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과 일치
녹취자: 백지영
(질문) 무엇보다도 진리의 지식의 양이 적더라도 그 지식을 실천하기 위해서 분투하면서 합치하려는 그런 노력이 있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것, 아무리 개념적으로 진리의 지식을 알더라도 그러한 신자보다 진리의 지식을 아주 조금 아는 어르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서 분투하며 살려고 할 때 그 신자를 하나님이 더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얼마나 진리를 아는 것에 그리고 실천함에 있어서 힘써 왔는가 개인적으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목적, 사물들은 사용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 그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러니까 제가 초등부 부서 사역을 맡고 있는데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이 내가 초등부사역을 잘 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 자체를 정말로 진심으로 사랑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들도 많이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 2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 삼위 안에서 사랑을 교회 가운데에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 사랑을 일치시키는 과정 가운데서 생명과 사역의 자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제가 속으로 생각했을 때에 얼마나 교회공동체의 지평 안에서 그것들을 추구했는지 돌아보면서 많이 찔림이 있었고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발전에 있어서 현저히 진보가 없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35)
(질문) 2하고 3하고 연결하면서 삼위하나님 ( ), 적용시키자면 먼저 교사와의 모임 가운데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실제적으로 (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요구하는데, 그런 부분을 요구하다 보면 심방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지지 않는 교사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교사의 친분만을 강조하다보니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이라든가 갈등들을 보게 되었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제 안에서 교사들의 교제를 이루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교사들이 강조하는 부분은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 )과 구역모임이라든가 순장모임, 순모임할 때 될 수 있으면 참석해서 그런 것을 통하여서 세워짐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부분을 계속 (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목사님 마지막에 보면 예수의 흔적을 남기게 될 때 그게 아름다운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희 자신을 돌아보면서 저는 과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수의 흔적을 남겼는가라고 보았을 때 ( )만 남겼던 것 같더라구요. 실제적으로 제 삶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 가면서 예수의 흔적보다는 세상적인 것들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해야지만 예수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을 때 목사님 말씀했던 것처럼 내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들이 아는 진리 안에서 아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든 나의 삶의 영역에서 그 진리를 삶의 영역 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치열한 삶이 너무나 부족하기 않았는가 그렇게 의지를 세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5:42)
(질문) ( )들으면서 부서 안에 있는 문제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담임선생님과 부담임선생님이 한 팀이 되어서 아이들을 섬기고 있는데 ( )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왜 이렇게 좋게 시작하여서 ( )하나 되지 못하고 있을까 시간을 주고 스스로 깨닫고 ( ) 더 깊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말씀이 분쟁이 없는 상태가 목적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자기의 중심축을 옮겨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의 중심과 삶의 중심이 재편되는 것을 통하여서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가는 것이구나 라는 말씀을 듣고 과정 중에 있으니 이 말씀을 가지고 상황을 정리하고 또 ( )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전화해야겠다 그래서 반목하는 상황들이 내게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된 것은 다른 선생님들보다 특히 더 상처가 많고 아픔이 깊은 두 분이 서로 용납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아가페 사랑이 온전하게 까리따스 사랑 ( ) 과정이 때때로 교회 안에서 일치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이 오히려 감사하구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7:47)
(질문) 저는 개인적으로 설교 듣고 사랑의 질서( ) 목사님 말씀해 주셨는데 개인적으로도 참회를 통한 자기깨어짐을 통해서 사랑의 질서를 ( )가 쉽지 않은데 공동체적으로는 그렇게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 )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교회 전체적으로 교회가 큰 교회든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 참으로 많은 노력과 고통을 수반하는데 한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 ) 요구되는가 생각하면서 사역하는 부분을 돌아보게 되었고 마지막 부분에서 많은 지식을 아는 것보다 작은 지식을 자기 삶에 녹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전에는 사역을 하기 전에는 그렇게 하는 것들이 마땅하고 어떤 면에서는 좀 쉽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사역을 하니까 적은 것을 실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것도 실천해야 되는데 그런 면에서 너무 부족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9:17)
