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북토크
녹취자: 이경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다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여러분 예수님 사랑하고 계십니까? 오늘 삶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외쳤지만 그 행위로서 드러내지 못했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시는 교회는 사랑하고 계십니까. 교회를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며 이로 인해 우리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북 토크를 시작합니다.
이번시간에 이야기를 나눌 책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책의 저자이신 김남준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김남준 목사님은 현재 열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며 총신대학교 신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영국 퓨리턴들의 설교와 목회사역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해왔으며,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보편교회 신학과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에 정착하면서 신학적 깊이가 있는 개혁교회 목회가 뿌리내리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와 <인간과 잘사는 것>, <교회와 그리스도의 고난> 등 다수가 있습니다.
Q) 목사님 안녕하세요.
A)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Q)저는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첫 페이지를 펴면서 사실 진정한 기쁨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가져보았는데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내 신앙을 살펴보면 작은 풍랑에도 요동치는 쪽배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이 책 서문을 보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또 교회를 통해서 알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요동치는 내 신앙이 내 삶이 잔잔해 질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져봤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우선 이 책을 어떤 이들을 위해서 쓰시게 되었는지 말씀을 부탁드릴게요.
A) 지금으로부터 한 13년 전 일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목회가 정말 힘들다고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새해에 기도원을 올라갔는데 기도원에서 하나님이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거스틴에 깊이 심취해 있었던 때였는데 그때에 깨달은 진리들이 너무나 큰 것이어서 사실은 그때에 초고를 이미 작성을 했고 13년 동안에 여덟 번을 다시 쓰면서 교회 안에서 한 6천권정도를 출판해서 썼고 이번에 완벽하게 만들어서 책을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을 쓸 때에 겨냥했던 독자는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고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Q)그동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잘 알려져 있잖아요 많은 목회자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기도하고 그런데 사실 교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이고 왜 꼭 필요하고 교회의 거룩성에 대해서 강조된 부분이 약간 미약한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원래 교회에 대한 가르침들이 초대교회 때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다음으로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을 믿은 한 사람 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들이 있고 교회의 다툼도 있고 분쟁도 있었는데 그런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 시대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민을 했었습니다. 더욱이 핍박이 왔을 때 사람들이 변절하고 또 이단적이 가르침들이 들어오고 그랬을 때에 그리스도가 교회의 몸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를 놓고 많은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교회와 관련시켜서 말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때에 그리스도와 접붙여 지고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서 접붙여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게 부어져서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한다고 공동체적으로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들이 사실은 종교개혁 때까지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잘 가르쳤는데 종교개혁이 지나가고 나서 이러한 교회의 뿌리가 되는 신학들을 잘 물려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의 주제 가운데 교회를 다루고 있는 것이 가장 얕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지금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은 결국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사랑하시는 것을 본받은 가장 뚜렷한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제일먼저 자신의 교회 속에서 구현해 나감으로써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공동체의 삶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할 때에 그 가르침이 제일 먼저 교회 안에서 실현 되어 나아가면서 그러면서 교회의 공동체가 사랑하는 모습을 이 세상에 펼쳐보이도록 교회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안에는 완전히 다른 사랑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그것이 바로 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50년 동안 무좀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이면 항상 고생을 합니다. 좋은 약을 발라도 완전히 낫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저는 이 발가락을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한 우리 몸을 고치고 치료해서 그것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잘라내는 것 자체가 장애에 이르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생각하라는 것이 이 가르침의 핵심이고 이 가르침은 이미 믿음의 선조들이 깊이 천착해왔던 전통적인 가르침입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가 많은 분쟁과 갈등으로 굉장히 아파하고 또 이것이 사회적으로 지탄까지 받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굉장히 마음 아픕니다. 교회 안에서 어차피 모든 사람이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몸에 어떤 이상이 있을 때 우리는 일단은 몸 전체를 내 몸이라고 여기면서 치료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 몸의 어느 지체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덜 먹는다든지 덜 마신다든지 혹은 잠을 자기 싫은데도 잠을 잔다던지 혹은 약이 너무 쓰지만 그 약을 복용한다든지 하는 식은 결국 온몸 자체를 살려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툴 때에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일들이 진리의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너무나 쉽게 일어나고 있고, 이러는 것들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사랑의 원리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교회 문제를 교회 안에서 잘 해결하지 않고 바로 법정으로 튀어나가고 인신모독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게 하면서 사람들이 분쟁하는 모습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했던 모습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것과 언제나 순결해야 되는 것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올바르지 않는 것들은 교회에서 떼어내야 하고, 또 교회가 순수해져야 되는 것과 사랑의 원리를 어떻게 일치를 시켜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들이 남아 있지만 지금의 이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주신 (본래의) 모습에 대한 깊은 반성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Q) 목사님께서 지금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요즘 신앙이 개인주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개인주의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공교회가 되어서 협력해서 선을 이루어 나가야 된다, 라는 주의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사실 교회에서 요즘에 적당히 믿고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 하는 분위기가 사실은 흐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솔직히 교회에서는 온 힘을 다하고 열정을 다하고 수고하고 같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어야 되는데 이런 시기에 어떻게 교회가 다시 힘을 내서 하나로 뭉쳐서 나아갈 수 있을까요?
