님의 교회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큰 복을 누려 그리스도와 교회에 부어진 하나님의 은택들이 여러분들의 영적인 삶과 여러분들의 모든 가정과 삶 속에서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시온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3 (2012.1.11.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3.시온에서 붙드시는 하나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시 20:1-3)
녹취자 : 김세나
다윗의 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간절한 탄원의 시로 분류가 됩니다. 우리가 읽은 이 세절의 본문은 크게 한절씩 세 토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인은 환란 날에 하나님이 너를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지만, 특별히 시인이 환란 날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것입니다. 환란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환란을 당하였다고 하는 사실이 아니라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마음으로 부르짖었다고 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듯이 시인은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환란을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커다란 간섭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외부의 환경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되 환경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바깥의 풍경이 어떤가에 따라서 우리의 기분도 많이 움직이듯이 환경은 우리의 마음과 많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형통할 때에는 마음이 산란하고 하나님을 집중하지 않고 있다가 환란을 당할 때에는 비상하리만치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 한분을 앙망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환란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환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환란을 당했을 때 홀로 버려지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은 그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응답하시며 라는 단어가 높이 드시며 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환란과 시련을 당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흩틀어졌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한분께 고정하고 간절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메달리라고 하는 하나의 경고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환란이나 시련이 올 때에 모두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환란과 시련을 당하느냐에 그 시험의 결과가 달려 있어서 오히려 믿음으로 이러한 시련과 환란을 잘 맞이 하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흩틀어졌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고 이것저것 의지하면서 미끌어졌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도 사랑하면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찢어지고 나뉠 때에 이 환란을 통해서 모든 것이 덧없고 하나님 한분 만이 우리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시다라고 하는 확신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런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서 도와주시는지를 2절에서 말씀합니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우리를 붙드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성소는 하나님이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시는 제사장의 제사를 통해 불결하고 더러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막입니다. 다윗 시대에 아직 성전이 지어지지 않았으니 성막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소는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성전 전체를 가리키고 좁은 의미에서 말하면 성소와 지성소 사위를 나누고 있는 첫 번째 그 방, 성소를 가리킵니다. 어쨌든 이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겠다라고 약속해 주신 그 제사가 있는 성소에서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러한 제사를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드리심으로써 이제 우리는 어떠한 또 다른 제사 없이 이미 당신 자신이 제사장이 되시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삼아서 하나님 앞에 바치신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산제사를 힘입어서 우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특정한 성소에 왔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영원하고도 단번에 드리는 제사를 올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를 그 때에 거기가 우리 주님을 만날 만한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든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디에서든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어디에서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때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이 성소가 또한 이 시온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구속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영적으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몸의 일부가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 사랑과 은혜에 참여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이렇게 보이는 교회의 일원으로 삼으셔서 그래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는 영적인 하나의 교회로서 이렇게 모여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고 경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디에서든지 우리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어디에서든지 당신을 찾는 자를 찾아오는 하나님이시지만, 특별히 당신의 백성들이 이렇게 함께 모이는 이 성소에서의 모임을 기뻐하시고 당신의 선하신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환란과 시련을 만났을 때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시던 교회의 예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환란과 시련을 만났을 때마다 우리가 늘 찾아가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하나님께 올리던 교회에서의 간구가 있습니다. 시련의 날에는 우리와 함께 동참하여 우리의 기도의 힘을 보태주던 이름 모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기억이 납니다. 기쁘고 힘들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의 교회에 와서 간절히 매달리고 아버지께 간구하던 신앙의 때가 있고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시련이 오든, 환란이 오든,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인생의 고난의 날이 오든 그는 든든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성소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저와 함께 그런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으로 가득찬 곤고한 날을 보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날에 멀리서 고향 집이 보일 낲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없던 사람이 고향,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나의 옛집에서는 왠지 나의 모든 서러움들을 쏟아놓고 용납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소속감을 느낄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환란의 날에 이 시인은 성소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성소는 모든 슬픔과 기쁨, 시련과 환란, 경사와 슬프고 애통한 일을 만날 때, 항상 찾아가던 곳이었습니다.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성소에 올라갔고, 국가적인 위기와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도 성소에 올라갔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마음에 회의가 들고 어찌할 수 없는 의심이 생길 때에도 성소에 올라갔고 말할 수 없는 기쁜 일이 생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도 성소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에서 기쁨과 서러움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지체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고 함께 기도의 힘을 보탬으로 주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응답을 받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성소는 성도의 삶의 중심이니 만약에 여러분들이 교회와 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다면 깊이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시온에서 너를 붙드신다고 하였는데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 시온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성소가 주님을 만나 주시는 데라면 이 성소가 그렇게 성소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시온에 주신 약속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성소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과 통치의 핵심부입니다. 