(질문) 저는 이 설교를 통해서 일치되기 위한 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서 인간의 ( ) 그리고 죄로 인해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서 특별히 이 교회의 일치에 있어서 이렇게 사랑으로 하나 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예배라는 요소가 아닌가 ( ) 예배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은혜를 경험하고 회개하고 자기 깨어짐과 자기가 죽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예배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가 하나 되는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10:8)
(답변) 교사든지 교구나 교회학교도 마찬가지이지만 갈등들이 생기잖아요? 내가 아마 교사리바이벌에서도 한 번 그 문제를 다루었을 것이에요. 그래서 아주 헌신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에 무엇으로도 안 되면 사람이 사용하는 아주 훌륭한 도구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유능하고 똑똑하고 헌신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그렇다면 자기 나름대로 주관이 있기 때문에 쉽게 꺾어지지 않지요. 그래서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인간성이 괜찮고 사람이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못해요. 그래서 시키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그냥 사람만 좋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도자가 절대로 편애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은 누구 편이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생각이 되면 리더 쉽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해져요.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되요.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아하는 것을 감출 수 있어야 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그 싫어하는 것을 감출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성격적으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목회에서 상당한 불리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자꾸 자기 수양을 하면 어느 정도는 감출 수 있게 됩니다. 그런 호불호(好不好)가 아주 분명한 사람들은 목회에서 많은 불리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요. 그리고 사랑으로 그런 것들을 녹여내야지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항상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교사들 심방을 정기적으로 했어요. 정기적으로 집에 가서 심방을 했어요. 그때는 항상 몇 사람이 같이 가지요. 그러면 항상 예배를 드리는데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을 ( ) 그 다음에 공부를 시켜야 되는데, 내년에 이야기를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교사들이 모이기 어려운 측면들은 있지만 그래도 정 안 되면 모두 모이기 힘들면 모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모아 놓고 매주 성경을 같이 해요. 그래서 교역자와 지체의 관계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거기서 깨뜨려지고 변화되고 이렇게 될 때에 그 속에서 자기들을 다스려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툼이 격화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매우 좋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항상 사람을 서로 성격이 다른 사람들을 조정하고 그렇게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지요. 끊임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해야 되지만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서로 시기하는 사람을 경쟁시키는 일을 시킨다든지 이렇게 될 경우에 갈등이 증폭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안 되요. 이번에 화란에 가서 이밍크 박사하고 신학교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자기가 학교를 해 보니까 교수들 중 학장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진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very few, 극히 소수의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생각과 이 모든 것들이 입체적이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공부만 ( ). 목회자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공부를 가르쳐야 해요. 그래서 모두 모이면 가장 좋고, 나 같으면 머리가 두 쪽 나도 모두 모였어요. 교사회의 때 안 모이면 안 되게끔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장악을 해서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가야 해요.(~16:15)
(질문) ( ) 교회가 일치로 하나 됨을 이루려면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작을 해서 사랑의 자리부터 먼저 설명을 하셨는데 영혼과 마음에 대한 전체적인 인간의 부분들을 다루셨는데, 사실 인턴 쉽 처음 열린교회 왔을 때 영혼과 육체 사이에 마음이 있다 이렇게 교역자들이 설명을 하셔가지고 제가 그게 성경적인 근거가 어디 있느냐 그랬을 때 대답을 못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이 부분에 계속 질문을 갖고 있었던 부분이고 주석들을 많이 보면서 히브리적 인간관이 원래 영혼이라는 말이 영혼, 마음, 생명, 존재 같이 번역이 되면서 그 이유가 히브리식 유대인들의 인간의 사고방식이 영혼에서부터 마음이 나오고 그 마음에서 생명과 존재로 나온다고 이것이 원래 전체적인 성경 전체에 흐르는 인간관이더라구요. ( )그랬는데 목사님께서 이렇게 해석을 하시는 것이 이제는 제가 이해가 다 되거든요. 그래서 ( ) 그 다음에 일치에 대하여 결국은 하나 됨이라는 것은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가 많아도 그것이 은혜가 덮어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아무 문제 없는 것이 그게 분쟁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된 일치 하나 됨이라는 것은 모두 모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 사람이 서로 ( ) 그래서 온전함을 추구할 때 교회가 일치해져 하나가 된다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실 제가 지난 주에 사랑부 어머니들 구역 가운데 두 분이 다툼이 있다고 구역장한테 보고를 받고,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교구 ( ) 전산망으로 상의를 하면서 어떻게 해결을 할까 하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인데 여기서 다 다루어지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결국은 이것이 잘 일치가 이루어지려면 사랑 안에서 