A) 성경적으로 보면 이런 비유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산이 있습니다. 산이 이렇게 있으면 한 사람은 앞으로 올라가고 또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올라갑니다. 올라가는데 이 사람들은 서로 산에 올라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산 위에 올라가면 그 정상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만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각기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를 쓰면 결국은 그 하나님이 어떤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인 줄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만나고 나면 사실은 자신들이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 드리고자 하는 요점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진리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할 때 그것은 결국 성령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누추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버리고 포기하고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하나의 일치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그리스도 몸이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놀라운 깨달음과 함께 부흥이 왔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한국교회에서는 1907년에 평양에서 있었던 대부흥입니다. 그 부흥이 있기 전에 성도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설교가 있었는데 선교사 한사람이 선교를 하다가 휴식 차 사냥을 나갑니다. 그러다가 총신이 파열이 되면서 자기의 손가락에 큰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손가락이 상처를 입었지만 온 몸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 상황을 두고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교회는 시대 상황에 따라 항일파 등 여러 파들로 나뉘어서 교회가 갈등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그 설교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고 분쟁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면서 부흥의 불을 지피는 도화선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식었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행복 대신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살아가는 개인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그 해결책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깊은 부흥과 은혜가 일어나야 된다고 봅니다.
Q)조금 우스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왜 이렇게 그러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분쟁도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교회를 만드신 이유가 있을까요?
A)그것은 개인의 구원을 보면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닙니다. 환경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고 보니까 내 믿음이 훌륭한 줄 알았는데 내 안에 정말 아주 더러운 죄성도 남아있고 욕심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에 ‘그게 뭐 어때. 나는 이렇게 밖에 못살아. 이제 더 이상 살기도 싫어.’라는 식으로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기서 끝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아, 내가 신앙이 좋은 줄 알았는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방주사의 원리가 우리가 걸리기 싫어하는 병의 병원체를 우리의 몸속에 집어넣어 그 균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한다면 독감 병원체를 우리의 몸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독감의 균이 침투해 왔는데 그것과 싸워서 면역력을 갖게끔 만들어서 항체를 형성하는 것이 예방주사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죄를 만드신 분은 아니지만 그런 죄와 연약한 것들이 인간 안에 있는 것을 사용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죄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럼 이 그림을 교회로 확장시켜보세요. 교회가 사랑이 없고 진리의 말씀이 없을 때에는 ‘저런 나쁜 놈이 교회에 있네. 어떻게 저런 너절한 인간이 우리교회에 있어서 우리 교회를 이렇게 욕보일까? 아, 저건 그냥 잘라 버렸으면 좋겠어. 아니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있으면 그리스도 몸에 그런 결함이 있는 것을 보면서 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저 사람까지도 온전하게 만들어주시는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더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하나님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완전했더라면 인간이 오히려 교만해졌을 텐데 그런 부족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우리에겐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고백을 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가 거기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Q)목사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책에 나와 있는 두 가지의 신자라는 부분과 비슷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을 통해서 서로한테 영향이 공급되고 사랑으로서 더 깊은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내용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목사님께서는 책에서는 거짓신자를 가려내는 과업이 교회는 꼭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들었을 때 교회는 그래도 참과 거짓을 구분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의문을 많이 가질 것 같은데요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거짓신자를 구별해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완벽하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나누어 이야기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예수를 믿는다고 형식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는 그중에서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께 접붙여 진 참 신자들로만 이뤄진 교회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보다) 항상 적은 수의 신자들이 모여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원을 그려야 되는데 그것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형식에 있어서 이런 사람들은 제외할 수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교회에서 고백하는 이런 저런 것에 동의할 수 없어. 그리고 나는 내 맘대로 막 살 거야.’라는 식으로 교회의 고백과 형식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고 제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을 비롯하여 그 이전의 테르툴리아누스나 닛사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 속에서 하나의 교리가 세워지게 됩니다. ‘토투스 크리스투스 교리’, 라틴어로 말하면 ‘전체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이 교리는 교회의 참 신자와 거짓신자를 완벽하게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일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예수의 몸으로 여기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함께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자기보다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더 많이 사랑해서 그리스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은혜의 동일체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입니다.