그래서 이 시온도 역시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래에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전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소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제의적 장소라면 이 시온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있는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련과 환란을 만나도 은택을 입을 시온이 있고 피하여 하나님께 매달릴 성소를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그곳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는 그 환란과 시련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금년 한해에도 하나님께 정말 환란을 이기고 시련을 벗어나 주님 앞에 진정으로 은혜를 입고 복을 받길 원한다면 이제껏까지의 여러분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에 누를 끼친 일이 있다면 깊이 회개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흘러내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은혜를 받고 그리고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교회를 해롭게 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오는 이 모든 축복의 통로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 은혜를 입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때에는 우리의 힘으로 사는 줄을 알지만, 그러한 관계가 끊어지고 환란 날에 시련을 당해도 어디 가서 주님께 부르짖을 성소를 찾지 못하고 나의 기도에 함께 동참하며 울어주고 간구해주는 지체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비로소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아 주의 복을 받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떠나왔던 교회에 아픔을 준 일이 있으면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어도 그러한 모든 막힌 것들을 푸는 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용서를 빌 것은 용서를 빌고, 어느 교회에 손해를 입힌 적이 있다면 그것은 복구하여야 합니다. 성도들과 찢어진 적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용서를 빌고 마음의 묶인 것들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일을 이 교회에서 반복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은혜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기도하니 주께서 내 소리 들으시리
오 주여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주께 바라리이다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것, 돌아갈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다는 것,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리고 우리와 같은 사람을 그 몸의 한 지체로 삼아 주셔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우리에게까지 부어지게 만드시고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성소에서 간구하면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택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물론 주님의 교회는 믿음을 지키고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다른 아무 곳에서도 고백할 수 없는 그 일을 성소에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달려가는 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미끄러지는 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뒤로 물러나 미끄러진 사람들에게 까지도 이 성소는 주님의 도움을 입는 장소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바로 그 교회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굳게 붙들어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전 세계 어느 성소에서든지 환란을 당한 그 날에 자신을 위하여 지체들을 위하여 눈물로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붙드시며 미끄러질 만한 그 때에 그들을 굳게 세워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은혜에서 미끄러져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마치 자신의 신앙생활을 위한 그저 필요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렇게 성소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시온에서 자신이 주님의 손에 붙들리는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를 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시인은 세 번째로 너의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성소 이외에 아무 곳에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번제는 죄를 속하거나 헌신을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이 소제도 역시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 였습니다. 이 제사는 오직 성소에서 하나님께 올릴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소에 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고 번제를 받아 주시길 원하노라. 많은 사람들은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야지만 자신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이 시험이 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써 그 시험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며 미끄러진 사람들은 바로 그 시험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 때문에 그것은 정확하게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주님의 교회에서 올리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결코 나눠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고 헌신다운 헌신을 주님 앞에 올리는 그것이 곧 하나님께로부터 사실은 받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은택을 입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곤고하고 시험에 가득 들어서 어떠한 살 희망도 없고 심지어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죽음을 떠올리면서 방황을 하고 있을 그 때에 딱 한번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예배를 올렸을 뿐인데 우리의 마음속에 하늘의 빛이 스며들어오고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물 붓듯 부어져서 우리의 이 험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기며 살고자 하는 소망이 생겨나는 것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고 기도다운 기도를 드리고 헌신다운 헌신으로 주님을 섬기는 그것을 받아 주실 그 때에 사실은 하나님 자신도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에서 주님께 올리는 예배와 헌신은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살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훌륭한 은혜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여러분들이 환란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 응답 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먼저 여러분들이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예배를 아주 기쁨으로 받아 주고 계시는 구나!’, ‘아, 하나님은 내가 지금 올리는 이 간구에 이 예배와 이 찬양에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쏟아 부어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예배자로서 여러분들이 열납되는 것을 언제 경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서나 이렇게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시련과 환란의 날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 가까이 계셔서 그들의 헌신과 제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고 이 환란이 너무 커서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겨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 환란이 지나가고 나면 숨을 좀 돌리고 성도의 의무도 행하고 교회와 올바른 관계도 갖고 하나님께 헌신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도 우리를 그러한 식으로 다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뒤로 미룰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많이 주시면 우리의 부패한 성품을 버리고 그 복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는 우리들이 기다리는 우리의 문제의 해결의 순서입니다. 그래서 환란 날에는 더욱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고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환란의 날에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하고 어디에서 미끄러져 주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이탈했는지를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환란 날에는 어디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팽개치고 미끄러져 죄악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다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가 이렇게 환란의 날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환란의 날에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그 분의 손에 붙들리기를 원하십니다. 환란의 날에도 우리가 주님의 교회에 충성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려 평소처럼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모든 우리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그 모든 계획대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에 마음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 환란의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도록 주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도록 그리고 환란의 날에도 우리에게 주시는 본분을 따라 주님께 헌신하며 변함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께 간구하겠습니다.