일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결국은 올바른 사랑이어야지 그 사랑이 잘못된 사랑일 때 결국 일이 생겨난다는 것인데, 자기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 이 부분도 목사님이 이렇게 바로 자기 사랑 하나님 사랑 설명하시는데 성경에 보면 창세기에 타락을 다룰 때마다 항상 제귀대명사가 나오더라구요. ‘자기를 위하여’, ‘자기보기 좋은 대로’ 이것을 통해서도 정말 자기 사랑 때문에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고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재편이 되어야만 된다 그래서 결국은 한 개인 한 개인이 성숙해지고 충분히 참회와 믿음을 통해서 자기 사랑의 질서를 버릴 때 그 공동체에서 나눔이나 그런 것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지, 이것 없이 나누니까 결국 계속 찌르고 특히 사랑부 엄마들은 너무 자기들이 장애아를 가진 상처 때문에 계속 찌르고 그래서 제가 구역장한테 자꾸만 삶을 먼저 나누게 하지 말고 말씀 가르치고 기도 많이 하고 나눔을 적게 하라 이것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누면 찌를 수밖에 없다 그런 얘기로 권면을 하면서 ( )전도사님하고 그 문제를 해결을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자꾸 다투는 이유는 자기 사랑을 가지고 또 사람들이 영원한 것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도 예수님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이 자리 가지고 누가 크냐 가지고 다툼을 할 때 결국은 주님께서 마지막 방책으로 제시한 것이 마지막 하나님 나라 완성 때에 거기서 나와 함께 왕권을 가지고 통치할 것이고 그 마지막 연회에서 함께 식탁을 먹고 마실 것이다는 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하시면서 제자들의 다툼을 속에 있는 교만과 영예욕 권력욕 이런 것들을 잠재우시는 것을 보면서 내용 전체적으로 목사님께서 깊이 있게 펼쳐나가시는 것들이 ( )볼 때 볼 때마다 많이 이렇게 이어져서 요즘은 생각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또 하나는 내용이 아닌 목사님께서 이렇게 펼쳐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성경 본문을 많이 예로 들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목사님께서 성경 본문을 굉장히 많이 드시고 계시는데 그러면 훨씬 이해하는데 성경 본문 안 들고 바로 이렇게 펼쳐 나갈 때는 이해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2:58)
(질문) 교회의 일치에 대한 부분이 어떤 것들을 의미하는지 목사님께서 설교 가운데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직의 일치가 아니고 영적이고 유기체적인 일치를 가르키며 이 일치가 다른 관계와 온전함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들을 보면서 저희들이 보통 교회에서 하나된다 하나된다 라는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이것이 교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 )그것들을 실제적으로 저희 사역 가운데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일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관계와 온전함을 추구하는데 교회가 일치되면서 신자 영혼과 교회 안에서 어떠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영원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일치가 될 때 교회가 일치가 된다는 것들을 보게 되었고, 그런데 결국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렇게 하나 됨이 어렵지만 그 하나 됨을 하기 위해서 저희들이 수고를 하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외국인들을 섬기면서 태국이랑 중국이랑 스리랑카랑 그 안에 있는 한국인 스텝들, 한국인 스텝들도 태국팀의 스텝, 중국팀의 스텝, 스리랑카의 스텝들이 너무나도 다른 그 사람들을 맨 처음에는 사실 각 팀만의 고유적인 색깔이 있고 각 팀의 민족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최대한 배려를 해 주고 존중해 주는 것들도 필요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서 느꼈던 것들은 이 가운데 일치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무엇인가 그리고 일치를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노력을 했었을 때 그 가운데 이 설교를 통해서 무엇을 위한 일치인가 그리고 일치가 그것이 무슨 일치인가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토록 어려운 가운데서도 일치를 해야 되는 당위성들을 이 설교를 통해서 보게 되었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공동체 안에서 다루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들을 보았을 때 영혼에 관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과 교만과 이기심을 보면서 결국 교역자로서 이 외국인선교회를 바라보고 지체들을 격려하고 세워나갈 때 이런 부분들을 가지고 깊이 같이 나누고 이것들을 가지고 함께 다루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26)
(질문) 사역과 일치 ( ) 하면서 세상에서 일치를 가장 많이 부르짖는 곳이 정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 어디보다도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곳이 (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왜 사람들이 많이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곳에는 일치가 이루어지지 못할까? 교회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지고 모였지만 사실은 일치를 이루자라는 말이 정치만큼 표어 삼아서 나아가지는 않지만 ( )사람들의 소명과 표어로 내세우니까 또 그렇지는 않지만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는 교회와 어떤 모습이 다를 것인가 라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은 진리의 합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 곳에 흔들림 없는 일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곳에는 목사님 설교 중에 말씀하신 것처럼 때로는 분쟁이 따르고 때로는 문제도 생길 수 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진리의 합치된 사람들이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자기 사랑을 갖게 되는 이기심을 버리고, 그 다음에 나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다툼을 멈춘다면 일치를 이루어가는 모습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가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역사 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적인 사역을 많은 부분을 허락하셨지만 그 가운데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역사를 하시지는 않지만 일치를 이룰 