Q)교회를 섬기는 것은 교회의 지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것 그리고 또 나와 다른 그들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들었는데요. 목사님께서 이 책을 쓰시면서 이와 관련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A)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비진리는 서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아니면 ‘나는 세상을 사랑한다.’ 이는 서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창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이후에도 똑같은 사람이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하는 말이 ‘우리 한 인간 한 인간은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희귀종의 마지막 개체다. 절대 반복되지 않는다.’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면 빼어나게 예쁜 탤런트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수천명중의 한 명이니까 예쁘지 김태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압구정 거리를 천 명 정도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쁘겠어요? 무서울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세요.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떤 별은 붉게, 어떤 별은 푸르게, 어떤 별은 더 밝게, 어떤 별은 흐리게, 어떤 별은 작게, 어떤 별은 크게 반짝이면서 똑같은 시간이 아니라 아주 다른 시간을 가지고 반짝거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먹 만 한 별들이 하늘에 가득 있으면서 똑같은 시간에 번쩍번쩍한다면 어떻게 하늘이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다양한 은사와 성품을 주셔서 태어나게 하셨고 그 사람들이 함께 서로 사랑할 때에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결함처럼 보이는 것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우유부단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릴 때는 공동체가 경솔하게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을 이 우유부단한 사람을 통해서 통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 우유부단 사람은 “그 일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라는 식으로 그 길을 막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은 너무 경솔해 보입니다. 그 경솔한 것이 결국은 죄의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은혜를 많이 받고 온전해집니다. 그러면 경솔해 보이는 그 사람 때문에 빨리빨리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갈 수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들에게서 죄가 싹 제거되고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아름다운 본성들이 전체적인 사랑의 연합을 이루게 될 때 이 사람은 저 사람을 통해 도움을 받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식물과 동물과 이 모든 세계가 서로를 의존하며 있듯이 교회가 누구 한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온전해지는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주신 것이고, 사랑은 그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이 책에서 그렇게 본 것입니다.
Q)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저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는 구절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다 라고말씀하신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아가고 기억 하는 것을 해야지 라고 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지 라는 생각도 들고 의무라는 표현은 제가 사실 잘 들어보지 못했던 같아요. 의무라는 단어는 책임감이 붙고 반드시 해야 할 도리라고 알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이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사람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무는 사랑할 때는 달콤한 특권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픕니다. 그래서 밤새워서 간호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의무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아파서 병원에 누웠으면 내가 간호하는 것이 내 의무입니다. 그 사람을 간호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특권을 느낍니다. 이 자리는 아무도 있을 수 없는 자리고 나만 할 수 있다는 의무는 특권과 일치를 이룹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저 사람을 사랑했었는데 이제 사랑을 안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덜컥 아픕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내 남편이니 내가 도와주긴 해야 하는데 사랑은 없고 의무만 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그 시간에 친구들과 영화보고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 사람 옆에서 밤을 새워서 간호할 생각을 하니까 의무는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요, 교회의 지체로서의 의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모든 것들이 달콤한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21살에 회심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경험한 것이 그전까지는 제가 무신론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을 했었는데 주님을 만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가난한 청년이었는데 교회에서 아픈 지체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쓰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닭 한 마리를 사서 봉지에 담아서 목사님께 주면서 아무개 자매가 너무 아픈데 목사님 이것을 좀 전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했더니 목사님이 그것을 들고 그 자매를 심방하고는 ‘김남준이라는 청년이 너 몸보신하라고 준거야’라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제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내게 있는 많은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 사랑하는 지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의무와 사랑의 일치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하고 나면 그 의무가 고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에게 이 아이를 위해서 돈을 벌고 학교를 보내고 하는 것은 엄마의 고통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그래도 살아있는 보람이 있구나. 이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헌신할 수 있구나.’ 여깁니다. 그런 점에서 청교도들이 설교시간에 굉장히 많이 한 단어가 의무이었습니다. 지금도 청교도 서적 찾아보면 성도의 의무, 기도자의 의무, 예배자의 의무, 의무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Q)말씀을 계속 듣다보니까 책을 펴내신 것도 그렇고 목사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여기까지 느껴질 것 같은데 제가 또 하나 궁금한 것은 목사님께서 교회를 이만큼 사랑하는데 혹시 목사님께서