시온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4 (2012.1.12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4.시온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 이 기뻐하리로다 (시 14:7)
녹취자 : 김세나
시편 14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지혜로운 자와 구별되는 어리석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부패와 가증함과 악행들이 나오고 그래서 하나님이 인생을 굽어 살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나 내려다 보신즉 모두 치우쳐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이웃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웃에 대한 태도와 이웃을 무시하고 도덕의 기준이 없으니까 가난한 이웃들에게 그들이 무엇인가 계획하고 하고자 하는 일들을 멸시하고 그리고 짓밟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모든 마음에 하나님을 없다고 부인하고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억압하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주님은 피할 바위가 되시고 또한 도망칠 산성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백성을 포로에서 돌이키시는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크게 세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선 첫째는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의 계획을 부끄러워하고 억압하는 신앙이 없는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심령이 가난하고 이 세상에서 시련과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로 도망치는 모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때에든지 믿고 피할 훌륭한 은신처가 되어 주십니다. 특히 다윗은 후에 왕이 되었지만, 왕이 되기 전에 가난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고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 빚진 자들, 억울한 자들, 이 모든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사람들을 끓어 안고 나라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마음이 가난하고 또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내몰리는 것 같은 인생의 위기와 궁핍을 만날 때 그것은 우리를 피난처이신 하나님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사람들을 보면 그들 모두 하나님 앞에 특별히 구원을 받아야 했던 인생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피난처 되신 주님을 생각하지도 않았을 사람들인데 그 어려움 속에서 자기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배웠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도망을 쳤더니 주님이 그들의 피난처요, 보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물질의 궁핍이 우리를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였고 물질이 궁핍하지 않을 때에는 정신의 궁핍함이 영혼의 굶주림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시련과 고난, 위기와 많은 어려움들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시련 속에서 주님을 만났고 그래서 주님을 만나 은혜를 받은 후에는 시련과 고난이 우리에게는 고마운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깨달음은 우리가 은혜 안에 있을 때에 유지되는 것이지, 우리가 은혜 안에 있지 아니하면 결코 이러한 신앙의 깨달음들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다시한번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억압 받고 가난한 자가 되어서 우리의 계획이 이 세상에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께로 피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한다고 이 시인이 노래하였습니다. 시온에서 나오는 구원은 국가적인 큰 위기에 혹은 사람들이 볼 때에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대사건들 속에서만 하나님의 구원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집, 성소는 바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장소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지만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서 마음을 토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가난하고 목마른 마음을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고 첩으로부터 당하는 서러움이 괴로워서 그 성소를 찾았다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꿔 놓을 위대한 인물을 사무엘을 생산하였습니다. 어디 그 뿐이었겠습니까. 국가적인 재난과 위기를 만날 때 경건한 왕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라를 위해 빌고 그리고 자신들의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제나 구원하시기 원하시고 구원하시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항상 하나님이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는 그 지식의 빛을 그 시대의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이것은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온을 중심으로 당신의 왕권을 펼쳤고 이 왕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한 번 더 넘어가서 이방과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는 왕권이 행사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인생의 이런 저런 문제들을 만나서 하나님 앞에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당한다면 여러분들은 주님 앞에 나아와 아버지 앞에 깊이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 백성들의 고통과 그 모든 괴로움에서 그들을 건져주시는 구원을 시온으로부터 나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험이 들고 고난과 괴로움이 오면 교회 생활이 해이해 지기 시작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신앙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필요할 그 때가 더욱 주님의 교회와의 관계를 견고히 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할 때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평소에 믿음이 좋아 보여도 시련이 닥칠 때에 미끄러지는 사람이 있고 평소에 신앙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시련이 오면 주님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받을 복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온에서 다스리시고 여기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왕권에 복종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터득하기를 원하십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그 큰 시련에서 그들을 건지시는 사랑의 주님이라는 것을 아주 선명하게 자기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구원을 