수밖에 없는 진리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 진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분투하는 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심어주심으로 일치를 위하여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치를 이룰 수밖에 없도록 우리에게 그 길을 찾아가는 소망하는 마음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은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저의 ( )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뜨거운 열정을 가졌지만 각기 달려가는 발길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때로는 이들의 마음을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진리에 합치된 일치를 이루기보다는 개인적인 친교, 교제 ( ) 그것이 주목적일 때가 있었다 이런 저의 사역의 개인적인 반성을 보면서, 많은 진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합치시킬 수 있는 진리를 품고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영혼을 사랑하고 있는가 라는 부분에 대해서 돌아 볼 수 있는 귀한 설교였던 것 같습니다.(~30)
(질문) 저도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교통에 필요한 사랑이 인본주의적인 사랑이나 인도주의적 도덕적인 사랑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순의 사랑이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로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를 들어서 공동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공동체적인 합의가 진리다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랑의 근거를 어디서 찾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만드는 체계나 이상들은 다 사랑의 원천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이 사랑이 너무나 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른 관계에 있어서 한 영 안에서 일치되는 것에 대해서 예를 들어 주셨는데, 그리고 진리 안에 일치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깨달은 것은 참회와 믿음도 믿음은 개인적인 사건뿐 만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사건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공동체적인 것을 강조하셨는데, 정말 우리가 개인주의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 간에 바른 관계와 공동체적인 질서를 세운다는 것에 있어서 공동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목사님께서 결론으로 네 몸에 내 흔적이 있느냐고 ( ) 깨달은 말씀에 대하여 결론으 말씀하시면서 설교를 해 주셨는데,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기를 얼마나 치열하게 믿음으로 합치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많이 가르치고 많이 지성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 정말 많이 아는 것에 대한 책임과 치열한 진리에 합치시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저에 대해서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기회였습니다.(~33:33)
(질문)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대학교 시절에 ngo 그쪽에 관심이 있어가지고 그 모임에 갔었던 때가 생각이 났었는데, 거기도 ( ) 거기도 재미있게 등록을 하면 새가족 환영회 같은 것을 하더라구요. 오라고 해서 갔는데 한 40명인가 모였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단체 소개를 하고 끝나고 나서 식사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 때 처음 온 사람들, 저희도 그렇지만, 한 사람씩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나눔을 하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여기 온 이유가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교회하고 비슷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다음에 거기서 간사님들이 계시더라구요. 5년, 10년 일하신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신기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교회 ( )있었고 대학교에서도 다른 동아리 활동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저는 원래 어떤 모임이든 거기에 모여 있는 구성원들이 생각이 다 하나 되는 것인 줄 알았어요. 거기 5년, 10년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계신 간사님도 생각이 다 다른 것이에요. 환경이라는 그 하나 때문에 모여 있는 것이지 나름대로의 생각이 다 다르고, 그래서 제가 들은 생각이 그러면 이 환경운동이 힘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근본적으로 ( ) 같은데, 그래도 갈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또 옆에 있는 간사님이 그래서 요즘에 환경운동에 있어서 한계들이 ( ) 나온다 어떤 것이냐 하면 뭔가 하자고 해서 운동을 일으키는데 정작 본인들을 그렇게 안 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새가족환영회 때 브리핑 해준 것이 느리게 살기였어요. 이것 저것 예를 드는데 비행기 타지 않기, 자전거타기, 버스 안 타기 이런 것들이 나오는데 궁금했지요. 그래서 간사님은 출근하실 때 자전거타고 오시느냐고 제가 물어보았는데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분들이 그런 단체들이 그 때부터 해 가지고 영성수련 이런 것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기 하면서 몇박몇일, 20일 산행을 하고 하는데 그분들이 그러한 동력인을 얻기 위해서 영적인 데 관심을 가지시더라구요. 환경운동 하시는 분들이요. ( )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때 경험이 생각하면서 이렇게 온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어떤 모임에 없구나. 왜냐하면 그 온전한 일치를 이루게 하는 근본 자체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이고 일치를 이루어서 교제하면서 일치를 이루어가면서 목적, 방향 자체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선명하게 보여 질 수밖에 없는데 인간의 모임이나 뛰어난 어떤 지도자의 사상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내면에서부터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공동체에 대한 사랑, 보통 우리가 보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부족함이나 다툼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 사랑의 공동체가 왜 이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 )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교회구나 그래서 한편으로 소망을 갖게 되었고, 그리고 그 덕분에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치됨이라는 것은 내면으로부터 정말 진리에 합치시키려는 삶이 과연 몇 프로나 가능할까 저마다 중심축이 다 다른데 불가능하다 하는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38:08)