보기에도 저 교회를 저렇게 까지도 사랑하는구나 하는 간증이나 사례가 있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A)많이 봤습니다. 특히 성도들 속에서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느끼는 지체들을 말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2006년 1월에 5일 동안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13년이 지났지만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그 말씀이 열린교회를 이렇게 지탱해가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그 말씀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시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에 우리 교회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말씀을 듣다가 진력이 날 정도가 되면 신앙이 식고 또 다른 교회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전했던 2006년 연초에도 그랬듯이 해가 바뀔 때마다 약 200명 이상의 교인들이 이런 식으로 이동을 합니다. 다른 교회 다니다가 너무 힘드니까 우리 교회에 오는데 이 설교를 들은 후 그 사람들이 다 자신들의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말하기를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200명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교회로 돌아와라. 그리고 그 교회가 어려워도 잘 참고 주님의 사랑으로 성도들을 섬겨라. 그대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라.’ 이것이 우리 교회에서 유명한 일이 되었습니다. 200명이 떠났지만 200명이 더 모인 것보다 더 깊은 은혜를 받으면서 헌신적으로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저 자신을 바꿔놓으면서 이런 결단을 하게 했습니다. ‘성도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목사인 나는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 이 깊은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연약하기 때문에 은혜가 많이 있을 때에는 잘 죽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정말 힘듭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우리가 풀어야 될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Q)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사실은 교회를 섬기고 있으면서 의무라고하면 늘 부담감과 그런 굉장히 책임감 때문에 힘들다 나를 희생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나는 그리스도의 특권을 누리는 거구나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혹시 이 책에서 목사님께서 쓰시면서 감동을 받으셨던 구절이든지 아 이 부분은 독자들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는 구절이 있으신지요?
A) 너무나 많지만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을 나에게 가르쳐준 위대한 신학자는 어거스틴의 말을 특별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공간은 우리에게 사랑할 것을 제시하지만 시간은 그것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사람도 만나고 물질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도 만나고 책도 만나고 합니다. 그래서 공간은 이런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냐고 막 제시를 합니다. 공간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웠던 사람도 죽어가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젊음도 사라져가고 내가 소유했던 것도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하면서 모든 것이 변합니다. 심지어 고향으로 돌아가도 옛날의 그 고향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정말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겁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공간은 사랑할 것을 끊임없이 제시하지만 시간은 그것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지나가는 것들이기에 영원히 살아계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 인간 자신은 사라져도 결국은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 된 가운데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면서 그 영원의 빛으로 시간의 현실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남편과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 때문에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되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기에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 향하기 때문에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모든 허무와 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이며, 시련과 고난이 올지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목사님 사실 교회가 자꾸 노화가 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힘을 잃고 아이들이 없고 이런 때에 교회가 다시 한 번 성장하고 부흥해서 열심히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럼 이 프로그램을 보는 청년들과 부모님과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는 한마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사실은 교회가 노화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교회는 그렇고 어떤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노인이나 젊은이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 진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 그 진리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려면 세상이 아름답다고 포장하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지를 지성으로서 파악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를 지성을 통해서 알게 될 때에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미국에서 광고를 하나 찍었는데요. 그 광고가 마약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광고였습니다. 화장을 해서 그림처럼 예쁜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화장을 하나씩 지웁니다. 그런데 다크 써클이 있고 이빨이 다 빠지고 피가 흐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나오는 광고카피가 ‘마약의 위험은 생각보다 무섭습니다.’라고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상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고 그 만큼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도 곤고하게 삽니다. 심지어 자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이시고 그분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어야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됩니다. 두 개를 묶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Q) 아무래도 목사님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또 목사님을 통해서 참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 주세요.
A)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인생은 원래 내 맘대로 안 됩니다. 그것을 빨리 터득해야 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살수록 실망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인생은 어차피 우리 마음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힘으로 살아야 합니까? 때로는 내 마음대로 되는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날 때에는 이 일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그래서 바다 위에 배를 띄우고 항해를 합니다. 때로는 폭풍을 만나고 때로는 잔잔한 바다를 지납니다. 하늘 위에 별은 변함없이 떠있습니다. 그 별을 보면서 우리는 항로를 찾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저런 시련을 격고 어려운 일을 겪지만 이것도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사랑 한다고, 더 가까이 나아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권사님들이 좋아하던 찬송이 있었습니다.
(찬송) 그 풍랑 인연 하여서 주께로 갑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잘 나갈 때는 하나님 멀리 떠났는데 풍랑이 일어나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 풍랑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간다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과 독자여러분들이 이 책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역경보다 훨씬 크니까 그 어머니 같은 사랑의 품에서 용기와 힘을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오늘 끝까지 귀한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프로그램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있는 것은.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에 한 발작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데 저희가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북 토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