시온에서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시련과 고난이 있을 때에 그 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도 시련과 고난을 당한 것이 여러분들에게 유익이요 하나님의 큰 경륜이었다고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갖는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갖되 이렇게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주님께 매달리고 의지하는 훌륭한 표현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지식의 말씀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이며 바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이 그리스도에게 부어지고 그 사랑이 교회를 통하여 자신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교회를 자신의 생명이 함께 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자신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련과 괴로움을 만날수록 자기중심적이 되기 싶습니다. 그리하여 자기중심적이 되어가는 그것이 바로 정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매달리는 과정을 통해서 시험을 만나 오직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될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만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요, 나머지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다가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마음도 함께 전달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지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에 의해서만 매몰되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돌아보고 이 세상을 돌아보며 자신의 의무를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기도 생활에 있어서 혹은 섬기는 생활에 있어서 이런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에는 그렇게 간절히 매달리고 싶은 데로 왠지 집중이 안 되었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 내 고민이 아닌 다른 기도의 제목들이 떠오를 때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처했는데 이러한 기도 제목들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자꾸 치워 버리고 자신의 기도의 제목에 집중하려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떠돌면서 다른 기도의 제목들이 막 떠오릅니다.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기도의 제목을 치우고 자기의 기도 제목을 붙드느냐고 애를 쓰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별로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풀어 버린 후 마음에 떠오르는 기도 제목을 따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놀랍게 나는 지금 내가 어려움을 만나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할 처지인데 내 기도는 안 되고, 마음에 떠간 많은 기도들을 따르다 보니까 이 사람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게 되고 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하나님이 마음속에 평화를 주시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은 하나님의 뜻에 맡겨서 어떻게라도 주님이 처리해 주시든지 별로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인격적인 신뢰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고난이 찾아오고 시련이 옵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집중하여야 할 시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인데, 그런데 왜 그런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섬기는 이 의무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그렇기도 하고 마음은 벗어나고 싶은데 상황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 앞에 섬기다가 보면 나는 내 일을 위하여 별로 한 것이 없는데 주님을 섬겼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하나님께서 내가 이룬 것보다 더 아름답게 결말을 지어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구원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질 때 바로 거기에서 그 교회를 시온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며 올리는 기도는 우리의 삶 전체를 바꿔 놓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요. 너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교회와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구원하시는 은혜의 덕을 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포로된 것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사실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도 명확하게 규명을 못 하겠습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포로로 된 것에서 돌리실 때 기뻐하였다고 하는 시가 나옵니다. 이러한 시들은 대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에서 건져 주신 그 놀라운 구원의 경험을 노래하는 가운데 작시된 시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편 126편에 나오는 내용과 같습니다.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 우리는 꿈꾸는 것과 같았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에서 포로된 것이 그것일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6세기 7세기 경이었고, 다윗은 10세기 기원전 사람이었으니까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마도 다윗이 무수한 전쟁을 치룬 군인이었으니 국가적으로 전쟁에서 패배해서 군인들이 포로로 잡히고 백성들이 포박을 당한 그 때에 시온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셔서 그 사로잡혔던 백성들이 풀려나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해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이것을 하나의 비유로 해석해서 가난하고 얽매인 모든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부자 요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궁핍과 고통에서 매여 있는 것을 포로된 것으로 보고 하나님이 시온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구원의 은혜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그 모든 궁핍한 자는 궁핍의 억압에서 질병을 얻은 사람은 질병의 억압에서 그리고 이웃에게 박해받는 자는 그 박해의 억압으로부터 건져 주시는데 그 구원이 시온으로부터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은혜를 구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바로 이 야곱과,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의 애칭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였습니다.