(질문) 이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가 교회를 이야기할 때 하는데 일치성을 이야기 하는데 일치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생명체의 한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사건들 성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것들이 생명의 원리라면 똑같이 동일하게 교회 안에서도 적용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부분들이 실제로 교회에 대한 고민들이나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고민 안에 많은 혼돈이 있었는데 그것이 목사님께서 여기서 나누셨던 원리적 일치 부분과 실제적 일치 이것을 잘못 적용하거나 혼동 했을 때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큰 혼돈을 겪게 되는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원리적으로 마치 구원론에서는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개인적 성화의 과정이 끊임없이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들 이것이 동일한 문맥에서 읽혀지는 설교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원리적 일치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불일치 다시 말해서 실체적인 의미에서는 교회가 일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리적 일치를 향해서 지향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바른 관계 그리고 온전함이라고 하는 두 부분, 두 부분에서 어느 쪽으로 치우치거나 어느 한 쪽이 결핍되었을 때에 끊임없이 분쟁과 다툼으로 일어나는 현실들을 많이 보아 왔었고, 그래서 일차적으로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시작이 되어서 성도들의 교통을 온전한 그런데 외적으로 보여지는 관계에서의 완전함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또 성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전함의 추구 이것이 전체 교회를 바라보는 조망과 그동안 제가 극복하지 못했던 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40:34)
(질문)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는데, 교회가 일치를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의 일치와 온전함을 추구하면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예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이 되었어요. 예배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무브먼트라는 어떤 동력을 통해서 마음과 생각을 일치시키지만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가치체계와 사상이 하나님의 것으로 진리와 은혜로 바뀌어져 가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장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자기깨어짐이 일어나는 것도 예배이고 또 교회의 목적에 자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것도 예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정말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42:04)
(답변) 성경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외형적인 선택이잖아요? 그것이 언약적 연대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셨지만 그것을 맺은 것을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연합을 경험해야 하고,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의 공동체라고 하는 것들을 의식하지 않으면 실제적으로 언약적 연대를 이룰 수가 없잖아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 곳에서, 그러니까 장소가 굉장히 중요해요, 한 곳에서 동시에 동일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그러니까 한 곳에서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실제적으로 그들을 일치를 이루며 살게 했다는 것이에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늘 날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가 부서로 나뉘어지잖아요? 그래서 각자 부서가 쪼개져서 교회가 분업화 형태가 되는 것.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일치가 이루어졌을 때는 문제가 적은데 그것이 그렇게 안 되어서 오만 사람이 다 신학이 없이 모였는데 교회가 다 찢어져가지고 각자 교역자의 독특한 신학을 따라서 각자 간다라고 할 때는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고 있는 교회의 그림이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사역을 많이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이지요. 그러니까 예배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함께 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러니까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장소성이라고 하는 것, 로칼리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함께 한 장소에 만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동시에 경험한다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 개개인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깨뜨려져서 일치로 돌아가야 되는데 그 겨냥하고 있는 바가 한 하나님이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때 끊임없이 떨어져 나왔다가는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가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야지만 자기가 돌아갔을 때 거기서 지체들을 만나는 것이지 그것이 아닐 경우에는 끊임없이 각자 돌아갔는데 하나의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회귀가 불가능하겠지만 회귀한다고 하더라도 각자 자기의 주장에 옳은 대로 가는 것이지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45:36)
(질문) 하나님을 향한 까리따스의 사랑이 하나님 (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또 지체들과의 연합을 이루는 사랑의 자리는 작용적으로 신자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까리따스의 사랑이 ( )가 되면 우리가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교제를 이루고 일치를 이루어 교회가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교통의 모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같은 마음으로 교회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무슨 일을 수행해 나갈 때에 사실 실제적으로 실제적인 일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이제 두 가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또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가 유지될 때 교회의 일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사실 지체들이 개인적으로 자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건이다 이렇게 목사님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 일치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자기 깨어짐과 참회를 통해서 자기 사랑의 질서를 버리고 하나님이 지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로 재편될 될 때 일치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오늘 목사님께서도 여기 말씀하셨지만 사랑의 중심축을 자기에게 두려고 하는 경향성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말씀하신 예배를 통해서 자기 죽음을 경험하고 자기 사랑을 버리고 자기 사랑의 질서를 깨뜨리면서 교회가 사랑의 질서로 하나로 통합할 때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뜻을 교회를 통해서 구현해 가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목사님 맨 마지막으로 결론적으로 말씀하실 때, 진리를 자기와 합치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사역 가운데서 끊임없는 온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서 성도와 교역자 간의 일치, 그 다음에 교역자와 교역자 간의 온전한 일치는 바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치인 것이다고 개인적으로도 진리와 나 자신의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공동체적인 사건인 것처럼 이것이 다 개인적인 자기 삶의 일부로만 생각하는 지체들도 많이 있구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까리따스의 사랑 안에서 일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48:52)
(질문) 저는 교회의 일치( ) 말씀을 들으면서 교구 안에 한 지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구를 맡고 ( ) 성장반을 마쳤고 나름 열심히 ( ) 만나서 목양팀을 ( )하는 과정에서 함께 하나 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 ) 사랑의 질서를 재편하는 부분들을 개인적으로 설명을 했었거든요. 그 지체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이에요.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가 이루어야 할 것도 많은데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목적 가운데 ( ) 얘기를 나누는데 좀 힘들어 하더라구요. 계속 기도하면서 권면하면서 ( ) 그 부분이 그 지체한테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지체에 대해서 어떻게 도왔으면 좋을까요 했더니 남편이 얘기하기를 아직 자기가 안 깨뜨려져서 그런 것이라고 전도사님이 이해하시라고 그러면서 시간을 좀 주시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 사람이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할지라도 정말 자기를 깨뜨려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사랑의 질서가 재편되어지는 자기의 중심축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축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 참 쉽지 않다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겉모양만 보고 절대 알 수 없다라는 것 많이 생각하고 진정한 참회와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서 깨어지는 은혜의 경험들이 없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하나되어지는 것이 쉽지 않다라는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또 실질적으로 우리가 사역에 있어서 공동체적인 사역을 함께 이루기 위해서는 은사가 많이 필요하다 저는 이 부분을 들으면서 은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데 이것이 ( )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자체를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심으로 ( )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인색해 하거나 공동체를 섬기는 부분에 있어서 소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것을 들으면서 지체들을 콜링하고 함께 사역을 준비해 가는 과정 속에서 저 자신도 그렇고 지체들에게도 이런 부분들이 참 많이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될 수 있는 참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 ) 생각해 보았습니다. (~52:08)
(질문) 교회와 관련된 설교를 들을 때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교회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특별히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다보면 참 하나 되기가 힘든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 교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각자 구원받은 사건도 개인적인 사건이고 개별적으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지만 그러나 이것이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접붙여주심으로써 하나 된 일치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 것이 교회인데, 그런데 우리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잘 모르고 그리고 여전히 자기가 가장 괜찮다는 교만한 마음도 있고 이기적인 마음도 있어서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부분들이 참 ( ) 마지막으로,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를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것은 진리라고 하는 그것도 진리 안에서 자신의 삶을 얼마나 깨뜨리는 그런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하여 모두가 일치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심으로써 교회의 성도들이 늘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자신을 꺾고 자기 깨뜨림을 익히고 그렇게 하면서 공동체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일치되는 모습을 교인들이( ) (~53:51)