자, 이것이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간에 그것과 관계없이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이 사로잡히고 억압을 받는 거기에서 건져내시려는 의지를 가지시고 능력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과 건져내시는 놀라운 은총이 하나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거기에서 그 모든 시련에서 그들을 구출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위기에 처하거나 시련을 만났을 때 물질이 부족하면 돈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우리가 질병에 걸리면 병 고침을 받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판단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한 시련과 고난을 당하고 혹은 죄에 미끄러져서 시험에 당하였을 때 그러한 모든 구원받아야 할 문제의 근원이 우리의 마음, 우리와 하나님이 맺은 관계, 우리가 시온인 교회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부터 고쳐져야 한다고 믿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실 때 돈 먼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고쳐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병 고침 먼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고 요동하는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의 모든 질병에 걸린 것과 같은 죄악된 삶의 문제의 근원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아시기 때문에 심령을 고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는 일이 없는 모든 공급은 일시적인 치료책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령을 먼저 고쳐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먼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 바로 그 다음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분쟁하고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풀기 바랍니다. 사람을 용서하고 너그럽게 하는 일은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입니다. 교회에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를 여러분들이 게을리 하고 있다면 회개하고 다시 주님이 세우신 것으로 돌아가서 헌신하고 충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서 드리는 일만 마디의 기도 보다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그 자리,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올리는 한 번의 기도는 그 보다 훨씬 더 커다란 능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그 모든 억압과 포로된 것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자기의 외아들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아까운 것이 있겠습니까. 주님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5.시온에서 열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 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 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시 51:17-19)
녹취자 : 김세나
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참회시입니다.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나아왔을 때 지적을 받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중심을 토해 놓은 유명한 참회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믿음의 삶을 이어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커다란 일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당연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였을 뿐 아니라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고의적으로 죽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선지자 나단에게 지적받고 난 후에 그는 큰 심중의 고통을 느끼며 자신의 비참한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을 것입니다. 당연히 예전에도 하나님 앞에 제사를 통하여 용서받고 다시 회복된 경험이 있었을 터이니 이 제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제왕이었으니 자신을 위하여 제사 드려줄 제사장이 없었겠습니까. 그 제사에 바칠 제물이 모자랐겠습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 매우 중요한 성품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번제를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비록 죄를 범하였지만 이 범죄의 끔찍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매우 중요한 복음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이미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천여 년 전에 하나님을 믿는 여호와의 신앙에서 복음적인 요소들을 발견하고 심령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믿음이야말로 여호와를 믿는 신앙의 본질이라고 하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다윗에게 이러한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깊은 영혼의 어두움 속에서 헤어 나오면서 다윗은 일찍이 아무에게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적이 없었던 깊은 복음의 비밀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죽임 당한 짐승이 아니라 상한 심령이라고 말하면서 당시에 모든 제사장들이 들으면 충격을 받을 사실을 선언하는데 정말 하나님이 멸시하지 않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꺼내어 별도의 제물인 것처럼 드리는 그 제사를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지만 하나님 앞에 막상 제사를 드리고자 하니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치 괄호 속에 들어갈 말 같은 삽입구가 18절에 등장하게 됩니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오히려 이 18절을 괄호에 넣고 바로 17절에서 19절을 읽으면 문맥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님의 제단에 드릴 것입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삽입구처럼 들어간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오늘 설교하고자 하는 요지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 성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당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의 성벽들을 지으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앞의 구절은 모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시온에 선을 행하시는데 이 시온은 이번 주 내내 말씀 드린 것처럼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산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 시온은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을 위하여 선택해 주신 거룩한 땅입니다. 그래서 그 시온은 하나님의 약속이 깃들여 있는 하나님의 가나안 약속의 땅, 이것보다도 더 정수에 해당이 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종교적인 선택이 깃든 곳이고 예루살렘 성은 그 중에서도 핵심적으로 하나님의 왕권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하나님이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당신의 깊으신 뜻을 따라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당신의 기쁨대로 또는 당신의 좋아하시는 대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이것은 하나님이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보다도 시온에서 시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예루살렘에 그러한 하나님의 은택을 받을 어떠한 가치나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선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그 교회와 교회에 속한 많은 성도들에게 선하신 하나님이 되시는 것도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교회 자체에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셔야 할 만한 어떠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좋음 때문에 하나님이 선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주권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선택하시고 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에게 부어지는 사랑으로 교회가 덧입게 하시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쌓으소서 라는 이야기는 이것은 전쟁과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에 적군이 쳐들어올 위협이 있다고 한다면 새롭게 성을 쌓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벽을 높이 수축함으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루살렘 성벽을 쌓으소서라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이 짧은 구절이 마치 삽입구처럼 여기에 들어간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짧은 구절이 삽입구처럼 