(질문) 저는 사랑과 일치 이 설교를 들으면서 궁극적으로 목회라는 것이 회심목회가 ( )다양하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과 목표를 가지고 한 장소에 모여서 말씀을 듣지만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일들이 있지 않으면 여기서 이야기 하는 일치라고 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겠다, 자기 깨어짐, 자기 사랑을 버리는 일들이 진리를 통하여서 회심하지 않으면 ( ) 앞으로 목회에 대한 ( ) 그것이 너무 확연하게 저에게 가슴깊이 새겨졌고, 그리고 여기서 소극적인 원인과 적극적인 원인을 나누면서 영혼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이야기하는 ( ) 궁극적으로 그것이 다툼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고, 두 번째로는 우리의 부패함인데 그것이 교만과 이기심이지요. 형이상학적인 정의로 사물의 질서에 대한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는 태도 그런데 이기심은 그것을 놓지 않고 끝까지 고집하는 태도라는 것들을 보면서 교만과 이기심의 사이가 이러한 부분에 있구나 라는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사랑의 질서가 재편되는 것들에 있어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즐거워하는 것 그리고 사용하는 것, ( )사용하는 것은 자체가 끝인 것처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통해서 이 사랑의 질서가 진리 안에서 온전하게 재편되는 것들에 대해서 또 다시 한 번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한 부분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55:43)
(답변) 그러니까 일치를 이야기할 때, 그 일치가 여기서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획일이 아니라 하모니에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일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그 질서들이 질서들 안에서 각자 각자가 원래 맡고 있는 고유한 기능들과 역할들을 잘 할 수 있으며, 또 각자가 바라는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이루시려고 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사랑이 일치하게 일어나는 것 그것이 말하자면 다름이 아닌 교회의 일치에요. 그러니까 사실은 질서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들은 일치를 말할 수가 없어요. 무엇이 일치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혹시 기회가 닿으면 아우구스티누스라는 룰이라는 책이 있어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규칙서이에요. 아우구스티누스가 따가스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이후에 수도원을 세우는데 그때에 수행되었던 수행하는 삶의 원칙들을 기술한 것이에요. 규칙서에요. 규칙서를 나는 꼼꼼하게 두어 번 읽었는데, 아주 얇아요. 이주 후에 읽고 레포트 한 장씩 쓰세요, 그 내용을 우리들이 완전히 다 받아들일 수는 없어요. 그러나 상당히 많은 것들을 우리가 그 안에서 배우게 되요. 지금은 교회 공동체가 무시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규칙이 없어요. 그러니까 멋대로예요. 그래서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개신교는 영원히 spirit of split을 가지고 있어요. 찢어지는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인자 속에는 찢어짐의 정신이 있다는 약점을 인정하면서 깊이 겸손해 지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해요. 그중의 하나가 분열이에요. 질서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분열, 그래서 교회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유가 아니라 복종이에요. 자유는 불신자 때 실컷 해 본 것이에요. 교회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배워야 될 것은 복종이에요. 그래서 내가 교역자들 들어왔을 때 항상 이야기하지만 복종에 대해서 먼저 배우라는 것이에요. 자신의 권리를 먼저 찾기 전에 먼저 의무에 대해 눈을 뜨라. 그 다음에 섬김을 받기 전에, 대접을 받기 전에 내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 그런 인식을 먼저 하고, 심지어 규칙서에 무엇이라고 나오냐 하면 수도원의 지도자는 지도자도 잘못할 때가 있지만 너무 크지 않은 너무 크지 않은 잘못에 대해서는 아래 사람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 라고까지 나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윗사람이 수시로 내려가서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하고 무릎을 꿇으면 수도회의 질서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커다란 잘못이 있으면 물러나야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겸손한 마음으로 아래 사람에게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해야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결정적인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남발해서 틀을 흔들면 안 된다 그런 것이에요. 그것을 우리가 어떤 면에서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맥락을 같이 깊이 생각을 하라는 것이에요. 그것뿐만 아니라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칙서도 있고 여러 가지 나와요. 베네딕트 수도회는 훨씬 더 엄격해요.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사는 그런 것들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우리의 삶 자체가 너무나 엄격하지 않고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개판이라 이거에요. 질서도 없고. 그러니까 아무리 일치를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질서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일치를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질서에 대한 사랑이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에요. 그런 것들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에요. 어쨌든 사랑과 일치,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 성도의 공동생활 이 세 개를 여러분들이 이해하는 정도로 해서는 안 되고 체화해야 해요. 자기 자신한테. 그래서 성도들에게 여러분들이 스승으로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