여기에 들어간 문맥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 보았고 많은 짐승으로 하나님 앞에 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거절을 당하였고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이러한 제사가 아니고 상하고 깨어진 심령으로,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사실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버지 앞에 이 제사를 올릴 그 때에 정말 자신의 이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는 이것이 자기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택이라기보다는 자신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사도 거절당하였지만 만약에 하나님이 자신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받아 주신다면 이것은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고 나 하나를 보고는 하나님이 이렇게 나의 죄를 용서하고 은덕을 베풀 수가 없는 사람이오나 주님이 이 시온을 사랑하셔서 시온의 선을 행하시고 당신이 선택하신 예루살렘을 모든 원수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제가 바로 주님이 선택하신 그 시온의 백성이고 예루살렘의 한 지체이오니 시온과 예루살렘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셔서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새로운 생각들을 갖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미 우리와는 3천년의 간격이 있는 시대에 이 시인은 바로 중요한 언약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적으로도 다뤄주지만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우리를 다스릴 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지체로서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우리 개인에게 주신 것이라기보다는 교회와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언약이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그 언약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가르쳐진 신약의 교회의 비밀들에 관하여 한번 생각하여 보십시오. 우리 각자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정한 숫자까지 채워 세우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의 작정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 중생하고 회심한 후에는 바로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이 보편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그리고 한 지역 교회에 소속하여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곳에서 목양을 받고 돌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져 가는데 이 나 개인의 성화는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봉헌되어 우리 모두가 하나의 몸으로써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나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이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봉헌되는 것은 헌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일로 주님을 섬기지만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가 하시고자 하는 그 뜻을 헤아리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행하게 되는데 우리가 그 일을 섬길 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음으로 우리의 헌신도 봉헌이 되어서 그리스도께 봉헌이 되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일을 행하게 되고 그 때에 모든 지체들이 우리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 모든 헌신과 봉사, 주님 앞에 올리는 모든 제사와 희생,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함께 드려지고 함께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아프게 상처 내는 것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함께 연관을 맺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직접 찌르는 것이며, 그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니 자신의 구원자치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대우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누구보다도 경건하게 살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왔던 이 다윗이 죄를 범하였을 때, 자신의 의로움과 심지어는 자신의 회개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열납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터득하면서 오히려 시온의 선을 행하시는 언약의 하나님,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거룩하고 변함이 없는 약속에 기초하여 자신을 그 일부로 여겨 용납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빌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며 매일 매일 생활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게 선을 베푸시는 것은 나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그 은택에 참여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당신의 주권으로 시온의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의 은혜를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시련과 환란이 너무 커서 좌절하고 낙심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때로는 환경이 시련과 역경으로 가득차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다고 하는 그 좌절감 때문에 하나님 앞에 못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절실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당신의 언약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에게 열납되게 하심으로써 시련에서 벗어나고 죄의 용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더 큰 은택을 입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만이 생사간에 자기가 의지하여야 할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말합니다. 그 때에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시온의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에 은총을 베푸실 그 때에 내가 비록 통회하고 참회하였으나 주님이 바로 그렇게 당신과 언약을 맺은 시온을 사랑하시고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시는 바로 그 때에 주님은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번제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릴 것입니다. 이 시인은 맨 처음 주의 인자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을 때 이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죄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시온을 기억하고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성을 생각하면서 이제 자기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모든 언약의 백성들이 그렇게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때문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모든 이들이 함께 아울러 하나님 앞에 제사와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때에 주님이 그들이 드리는 헌신과 희생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개인적인 죄를 통하여 자기와 같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모든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간구하고 기도하고 또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이러한 은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쓰러진 자들을 쓰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붙들어 자기의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의 고백록속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에서 쓰러졌든지 쓰러진 그 곳에서 말씀의 지팡이를 짚고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당신이 시온에 베푸시는 그 끝없는 선과 언약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예루살렘 성의 통치를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고 또한 심지어는 주님을 배역할 지라도 자기의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예루살렘을 향한 당신의 기쁨이 끝이 없기에 그 은택으로 말미암아 우리 언약 백성들을 용납하고 용서하시고 다시 살 길을 주시는 분이시니 절망과 낙심 속에 돌이켜 주님의 은혜를 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이 드리는 기도, 올리는 예배, 바치는 헌신, 그리고 봉사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다시 우리 하나님 앞에 드려져 그 분의 임재 앞에서 그 분을 기뻐하시는 언약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온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